[2021년 12월 26일]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12)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FSTXkg7f2wU
금년 마지막 주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90편 1절로 12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869면입니다. 869면 시편 90편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돋아 피었다가 시들며,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노에 심히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시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힘과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멘.
여 며칠 전 우리 교회 목사님이 사계절 수묵화 책을 한 권 보내왔습니다. 그것은 수필집이었습니다. **'늘이 호'**라고 하는 작은 책이었는데, 그 책을 펴서 첫 페이지를 딱 여니까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우리 부모님이 다 평균 70세 전후에 가셨기 때문에 나도 그도 70세 전후에 갈 줄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어쩌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90세까지 살았다. 그리고 이 나이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묵상했더니 그 다음은 이러하다" 하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75세입니다. 그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옵니다. 그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런가 하면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80세입니다. 애굽 궁전에서 40년, 광야에서 목자 생활을 하면서 40년, 그리고 80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때가 80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곧
내 나이 90에는 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성경을 읽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들린다. 한평생 읽은 성경이지만 이 나이가 돼서 읽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정말 선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다고 그렇게 간증하는 글을 쓴 그 책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나이 먹는 것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언제나 과거에 대한 것입니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면 그가 지식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만이 경험도 하고 많은 여행도 하고 지식의 세계를 넓혀서 사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모아서 지식이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과학을 위한 정신적 소재입니다. 그런데 지혜는 다릅니다. 지혜는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앞에 있는 세계, 다가오는 세계. 그래서 말입니다. 지식은 있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흔히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식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머리가 더 혼란해지고 그렇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보면 공부는 별로 없는데 아주 지혜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뭐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지만은 그 생각하는 것이 아주 지혜롭습니다. 미래의 지향적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거에 속한 지식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로 향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모세는 기도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참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볼트만은 **'쉐이킹 더 파운데이션(Shaking the Foundation)'**이라고 하는 그 유명한 저서에서 시간 개념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합니다. 아주 신비로운 해석입니다. 먼저,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한다. **'크로노스'**라고 하는 그 사건 속에서 모든 세계, 모든 현상을 다 변화시키고 소멸시키고 맙니다. 그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그러나 그 시간 자체 안에 그 변화되고 소멸이라고 변화되고 소멸하는 그 속에서 영원, **'아이온'**이라고 하는 영원을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과거도 그때는 현재였습니다. 현재가 과거로 변한 것뿐입니다. 그 과거는 과거로 가면서 이 현재를 전부 과거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영원함, 영원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지만은 확실한 것은 목적지의 확증이라. 시간의 변화, 세상의 혼돈, 어둠 속이 무언가 확실한 목적을 향해서 지향하고 있고 그 선하신 목적을 오늘 이루어 가는 그러한 변화로 세상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시간에 대해서 제일 차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은 본문의 시편 90편 첫 도입부의 모세의 기도에 되어 있습니다. 확실하게 네 가지를 지적해 놓았습니다. 모든 구원보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제일이 아닙니다. 지나온 삶이 아닙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세상도 아닙니다. 하나님,
미래를 바라보게 해 주세요. 그래서 지혜로운 마음을 열어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말하면 현재가 미래로 가고 있는데 그 종말은 어디입니까? 그 끝은 어디입니까? 세상 끝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께 물어봅니다. "세상 끝에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궁금해서 계속 물어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것으로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자기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제자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알아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멀 훗날에 성령이 충만할 때, 또 그리고 복음 사역을 위해서 온 생을 바칠 때,
아니 순교하기 직전에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혜를 얻게 된 듯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모세의 기도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소서." 오늘 본문의 맥락은 그렇습니다. 이 세상 다 변하고 있습니다. 다 소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 변화 속에 있다. 방향 없는 변화가 아닙니다. 의미 없는 소멸이 아닙니다. 모든 큰 재난과 변화 속에서 하나님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짧은 생이지만 한평생 살아오면서 그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고생과 회고, 군인 생활하면서 아주 위험한 것 많이 보고 참혹한 것도 많이 보고 그리고 여러 가지로 변화 속에서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또 해외 유학을 한다고 하면서 지내기도 하고 또 등대, 방학 때 제철 공장에 가서 한 번 이게 뭐냐 하면서 그 뜨거운 쇳물 웅덩이 앞에서 일도 해보고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는 그렇지만은 살아왔습니다. 물론 여행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변화 속에 하나님은 영원하신 경륜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조그만 사건 하나에도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이 있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 저 개인적으로 유학 개인적인 얘기입니다만 정작 유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저는 북한에서 국민학교를 다 했기 때문에 남쪽에 와서 제가 중고등학교 다닌 일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영어를 정기적으로 배운 일이 없다고 말입니다. 근데 내가 어떻게 유학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어요. 그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쨌든 제가 참 감격스러웠던 시간입니다. 토플 시험 600점 받아가지고 프린스턴 신학 교를 가게 됩니다. 아, 나는 굉장한 내게 이 일은 굉장한 기적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제가 군인 생활할 때
그 교회에 다니시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어려운 이 시기에 놀러 갔더니 자기 방이 있더라고요. 그 아침저녁으로 다 보고 그랬는데 조용한 시간에 그런 말 하더라고요. "날 보고 학생, 영어 공부 하라고. 영어 공부를 준비하라고." 아, 그래서 아까 그에게서 내가 뭐라 했습니까? "지금 군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야? 영어 공부를 해도 돼?" 그래서 그때 제가 **'콘사이스(Concise) 사전'**을 사가지고요, 그러한 페이지를 보고 외우고 찢어버리고, 외우고 찢어버리고, 콘사이스 사전 4권을 외웠습니다. 제가 그걸 외웠는데, 그러니까 뭐 그 단어 발음도 모릅니다. 문법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콘사이스를 외워 둔 것 때문에
제가 토플 시험에서 600점 받았고 또뿐만 아니라 유학 생활 5년 동안에요, 콘사이스 한 번 뒤져보지 않았습니다. 왜요? 단어 실력은 충분하니까. 발음과 문법도 모르지만은 그래서 별로 많이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어려운 유학 생활의 공부를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교장 선생님 내게, 아니 그 군인 생활하는 사람에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영어 배워 둬야 해" 그 한마디가 나의 운명을 바꾸는 거예요. 나는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착착 진행되어 나가는 걸 보게 됩니다.
제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경험은 북한에서 1951년도에 그 모나지 광산에서 고생한 겁니다. 50년도 51년도 사이인데 정말 8개월 동안 그 인간 지옥입니다. 그는 강제 노동 수용소, 누가 말해도 상상도 못 합니다.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차라리 그 어려운 상이 오히려 나에게는 소중합니다. 지날수록 소중합니다. 이따금 꿈을 꾸면 꼭 그 장면에 꿈을 꿉니다. 모든 시련이, 모든 변화가 지만 하나님의 경륜은 확실했습니다. 그 속에 있었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말합니다. "인생은 티끌로 돌아가라." 흙이다. 우리의 몸은 흙입니다. 우리 현실은 흙입니다. 우리의 현상은 다 지나갈 것입니다. 이대로 있을 것이 아닙니다. 변화하고 소멸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0절에서 말합니다.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총명이 흐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날아가는 것같이 신속합니다. 신속히 지나갑니다. 빨리 갑니다. 참 그렇습니다. 요새 1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1달에 한 달 만도 못한 것 같아요. 새해 맞은 거 같은데 벌써 또 다음 해가 옵니다. 어쩌다가 이 지내 내일 모레 제가 90세
됩니다. 아 세상에 90세에 목사님 설교 한다는 이야기 들어 본 일이 없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벌써 이렇게 됩니다. 나이 가니 신속히 갑니다. 자랑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수고와 슬픔 뿐이라."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다 지나갈 것입니다. 오늘 이루어 놓은 거 다 무너질 것인데 자랑은 없습니다. 아니,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말합니다.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런 **'크로노스'**가 아닙니다.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크로노스가 아니고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카이로스,
곧 작은 시간, 그 의미를 알게 해 주세요. 시간 시간도 중요하지만 내 앞에 있는 시간, 내 손에 있는 시간, 이 현재라고 하는 시간, 지혜의 마음을 주어서 이것에 대한 미래의 지향적 의미를 알게 해 주세요. 이것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해 주세요. 오늘날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그걸 알게 해 주세요. 가르쳐주세요. 깨닫게 해 주세요. 믿게 해 주세요. 깨닫게 해 주세요. 아니, 그 섭리를 기쁘게 해 주세요.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6절에서 말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그런 인생을 한 경주자로 보았습니다. 운동 경기장에서 뛰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발점이 있습니다. 딱 뛰어 나갑니다마는 저 앞에 결승점이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으면 종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결승점을 바라보며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순교의 시간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관제와 같이. 관제란 피를 제단에 갖다가 쏟아 붓는 겁니다. 받기로 주로 피를 쏟아 붓는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됐다. 다 쏟아 버렸다. 다 소진했다. 갈 길을 다 달렸다. 달려갈 길을 다 달렸고 믿음을 지켰다.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여러분 잊지
마세요. 누구나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습니다. 집착을 가질 필요 없어요. 집을 가꾸고 뭐라고 뭐라고 일구고 뭐 하라는 것 아닙니다.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어요." 아니요, 이건 돌아야 될 때요. 더 이상 집착하고 꾸리고 자식 걱정하며 준비하고 할 시간이 아닙니다.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 그는 결승점에 선 자기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합니다. "이제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보고 그는 결승점에서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승점에 서서 앞에 있는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순교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종말입니까? 면류관을 바라보는 지혜,
면류관을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시각. 그는 지난날의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앞에 있는 면류관을 바라보며 손을 들고 주를 영접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권사님을 압니다. 그가 나이 들면서 그만 귀가 어두워졌어요. 안 들립니다. 그 여러 가지로 답답합니다. 그러고 나니까 귀가 안 들리니까 그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봅니다. 이제 하루에 네 시간씩. 그러니까 그 딸이 묻기를 "뭐 5번이 아래 신학교 갈래? 왜 이렇게 성경을 많이 보느냐?" 그러니까 어머니 대답을 들어보세요. "지금 내가 나이 들어서 귀가 어두워졌다. 조금 있으면 눈도 어두워지지 않겠냐?
눈 어두워지기 전에 성경을 봐야지." 그 한마디가 얼마나 얼마나 정말 정말 종말론적 고백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귀가 항상 열려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눈이 항상 밝을 때로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건강이 항상 좋겠습니까?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경을 보겠다." 여기에 기약하고 여기에 집중하겠다. 목표에 맞춰서 사니 얼마나 아름다운 종말론적 신앙 의식입니까? 로마의 한 정치가 카토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40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어려운 그리스어를, 헬라어를 공부하겠다, 이제부터."
그러니까 그건 배워서 뭘 하겠냐고. "이제부터 헬라어를 공부하다니, 그걸 뭘 하겠냐고." 그러니까 그가 한 말에 지혜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남아있는 날들 가운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요. 내게 남아있는 시간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야." 과거가 아니에요. 가장 풍요한 시간은 이 현재예요. 현재의 노 순간, 요 주어진 능력 이 안에서 지혜를 가져와야 합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 과거에 매이지 않겠어요. 하늘을 열어주시옵소서. 미래를 열어주시옵소서. 그리고 오늘이
감사할 줄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하신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할 수 있는 일도 다했습니다. 또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니요,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확실합니다. 하나님이여,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 지혜롭게 사는 사람 되겠어요. 이것이 모세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여, 지혜로운 마음을 알 그 길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지금
금년 한 해는 다사다난했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건강하게 하시고 이만큼 우리가 주의 전에 모여 예배하게 하시고, 오전에도 일찍이 나와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금년이 지나가는 이 마지막 주일의 주시는 말씀, 모세의 기도를 따라 우리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주의 마음을 열어주어 소." 그리하여 우리 앞에 있는 영광된 미래를 보게 하셨고, 그 영광된 미래의 앞에 있는 오늘을 알게 하세요.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생각해야 될 일, 내가 말해야 될 일, 내가 서둘러야 될 일을 알게 하사 지혜를 알고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시편 90편에 근거한 설교 요약: 지혜로운 마음을 위한 기도
본문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전하는 설교 말씀으로, 시편 90편 1절에서 12절 말씀을 중심으로 **'날 계수함을 가르쳐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 모세의 기도를 통해 영원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 시편 90편의 핵심 내용 (모세의 기도)
- 하나님의 영원성 (1-2절): 하나님은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시며, 산과 세계가 있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 인생의 유한함과 덧없음 (3-6, 9-11절):
- 인간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 하나님 앞에서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나 밤의 한순간과 같습니다.
- 인생은 홍수처럼 쓸려가고, 아침에 돋아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르는 풀과 같습니다.
- 우리의 모든 날은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평생이 순식간에 다합니다.
- 인생의 연수와 허무함 (10절): 연수가 70,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며 신속히 날아갑니다.
- 지혜로운 마음을 위한 간구 (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2. 💡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
- 지식: 과거에 대한 것, 과학을 위한 정신적 소재 (경험, 여행, 학습 등을 모은 것).
- 지혜: 미래에 대한 것, 다가오는 세계를 바라보는 능력.
-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없을 수 있으며, 지혜는 미래 지향적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 모세의 기도 역시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3. ⏳ 시간 개념에 대한 신학적 이해 (볼트만의 해석)
유명 신학자 볼트만은 시간 개념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 크로노스 (Chronos):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소멸시키는 일반적인 시간.
- 아이온 (Aion): 변화하고 소멸하는 시간 속에서도 영원을 품고 있는 영원성.
- 목적지의 확증: 시간의 변화와 세상의 혼돈은 확실한 목적을 향해서 진행되며, 하나님은 그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4. 🙏 지혜로운 마음의 의미와 적용
-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 짧은 인생과 모든 변화 속에서도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그분의 영원한 경륜과 계획이 중단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작은 사건(유학, 군인 시절 영어 공부 등)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 카이로스 (Kairos): 모세가 구한 지혜는 단순히 크로노스(흘러가는 시간)가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카이로스'(하나님의 시간, 의미 있는 시간), 곧 현재의 순간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 현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미래 지향적 의미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 떠날 기약의 준비: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도다"라고 고백하며, 결승점 앞에 있는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 이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와 영광스러운 종말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시각입니다.
-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삶: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경을 보겠다"고 고백한 권사님이나, "나에게 남아있는 날들 가운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한 로마의 정치가 카토처럼, 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 결론: 마지막 기도
설교는 금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아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라는 모세의 기도를 따라 기도할 것을 권면하며 마무리됩니다. 영광된 미래를 보고, 그 미래 앞에 있는 오늘을 알며, 오늘 해야 할 일, 생각해야 할 일 등을 깨달아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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