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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예화 15,314편◑/추천 명예화{1,752편}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by 【고동엽】 2022. 10. 22.
 
 

보이지 않는것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전래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홀아비가 역시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과부를 맞아들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동갑 나기 두 아들을 키우게 된 이 여인은 참 마음씨 착한 부인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이 부인의 자세는 참으로 만인의 귀감이 될 만 하였습니다. 부인은 전실 소생의 아이나 자기 소생의 자식이나 한결같이 대하였습니다. 혹 선후를 가를 일이 생기면 언제나 전실 자식을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실 자식은 점점 비루먹은 강아지 꼴인데, 그 부인의 친자식은 탐스럽게 잘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것을 보면 똑 같이, 아니 오히려 전실 자식에게 더 잘 하는 것 같은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이 부인이 영악하여 남들 앞에서는 전실 자식을 위하는 듯 하면서, 남 안 볼 때는 전실 자식을 구박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부인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았으나 남이 있든지 없든지 부인의 태도는 한결 같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우연히 부인이 잠든 방을 보게 되었는데 부인은 전실 자식을 품에 안고, 자기 자식은 건너편에 뉘운 채 잠자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남편은 부인을 의심한 것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전실 자식과 부인이 데리고 온 자식의 발육 상태의 차이는 순전히 생래적인 차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집안의 중요한 일로 먼길을 떠났다가 새벽녘에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집안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방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도 부인은 전실 자식을 자기 품에 안고 자고 있었고, 부인의 친 자식은 건너편에 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인의 몸에서 이상한 안개 같은 기류가 흘러나와 품에 안은 전실 자식을 건너 뛰어 부인의 친자식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아, 그렇구나,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가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86-87쪽>

 

 

 
 

놀이의 의미

 

1960년대에 프랑스 한 수의사가 동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골치 아픈 문제 하나를 해결하였습니다. 그 수의사가 발견한 방법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형태의 모든 문제를 풀어 가는 데도 매우 유용한 암시를 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수의사가 해결한 문제란 무엇인가?

한 목장 주인이 종자가 좋은 말 네 마리를 구입하였는데, 이 네 마리의 말들은 서로 만나기가 무섭게 물고 뜯고 싸우고 사납게 날뛰었습니다. 그 말들을 나란히 매어 마차를 몬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함께 모아 놓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기 때문입니다.

목장 주인은 할 수 없이 수의사를 찾아가 이 말들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수의사는 어떻게 하면 될까?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습니다.

수의사는 네 마리의 말들을 마구간에 칸칸이 차례로 집어넣었습니다. 말들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서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수의사는 칸막이 사이에 구멍을 뚫고 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창마다  몇 가지 놀이 기구를 매달아 두었습니다. 말들이 머리로 탁탁 받아쳐서 돌릴 수 있는 바퀴모양의 작난감, 발굽으로 쳐서 한 쪽에서 다른 칸으로 넘길 수 있는 탄력 좋은 공, 끈에 매달아 흔들리도록 만든 알록달록한 놀이 기구 등입니다. 말들은 이런 작난감에 아주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

수의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말들의 자리를 교대로 바꾸었습니다. 네 마리의 말들은 차츰 차츰 서로간의 적대감이 잦아들고, 서로 서로 호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의 말들은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변하였습니다. 네 마리 말을 한 마차에 매어두어도 전에 와는 달리 서로 머리를 부벼대고, 핥아주며, 따듯한 우정을 나타냈습니다. 네 마리 말들은 서로 놀이하듯 재미나게 마차도 몰고 신이 나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여러 가지 공동체, 가족, 학교, 회사, 교회, 그리고 갖가지 다양한 공동체 속한 사람들 사이에도 원인 모를 저항감과 반발심, 적대감으로 인하여 불편하고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공동체의 리더는 이 수의사처럼 그 공동체에 적합한 놀이를 개발하여 적용한다면 큰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혁명, 170-171쪽>  

 

 

 
 

이제 내 기분을 알겠는가?

 

나폴레옹(1769-1821)의 비극은 1812년 러시아 침공 실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12년 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의 용병을 포함한 453,000여명의 나폴레옹 직속 군대는 Nimen 江을 도강하여 물밀 듯 러시아를 공격하여 들어갔습니다.  

이때 러시아 방위군 사령관 미하일 쿠트조프(Mikhail Kutuzov)는 나폴레옹의 공격을 초토화 작전(scorched earth policy)으로 맞섰습니다. 마침내 러시아의 강추위를 견디지 못한 나폴레옹은 1812년 11월 러시아에서 철수하였는데 이 와중에 특히 Berezina 江 전투에서 참패하여 453,000명의 군대를 거의 잃고 겨우 10,000여명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 코삭크 기병대의 집중 추적을 받은 나폴레옹은 주변에 근위병도 없는 너무나 다급한 상황을 만나, 어느 외딴  산간 마을 농부의 집 이불 장 속에 숨었습니다. 코삭크 수색대는 집집마다 다니며 프랑스 잔병을 수색하던 중 나폴레옹이 숨어 있는 집에도 들어와 그가 숨어있는 이불장을 긴 총대 앞에 달린 칼로 푹푹 찔러보고는 돌아갔습니다. 구사일생한 나폴레옹에게 집주인 농부가 따뜻한 저녁을 대접하고 있을 때 흩어졌던 나폴레옹의 근위병이 도착하였습니다.

그제야 농부는 그가 나폴레옹 황제인줄 알았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농부에게 사례하고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다른 소원은 없고 아까 코삭크 기병대가 폐하가 숨어 있던 이불장을 칼로 푹푹 쑤실 때 기분이 어떠하였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폴레옹의 얼굴빛이 싹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런 무엄한 놈을 보았나 하고는 근위병에게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이 놈을 총살 시켜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근위병들은 나폴레옹의 명령대로 눈 덮인 러시아 황량한 평원에 말뚝을 세우고, 그 농부를 잡아매고는 다섯 명의 사수가 총살 집행 준비를 하였습니다. 군대- 준비-! 하나, 둘,...하는데 저 쪽에서 황제 직속 근위병이 멈춰라! 소리 지르며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명으로 총살은 취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위병은 말뚝에 매여 창백한 농부에게 다가가 묶은 줄을 풀어준 뒤 품안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주면서 이것은 폐하께서 그대에게 주라고 하신 편지니 받아보시오 하였습니다. 농부가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이제 알겠는가?  친애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혼으로 만드는 日製

 

작년 이 맘때 일본 유명 음식점 100 곳을 엄선하여 탐방 취재하였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계속된 일본 음식점 기행을 통하여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유명한 음식점의 70% 이상이 탁자가 10개 미만의 소규모이며, 주방장이 곧 주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뎀뿌라집, 화식집, 스시집, 우동소바집, 프랑스 요리 전문점, 이태리 요리 전문점, 등 유명하다는 음식점은 한결같이 작은 규모였다. 프랑스나 이태리 요리 전문점 주방장은 유럽 현지 최고 수준의 주방장이 下山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온 사람들이다.

맛? 너무 너무 맛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라면 크게 확장하고 이곳저곳 분점을 냈을텐데 여기는 손바닥만한 식당 한 군데밖에 없다는 것이 경이롭다. 이들은 우리만큼 돈 버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책임질 수 있는 한계 이상은 확장하지 않는다는 주인의 철학이 있다. 가게를 넓혀 손님이 많아지면 맛이 떨어지고, 서비스도 주인이 감당하기 힘든다. 일류라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이상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규형과 어느 고깃집 주인과의 대화이다. "내가 14년째 고기를 굽지만 구울 때마다 긴장해요". "왜요?". "고기란 0.1초 더 굽고 덜 굽는 데 따라 (이때 잽싼 동작으로 굽던 고기를 0.01초 내로 뒤집었다)맛이 달라지거든요". "아, 그래요. 그런데 이 집 고기 맛이 일본 제일이란 게 정말입니까?". "그럼요". "왜 그런가요? 마츠자카(일본 쇠고기 명산지) 쇠고기라서요?". "아니요. 마츠자카라고 다 맛있나요?". "그럼 뭡니까?". "우리 집 고기는 정자부터 관리하여 생산하고, 그 놈에게 맛있는 먹이를 주고, 다른 소보다 운동을 덜시켜 나온 게 바로 요 쇠고기란 말입니다(하면서 굽던 고기를 상 위에 탁 내 놓았다!). 그러니 일본 최고지요".

이들의 자신감은 이 가게에 뼈를 묻는다는 신념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혼이 있다. 맛에도, 서비스에도, 대화에도. 혼이 있다는 말은 음식뿐만 아니라 Made in Japan 의 모든 상품에 통용된다. 솔직히 말해서 Made in Japan에 문제 있다는 말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일본에 10년째 살지만 Made in Korea가 제값 받고 팔리는 것을 본적이 별로 없다.

결국 일본 사람들에게 배울 것은 여기에 내 뼈를 묻겠다는 혼이 없는 한 좋은 물건, 좋은 서비스, 좋은 맛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주간 동아, 2000년 8얼 24일자, 이규형이 본 일본, 32-33쪽>

 

 

 
 

報恩의 구름다리

 

중종 때 홍 역관이란 유능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조선시대 역관은 일종의 외교관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중종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새 왕이 되었기 때문에 중국 천자에게 사건의 시말을 보고하고 이를 인정받는 외교 절차가 필요하였습니다.

중종 임금은 왕이 되기는 하였으나 이 문제가 걸려 심기가 항상 불편하였습니다. 중종 임금은 특별히 많은 선물과 수행원을 보냈는데 홍 역관도 수행하였습니다. 홍 역관이 북경으로 떠날 때 왕비께서 따로 홍 역관을 불러 이 천냥을 주면서 질 좋은 중국 비단 20필을 사오라고 일렀습니다.

홍 역관이 북경에 도착하니 때는 가을이라 심란한 가운데 이리 저리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홍 역관이 찾아가 보니 열 일곱 꽃다운 차녀가 처량하게 울고 있습니다. 사정인 즉은 처녀의 아비가 역모 죄로 누명을 썼는데 구명 운동에 드는 돈이 이 천냥이란 겁니다. 홍 역관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저 홍 역관이라고만 하고는 왕비에게서 받은 이 천냥을 내 주고, 외교 문제도 해결 못 짓고 돌아옵니다.

홍 역관은 돌아와 모진 매를 맞고, 5년 동안 감옥살이를 합니다. 어느 날 임금은 홍 역관을 부릅니다. 이 번에 외교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겠노라고. 홍 역관은 다시 북경으로 향합니다. 북경에 도착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외교 문제 담당인 중국 조정의 예부 상서가 친히 홍 역관을 찾아옵니다. 외교 문제도 예부상서가 직접 천자께 상주하여 단번에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부상서는 자신의 집으로 홍 역관을 초대하여 극진히 대접합니다. 어리둥절한 홍 역관에게 예부상서는 자신의 부인을 소개합니다. 오호라, 그 부인이 바로 5년 전 그 처녀가 아닌가!  처녀는 홍 역관이 준 돈으로 구명 운동을 하여 아비의 누명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예부상서와 결혼하였던 것입니다. 부인은 5년 동안 해마다 조선 사절단이 오면 홍 역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최고급 비단 100필에 報恩이란 글자를 수놓으며 홍 역관을 만나 은혜 갚기를 기다렸습니다.

홍 역관은 외교 문제 해결만으로도 보답은 받았다고 하며, 비단 100필을 극구 사양하고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홍 역관 일행이 압록강에 도착하니 예부상서 부인의 명으로 報恩 두 글자가 선명한 비단 100필과 많은 선물이 배에 실려 있었습니다. 홍 역관은 나라에서 큰상을 받았고, 왕비께 그 동안의 사연을 아뢰고 보은의 비단을 바치니 왕비의 오해도 풀리고 큰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죽으라 그러면 살리라

 

숲에는 오색 깃털이 영롱하고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숲 속을 날다가 그만 새그물에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아름답고 희귀한 새라 잡은 새를 임금님께 진상하였습니다.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특별히 황금 새장을 만들고, 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새가 진정 원하는 것은 황금 새장이나 맛좋은 먹이가 아니라 황금 새장에서 풀려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소원만은 결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지쳐버린 그 새는 임금님에게 정 나를 풀어주지 않을 생각이시라면, 아무 데 숲 속, 아무 데 골짜기에 가면 우리 가족이 살고 있으니 우리 가족이 나를 걱정하지 않도록 내가 궁전의 황금 새장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아무 염려하지 마시라는 소식이나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임금님은 그런 소원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주겠노라 하고는 그 새가 일러 준 숲으로 갔습니다.

숲에서 돌아 온 임금님이 말하였습니다. 내 귀여운 새야, 네 가족들에게 네 안부를 잘 전했다. 그런데 한 가지 슬픈 소식이 있다. 그것은 네가 궁전 황금 새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네 누나 새가 충격을 받았는지 그만 앉아 있던 나무 가지에서 떨어져 죽었단다. 참 안됐다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 새도 큰 충격을 받았는지 부르르 떨더니 새장 바닥에 모로 픽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란 임금님은 바닥에 누워 있는 새를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히 죽었습니다. 임금님은 후회막급이었습니다. 괜한 말을 해 가지고 아까운 새만 죽인 꼴이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새가 좋지 죽은 새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임금님은 애석했지만 할 수 없이 황금 새장을 열고 죽은 새를 꺼내서 궁전 마당에 휙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새는 땅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오색 찬란한 깃털을 쫙 펴고는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새는 말하였습니다. 임금님 참 고맙습니다. 임금님이 내 누나 새가 나무 가지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내가 이 황금 새장에서 풀려날 수 있는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 비밀은 곧, <죽으라 그러면 살리라!>.
얻으려면 버리라. 텅 빈 충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공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공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1.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밤을 새워 공부한다. 그런데 공부하는 시간보다 공부하     는 데 필요한 것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다. 공부하기 전에 나중에 배고플 것을     염려하여 라면, 빵 등 먹을 것 사러가고, 우유 사러 가는데 시간을 다 쓴다.

2.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예민한 청각을 가졌다. 그래서 안 방 건너 방에서 나는     작은 전화 벨 소리, 희미한 초인종 소리, 문 여닫는 소리도 잘 듣는다. 한 마     디로 궁뎅이가 기러기 깃털처럼 날렵하고 가볍다.

3.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많다. 서툰 목수 연장 탓하는 것처럼 핑계가 많     다. 공부방이 없다, 선생이 시시하다, 참고서가 없다, 부모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다, 학교가 안 좋다, 등 아무튼 핑계가 많다.

4.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한결같이 머리가 좋다. 머리     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단다.

5.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영어 시간에 수학 공부하고, 수학 시간에 영어 단어 외     운다고 난리를 친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특성

1.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밤샘 공부를 하지 않는다. 잘 때 자고 공부 할 때 공부     한다. 국어 시간에 국어, 수학 시간에 수학, 영어 시간에 영어 공부한다.

2.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귀가 어둡다. 외부의 환경에 별로 끌리지 않는다. 공부     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궁뎅이로 한다.

3.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하루 밤 왕창 하지 않고 매일 매일 조금씩 한다.
   徐徐無慾速 汲汲無敢惰 작전으로 공부 한다.

4.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꼼꼼하게 하지 않는다. 먼저 전체 윤곽을 훑어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각론으로 나간다.

5.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집중력(concentration!)이 뛰어나다.

 

 

 
 

약간 삐딱하게 사는 것도 좋다.

 

홀로 사는 한 어머니가 딸 하나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 어머니는 항상 딸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아버지도 안 계시니 네가 공부 잘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과부 딸이 못됐다는 말 듣지 말고, 엄마 속 썩이지 말아라" 고. 딸은 공부도 잘하여 일류 대학에 입학하여 엄마 말대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그저 학교와 집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 순진한 여학생이 3학년 겨울 방학 때 사회 경험을 쌓는다며 처음으로 시내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다가 그만 한 청년의 꾀임에 걸려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노동판에서 일하는 그의 아버지에 얹혀 사는 알짜 백수 건달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그들을 돕는다며 아르바이트도 학교도 다 그만두고 그들과 살았습니다.

그 엄마 속이 어떻겠습니까? "얘야, 제발 정신 차려라. 미친개한테 한 번 물렸다 치고 돌아와라" 별별 소리를 다 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착하게만 살아온 그 여학생은 그들이 불쌍하다며 2-3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결국 그 청년에게 버림받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친구도 사귀고 학교 클럽 활동도 하였더라면 상황에 따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안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홀로 떨어져 자라는 나무는 올곧게 자라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울창한 숲 속에서 자란 나무가 서로 부딪기며 비비대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가지를 떨어내면서  반듯하게 자라 훌륭한 재목이 되는 법입니다.

부모나 선생님들이 올곧게 살 것만을 고집하기보다는 화살은 활줄이 잘 휘어야 날아간다는 법도 가르쳐 주고,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거려야 하는 법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지구 중심 축이 23.5도쯤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약간은 삐딱하게 사는 것이 올바로 사는 것일런지도 모릅니다. 23.5도쯤 삐딱하게 사는 것은 76.5%는 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일 수도 있습니다.

불가에는 五戒란 것이 있습니다.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적질하지 말라(不偸盜), 거짓말하지 말라(不忘語), 간음하지 말라(不邪淫), 술 먹지 말라(不飮酒)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술 한 잔 걸쳤다면 그것은 분명 삐딱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시 한 수를 읊었다면 멋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담원 석혜경, 약간 삐딱하게 사는 것도 바로 사는 것이다, 하남출판사, 28-30쪽>

 

 

 
 

성만찬 심포지움

 

지난주일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온 내 친구 박병윤 목사와 성만찬 문제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잊혀지지 않는 소리가 있어 여기 기록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소리 하나.
보스톤에 있는 박병윤 목사네 교회는 미국 성공회 소속 교회를 빌려서 예배 드리는 교회인데 감사절, 부활절 같은 특별한 때는 성공회 교회와 합동으로 성만찬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성공회 목사와 박 목사가 둘이서 성만찬 예배를 집전하는데, 성만찬 예배를 드릴 때마다 박 목사는 너무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장면이란 성공회 교인들이 성만찬에 임하는 태도와 우리 한국 교회 교인들이 성만찬에 임하는 태도가 그렇게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한 사람 한 사람씩 강대 상 앞에 있는 성찬상에 나와서 목사가 떼어주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감격에 넘치는지 박 목사 자신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떡, 그 포도주를 예수께서 직접 주시는 떡과 포도주이며, 그 떡과 그 포도주가 곧 예수의 살과 피인 줄로 믿고 먹고 마시더라는 것입니다.

저들과 우리 한국 교인들이 너무 비교가 되더라고 합니다. 진지함도 한참 떨어지고,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모습도 정성이 없고 건성이며 심하게 말하면 천박스러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참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만찬 예배>가 있을 때마다 성찬의 의미와 임하는 태도를 가르쳤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거기서 <신앙 전통>이란 게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소리 둘.
고전11:25에 보면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였는데 <나를 기념하라>는 말은 영어로 <Remember Me!>가 됩니다. <Remember>란 기억하다, 기념하다는 뜻입니다만, <Re + Member> 즉 <다시 한 멤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와 가롯 유다는 같은 사람이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1497년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와 12 제자들의 성격과 활동을 면밀히 연구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그림 속에 집약시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유독 예수와 가롯 유다의 모습은 참으로 표현하기가 난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그려 넣고 이 두 사람을 그릴 모델을 찾기에 고심하던 중 밀라노의 한 성당 성가대에서 환하면서도 엄숙하고, 거룩하면서도 따사롭고, 고결하면서도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찬양하고 있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다빈치는 그 자리에서 그 청년을 모델로 예수의 모습을 그려 넣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시작한지 2년이 넘게 흘렀으나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하여 그림은 이직 미완성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어스름한 저녁 다빈치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추하고, 더러웠습니다. 그 눈은 쥐구멍에서 내다보는 쥐 눈알 같이 반들반들한 것이 교활하고 야비한 눈빛이었습니다. 다빈치는 그 청년에게서 가롯 유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빈치는 그 청년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청년은 많은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다빈치는 두 말 않고 청년의 요구대로 돈을 건네주고 청년을 모델로 가롯 유다를 그려 넣었습니다.

다빈치는 며칠 동안 청년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묘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그 느낌이란 가롯 유다의 모델로 삼은 이 청년은 자신가 밀라노 성당 성가대석에서 예수의 모델로 삼았던 그 청년과 어딘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롯 유다의 모습을 다 그려 넣어 저 위대한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완성한 후, 다빈치는 청년에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혹시, 자네 2년 전 밀라노 성당 성가대에서 찬양한 적이 없는가?>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면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가롯 유다의 모델로 삼은 이 청년은 다빈치가 2년 전 밀라노 성당에서 예수의 모델로 스켓치 하였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예수와 가롯 유다는 같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내 아이들에게 들려 줄 소리 - 그 하나

 

내 딸아, 내 아들아!
태초에 하나님은 하늘은 높고, 땅은 넓게 만드시어, 사람이 능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낙을 충만히 누리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특별히 청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고 하시었다.

그리고 옛글에 이르시기를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生이란 한 조각 뜬구름 문득 일어나는 것과 같고,
死이란 한 조각 뜬구름 문득 소멸하는 것과 같다.
뜬구름이란 본래 그 실체가 없는 것,
살고 죽는 것 역시 그와 같은 것. 이라고 하였다.

로마의 현인 세네카도 <Memento Mori = Remember that you must die! = 사람아, 너는 죽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릇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집에 태어났든지 그 生死가 하늘 아버지의 뜻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엄숙히 명심, 명심, 또 명심 할 일이다.

해 아래 새것이 이란 없는 법이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다(전1:10). 너희들이 박물관에 가서 보아 알 듯, 수 천년 전의 사람들도 오늘날 사람과 같은 밥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먹고살았다. 수 천년 전 그들도 사랑하고, 증오하고, 이별의 슬픔으로 괴로워했고, 철학을 논하고, 예술을 추구하고, 전쟁하고, 그렇게 살았다.

내 딸아, 내 아들아, 나는 너희들이 무엇보다 먼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도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내 조상의 핏줄로 나를 내시고, 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큰 뜻이 있으시다!> 는 엄청난 믿음의 횃불을 들고 이 놀랍고도 신묘막측한 삶의 세계에 들어서기를 기도하고 있다.

 

 

 
 

전화 - 세대 차이

 

 요즈음 집집마다 아이들이 전화를 너무 오래 사용하여 전화세 시비로 진저리를 치는 집이 많습니다. 내가 아는 목사님은 지난 달 전화세로 30만원을 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나도 전화세로 19만원을 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오래 전화를 사용하니 밖에서 급한 일 때문에 집에 전화 걸라치면 계속 통화 중이라 곤란 할 때가 많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내용인데 오래도록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통화가 끝난 뒤 그 애가 어디 사느냐? 오랜만에 통화하는 친구냐? 물어보면, 바로 건너 편 에 사는 친구이고 조금 전에도 만나고 들어왔고 내일 아침에도 또 만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사설이 그리 긴지 모르겠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점이 어른들과 아이들의 인식 차이라고 합니다. 어른들은 "전화란 급한 연락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여 "용건만 간단히"가 기본입니다. 통화가 길면 전화세가 많이 나온다는 기본 인식 때문에 "용건만 간단히, 용건만 간단히,..."를 강조하고 또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시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전화란 레크레이션의 도구입니다. 긴하게 전할 말이 있어서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통 붙들고 수다떠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요 목적입니다. 따라서 어른들과 전화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무리 이치에 합당하게 설명해도 그것을 한낱 잔소리로밖에 듣지 않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와 문화의 차이입니다. 전화에 대한 인식 차이가 바로 소위 세대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오랜 동안 몸에 밴 내핍 생활에서 온 격언으로 "용건만 간단히"로 프로그램 된 사람들이고, 모든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서 자라난 현대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게 전화한다"로 프로그램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화세 시비는 단순히 "전화세가 많다, 적다" 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과 아이들의 시각 차이인 동시에 세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은 것 같지만 실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시각 차이, 세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심각한 가정 문제가 일어나는 듯 합니다.

이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 마음을 열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대화로 푸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 전화세는 요즈음 3-4만원으로 돌아섰습니다.

 

 

 
 

한 여름 밤의 유모어

 

1. 그 남자의 부인이 2층 그녀의 침실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남자는 마지막 가는 부인을 위하여 고급 관을 준비하였고,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장례식이 가장 품위 있고 고상하게 치루어 달라고 장의사에 부탁하였습니다.

장의사 직원들이 부인의 시신을 관에 잘 안치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중, 그만 실수로 계단에서 관을 떨어뜨렸습니다. 관은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덜컹 덜컹 덜컹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그 충격에서인지 관 안에 있던 부인이 다시 소생하였습니다. 모두들 크게 놀라면서도 그 남자에게 큰 축하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남자의 부인은 또 다시 죽었습니다. 슬픈 일을 두 번이나 당한 그 남자는 이번에는 더 좋고 튼튼한 관에, 최고급 장례식이 되도록 주문하였습니다. 장의사 사람들이 그 부인의 시신을 염하고 아래층으로 내릴 때가 되자, 그 남자는 운구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두둑하게 팁을 쥐어 주고는 관을 따라 내려오면서 연방 말하기를 "여보게들 조심 조심 조심하게! 관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라구! 알았지! 어이 그 쪽 좀 더 힘을 내! 조심하란 말이야!" 하였습니다.

2. 로스차일드家는 유대인 은행가로 유명한 가문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메이어 맨실이라는 사람이고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메이어 맨실이 어느 정도 성공한 후 사들인 邸宅의 이름으로 그 뜻은< 붉은 방패>입니다.

어느 날, 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장이 죽어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조문객이 왔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난하게 보이는 한 사람이 찾아와 심히 슬퍼하였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것입니다.

상주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상주 입장에서는 저렇게 슬퍼하는 사람을 모른다는 것이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습니다. 한참이나 서럽고 서럽게 통곡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상주들은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이 통곡을 멈추고 일어났습니다. 상주들은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몹시 송구스러워하며 물었습니다. "몰라 뵈어서 심히 죄송합니다. 뉘 신지요? 저희 아버지와 생전에 은밀한 관계에 계시던 분이신 가요?"

그 사람은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쉰 목소리로 "내가 이 양반과 생전에 그런 관계에 있었다면 왜 이처럼 통곡하겠소?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 신세가 너무나 처량해서 통곡한 것이라오!"

 

 

 
 

영어 공부의 王道

 

사회에서 엘리트가 되려면, 조선 시대에는 한문, 일제 시대에는 일어, 현대 사회에서는 영어에 능통해야 합니다. 오늘날 영어 공부에 대한 갖가지 이론이 百家爭鳴입니다. 이 때를 당하여 영어공부의 왕도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 일본 동경대학 경제학부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초 학습법> 에서 영어 공부에 대한 몇 가지 방법을 말하고 있는 데 그 핵심은 하나입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교과서를 처음부터 통째로 암기하라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분해하는 방식의 영어 공부는 절대 아니올시다 이다. 교과서 1쪽 정도의 분량을 한 단위로 몽땅 외우는 것이다. 한 20번쯤 거듭 소리내어 읽으면 누구나 외울 수 있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 방법보다 나은 것은 없다. 대학 입시도 교과서를 몽땅 외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 조선일보 2000년 7월 21일자 10면 하단에는 <영어의 달인 민주당 유재건 의원>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그 핵심은 하나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야당 시절 공식 행사의 통역 전문이던 유재건 의원은 영어 공부를 창조가 아닌 중단 없는 모방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영어 전용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생소한 용법과 단어를 메모하고 외운다. 유 의원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취임사,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등 역사에 남는 유명한 연설문을 외우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좀 미련한 얘기 같지만 영어 공부는 메모하고 외우고 써보고 다시 외우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라고 한다.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 한 마디를 하겠다고 했다. Drill repeatedly! 끊임없이 외우고 파라!

하나. 요즈음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말라>의 저자 정찬용이 하는 말의 핵심도 하나입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은 영어공부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가르치는 방법, 즉 문법 독해 위주의 방식으로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에도 영어공부 5단계니, 7단계니 하는 식으로 저자 나름의 영어공부 노하우가 있다. 그 핵심은 어린아이들이 말 배우듯 영어공부 하라는 것이다. 첫째 무조건 많이 듣고, 둘째 맞든 틀리든 무조건 중얼거리고, 셋째 아이들 받아쓰기 하는 식으로 하라는 것이다.

약간의 어폐가 있기는 하나 좀 무리하게 말해서,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영어의 왕도는 문법이 아니라 <끊임없이 잘 듣고 외우라!>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의 기도 3단계

 

김경재 교수는 토마스 머튼이 말하는 기도의 3단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는데 시사하는 바가 많아 아래와 같이 간단히 메모하였습니다.  

1단계. 지적 회상 기도(reflexive prayer)
지적 회상 기도는 인간의 의식 표피층 상태에서 경험적 자아가 기도의 대상자인 하나님에게 사람끼리 이야기하듯 대화하는 기도이다. 기도는 기도이나 이 기도의 범위는 의식의 표피에서 움직이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이거나 자기 암시적 반성 기도이기 쉽다. 영 가운데서, 진리 가운데서, 성령께서 내 영혼을 통하여 기도한다기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말을 거는 기도라 하겠다.

2단계. 명상적 기도(meditative prayer, meditation)
명상적 기도는 인간 심령의 깊은 속에로, 사물의 깊이에로 한 발 더 들어가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직관, 직증, 체험하려는 자세의 기도이다. 1단계보다는 깊은 기도이나 아직도 자아 의식이 강하게 살아 있어 하나님을, 성령을 간구하고 모색하고 호출하는 기도이다. 자아 중심적인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관철시키려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성경에서도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이기도 하다. 자아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살아 있는 기도이다. 적극적 기도요, 열성적 기도이다.

3단계. 관상적 기도(contemplative prayer, contemplation)
이 기도는 인간의 심령 깊은 곳에서 완전히 자기를 비우고 정화하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기도이다. <나> 라는 인격적 자아는 있으나, <나>에 집착함이 없이 드리는 기도이다. 어린  아이가 그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듯 하나님께 깊이 안긴 기도이다.

이 기도는 인간의 지적, 감정적, 생리적 기능이 모두 참예하는 통째로의 기도이며, 이 기도를 통하여 인간의 심령은 하나님과의 일치 경험, 다른 모든 피조물과의 일체감, 성령의 강하시고도 부드러운 능력을 체험한다.

이 기도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의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시간 곧 영원한 시간에 부분적으로 몰입하는 황홀 상태의 기도이다. 삶과 죽음, 聖과 俗, 의식과 무의식, 갈등과 대립이 극복되고, 나와 하나님이라는 이원적 분리가 극복되고, 은총과 사랑의 황홀한 영광의 빛 속에서 드려지는 기도이다.
<김경재,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 대한기독교서회, 1990, 194-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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