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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죽는 이는 복이 있나니 계14:13

by 【고동엽】 2022. 10. 22.

◈주안에서 죽는 이는 복이 있나니           계14:13           

  

▲얼마 전에 제가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연구기관에서 1945년 생이, 마침 제가 45년생인데

100세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23.8%에 달한다고 합니다.

 

해방되던 해에 태어난 사람 중에, 백세까지 살 확률이 4명 중의 한 명이라는 것입니다.

1958년생이100세까지 살 확률은 2분의 1로, 두 사람 중의 한 명이 백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보고에 의하면, 저도 100세까지 사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100세까지 살게 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갈릴리교회가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7년 동안 주었던 생활비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이 교회의 무거운 짐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사택도 제가 죽으면 다시 교회에 돌려준다고 했는데

긴 시간 동안 돌려받지 못하면 교회 재정이 어렵겠구나 생각하니

이쯤 되면 아마 제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걱정도 되고 비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교회도 교회지만

남아 있는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장장 30년을 누구와 같이 살까, 건강이 따라주면 다행이지만

혹시 아프기라도 하다면, 치매가 걸린다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나를 도와줄까?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걱정스럽기 짝이 없고 참담한 마음이었습니다.

 

여기 있는 젊은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연세가 드신 분들은 틀림없이 저와 같은 걱정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연세 드신 분들을 만나보면 ‘오래 살지 말아야 할 텐데,

오래 아프지 말고 잘 살아야 할 텐데.’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노인들을 보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을, 무작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인도 건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고생을 시키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가 많은 사람들의 걱정인 것입니다.

 

▲물론 여기 있는 젊은 분들은

자신의 노년이나 죽음에 대해서 실감나게 생각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부모님의 노후에 대한 걱정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고생하지 말고 잘 돌아가실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오래 병석에 누워계시면 자식이지만

만사를 다 그만두고 수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동안에도 잘 살아야 하지만 죽는 것을 잘 죽어야 합니다.

행복하게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고 있는 말 중에 하나가 well being 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well dying 과 같은 말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하는 사람도,

마지막 노년이 편안하지 못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죽어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가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거의 벌거벗겨진 채

여기 저기 몸에 구멍을 뚫고 동물 취급을 당하며

마지막에는 식구들의 얼굴한번 보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라도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양원에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식구들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처음 보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품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때때로 ‘나는 어떤 조선족 여인의 품에서 죽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존엄성을 가진 인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죽는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런 존엄한 죽음, 행복한 죽음을 죽지 못하는 것일까요?

더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살다가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누구든지 겪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죽음에 대해 준비하지 않으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인생 전체가 실패였다는 결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은, 우리 부모들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준비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자식들이 해야 할 중요한 효도입니다.

 

제가 이 교회를 목회하면서, 교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나

교인의 부모나 식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데, 인생을 저렇게 마무리해서는 안 되는데..’

‘사랑하는 가족이나 부모님을 저렇게 죽게 해서는 안 되는데..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본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수요일 성경 공부 시간에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것을 잘 정리하고 편집하여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며,

죽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히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또 읽으시기 바랍니다.

식구들에게도 형제들에게도 꼭 읽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형제들 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에 형제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해서 함께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설교시간이기 때문에 긴 말씀은 드리기 어렵지만

죽음에 대해 간단하게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의학적으로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물론 그런 판단을 내리기까지 여러 가지 의학적인 진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이 내려지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

하나님이 우리 부모님을, 우리 가족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냉정하게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세상적으로 보면 불행한 것일 수 있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삶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은 고난의 삶입니다.

죽음은 이와 같은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축복입니다.

 

이제는 그만 무거운 인생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쉬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인생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주심으로 힘들고 어려운 우리의 삶에

쉼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가리켜 잠을 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잠자리에 들어가면 모든 근심과 걱정과 어려움을 다 잊고 편안히 쉬게 됩니다.

육신도 쉬고 정신도 쉽니다.

 

만약 우리에게 잠이 없다면 얼마나 힘든 인생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죽음은 잠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생명을 연장해주십시오.”

 

물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도 하지만, 안 들어주실 때도 많습니다.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죽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100년, 200년을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이 이 땅에 살거나 하나님 나라에 살거나 그게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꼭 이 땅에 두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구로동에서 사나 목동에서 사나 뭐가 다릅니다.

우리가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이사 간다고.. 큰일이 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게 그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거나, 하나님 나라에서 살거나 그게 그것이니까

살려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해주신 하나님,

제 생명을 연장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할 때 히스기야 왕은 “제가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이웃에게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는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것을 보시고 제 생명을 연장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살지 못하고 평생 욕심만 부리고 살다가

히스기야 왕처럼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리 없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왕의 생명이 15년 연장 되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왕이 므낫세 왕으로, 이 왕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알고 히스기야 왕을 죽게 하신 것인데

히스기야 왕이 생명을 연장 시켜달라고 하니 들어주신 것입니다.

결과는 안 좋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히스기야 왕이 15년 전에 죽는 것이 훨씬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있으셔서 하시는 일입니다.

나에게 좋은 일을 하신다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멀쩡하게 걸어 들어가서 사망 선고를 받게 되면

그때부터 병자가 되고 맙니다.

병원 치료를 해서 1, 2년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통계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기 1개월 전에

평생 쓰는 병원비의 36%를 쓴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6%를 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기 6개월 전에

평생 쓰는 병원비의 절반 이상을 쓰는 반면

미국 사람들은 33%를 쓴다고 합니다.

 

무작정 살려고 애를 쓰지 말고,

정말 이 만한 돈을 들여서 더 살 가치가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 살면서 선한 일, 좋은 일 하지 못한 것

그 돈으로 좋은 일을 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 돈 병원비로 사용해야 고작 1, 2년 생명 연장하는 것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죽음은 영원한 삶에 대한 확인입니다.

갈릴리공동체계약에 보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이 세상의 삶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 있다고 믿고 소망하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늘 준비하겠습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서 늘 잊지 말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너무 아프지 않도록,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행복한 죽음을 죽을 수 있도록,

죽을 때 외롭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죽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왜 이렇게 힘들까?’ 하지만

그 이유는 기도로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루어주실 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여름 비바람 치는 날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비바람 치는 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증조할머니께서도, 따뜻한 날 사흘만 아프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는데

그렇게 되셨습니다.

 

한OO 집사 아버님 토요일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말 대로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돌아가시면 주일에 교인들이 다 오셔서 볼 수 있고

또 월요일에 장례를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의학적 치료를 얼마나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금방 죽을 사람도 병원에 가면 살아나서

1, 2년은 더 삽니다. 생명을 쉽게 연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아무리 신앙이 깊은 사람도, 죽음이 닥치면 살고 싶어 합니다.

옆에서 보면 틀림없이 얼마 못 살 것 같은데, 희망을 갖습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먹으면 살 수 있다고 하면, 다 시도해 보고 싶어합니다.

온갖 유혹이 많고, 그런 병원도 많습니다. 거기다 돈 다 갖다 바칩니다.

그렇게 1, 2년 연장합니다.

 

요즘 심폐소생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목에서 음식이 안 넘어가니까

식도에 구멍을 뚫어서 직접 음식(유동식)을 넣어준다고도 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이런 치료를 받으면서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혹시 이 세상의 삶만 있다면 단 하루를 더 산다고 해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구태여 여기서 고생하고 쓸데없는 일에 돈을 쓸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본인이 잘 결정해야 합니다.

 

▲요즘 존엄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의료행위, 만일 고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산소호흡기를 한다거나 심폐소생술을 한다든가 심장박동기를 달게 한다거나,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영양제를 놔서 며칠 동안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대해서

잘 생각해야 합니다.

 

본인이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어떤 자식이 부모 치료하는 것을 중단하고 평생 죄책감에 살려고 하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정신이 온전할 때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서약서를 준비했습니다.

추석 때 식구들이 모이면 이것을 다 의논하십시오.

여기에 보면 나는 쓸데없이 생명을 연장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본인이 서명 날인하고,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이 서약을 했다는 것을 인정할

입회인 두 명을 세워야 합니다.

 

의식이 분명할 때 의사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 절대로 중환자실에서 죽지 않아야 합니다.

지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도 못 들어오게 합니다.

외롭게 거기서 죽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1인실을 빌려야 합니다.

 

요즘은 병원마다 임종실이 따로 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서 손 붙잡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죽어야 합니다.

담임목사의 손을 잡고 죽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절대로 중환자실에서 죽지 말고, 절대로 간병인 손에서 죽지 말고,

식구들의 찬송과 기도를 들으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정사진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부고도 쓰고 누구에게 알릴지 명단을 적어놓아야 합니다.

또 예배순서도 정해놓아서, 찬송은 몇 장을 하고, 설교는 어느 목사님이 하고

매장지는 어디이고, 매장 방법은 어떠한지 본인 스스로 잘 정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결혼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에 대한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면 본인이 준비해야 할 일도 많지만

주변에서 준비해야 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 일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추석 때 가족들이 모이면

나는 이렇게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가족들이 다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행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 교회의 목사로서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사십시오.

욕심을 버려야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행복할 수 있고 좋은 일을 힘쓰고

선한 일을 힘써야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이 세상 떠날 때 주님 손잡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행복한 죽음을 죽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죽고, 먼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

여러분 모두 저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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