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목사
요셉은 바닥에서 시작했다. 그를 죽이려는 형들의 음모로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노예 상인에게 팔려서 애굽에서 노예가 되었다. 그러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탓에 감옥에 갇혀 노예보다 더 깊은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했다.
요셉은 17세부터 30세까지는 밑바닥 인생이었다. 그런 그가 구렁텅이와 노예, 감옥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위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에 처하면 자신의 비참한 위치에 초점을 맞춘다. 부르짖는 내용도 험악한 곳에서 건져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기도는 간절한데 내용은 위치 변화에 대한 부르짖음이다. 고난의 상황에서는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진 상황에서도 위치에 대한 부르짖음만 있다면 지극히 기복적인 신앙이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치보다 관계를 점검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창 39:2)고 말씀한다. 위치는 노예인데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모습이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치는 감옥인데 관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이다.
바른 양육은 성도의 상황과는 별개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바닥이면 어떤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라면 그것이 부흥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위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고백이다. 위치가 아닌 관계의 확신이 있는 다윗의 고백이다. 성도는 바닥이나 정상 어디에도 놓일 수 있다. 위치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관계로 판단해야 한다. 모든 성도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이끌면 그것이 바른 양육이 되는 것이다.
성도의 삶에 고난이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른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된 인도하심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나간다. 그래서 광야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든 바른 관계를 맺으라. 그것이 신앙의 진정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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