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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옥에 안 믿는 지성적 이유
21세기를 사는 우리 사회의 대부분 사람들은, 지옥의 존재를 거부합니다.
심지어는 일부 교인들까지도, ‘영원히 고통당하는 장소’로서의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지옥 개념’에 대해서, 많은 반대 의견을 제시합니다.
혹은 ‘지옥’을 인정하더라도, 그 개념이 성경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날 심지어 일부 교인들도,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교회 바깥세상 사람들이야, 당연히 믿지 않겠지요.
그럼 사람들이,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를, 6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지옥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당연하지요. 누가 불에 타는 고통의 장소인 지옥을 믿고 싶겠습니까.
일단 자기 마음으로, 심정적으로, 그런 장소를 꺼림칙하게 싫어하니까,
그 존재까지도 믿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사람들이, 자신의 영원한 운명이 걸린 ‘지옥의 문제/를
열심히 탐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배척해 버리는 것은,
자기 마음이, 자기 느낌이 절대 기준이 되어서,
진리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지옥? 그런 건 있을 수 없어!’
아무 근거 없이, 그저 그렇게 스스로 자기 느낌을 믿는 것입니다.
▲2.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는데요.
지옥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유발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적으로, 두려움은 건강하지 못한 감정으로서
‘두려운 것은, 뭔가 잘못된 것’으로 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뭘 두려워하며 살아서는 안 되는 거죠.
지옥이 두려움을 유발하므로, 그건 뭔가 잘못된 것으로 보는 거죠.
그런데 두려움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교통사고의 두려움이 있으면, 운전을 조심해서 하게 되고요,
화재가 무섭다는 두려움이 있으면, 평소에 불조심을 하며 살지요.
그렇게 볼 때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건강한 두려움입니다.
물론 교통사고가 두려워서, 아예 도로에 나가지 않는다던지,
화재가 무서워서, 아예 불을 켜지도 않는.. 그런 포비아(공포증)는 건강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그럴 정도로, 지옥에 대한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지옥설교를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회중들이 지옥 설교를 들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심리학적으로 ‘괜한 두려움 조성’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구세주’이야기만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3. 지옥을 믿지 않는, 사회적 통념상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옥을 믿지 않는 것은,
사회적 통념상 ‘보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들 무슨 일을 당해도 그냥 참지, 보복을 하지 말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사회에서, 법적 장치를 두어서, 범죄자들에게 보복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재발방지 및 교정을 목적으로, 쉽게 말하면 감옥에 보냅니다.
그래서 그들의 범죄에 대해 보복을 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건 교정을 목적으로 한 사회적 보복이지, 보복을 위한 보복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옥을 보니까, 이건 교정도 아니고, 재발방지의 목적도 아니고,
그저 영원한 형벌이니.. ‘이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지옥을 통과해서 새 사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보복을 위한 보복인 셈인데,
그것도 하나님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사회적 통념상 그렇습니다.
▲4. 도덕적으로도 지옥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이 기껏 죄를 지어봐야 1백년 남짓인데,
지옥에서의 형벌은, 영원한 형벌이니.. 그것도 불못에서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의로우신 하나님이, 전혀 의롭지 못하신 것처럼
어찌 짧은 인생동안 범죄한 자들을, 영원히 형벌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단기간 이라면 혹시 몰라도,
영원한 기간 동안의 형벌로서의 지옥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의로우신 하나님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이 지옥을 반대하는, 철학적 이유입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하나님이 실패하신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옥은 어떤 ‘악의 존재, 악의 장소’인데, 즉 마귀가 영원히 지배하는 장소인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런 악과 마귀의 장소를 없애지 못하시고,
그게 영원히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신다면.. 하나님이 실패한 것으로 보는 거지요.
하나님이 그러실 수는 없으니까, 지옥은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런 지옥을, 그것도 영원히 내버려두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약한 분이라면, 그분은 ‘전능자 하나님’은 아니시지요. 철학적 개념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6. 신학적 이유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그 분이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이란 정체성을 포기하시는 것이지요.
교인이나, 신학자 중에,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이
바로 이런 신학적 견해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단들은 대부분 지옥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또 심령술사들도 지옥을 부인합니다.
기독교 가운데는,
가톨릭 Catholics 과 복음주의자 Evangelicals 들이 지옥을 믿습니다.
그 외는 지옥을 믿지 않죠.
그런데 만약에 지옥을 없애버린다면, 그 대신에 뭘 대체할 것인가요?
만약 지옥이 없다면, 온 세상이 극도로 악해질 때, 어떻게 정의가 세워질 수 있을까요?
온 우주가 정말 무서운 생지옥이 되지 않겠습니까.
◑2. 지옥을 말하지만, 성경과 다른 개념도 있습니다.
▲1. 시중에서 널리 쓰이는 ‘지옥’ 개념인데요.
이 세상 삶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그걸 ‘지옥’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내가 지금 지옥에 살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지옥’이란 말을 자주 쓰다 보면,
지옥을 ‘세상보다는, 좀 더 살기 불편한 곳’ 쯤으로 이해하기 쉽죠.
사람들은 이런 지옥 개념을 믿지만, ‘죽은 후의 지옥’은 믿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의 지옥’인데, 물론 성경적 지옥 개념은 이렇지 않죠.
▲2. 첫 번째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견해는 ‘사후 세계’를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후에 어떤 곳에 보내시더라도,
당장 천국에 다 데려가지는 않더라도,
결국에는, 선하신 하나님이 모두 다 구원 하실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런 견해가, 오늘날 기독교 교회에서 많이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불 못의 형벌’이라는 전통적 개념으로부터, 약간 변형된 것이지요.
쉽게 말하면, ‘연옥-정화의 장소’ 그걸 통과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지옥이 적어도, 영원한 형벌의 장소는 아니라는 것이죠. 일시적 형벌/정화의 장소라는 거죠.
이 세상에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 저 세상에서 또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제 파슨이 이런 견해에 반대하는 이유는,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인간 모두를 이래 저래 다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 의지를 가진 존귀한 존재로 보지 않는 셈이지요.
결국은 로봇처럼 다 구원하시는 셈이 되니까요.
어쨌거나 이건 오늘날 유행하는 ‘대체 지옥’입니다.
사후 형벌의 장소가 있다고 믿지만, 거기서 정화된 후에
결국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죠.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의 지옥’ 개념에서, 후퇴한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멸절설”입니다.
이 견해는 아주 옛날부터 일각에서 믿어온 견해인데, 크게 주목은 못 받지만
요즘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지요.
그 의미는, 악한 자들은 다 멸절되어 버리고, 즉 다 사라져버리고
의인들만 영원히 산다고 보는 견해이지요.
악인들의 존재는,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게 아니라요.
최후의 백보좌 심판을 받은 후에, 의인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살겠지만,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대신에, 영원히 멸절되어 버린다는 견해입니다.
만약 멸절되어버리면, 영원한 고통에서 면제되니까 좋긴 하겠지요.
사실이 그러하다면,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네요.
오늘날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런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요.
‘자살하면 다 끝이다’ 라고 보는 거죠.
자기가 혹시 최후 심판대에서 악인으로 판정을 받더라도,
지옥의 형벌을 당하는 게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니까,
이것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론입니다. ‘대체 지옥’인 셈이죠.
심지어 천국에 안 가도 좋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자기에겐 싫거나 무섭다는 겁니다.
아예 자기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그런 바램이 있으니까, 이런 이론이 계속 명맥이 유지되는 겁니다.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대안이죠.
우리는 이런 ‘대체 지옥론’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하나요?
◑3. 성경적인 설명
위에서 제기된 여러 이론들에 대한, 성경적인 반론
또는 지옥에 대한 성경적인 설명을 알아봅시다.
▲먼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구약성경에는 지옥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 지옥을 직접 언급한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신약보다 구약에 더욱 잔인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지요.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고, 다른 경우에도 심판으로 몰살되는 일들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지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벌주시는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사람들은 대충 그렇게 알고 있는데, 구약에 지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구약에 스올(음부)이 나오지만,
그건 ‘무덤’이나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을 뜻할 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옥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옥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으려면, 구약은 건너뛰고 신약부터 봐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놀라는 것은,
신약의 서신서에도, 지옥(게헨나)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지옥’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우리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 ‘지옥’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약10차례 남짓
왜 이렇습니까? 아마 추측컨대, 지옥이란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중대해서
사람은 아무나 함부로 언급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 그걸 아시고, 언급하셨으리라 봅니다.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이 비밀을 알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지옥에 대해서, 예수님은 언급하지 않으시고
예레미야나 바울이 지옥에 대해 가르쳤다면,
혹시 사람들이 이렇게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만 믿지, 다른 사람의 말은 안 믿겠다.
그래서 나는 지옥을 믿지 않겠다.’
우리는 예수님을 진실로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은, 다 진리로 아멘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말씀하신 지옥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파슨이, 지옥에 대해, 성경을 연구하면서 가진 솔직한 생각은,
‘만약 내 상식과 이성과 판단이라면, 나는 이런 지옥은 믿지 않겠다’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제가 믿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옥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이유도,
예수님이 나보다 지옥에 대해, 더 확실히 알고 계시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불신자들은, 이런 걸 두고서 ‘맹목적 믿음이다, 정신적 자살 mental suicide 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내가 곧 진리다’라고 하신 말씀을 믿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아래 말씀에 근거해서
그걸 진리로 믿고서, 지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
▲지옥
위 구절에 ‘지옥’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요.
헬라어로는 게헨나를 영어로 hell로 번역했는데요,
원래 이 말은, 예루살렘 성 바깥의 ‘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계곡(또는 골짜기)은, 아주 깊고, 그래서 낮에도 어둑컴컴 합니다.
제일 깊은 곳은, 해가 하루 종일 한 번도 비취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에 적격이어서,
이스라엘 왕이, 여름에는 이곳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그늘이니까요.
그러면서 이 계곡이 계발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음악, 문화 거리가 형성되더니
나중에 이게 이방신 우상숭배의 거리로 변화되어, 이방신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술과 이방제사의식이 생겨났지요.
그러다보니 이 계곡이 점점 더 추악해져서,
심지어 자기 아이들까지 태워서 바치는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요. *몰렉신
바로 ‘하나님의 도성’ 곁에서 말입니다.
남유다 말기에 요시아가 12세에 왕이 되었는데,
그가 그 골짜기를 훼파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골짜기에 살지 못하게 했지요.
가증하고 끔찍한 일들도 일절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기를 ‘도벳’이라 불렀습니다.
‘쪼개진 골짜기’란 뜻이지요. *the valley of splitting.
그때부터 이 골짜기는, 쓰레기 버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성 밖이죠. 계곡이 깊으니까, 쓰레기를 갖다 부어버리면 되죠.
쓰레기를 성벽 위에서 바로 부어버려도 되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자연히 벌레가 들끓고, 구더기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끊이지 않고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큰 도시 주위에, 이런 쓰레기장이 있고, 거기엔 불이 피워 오르지요.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범죄자가 처형되면, 그 시신을 그 계곡에 갖다 버렸습니다.
만약 아리마대 요셉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의 시신도 거기에 버려질 뻔 했었습니다.
게다가 가룟 유다가 목매달아 자살한 곳도, 이 계곡의 깊은 지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옥을 언급하실 때, 항상 ‘게헨나’라는 말을 쓰셨어요.
쓰레기장이오,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곳이요, 벌레와 구더기가 끓는 곳이요,
범죄한 자들이 던져지던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게헨나’라고 하면, 생생하게 그 의미를 알아들었지요.
▲몸과 영혼 body and soul.
이 구절에서 말씀하신 ‘몸과 영혼’은
부활 후에 우리 ‘몸과 영혼’이 다시 결합되는 상태를 뜻하셨다고 봅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즉 부활한 사람이, (천국에도 가지만) 지옥에 던져진다는 뜻입니다.
‘누가 너희의 몸은 죽여도, 그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건 사람에게 일어날 최악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는 게, 사람에게 일어날 최악의 일’이라고 여기지만,
예수님 말씀은, 그건 최악의 상황이 아니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은,
죽은 후에, 부활한 사람이, 지옥에 던져지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후에 지옥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그래서 목숨을 잃는 것을,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한 인간에게, 정말 끔찍한 최후(지옥)가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제 ‘멸하시는 destroy’라는 단어를 살펴봅니다. *헬, 아폴루미
얼핏 보면, 서두에서 살핀 ‘멸절설’처럼,
존재 자체가 깡그리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말처럼 보입니다.
신학자들이, 이 단어의 뜻을 놓고 연구하는데요,
그건 ‘멸절’이 아니라, ‘파멸된다,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나오지요. 그때 ‘잃어버린’과 같은 단어입니다.
양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양이 멸절된 것은 아니지요. 저 산에 버려진 것입니다. *마18:14, ‘잃어지는’, 아폴루미
또 ‘쪼그라든(헌) 가죽 부대’의 비유에서 ‘쪼그라든’과 같은 말입니다.
새 가죽부대가 오래되어서 쪼그라든 것이지, 그 존재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마9:17, 부대도 ‘버리게’, 아폴루미
즉 부활한 ‘몸과 영혼’이, 지옥에서
‘파멸되고, 잃어버려진바 되고, 쪼그라들고, 못 쓰게 된다’는 뜻이지,
결코 ‘없어진다. 사라진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 ‘멸망하다 perish’가 나오지요. *아폴루미
요3:16절에,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다’할 때 나오지요.
이 단어도, 영어로 얼핏 보면 perish가 ‘멸절된다.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를
뜻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못 쓰게 된다. 파멸된다’는 뜻입니다. 그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를 들면, ‘물 끓이는 주전자가 못 쓰게 perish 되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게 주전자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잖아요.
더 이상 주전자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지, 그 존재는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전자를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겠지요.
실제로 게헨나 계곡에는, 그렇게 멸망된(요3:16), 멸하여진(마10:28) 물건들로 가득했지요.
이제까지 ‘멸절설’이 아니라는 것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요3:16절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not perish
perish는 지옥에 가는 것인데, 그 존재가 고칠 수 없을 상태로 망가지는 것인데,
복음은, ‘멸망치 않는다’입니다.
본문의 표현으로는 ‘멸해지지 destory 않는다’ 이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분을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
이제 ‘지옥에 멸하시는 그 분’에 대해 살펴봅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어떤 사람은, ‘그’가 마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귀도 멸망받을 대상이지, 지옥에 멸하시는 권세를 가진 자는 아닙니다.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은, 부활 후에 ‘사람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자’이십니다.
*수학에 ‘공리 Axiom’라는 것이 있습니다. 더 이상 증명이 필요 없는 어떤 공식.
점은 점이고, 점이 모인 것이 선이고, 점과 점 사이의 가장 빠른 선은 직선입니다.
이렇게 증명이 필요 없는, 어떤 근본적으로 정해진 공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 .. 이걸 공리처럼 받아들여야지,
이걸 증명하려고 하고, 논증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끝이 없게 됩니다.
그럼 아예, 지옥을 왜 만들었는지.. 그런 논증은 끝이 없게 되지요.
하나님이 딱 정해 놓으신 것은, 아예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학의 공리처럼요!
▲두려워하라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
사실상, 지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오늘 현실을 자기 멋대로는 살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일을 저지르기 전에, 반드시 ‘지옥의 두려움’과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1차 대전에 참전한 영국군인의 증언에, 자기 앞에 독일군이 다가왔습니다.
자기는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라에서 명령하는 소리와,
하나님의 6계명 ‘살인하지 말라’가 동시에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그의 다리를 겨냥해서 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을 두려워한 사람이었지요. 지금 그의 잘잘못을 논하는 건 아니고요.
▲지금까지 지옥에 대해서, 마10:28절 한 구절만 살펴보았는데요,
이제 다른 구절도 살펴보겠습니다.
막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예루살렘 성밖의 게헨나는 구더기도 죽고, 불도 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게헨나)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은 영원한 지옥을 말씀하신 게 아니라,
힌놈의 골짜기, 게헨나 계곡을 말씀하셨다’고 말한 것은, 틀리지요.
왜냐면, 거기 지상의 게헨나에는 구더기도 죽고, 불도 때로는 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구더기도 죽지 않으면, 거기엔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 ‘구더기(벌레)’를 은유적으로 해석해서,
‘자기 양심을 갉아먹는 어떤 기억’으로 해석합니다.
이유는, 죽지 않는 구더기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석면 같은 물질은, 타지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옛날 석유곤로에 심지가 석면이었지요.
마25장에 유명한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염소 편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여기에 ‘영영한 불 eternal fire’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의인들은 ‘영생 eternal life’ 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런데 사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영원 eternal’이란 개념이 참으로 쉽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도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영원히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도 영원한 것이고, 천국도 영원한 곳입니다.
그런데 왜 지옥만, 유독 영원하지 못하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만약 지옥이 일시적 temporary 이라고 믿는다면, 그럼 당신도 천국에 일시적으로 들어가십시오.
마25장에, 천국과 지옥에 똑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영원한’
즉 ‘영원한 천국, 영원한 지옥’ eternal life, eternal fire 입니다.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지옥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일시적 장소가 아니라, 영원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설명하실 때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매우 컴컴한 곳’이라고 하셨지요.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여러분, 유령의 도시가 있다는 걸 아십니까?
제3세계 국가에 정전이 잘 일어납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유령의 도시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촛불을 켜고, 발전기를 돌리고, 자동차 헤트라이트도 있지요.
그런데 정말 밤2~3시에, 유령의 도시로 변합니다.
그때는 정말 무섭다고 합니다. 영원한 흑암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영원히!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지옥에서는, 천국을 볼 수 있나 봅니다. 그러니 슬피 울며 이를 갈지요,
천국에서는, 지옥을 잘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불이 있지만, 어두워서요.
실제로 지옥의 예였던 게헨나 골짜기에 가면, 위로 예루살렘 성이 잘 보이지요.
여러분은 성지 순례를 가시면, 게헨나 골짜기를 꼭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옥과 관련되는 구절은,
*지옥(게헨나)이란 말이, 직접 나오진 않지만, 거길 지옥이라 보는 거죠.
살후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14:10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4. 좋은 의도만 갖고는 안 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은 죽을 때, 거의 다 진실해 집니다. 진지해 집니다.
죽는 순간까지 악하게, 또는 욕심을 부리거나, 싸우며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보면, 사람들은 거의 천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런 천사 같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시는 것은, 우리가 불의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거의 히틀러, 네로황제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심정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 천국에 가야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산산수훈 등을 통해서 가르치신 것은,
‘선한 마음, 좋은 의도’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 중에, 자녀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은.. 누구나 있습니다.
자녀들 중에, 부모를 잘 모시겠다는 마음은.. 그 선한 의도는 누구나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과, 마음만 갖고서 끝내는 사람은 천지차이죠.
저 파슨은, 이런 사람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나는 언젠가는 크리스천이 될 거야. 그런데 지금은 좀 바쁘거든’
‘내가 집을 마련하고 난 다음에는, 교회를 다닐 거야’
‘내가 시간이 나면, 그때는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할 거야’
이렇게 늘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지옥으로 가는 길을 착착 닦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소원만 하다가.. 결국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이런 사람도 성경에, 지옥에 간다고 나와 있습니다.
질투, 분노, 술주정, 더러운 말, 외식, 겁쟁이, 탐심, 거짓말, 음란..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도 했고,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했죠.
그래서 예수님은, 만약 네 손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성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죠.
눈도 마찬가지고요.
눈 파내고 천국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짓는 것을, 그만큼 조심하고,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안 되니까요.
여러분,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그런 큰 희생을 치르시고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좀 쉽게 우리를 구원하실 수는 없었을까요?
지옥의 대가가 그만큼 무섭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친히 지옥을 경험하시고, 맛보시고
대신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지옥에서 면제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사람들을 지옥으로부터 구하는 일에
먼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은 인생을, 그 일에 헌신하고, 그 일을 하는 분들을 돕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자기 영혼’밖에 몰랐던 분은, 그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어쩌면 아주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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