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1월 30일]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 6:1~6)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FH25yE9SzJE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호세아서 6장 1절, 5, 6절까지 봉독하게 되겠습니다. 1261면입니다. 1261면 호세아 6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으니 비와 여호와가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시느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찍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아멘. 노예가 된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짓는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공부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사람답게 공부해야 할 까닭입니다. 호세아 4장 6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그렇습니다. 곧 바른 지식,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상칠언'**이라고 하는데, 그 첫째의 말씀이 "하나님이여 이들을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악에서 회복하지 못합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죄의 근본은 모르기 때문이라. 이것이 큰 교훈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큰코다치고 알게 해야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죄에 빠졌기 때문에 알게 함으로 죄로부터 구속받게 해야 된다. 그게 바로 전도의 지표입니다. 알게 하는 것,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 모르기 때문에 망하게 됐는데 알게 함으로 구원받게 하는 것이 전도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느헤미야 4장 6절에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릴 것이다" 지식을 버렸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말씀이 확실하게 다가옵니다마는 거절합니다. 양심의 가책도 성령의 역사도 말씀이 귀한 진리의 말씀임을 알고서도 강하게 거절해 버린다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 자체가 심판입니다.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은총이고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것이 심판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그런 완악한 마음, 그것은 벌써 벌써 심판받은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창호 선생님, 우리가 일본 사람들에게 강점
당해 가지고 정말 식민지로 큰 고생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외쳤습니다. 아는 것입니다. '배워야 산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어렸을 때도 수없이 수없이 교회에서 들은 말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CEO 일곱 명을 면밀히 연구해서 내놓은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큰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새 지식에 대한 열망입니다. 과거의 지식에 매이지 말고 현재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향해서 열망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 좀 더 바른 새 지식이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새 지식에 대한 수용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이 내게 들려올 때 가슴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수용성, receptivity 이 수용성이 중요합니다. 이걸 거절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지식을 잘 수용하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실천성이 있습니다. 지식을 지식으로 두지 않고 지식에 자기를 위탁합니다. 지식을 따라갑니다. 지식을 행동합니다. 그런 실천성 이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진리에 대한 학습 자세를 가집니다. 이 무슨 말입니까? 학습 자세라는 것은 당장 이게 안 된다고 해서 버리지 않습니다. 오늘 당장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좀이 아직 어려워요. 하지만 거절하지 않습니다. 왜요? 학습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내가 당장 알 수가 없는 거니까 이 단계를 거쳐서 어느 순간에 알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인내하고 참고 교과 과정을 따라갑니다. 학습 자세. 그렇습니다. 단시간에 다 알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교과 과정을 면밀하게 또 정직하게 성실하게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새 지식을 향한 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내 생각의 전환에 있어줘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옛 생각을 버려야 되고, 옛 습관을 버려야 되고, 옛 습관을 버려야 된다. 그래야 새로운 지식이
즐겨 이어지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이 CEO들이 하는 말입니다. 참 지식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아멘. 그 하나님이 계시로부터 옵니다. **아포칼립소-**는 덮개를 벗기는 것을 의미하는 뜻입니다. 친구의 덮개를 벗기듯이 우리 사이에 있는 덮개를 벗을 때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우리 자세입니다. 참 지식은 연구와 개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지식은 과거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자기 [음악] 자그마한 지식 경험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참 지식은 대체로 우리가 인간적으로 말할 때 영감이라고 합니다. 글을 써도 영감이 있어야 되고, 무엇을 만들어도 영감이 있어야 되고, 작곡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영감. 이거 뭡니까? 우리가 가진 경험의 틀을 넘어서는 그런 어떤 지식이, 어떤 진리가 와야 한다는 것이죠. 어디로부터 와야 할까요? 영감 그것은 일반적으로 하는 말이고, 교회에서 쓰는 말로 말하면 계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합니다마는,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알려 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려고.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계속 보여주십니다. 알게 해 주려고 백방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계시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계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첫째가 회개입니다. 옛 생활, 잘못된 생활, 오랜날의 타성 이런 것을 버려야만 회개하고, 다음에는 주님을 따라야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식이 이루어집니다. 의심하는 자에게는 영영 새로운 지식은 없습니다. 믿고 따르고 순종할 때,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충성할 때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좀 더 신비로운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이 계시에 대해서 믿고 따르고 순종하고 그다음에 감사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때, 그때 비로소 새로운 지식이 도달하게 됩니다. 그 지식이 바로 내 지식이 된다는 말입니다. 잠언 1장 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식이가 바로 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외쳤습니다. 'Know yourself' "너희 자신을 알라" 하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은 헛되다" 이렇게 종교개혁자 칼빈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나를 알게 되고 세상도 알게 되고 내 운명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세상으로 기울었던 마음을 하나님께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행위 이것이 첫째요. 두 번째는 "그 안에서 살자" 지속적으로 현재적으로 인내하고
살아갈 때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그 소중한 교과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좀 더 깊이 있게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에게 생겨야 한다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교육학자 존 듀이 진스의 로우라고 하는 분이 잘 우리 이것을 분석해 주고 있습니다. 지식은 먼저는 감각적 지식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감각을 가지므로 생각 속에서, 생각 속에서 지식으로 얻고, 두 번째는 경험적 지식이야. 내가 하나하나 경험
하므로 얻고, 그 다음에는 합리적 지식이 있다. 적어도 이 밝은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므로 이성적으로 만족할 때 지식이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엔 권위적 지식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따라가야 할 지식이 있습니다. 마치 뭐와 같으냐면 우리 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 같습니다. 교통 신호는 원하건 원치 않건 지켜야 합니다. 지켜가면서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직관적인 지식이 있다. 우리 생각과 감정 상관없이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영감적인 지식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분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계시적 지식이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계시해 주사
자기 자신을 알게 해 주실 백방으로 알게 해 주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참 지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을 열어야 되고, 깨끗한 이성을 가지고 진실로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예일 대학교에서 어떤 장로님 카페에 앉아있다가 그 유명한 어윈 캐롤, 달나라에 갔다 온 어윈 캐롤을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분이 손님이 오는 것을 늦는다고 해서 나와서 보러 한 한 시간 동안 어윈 캐롤과 더불어 얘기할 수 있었는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가 달나라에 가서 그 지구를 보니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대요. 그럴 거예요. 우리가 보는 달은 작습니다.
달에서 지구를 보면 이 크기의 7배나 크다고요. 아, 이것이 앞에 있고 우리가 보는 달은 이만합니다. 근데 달에서 보는 지구는 총천연색입니다. 조금 육안으로 만리장성이 보였다니까요.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러한 세계를 딱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제가 한번 물었어요. 소련, 구소련의 가가린은 우주에 갔다 와서 **"하나님은 보지 못했다"**고 그런데 당신은 달나라 가서 지구를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았소? 그 한마디가 너무 중요합니다. 어윈 캐롤은 빙그레 웃으면서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음이 정결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마음이 어둡고 주로 뒤얽혀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매를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못 봅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것은 은총이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로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심판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마이크로 메들린이라고 하는 교수님께서 "이렇게 잘 알기 위해서는 결국은 잘 들어야 한다. 잘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간 관계 속에서도 첫째가 듣는 마음입니다. 잘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잘 들어야 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 상대방의 처지로 돌아가서 말하는 자의 뜻을 파악해서 그 배경을 알면서 "그러냐, 이분이 왜 이 말씀을 할까?" 그 생각을 하면서 귀를 들어야 되고, 두 번째는 말하지 않는 것도 들어야 한다. 눈치를 봐야죠. 꼭 말을 해야 되나요? 말 안 해도 말이 있습니까? 말 안 하는 중에도 말이 있습니다. 그걸 들을 줄 아는 감각이 있어야 됩니다. 세 번째는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말해야 될지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말하지 않는 것 속에서도 말을 들어야 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말씀을 안 듣고 공부도 안 해요. 아주 말씀을 안 듣니 어버이가 마지막에 뭐랍니까? "그럴까? 이놈아 나가라" 그러면 "알았습니다. 나갑니다" 나가면 되겠어요? "나가라"는 말이 "나가라"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걸 다르게 풀어야지 "알았어요. 나가라니까 나갑니다" 그러면 못써요.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그럴 때가 그러지 않아요. 구약 성경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어요. 분명히 성경은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가에까지 왔을 때 정탐꾼을 보내라 그래요.
하나님은 원치 않았어요. 정탐꾼이 왜 필요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텐데 굳이 정탐꾼이 왜 필요해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탐꾼을 보내자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했습니다. 갔다 와 가지고 두 사람을 빼놓고 열 사람이 전부 다 "못 갑니다"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잖아요.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정탐꾼을 보라고 하신 게 처음엔 보지 말라고 했어요? 아니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무슨 정탐꾼이 필요해요? 그런데 정탐꾼을 보내 갔다 오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보내라"**고 했어요.
갔다 와 가지고 온 사건이 벌어졌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는 의도가 어디 있는지 그 깊은 곳에 있거든요. '가지 말아라' 할 때 '가지 말아라'는 말이지, '가라' 할 때에 꼭 '가라'고 하는 말이지,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말할 때 예,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 들어야 될 때도 있지만은 말을 잘 들어서 그 속에 있는 말을 깨달아야죠. 이런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아, 사람도 알게 되고, 아니, 나 자신도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일 중요한 말씀은 그것이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분명히 성경은 말합니다.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이 있습니다. 그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를 싸매시고, 형벌 하시고, 위로하시고, 찢으시기도 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고난 저러한 고난을 당합니다. 왜 당하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 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말씀이 있는가 하면, 또 그 속에 싸매어 주시는, 위로하시는 무궁무진한 사랑이 입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합해서 신학적인 용어로 쓰는 **"진노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마치 모세가 말입니다. 'The Rod of God' 진노적 사랑. 때리는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제가 어렸을 때 매를 많이 맞았어요. 제가 좀 심해 가지고 아버지가 언제 한번 때 좀 심하게 때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어요. **"오늘만 때려 달라"**고 하면서 맞았더니만 그랬더니 "더 때려야지 이놈아. 너를 때리는 것이다" 저를 때리시는 그 속에 사랑이 숨어 있었어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노적 사랑. 왜 하나님이 우리를 자꾸 이 길로 가야 되기 때문이에요. 귀를 열어 마음을 열어
예.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에게 말씀합니다. 강하게 말씀합니다.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야' 아니에요. 이것도 사랑이에요. '저것은 잘되는 것만 사랑이오, 안 되는 것도 사랑이에요. 내 뜻대로 되는 것 사랑이요,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그 사랑.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나를 알고 내 운명을 알고 내게 주신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고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이 지금도 저희들에게 변화 주시며 새롭게 말씀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 문을 열고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가까이 듣게 하시고, 주께서 하시는 모든 역사 속에 깊이 숨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내게 향한 사랑의 확증을 알게 하사 감사하며 주를 찬송하게 하시고, 새롭게 깨달아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감사와 찬송으로 응답하는 귀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복잡한 현실 속에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더 가까이, 더 확실하게 들으며 응답하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설교 말씀 상세 요약: 호세아 6장 강해 - 하나님을 알자, 힘써 알자
본 설교는 구약성경 호세아서 6장 1절, 5-6절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과 참 지식에 이르는 길에 대해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 📖 본문 말씀의 핵심 (호세아 6:1, 5-6)
- 돌아감과 회복의 약속 (1절):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촉구합니다.
-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의 징계 속에는 회복시키고 싸매어 주시는 사랑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 하나님을 알라는 촉구 (3절 일부 인용):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지식에 대한 열망과 노력을 강조합니다.
- 하나님의 심판과 참된 요구 (5-6절):
- 이스라엘의 인애(仁愛)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음을 책망하십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인애(사랑)**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 원하심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2. 💡 참 지식이 없는 것의 심각성
- 가장 큰 죄와 멸망의 근원:
- "사람이 짓는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공부하지 않는 죄" (노예가 된 이의 말 인용).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 (호세아 4:6 인용)는 말씀처럼,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 예수님의 '가상칠언' 중 첫 번째 말씀("하나님이여 이들을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은 모르는 것이 모든 죄의 근본이자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임을 시사합니다.
- 전도의 목표: 모르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죄로부터 구속받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
- 말씀을 거절하는 태도의 심판성:
- "우리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릴 것이다" (느헤미야 4:6 인용).
- 말씀이 들려와도 강하게 거절하는 완악한 마음은 그 자체가 이미 심판받은 상태입니다.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은총입니다.
3. 🚀 성공하는 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자세
성공한 CEO 7인을 연구한 책에서 말하는 성공적인 자세는 참 지식을 얻는 자세와 일맥상통합니다.
- 새 지식에 대한 열망: 과거와 현재의 지식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추구합니다.
- 새 지식에 대한 수용성 (Receptivity): 새로운 지식이 들려올 때 가슴을 열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 새 지식에 대한 실천성: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고, 자신을 그 지식에 위탁합니다.
- 진리에 대한 학습 자세: 당장 이해되지 않더라도 거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학습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 옛 생각/습관 버리기: 새로운 지식과 세상을 이루기 위해 옛 생각, 옛 습관을 버리고 생각의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4. 🔑 참 지식의 근원: 하나님의 계시
- 참 지식은 연구나 경험을 넘어섬: 위대한 지식은 연구나 작은 경험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인간적으로는 영감이라 불립니다.
- 교회적 용어: 계시 (아포칼립소): **'덮개를 벗기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알려 주시려고 덮개를 벗기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주려 노력하심: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예수님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다.
- 계시에 대한 우리의 응답:
- 회개: 옛 생활, 잘못된 타성을 버림.
- 순종: 주님을 믿고 따르고 복종함. 의심하는 자에게는 새 지식이 없습니다.
- 감사/찬양: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때 비로소 계시적 지식이 내 지식이 됩니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잠언 1:7 인용):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바른 지식이 올 수 있습니다.
- "너희 자신을 알라"는 한계: 종교개혁자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은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나 자신과 세상, 운명을 알게 됩니다.
5. 🎯 하나님을 아는 세 가지 명령
본문(호세아 6장)이 주는 세 가지 명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세상으로 기울었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행위입니다.
- "그 안에서 살자": 지속적이고 현재적으로 인내하며 삶으로써 하나님의 교과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모든 노력과 열망을 기울여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6. 👂 참 지식을 얻는 마지막 비결: 잘 듣는 마음
마이크로 메들린 교수의 분석을 인용하며, 참 지식을 위해서는 **'잘 듣는 마음'**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 말하는 자의 뜻을 파악하여 들어야 함: 상대방의 처지로 돌아가 그 배경과 의도를 파악하며 귀 기울여야 합니다.
- 말하지 않는 것도 들어야 함 (눈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나의 생각 방향대로 말하지 않는 것 속에서도 들어야 함: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의도)을 깨달아 들어야 합니다 (예: 정탐꾼을 보내라는 명령).
7. 💖 진노적 사랑 (The Rod of God)
- 하나님의 이중적 역사: 하나님은 찢으시고 싸매어 주시는 분으로, 징계, 심판, 형벌 속에도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 '진노적 사랑': 신학적 용어로, 고난과 심판 속에 숨어 있는 공의와 위로, 무궁무진한 사랑의 입체적인 통합입니다.
-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시며, 잘되는 것뿐만 아니라 안 되는 것도 사랑이며,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모든 사건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응답하며,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는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자신과 운명,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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