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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Qxgubp3DjQQ&feature=youtu.be
◈인생은 전제, 입김 입니다 딤후4:6, 시39:5, 62:9, 146:3~4 스크랩
바울이 많은 서신서를 썼는데 참수형을 당해서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쓴 서신서가 디모데후서 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딤후4:6 "전제 drink offering 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왔도다"
옛날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의 예배 였습니다 그 구약 시대에 제사가
<드리는 목적>에 따라서
5종류의 제사로 분류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자기 의탁
헌신을 목적으로 하는 번제
burnt offering
2) 충성 그리고 봉사를 뜻하는 소제
grain offering
3) 감사와 소원 그리고 친교를 위한 화목제
peace/fellowhip offerings
4) 죄 사함을 위한 속죄제
sin offering
5) 물질적 범죄에 대한 죄 속함을 위한 속건제
guilt/trespass offering
이렇게 다섯 가지 제사가
"목적" 별로 분류한
제사 다섯 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떤 방법, 어떤 형태"로 드리느냐에
따라서 4가지 형태로 분류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재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것을
불火 자를 써서 화제라고 했습니다
offering by fire
2)하나님께 바쳐드리는 제물을
하늘로 들어올렸다가 제단에 내려놓아서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형식의 제사를
들 거擧 자를 사용해서 거제입니다
offering of the threshing floor
3)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제물을 들어서 상하
혹은 좌우로 제물을 흔들어서 바치는 제사를
흔들 요揺 자를 써서 요제 라고 했습니다
wave offering
4) 피, 포도주, 기름처럼 액체를 제물로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제사를 부을 전,
전제 奠祭 라고 했어요 drink offering
지금 바울은 자기 자신을
'전제'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액체를 하나님께 부어 드리는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워졌도다
이것은 바울의 대단한 통찰력입니다
▲구약시대에 전제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그 제물을 피, 포도주, 기름 같은 액체를 부어 드리는데
반드시 피, 기름, 포도주가 아니더라도
액체를 그릇, 제기에 넣어서 부으면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있어요
액체를 따르면 따르는 만큼
그 그릇속에 빈 공간이 점점 더 커집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 인생을 전제,
액체를 붙는 전제로 여기고
자기 인생을 눈으로 보는 거예요
'내 인생을 내가 이만큼 지금 쏟아부었어
그러고나니 텅 비어있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다 부어져서 이제 나는 세상을 하직 할 때가 다 되었네
바울은 인생을 전제로 인식한 것입니다
▲이것을 요즘 시계로 표현한다고 하면 바울은 인생을 아날로그 나
디지털 시계가 아니라
모래시계로 인식했다는 말입니다
아날로그 시계는 초침 분침 시침 바늘이
시계판 위를 무한반복해서 회전하는 겁니다
디지털 시계는 0부터 59까지의 숫자가
무한 반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디지털 시계든 아날로그 시계든
그 시계를 보면 계속 오는 시간만 나타납니다
지나간 시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시계를 보고 내가 바울처럼 '내 인생이 전제처럼 다 부어졌네'
아날로그 디지털 시계엔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디지털 시계와 아날로그 시계는
오는 시간만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그 시계를 보면 마치 내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모래시계는 형태부터 다릅니다
모래시계는 윗 유리병에 모래가 가득 차 있습니다
한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 모래시계 위에 있는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래시계의 특성은 떨어진 시간의 빈 공간이
눈으로 확인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제 인생 모래시계가
제 눈에 보입니다
제 인생 모래시계 윗유리 병은
만 70년 2개월 21일 만큼
텅 비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절대 리필 refill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래시계는
모래가 떨어지면 떨어지는 만큼
빈공간이 점점 점점 늘어나는데
거기에 (윗유리병) 밑부분에
남아 있는 모래 (자기 남은 날) 도 보여요
그런데 인생 모래시계는
남아 있는 날은 안 보인다는 겁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즉 시간이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 줄 아시죠?
모세가 정말 그 세월이 얼마나 빨리
날아가는지 고백하면서 *시90:10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 했습니다
새가 날아가는 속도로
지금 시간이 떨어져요
그런데 (인생은) 도대체
하루가, 이틀이, 사흘이 남았는가
이거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아날로그, 디지털 시계가 아니라
전제와 같이, 모래시계 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
이미 모래시계 윗부분에서 사라져 버린
시간의 공간을 확인하면서
그 공간이 크면 큰 만큼 오늘 하루 주어진 이 시간의 의미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기를 열망했던 내일이다!'
여러분 오늘 어떻게 사셨습니까
헛되게 보냈습니까?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기를
열망했던 내일입니다
왜 오늘 여러분들
헛되게 살았습니까?
모래시계의 윗부분(남은 날)이
안 보이니까 그런 거에요
여러분 봄이 되면 온 세상이 소생하지 않습니까
도시에서는 봄을 온 몸으로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시골 가서 사니까요
정말 봄이 되니까 눈이 부셔요
여러분 제가 사는 마을에도
90세 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이 말입니다
봄이 되어서 온 세상이 눈부신 초록색으로
옷을 입으면 봄이 온 걸 기뻐합니다 근데 봄이 왔다는 건 뭐예요?
작년 겨울부터 봄까지 몇 달의
모래가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모래시계에서
시간이 간 것은 생각 안 합니다
봄이 온 것만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눈에 보이는 것,
보기에 아름다운 것만 현혹되어서 산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지나간 시간을 알지 못하고
지금 흘러내리는 모래 시간을 다 무의미하게
내버려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래시계에서 지나간 시간의
텅 빈 공간을 보신다면
오늘 떨어지는 이 모래, 이 날이
폭풍이 부는 날이면 어떻습니까
꿈동산 아니면 어떻습니까 살을 애는 영하 20도의 날이면 어떻습니까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기를 열망했던 날이 노력하지 않은 나에게
오늘도 주어졌는데
그렇다면 봄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겨울에도 폭설 속에서도 폭풍속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세상과 누구에겐가 기여하면서
살아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시편 8편은 다윗이 쓴 시인데 그중에서
: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매일 하루 하루가 주어진다는 것 다윗은 그게 감격해서
주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돌보아 주십니까 하고 노래 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인생 모래시계는 이미 만 70년 하고
더 많은 날들이 텅 비어 있습니다
앞으로 몇 날이 제게 남아 있을런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근데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제게 주어진 것입니다!
제 평생에 한 번도 맞아 본 적이 없는
새 날이 또 하루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밖을 내다 볼 때
이 시편 8편은 다윗의 고백이 아니라
70년을 산 이재철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제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그 모래시계에
또 하루의 모래가 떨어지게 해 주신
그 주님의 은혜를 내가 감사한다고 하면
비록 나이는 들고
병든 육체는 쇠퇴해 간다 할지라도
그래도 뭔가 오늘도 하루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에
내가 살고 있는 내 마을에 기여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여러분에게 주어지는데
여러분 인생이 모래시계 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매일 매일 하루하루를 여러분이
여러분의 욕망을 위해서
그냥 허투루 써 버린다면
그런 인생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호의호식 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누구에겐가 기여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인생은
이 세상에 쓰레기만 배출하는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평생에 버린 종이는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들 평생에 버린 옷은 얼마나 많습니까
버린 구두는 얼마나 많습니까
버린 가구는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인생이 모래 시계 임을 알지 못하고
오늘 하루 주어진 이 하루가
누군가에게 기여해야 할
절대적인 의미의 날임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여러분들이 주일마다 와서 봉사 해도
여러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러분들이 돈이 더 많으면 더 많을수록
더 많은 쓰레기를 세상에 배출하면서
세상을 오염시키다가
여러분들 인생은 끝납니다
주님께서 그런 인생을 기뻐하시지 않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인생은 "입김"입니다
1 솔기 2 전제 3 입김
인생이 모래시계 라고 했는데 세상의 모래시계를 보면
위에 있는 모래가 다 떨어지고 나면
아랫 유리병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모래시계 라고 해도
뭔가 인생 시계가 다 끝나도 남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인생 모래시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 1장 1~2절 말씀입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솔로몬 아닙니까 솔로몬이 뭐라고 했는가요?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히브리 말은 중요한 사실을 강조할때
부사가 있는데도
동일한 단어를 두 번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원시적인 언어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을 배우고
읽으면 읽을수록 오 그게 아니야!
이게 훨씬 더 강조 하는 거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가령 솔로몬이 '인생은 대단히 헛돼,
인생은 매우 헛돼, 몹시 헛돼!'
라고 하는 것 하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어느 게 더 강조가 됩니까?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이 강조할 때
단어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은 제곱이거든요 내가 굉장히 좋으면 '좋다 좋다'
이것은 '좋다 x 좋다' 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헛되다 를 5번 썼다는 것은
헛됨의 5제곱 입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부사도 동원할 수 없을 만큼
헛되다는 것입니다
근데 여기에서 솔로몬이 '헛되다'고 말한 히브리어 단어가 '헤벨'인데
그 '헤벨'은 '숨'이 라는 말도 되고 '입김' 이라는 말도 됩니다
물론 '공허함, 헛됨' 이런 뜻도 있지만
본래는 '숨, 입김' 입니다
제가 훅~ 하고 입김을 붑니다
분명히 열기도 느껴져요
유리에 훅 하면 김이 서리기도 합니다 근데 이게 있습니까 실제가?
없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인생이 그런 입김 이라는 것입니다
* '헛되다'가 입김 전1:2
▲다윗이 시편 39:5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 만큼 되게 하시며"
3천년 전에 다윗은 70년을 살았습니다 3천 년 전에 다윗이 70년을 살았는데
그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장수한 겁니다
지금 뭐 100살 보다 더 오랜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긴 세월을 살고 다윗이 '내 인생은 이만큼 길었어!'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 만큼 되게 하시며"
다윗 에게 있어서 70년 평생 인생은
'한 뼘'밖에 안 되더라는 겁니다
'뼘'은 히브리 성경에는
'테파흐' 라고 되어 있습니다
'테파흐'의 정확한 번역은 (손가락을 뺀)
'손바닥'만입니다
다윗이 70년 평생을 살고 '내 인생은 손바닥 길이 밖에 안 됩니다'
모래시계가 순식간에 끝난 겁니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여러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손바닥 길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70년 이것이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 David 가 산 이 기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 시39:5
'든든히 서 있다'는 '나차브' 인데
전성시대 라는 말입니다
다윗에게도 전성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다 살고 되돌아 보니까 자기 인생 전성시대에도
모든 것이 허사 뿐이었다!
여기에서 '허사'라는 말이 '헤벨'입니다
*전1:2의 헛되다
내가 되돌아 보니까 '내 인생을 전성시대'
라고 했던 그것이 입김에 지나지 않구나
다윗은 또 시편 62편 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입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좀 부자, 좀 힘 있는 사람은 인생이 뭔가 달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KJV, 새번역
나는 신분이 높기 때문에
입김에 지나지 않는 너보다
내 인생은 훨씬 중해, 훨씬 더 커,
더 무거워! 라고 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속는 사람이다 라는 겁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도 그 인생은 입김, 신분이 높은 사람도 입김!
가난한 사람도 입김,
부자도 입김 이라는 거예요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 62:9
여러분 오늘날 72억 인구가 있습니다 그 72억 인구한테 어느 날
몇 시 몇 분 몇 초에 다 똑같이 하늘을 향해서 훅 하고
입김을 내뿜어라고 얘기했다고 하십시다
그래서 모두 동시에 입김을 내뿜었습니다 그게 지금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72억 명을 모아놓아 보아야
입김인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숨, 입김!
이게 아무 실체도 없이 헛된 것,
허망한 것의 상징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또 인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102:3 '나의 세월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자기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더라는 겁니다
제가 사는 시골집 옆집에서 겨울에 딱 저녁 5시 가 되면
장작으로 불을 땝니다
그러면 산 위에서 바람이 내려와서
그 연기가 다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와요
그런데요 그때 잠시 뿐입니다
순식간에 다 사라집니다
여러분과 내 인생이
실체없는 연기하고 똑같다는 겁니다
입김과 똑같다는 말인 것이죠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4:13~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제가 사는 시골집이 해발 560M 라서
안개가 자주 끼어서 시야에 보입니다
그런데요 제가 지금 8개월째 사는데 단 한번도 솟아 오른 안개가
그 모양 그대로 10분 이상 있는 안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안개는 피어 올랐다고 하면 그냥 사라지고
다른 모양이 됩니다
이처럼 인생은 실체없는 숨, 입김, 연기,
안개처럼 헛되고 헛될 뿐인데
그런데 숨 안개 연기 입김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딱 하나 있습니다
시편 146:3~4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인생은 실체 없는 안개, 연기, 입김, 숨과 똑같은데
그런데 인생은 (입김과 달리)
흙으로 소멸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떻게 흙으로 소멸되는가요? 이사야 14장 11절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우리 인생이 안개처럼 입김처럼 소리 없이
실체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 사라지는 과정이 어떻게 되는가요?
구더기를 요로 삼고
지렁이를 이불 삼고 그렇게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여러분들 아무리 잘 살아도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여러분이 죽고 나서 매장 하면
여러분의 시신은 구더기 밥이 되고
지렁이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이 인생의 실체를 바로 아는 사람만
자기 입김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기로
자기 인생 이야기 책을
엮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코에
당신의 생기를 훅~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흙 + 하나님의 생기 = 하나님의 생령
이 되었습니다
근데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생기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생령 - 하나님을 생기 = 흙 남는 게 흙 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래서 천하장상도 그냥
구더기 지렁이 밥이 되는 것으로
그 인생은 안개처럼 입김처럼 소멸되는 겁니다
그걸 안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본래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흙의 코 속에 불어 주셨던
그 생기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데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왜 성경 공부합니까?
경건훈련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 육체가 구더기 밥이 될 때도
우리를 영원히 살려주실 그 하나님의 생기를
힘입어 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인생이 입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사람만
매일 매일 하나님의 생기로 자기 인생
이야기 책을 엮어 갈 수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인생은 '떠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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