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민교수 (총신대학교 교수)
이만열 교수가 인용한 「대한그리스도인회보」(1899년 3월 1일)에는 오늘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깊이 생각하게 하는 한 토막의 기사가 실려 있다. 그것은 교인들이 사는 고을에는 수령들이 제대로 부정을 하지 못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기사였다. 어떤 양반은 그래서 '예수교' 없는 고을로 임지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구 1,200만 중에 기독교인들이 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교인수가 1,000만 명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의 확립이나 그 가치관에 입각한 사회적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대형 사고나 비리사건이 있는 곳에는 교인들이 관련된 경우가 많았으며, 사회의 지도층 곳곳에 그리스도인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역기능적 요소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급변하는 문화적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인간과 인간 공동체의 붕괴, 환경파괴, 도덕적 타락, 대립과 갈등 등 이런 어두운 현실 앞에서 교회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물질적, 세속적 가치관이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어 세상과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이유들 때문에 한국교회는 그 매력을 잃어가면서 복음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고, 실제로 교회성장의 정체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다만 이런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교계의 단체들이나 지도자들 중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고민하고 자성하며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처럼 교회가 사회적 적응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교회의 영향력이 이 세상 가운데서 이처럼 미미한 것인가? 그 이유들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문제, 즉 믿음과 삶의 이원론적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과는 분리된 것으로 인식되어 버린 것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서 주도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교회는 믿음의 삶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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