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0,출29:45-46, 빌 2:5-11
피조물이요 죄인인 우리들에게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한자리에 앉아 주시고 우리의 삶에 동참해 주신다는 사실은 은혜 중에 큰 은혜입니다. 죄인들은 감히 올라 갈 수 없는 높으신 하나님의 자리이기에 하나님께서 몸소 내려오셔서 우리의 슬픔과 기쁨과 고통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사시기를 기뻐하시는 뜻을 밝혀주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 알리라"(출29:45-46) 그러한 뜻을 가지신 하나님은 회막이나 성전에 임재하셨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임재해 계시던 하나님께서 2000 여 년 전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리스도께서는 죽어 가는 인류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양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인류구원의 대업을 성취하셨습니다.(빌2:5-11)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사시면서 사람들의 형편을 깊이 이해하시고 동고동락하시면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동참하셨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Ⅰ. 우리의 기쁨에 동참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나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첫 이적을 행하시고 축복하심으로 결혼의 기쁨을 더하여 주셨습니다.(요2:1-10)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셨으며, 또한 70인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좋은 성과를 보고했을 때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활동하시면서 가장 크게 기뻐하신 일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궁극적인 사역이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한 인류구원 이었기 때문에 죽을 죄인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같이 사람들을 찾아 다니셨고 찾았을 때 기뻐하셨습니다.(눅15:3-7)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습니다.
Ⅱ. 우리의 슬픔에 동참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기록으로 본다면 예수께서는 기뻐하신 일보다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시고 고뇌에 찬 모습으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그 시대의 상황이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베다니 동네를 방문하셔서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와 함께 눈물을 흘리시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가들의 비참한 모습을 통분히 여기시고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외치시니 무덤이 열리어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일어나서 걸어나왔습니다.(요11:33-44) 우리 주님께서는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와 소외된 자, 창기와 세리와 장애인들과 억압받는 자들을 가까이 찾아주시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시며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Ⅲ.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여 주십니다(마11:28-30).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이 살아가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 짐을 함께 저 주시면서 우리의 힘을 북돋우어주시고 짐을 지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이 무슨 염치로 짐을 지지 않고 살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지고라도 잘 달려갈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고마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스승의 자리를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시는 것은 주께서 인간을 가장 이해하시고, 가장 깊이 사랑하셨고, 가장 훌륭한 참여학습법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고기를 잡아서 요리까지 해주신 것이 아니라, 시범을 통해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주님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 날마다 죽는 연습을 맹렬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미 성자가 되었지만, 죽을 때에는 연습할 때 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것은 주님의 임재에 대한 믿음으로,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계속적으로 받으며 살았기 때문이며, 바울 자신도 주님과 같이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며,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빌4:10-11) 오늘날 인류의 문제는 극심한 개인주의와 지독한 이기주의 때문에, 참여의식이 약화되어서 모든 공동체가 붕괴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과 같이 한 손으로는 주님의 손을 굳게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웃의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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