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에베소 교회를 본 받아 부흥하는 교회 (행19:20)

by 【고동엽】 2022. 9. 28.

에베소 교회를 본 받아 부흥하는 교회  (행19:20)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며 바울이 윗 지방을 다녀 에베소에 왔다고 하는데 '윗지방'이란 일반적으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Zahn, Bauernfeind).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도시로서 코레소스(Koressos) 산맥과 에게해 사이의 카이스터(Cayster) 강 어귀에 위치하였습니다. 이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리울 만큼 번창하였습니다. 그러나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과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점점 잃어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전부터 섬겨오던 아데미 여신을 더욱 더 열심히 섬겼는데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곳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므로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부흥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교회가 되되 에베소 교회를 본 받아 부흥하는 역사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에베소 교회 부흥의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 예수의 이름 중심하는 교회입니다.
바울이 어떤 제자들을 만나 성령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행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나 그들은 성령과 그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행 19:2)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래서 다시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어 봅니다.
(행 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세례 요한은 분명히 예수와 성령 세례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그런데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씀 이들이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다는 것은 '요한의 세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보입니다.
바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의 뜻과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 설명합니다.
(행 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바울은 요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관한 정확한 의미와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을 올바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마음의 변화와 근본적 전환을 위해 베푼 회개의 세례로 뒤에 오실 이, 곧 예수를 믿게 하기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베푸시는 구원의 세례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계시의 절정으로 보며 심지어는 메시야와 동일시 하기도 했습니다.
(눅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그러나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일 따름이었습니다.
(마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따라서 요한은 예수께서 베푸실 '성령과 불 세례'를 위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 없이는 성령을 받을 수 없으며 또 근본적으로 회개케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기(Lenski)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행 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의 가르침으로 자신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은 제자들은 자진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로서 진정하고 참된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와 진정한 연합의 관계가 이루어 집니다.
(롬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어떤 마을에 잘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벽에는 선명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써 있었습니다.“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 언제부터인가 건물 벽에 담쟁이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벽에 쓰인 글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쓰인 글 중에서“십자가에 못박힌”이란 부분을 담쟁이 넝쿨이 가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말만 보였습니다. 얼마 후 담쟁이 넝쿨이 더 자라나서 이번에는“그리스도”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은 말은“우리는 믿는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끝내는 이 담쟁이 넝쿨이 벽을 모두 가려 원래 있던 글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해방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 버리고 예수님에게서 십자가를 빼 버리고 십자가에서 당한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빼 버리면 믿는 신앙에는 아무 것도 남을 것이 없으며 아예 우리의 존재 가치마저도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주를 믿음으로써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기독교 - 예수 - 십자가 = ?)

   에베소 교회는 성령 중심하는 교회입니다
(행 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던 바울 사도는 성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저들에게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세례를 베풀므로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합니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주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와(2:4, 6, 8), 고넬료의 집에 모인 유대인과 이방인들(10:44-46)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나타났던 표적들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성령 세례를 받은 열 두 사람들은 후에 에베소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되어 이방 선교에 전심 전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고대의 한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얘기입니다. 어느 한 노인 수도사가 젊은 사업가에게 말했습니다. “물고기가 마른 땅에서는 죽듯이 자네도 세상에 뒤엉키면 파멸케 되네. 고기는 물로 돌아가야 하고 자네는 성령께로 돌아가야 해.” 그러자 그 사업가는 아연실색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내가 사업을 그만두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란 말이오? 내가 사업을 통해 성취한 것을 포기해야 한단 말이오?”그 노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런 것은 아니네. 내가 한 말의 뜻은 사업은 그대로 붙들고 있고 당신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이지.”
우리의 마음은 성령이 계신 곳이니 성령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배를 받으면 세상의 사람이고 세상사가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늘나라 일이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성령의 지배)
성령안에서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에베소 교회는 말씀 중심하는 교회입니다.
에베소에 이른 바울은 이제 열심히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강론하기 시작했습니다.
(행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이미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이 회당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약속했었습니다.
(행 18:19-21)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바울 사도는 그 약속을 지키고 회당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로 석 달 동안이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믿지 아니하고 그 도를 비방하기까지 했습니다.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려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 문을 굳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두고 마음이 굳어 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게 되었습니다.
(행 19:9)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 제자들은 바울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동안 그곳에서 얻은 제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떠나면서 그곳에서 얻은 제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습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의 적대감이 매우 심했던 까닭에 바울은 더 이상 회당을 복음 증거 장소로 이용할 수 없다고 느끼고,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계속되었고 그러한 노력은 에베소에서 큰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17세기의 칼뱅주의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이 '경건한 가정'의 후손들 4백여 명은 에드워즈의 가르침에 따라 14명의 학장과 1백 명의 목사·신학자, 1백 명 이상의 법관·판사, 60명이 의사가 되어 사회에 봉사했습니다. 그런가하면 70명의 작가·저술가가 있었으며, 언론인·출판인으로도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했습니다.(말씀은 위대한 유산)
말씀 중심하며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그중에 바울을 통해 나타난 것은 병 고치는 이적이었습니다.
(행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는 바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희한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이적 행한 것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행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바울 사도나 다른 사도들 또는 성도들 외에 비기독교인들도 귀신 축출을 위해 예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했습니다(14-16절; 막 9:38, 39). 실제로 파리의 마술 문서인 574번 파피루스 3018행에서는 "내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엄히 명하노니." 라고 무당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실례를 언급하고 있다합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을 목격한 유대인 주술사들도 바울의 행동을 모방해 예수의 이름을 그들의 주술에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무당들이 귀신을 내어 쫓으려 할 때는 십자가를 긋는다 하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바울을 모방하다가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행 19:14-16)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들의 이런 교활한 행동은 마치 사마리아인 시몬의 태도와도 유사합니다.
(행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귀신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믿음과 능력들을 먼저 파악합니다.
그들 자신들이 하는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를 이미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막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나아가 바울이 그 예수의 사도이며 믿음과 능력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행 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들이 마귀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감으로써 이들의 신의와 위엄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며 반면에 바울의 권위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죄를 자백 합니다.
(행 19:17,18)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미신과 주술이 난무하는 에베소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일곱 주술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난 파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그 주술사들처럼 미신과 주술이라는 악습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귀신의 봉변이 자신들에게 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곤경을 치르게 될까 염려하며 예수의 이름이 모든 귀신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름을 높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일은 에베소 주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예수의 이름이 지닌 신비한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은밀하게 범하던 잘못들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생활 습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은밀한 가운데 미신과 주술을 쫓거나 그 같은 일들을 직접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의 능력을 확실히 목격하고 체험하게 되자 자신들의 은밀한 범죄를 회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마술사들도 마술을 버리고 그들의 책을 불살라 버립니다.
(행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행동을 회개하고,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마술에 관계된 모든 서적들을 불살랐습니다. 이 책들은 주문이나 부적 등 미신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파피루스나 양피지(parchment)에 기록된 것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에베소의 책들'(Ephesia Grammata)로 추정하기도 합니다(Zahn).
한편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것은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렘 36:23) 여후디가 삼 편 사 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공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과거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에베소에는 대부분 헬라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은 오만'에 대한 화폐 단위는 아마도 '드라크마'(Drachma)이었거나 로마의 화폐 단위인 '데나리온'(Denarius)이었을 것으로 이 두 화폐의 가치는 거의 같은 것으로서 당시 일용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에 해당되었습니다. 하루 품삯을 3만원으로 계산하며 15억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본다 하더라도 당시 에베소에 미신이나 마술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되고 향기되고 편지 되는 사명을 감당해야함을 교훈 합니다.
  
  웹 할아버지는 손녀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였고, 손녀도 무척 교회 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주중에도 “할아버지, 오늘이 교회 가는 날인가요?”하고 할아버지에게 묻곤 하였다. 그래서 때론 주일이 아니더라도 할아버지는 손녀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제단 강대상 밑에 조용히 앉으면 손녀는 신기한 듯이 아름답게 꾸며 놓은 예배당 안을 둘러보았다. 손녀는 색유리를 끼운 창, 특히 예수의 자비로운 얼굴이 그려져 있는 유리를 좋아하여 한동안 황홀한 듯이 바라보다가는 가만히 “할아버지, 기도해주세요”하며 웹의 손을 꼭 쥐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가 놀다가 들어온 손녀가 물었다. “할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언제 교회 밖으로 나오시나요? 하나님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은 언제 교회 밖으로 나오시는가? 항상 교회에서만 계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은 세상에 계시는 것일까?’ 손녀의 물음에 깊은 생각을 하던 웹 할아버지는 눈을 번쩍 떴다. “맞다. 하나님께서도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통해 언제나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의 생활 속에서 또한 여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고 계신다.”(교회 밖으로 나오시는 하나님)
  
에베소 교회는 예수중심 성령 중심 말씀 중심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아 나타나므로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 갔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본 받아 1907년 처럼 부흥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