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증인 사울 (사도행전 9:20 ~ 25)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도행전 9:20-25
한 사람이 변하여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변하는 사건이 기독교 역사에서 일어났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변화입니다. 아마도 예수님 이외에 사도 바울만큼 인류의 역사와 윤리, 도덕, 영적인 세계뿐 아니라 정서까지 변화시킨 분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비판하는 어떤 학자는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갑자기 쓰러진 일을 두고 “바울은 간질병에 걸린 환각의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간질병에 걸려 정신이 혼란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로 인해 세계 역사와 기독교 역사가 달라졌으며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으면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변화는 스데반의 순교에서 출발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젊은 사울은 사람들의 옷을 모아 보관하면서 스데반이 죽는 것을 눈앞에서 봤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죽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몰라서 저럽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날 때려죽이는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데반은 죽으면서 얼굴이 환하여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사울이 봤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용서할 수가 있나? 어떻게 저렇게 사랑을 보여줄 수가 있나?’ 스데반의 말과 죽는 모습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날부터 사울에게는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냐? 예수는 도대체 누구며 스데반은 어떻게 끝까지 남을 용서할 수 있었나….’ 물론 스데반은 예수님을 닮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저주하지 않고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용서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스데반도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축복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얼굴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죽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철학이나 사상으로도 이해할 수 없어요. 예수님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가슴속에 와서 그를 변화시키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사울의 내면은 점점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어두워진 마음으로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눈마저 어두워졌습니다. 마음에 갈등이 생기면 몸에 바로 나타납니다. 몸은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요. 저도 예전에 할렐루야 교회로 오기 전에 고민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할렐루야 교회는 나를 미국에서 나오라고 하는데 나는 나갈 형편이 안 되고, 또 나가고 싶지도 않았고 아주 죽을 지경이었어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가라든지 말라든지 하시면 속이 편할 텐데 아무 응답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눈이 잘 안 보이더라고요. 제가 그때부터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귀도 안 들리고, 목소리도 안 나와 설교를 할 수 없었고, 피부는 온 몸을 바늘로 마구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었습니다. 우리는 내적인 고민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삶은 내면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여러분도 스데반처럼, 사울처럼 변화되어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평화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다메섹에서 꼬꾸라진 사울은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워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어느 사람이 문을 두드립니다. “저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길거리에서 만났던 그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사울을 만난 아나니아의 첫 마디는 “사랑하는 형제 사울이여!”였습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또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자기가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겠다는 겁니다. “원수 사울이여, 당신을 저주하러 왔도다!”가 아니라 다가와 사울의 몸에 손을 얹고 “눈을 뜨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가슴 속에 갈등이 끓고 눈도 보이지 않고 밥도 못 먹던 사울이 자기를 형제라고 부르는 따뜻하고 온유한 사랑과 화해의 손길로 안아주는 아나니아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랬고, 스데반이 그랬고, 아나니아가 그랬습니다. 사울은 여기서 완전히 예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내면의 세계가 변하면 외면의 세계도 변합니다. 사울이 예수님께로 돌아서자 몸이 바로 회복되었습니다. 영적인 경험을 하면 육신의 병이 낫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몸은 마음이 다스립니다. 사울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고 식욕이 돌아와 음식을 먹고 원기를 되찾았습니다(19절). 예수님을 체험하면 몸과 마음과 영혼이 변합니다.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삶에서 이런 축복들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그러자 사울은 바로 전도자가 되어 예수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체험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기도 응답을 받거나 성경을 통한 깨달음을 얻거나 신앙 안에서 가능한 여러 체험을 하면 확신이 생깁니다. 그때부터 자기 체험을 말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다른 점을 간증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체험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20절)하였습니다.
핍박하던 자의 열정이 방향을 바꿔 예수를 전하는 열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여러분이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누군가가 여러분이 만난 예수님을 알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사울을 변화시켜서 바울로 만드신 것처럼 제 인생에 오셔서 저를 사용하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간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간증하면 성장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표현하면 힘이 생기고 내 자신의 영적 성장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거든요.
어거스틴도 30세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로마서 14장 한 구절을 읽다가 그 말씀 때문에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논리학 교수였으나 타락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 변하여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베드로도 그렇게 고백했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르다도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도마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신앙고백은 구원의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는 신앙고백을 보면 압니다.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 나를 위하여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 이 한마디가 여러분의 구원을 증명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신앙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이 없는 분은 이 시간에 고백하십시오. “주여, 저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날 위하여 돌아가신 구주임을 믿습니다.” 이 한 마디의 단순한 고백으로 사도 바울과 같은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내가 예수님에 대하여 보고 들은 것,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면 새 힘이 일고 신앙이 성장합니다.
로버트 라토너는 미국에서 가장 큰 엔지니어링 회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던 이 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라서 예수를 믿고 나서도 전도나 간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로터리 클럽에서 강연을 요청 받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가 예수 믿고 달라진 모습을 간단하게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사업가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든지, 그 때부터 여기저기 로터리 클럽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고, 이 분은 사업가들을 위한 간증 연설가가 되었습니다. 말할 줄 모르던 사람이 간증 한 번 했다가 입이 터진 겁니다. 평생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그 외에도 유익한 강연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십시오. 그러면 입이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생긴 삶의 변화에는 감동이 있고, 간증을 듣는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변화 때문에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이 변화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울의 변화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21절). 사람을 잡아 죽이러 다니던 핍박자가 하루아침에 변해서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못 살게 굴고 죽이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려 함이 아니더냐?”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인류의 역사가 바울 때문에 달라졌습니다. 자기만 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예가 많습니다. 삭개오, 마태, 니고데모의 변화 등 예수님께로 돌아설 때 삶에 변화가 있습니다. 변화는 순간적인데, 그것이 영원한 변화가 되어버립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들이지요. 우리가 교회는 잘 몰라도 예수님은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성경과 교리는 잘 몰라도 예수님은 알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교리를 배우기 전에 예수님을 먼저 알았어요. 여러분의 자녀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과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성 원리를 만든 역사상 최고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부인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남편이 만들어 놓은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십니까?” “아니요, 저는 그런 것은 이해 못해요. 그러나 저는 제 남편은 이해합니다.” 학문이나 교리가 아닌 한 인간, 인격체는 어린이도, 청소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청소년 시절, 중고등학교 때 믿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청소년기에는 몸은 성장하여 어른처럼 되지만 마음은 아직 어립니다. 가치관도 설정되지 못하고 왔다갔다 방황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방황하지 않고 영원히 그 분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방황하는 그 시절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 인생이 변합니다. 낭비하는 인생을 살지 않고 똑바로 갑니다.
옛날에는 범죄하고 감옥에 가고 한참 헤매다 돌아온 사람이 있으면 간증을 많이 시켰습니다. 저도 어릴 때, ‘나도 예수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저런 간증 좀 하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깨닫고 나니까 예수 믿는 집에서 태어나서 방황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똑바로 산 것이 최고인 줄 압니다. 우리 가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려고 하는 삶이 최고의 행복인줄 아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주님을 알기 때문에 복된 자녀들입니다. 아이들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입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22절) 간증하고 전도하면 힘이 솟습니다. 굴복시켰다는 것은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아프리카에 아주 험한 탄광이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싸움과 행패를 많이 부리는 거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에 크리프라는 선교사가 온 후로 한 사람씩 변화되더니 마을 전체가 변해 갑니다. 어느 기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크리프 선교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그분은 꼭 예수님 같아요!” 너무 예수님 같은 것이 그분의 문제랍니다. 예수를 믿어서 성령의 도움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 여러분도 크리프 선교사와 같이 예수님처럼 될 것입니다.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임재하시니까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핍박하던 자가 이제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23절). 악은 선을 싫어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예수 믿는다고 핍박받는 분들이 있는 줄 압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이 크니라.” “세상이 나를 미워했는데 나를 미워한 것처럼 너희도 미워할 수 있다.” 이해를 못하니까 핍박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가문에서 처음 예수 믿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핍박을 받는 것 같아도 여러분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변화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에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핍박을 받더라도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은 것처럼, 스데반이 핍박을 받은 것처럼, 사도 바울이 핍박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조상들이 순교한 것처럼,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고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하늘의 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5절에 재미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며칠 되었다고 제자가 생겼습니까?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을 통치하시기 시작하면 내 마음에 열정과 능력이 생겨서 예수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로 인해 예수 믿는 사람이 생깁니다.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님이 삶을 변화시켜 주셔서 여러분을 통해서 제자들이 많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예수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울에게 제자가 생긴 것은 영적 변화에 나타난 풍성한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사람이었던 사울도 예수 믿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육신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이 살아나는 축복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꼭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사울은 은혜를 체험하자마자 바로 그 은혜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값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이 시대에 영원히 확실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메시지를 가지고 여러분 주위 사람들의 삶에 중심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울은 새 생명으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 주셔서 우리가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출처/김상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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