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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수고가 헛되지 않다 (고린도전서 15:49 ~ 58)

by 【고동엽】 2022. 9. 25.

수고가 헛되지 않다   (고린도전서 15:49 ~ 58)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49-58

    오늘 아침에 여러분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이곳에 오셔서 환한 얼굴로 찬송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이 즐겁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다음 주일에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72세의 어느 잡지사 사장이 젊은이 같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건강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건강을 유지한다면 아마 100살까지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건강에 이렇게 자신하는 그분의 이야기가 잡지에 실렸고, 그 기사를 본 TV 방송국에서도 그를 초청하여 건강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또 “이 건강식을 먹으면 100살까지 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 건강식을 먹고 100살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나흘 뒤, 그 분은 그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조깅에 대한 책으로 유명해진 한 저자는 특별히 심장병 예방을 위하여 조깅을 강조했습니다. 본인도 매일 아침 달리기를 했는데 그는 52세에 조깅을 하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 보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살아있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로 영광 돌리며, 서로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주님을 마음껏 섬기셔서, 설령 내일이 없더라도 전혀 후회되지 않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대다수는 죽어도 다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소수의 예외가 있는데,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없습니다. 더 살려고 하지도, 더 산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냥 분해되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儒敎)도 다시 사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죽으면 영혼이 안식처를 찾아 우주 어딘가를 떠돌아다닌다고 여깁니다. 도교(道敎)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에 확신과 근거가 있느냐의 문제일 뿐 사람들은 죽었다가 또 다시 산다고 생각합니다.

    힌두교가 그렇습니다. 인구 11억의 인도를 비롯하여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사람들은 거의 힌두교도들입니다. 그들은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습니다. 죽어도 다시 돌아오고, 또 죽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이지요.

    힌두교에 뿌리를 둔 불교도 환생을 믿습니다. 죽었다가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지 어쨌든 죽어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전생의 카르마, 즉 업보가 좋으면 남자로 돌아온답니다. 여자들에게 죄송하지만 남자들은 전생에 제법 잘 한 사람들이랍니다. 남자보다 조금 못하면 여자로 돌아오고 그보다 더 못하면 짐승으로, 마지막에는 곤충으로 온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 속의 모든 욕망이 완전히 사라져 부처가 되기 전에는 억겁이라도 다시 돌아와야 된답니다.

    이처럼 사람의 가슴 속에는 영생에 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백세가 되신 분에게라도 “백세까지 사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가시지요!”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고,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을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문화를 이 세상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제자들에게 열다섯 번 나타나셨고, 마지막으로 500여 성도들에게 나타나신 후에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천사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그렇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들이 보고 있는 저 예수는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를 영원한 부활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도마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같이 식사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저편에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인류역사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잦아들고 인간은 위로와 평강과 소망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부모님이나 배우자, 또는 자녀를 먼저 하나님께 보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100살까지 산다는 확신은 없어도 언젠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죽는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가족의 죽음을 맞이할 것인데, 우리의 신앙에 따라서 마음이 어두워질 수도 있고 소망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부활의 신앙이란, 마치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우리의 죽은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산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이 부활의 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현재 이 몸을 갖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죽는 몸을 심어야 거기서 새 생명이 싹트고 열매가 열립니다. 우리의 몸은 본문에 표현된 대로 “썩을 몸, 약한 몸, 죽을 몸, 땅에 속한 몸”입니다. 시간이 가면 늙고 병들고 결국 죽게 되어 있습니다.

    5년쯤 전에 제가 목사님들의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50세 정도 되신 사회자 목사님이 저를 “한국 교회의 원로이신 김상복 목사님”이라고 소개하는 걸 들으며 내심 놀랐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저를 한국교회의 원로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종종 저를 원로라고 합니다. 원로의 나이가 된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욕탕에 가도 얼굴만 보고 5천원이 아니라 4천원만 받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제 아내가 전철을 타려고 하니 무임승차권을 주더랍니다. 제 아내는 ‘내가 벌써 무임승차권을 받을 나이가 되었나?’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이가 어느새 그렇게 되었지요.

    이 몸은 연약한 몸입니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감기 바이러스만 몸에 들어가도 며칠간 꼼짝도 못하고 드러눕지요.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 육신의 몸, 땅의 몸, 썩는 몸, 늙는 몸, 마지막 가서 죽는 몸, 이 몸 자체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라도 건강하게 사는 그날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과 영생은 스스로 죽었다가 스스로 살아나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 입니다. 그분이 친히 부활과 생명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를 믿는 누구에게든지 부활과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의 부활은 예수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울리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너희가 본 그대로 그분께서 다시 오시리라.” 천사들의 예언처럼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증오와 타락과 죄와 악이 너무 관영하여 그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낍니다.

    최근에 어떤 성도의 회사를 심방했는데, 그 회사는 자동차 가솔린 소비를 1/3정도 줄이는 기계를 발명했습니다. 가솔린을 1/3 덜 쓰면 탄산가스도 1/3 덜 나옵니다. 연구결과를 보면, 여러분이 차를 사서 7~10년 쓰고 폐차할 때까지 최소한 6~8톤의 탄산가스를 대기 중에 내뿜는다고 합니다. 차 한대가 그 정도니까 나무들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나무들이 웬만한 정도라면 탄산가스를 마시고도 살 수 있겠지만 너무 많으면 감당을 못합니다. 남산에 가서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어요. 남산의 나무들이 전부 삐쩍 말랐어요. 병들어 겨우 연명하는 것처럼 뒤틀려 있습니다. 서울의 탄산가스와 오염된 공기 때문이겠지요.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세상을 끝내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부활과 생명을 믿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라고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화로운 부활체로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의 몸은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로 바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는바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삼켜 버리셨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54절). 이 말씀은 이사야 25장 8절의 말씀인데 번역이 조금 다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는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을 믿는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죽음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죽음은 힘을 잃었습니다. 사망은 이미 패배로 끝났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절). 이제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암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입니다. “암입니다!”하는 의사의 말을 들을까 두려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소화제를 먹었는데 계속 소화가 잘 안 됩니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혹시 “암입니다”하는 말을 들을까봐 끝까지 소화제만 먹었습니다. 어느 날 위가 너무 아파서 할 수 없이 병원에 갔는데 “암입니다!”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타깝지만 너무 늦어 버렸어요. 사실 위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된다고 합니다. 위는 2/3을 잘라내도 살 수 있어요. 1-2년 후에는 회복이 됩니다. 병원에 조금만 더 일찍 찾아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두려워서 미루다가 결국은 검사를 받기 위해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지만 걸어서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늦어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다가 오히려 죽음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은 패배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이겼습니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암 환자가 투병을 하면서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암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 부활과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암이 힘을 못 쓴다는 말입니다. “암이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암은 나의 사랑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소망을 깨뜨릴 수 없고, 믿음을 좀 먹을 수 없고, 평화를 삼킬 수 없고, 자신감을 파괴할 수 없고, 우정을 죽일 수 없고, 추억을 지을 수 없고, 용기를 죽일 수 없고, 영혼을 침범할 수 없고, 영생을 죽일 수 없고, 성령의 불을 끌 수 없고, 부활의 권능을 없앨 수 없습니다.”

    부활주일을 지낸 우리는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굳건히 서서 하루를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날마다 부활과 생명의 역사를 믿음으로 죽음을 이기며 승리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인도의 원숭이는 새끼가 죽으면 어미가 그 새끼를 끌어안고 썩을 때까지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숭이는 죽음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더라도, 또 언젠가 내가 죽더라도, 우리는 죽음의 손에 넘겨지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넘겨집니다. 슬픔은 당연하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슬픔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죽음은 견딜 수 없는 슬픔이지만, 하나님이 계시면 죽음마저도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나의 생명까지도 죽음의 손이 아닌 주님의 손에 기꺼이 넘겨드립니다. 부활과 생명의 예수님이 마침내 우리를 찾아와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몸처럼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출처/김상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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