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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같지만 축복이었습니다 (창 26:12-22)

by 【고동엽】 2022. 9. 23.

모순 같지만 축복이었습니다  (창 26:12-22)


제가 어릴 때 저희 옆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냇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냇가 언덕 위에 부로크로 적당히 지어져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수재가 일어났습니다. 연세가 좀 지긋하신 분은 남원에서 있었던 효기리 방죽 사건을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마는, 저희 고향에 가면 지금도 큰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효기리 방죽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말 땜과 같이 큰 저수지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 땜이 터져버렸습니다. 그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 죽고 얼마나 많은 재산 피해를 냈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만 깽변위에 있는 교회 건물도 그 큰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당에서 그날 따라 기도를 하고 있던 교회 전도사님도 같이 떠내려가 비참하게 죽어 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그 전도사님은 강단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너무나 강팍해서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켜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불쌍한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수 있을까? " 하고 마음을 애태우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고 있던 교회 전도사가 효기리 방죽이 터져 물에 떠내려가 죽게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교회 옆에 천막을 쳐 놓고 깽변의 모래를 가지고 부로크를 쳐서 밥을 먹고살던 용디기 양반은 구사일생으로 살았단 말입니다. 포플러 나무를 붙잡고 간신히 살았음.


그 양반은 예수 예자도 모르고 교회 교자도 모르며 술고래, 담배고래, 싸움고래였는데 그 친구는 천신만고 끝에 살고, 강단에서 눈물 뿌려 교회 부흥과 교회 건축을 위하여 기도하던 교회의 전도사는 비참하게 죽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니 무식한 시골 동네에서 부락마다 마을마다 소문이 어떻게 나겠습니까? "하나님 믿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 교회 나가 봤짜 맬짱 헛것이야!"


술고래 용디기 양반은 살아나고 기도하는 전도사는 죽었다고 온 동네가 술렁술렁... 그러니 교회가 어떻게 되고 하나님 명예와 자존심이 어떻게 되어 버렸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교회 부흥은 김새 버렸습니다. 틀려 버렸어요.


여러분! 이와 같은 사실이 오늘 우리 앞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생각치도 않는 불행이 우리에게 닥칠 때 우리는 너무나 당황합니다.


ex)제 2의 IMF ⇒ 사업이 힘들어지고 기업구조 조정과 퇴출 사건으로 실직 ⇒ 너무나 어이없게 됨. 그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됨.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하필 그런 일이 나에게..."


모든 일이 모순처럼만 보여집니다.

모든 사건이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로 그런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삭이 살던 당시 근동지역에는 엄청난 가뭄과 기근이 있었습니다. 온 땅에 흉년+기근이니 먹고 살 대책이 없이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당시로서 먹고 살기 위한 길은 애굽으로 가는 것입니다.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어서 흉년을 안탐. 그래서 이삭도 애굽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지말라고 하셨습니다.


창26:1-4

1절 :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절 :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 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3절 :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절 :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

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절대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했음. 왜? 애굽은 세상의 모형임.(사31:3) ⇒ 그래서 아브라함도 그곳에 갔다가 큰 화를 당할뻔 했음.


사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

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러나 지금 이삭이 거하고 있는 땅은 앞으로 이삭과 그의 후손들이 유업으로 받을 약속의 땅임. 그러므로 환란이 와도 역경이 와도 이삭은 그 땅을 믿음으로 지키고 있어야 함. 이것이 당시 이삭으로서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임.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이 그 땅에 유하고 있으면 큰 복을 주고 그 당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삭이 그 땅에 유하여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

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사방이 흉년, 기근, 재난인데 그는 그 해에 기적같이 100배의 축복을 받았음 ⇒ 창대, 왕성, 거부가 되었음. 참으로 하나님 은혜요, 엄청난 축복이었음.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기치 않는 환란, 역경이 생기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시기+질투 ⇒ 이삭의 모든 우물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음.


창26:14-15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이 우물물은 아브라함때에 판 것인데 당시 우물은 생명의 근원+사업의 근원이었습니다. 우물이 있어야 먹고 살고 짐승도 키우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것임. 그러므로 우물물을 막는다는 것은 "너는 망해서 죽으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물물을 막는다는 것은 너 여기서 더 이상 살지 말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 버리라는 말입니다.


창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 를 떠나가라


그래서 이삭은 거기를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족속들이 또 시기가 나서 이곳까지 달려와 우물을 뺏어버렸습니다. ⇒ 에섹이라고 했음.


"이것은 우리 것이다. 우리가 이 우물물을 퍼 먹을 터이니 너는 딴곳으로 가"


창26:19-20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

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얼마나 성질날 일입니까? 당장 마실물이 없으니 난리입니다. 짐승들도 난리입니다. 그래도 이삭은 불평을 참고 인내+감사 ⇒ 다른 곳으로 빨리 가서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도 블레셋 족속들이 와서 그것도 내 우물물이 라고 뺏어버립니다. 그러자 이삭은 또 포기+양보 ⇒ 그 우물 이름을 싯나라고 했음.


인간적으로 보면 이 얼마나 모순같은 일입니까? 이 얼마나 모순처럼만 보이는 사건입니까? 정말 사람이라면 불평+원망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100배의 복을 주셨으면 그 축복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셔야지 왜 이렇게 시험만 있게하고 재앙만 따르게 할 수 있겠는가하고 불평만 잔뜩 생길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은 블레셋과 싸워 이길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게만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이럴수가 있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에게 이런 엄청난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모순처럼 보이고 아무리 모순처럼 느껴져도 참고 인내 ⇒ 하나님께 감사하였음.


"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겠지. 다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겠지! 지금까지도 하나님게서 선하게 역사해 주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역사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와 축복을 기다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성경 어디에 이삭이 감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삐딱한 눈과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단어적, 문자적 해석도 중요하지만 문맥적 해석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문자적으로는 표기가 안되었어도 문맥적으로 보면 얼마나 이삭의 감사의 정신이 철철 흘러 넘치고 있습니까?


ex)성경에 요셉의 감사, 다윗의 감사, 다니엘의 감사 : 직접적으로

나와있지 않습니다. 시편에만 직접적으로 표기 되어 있음.


이삭은 모순처럼 보이는 일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모순을 모순으로 보지 않고 모순이 언젠가는 축복으로 바뀌어지리라는 영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바로 그런 감사의 믿음으로 그는 또 이사를 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팝니다. 여기서는 다른 곳보다 큰 물줄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번에는 블레셋족속들이 쳐들어오질 않습니다. 오지도 않고 우물을 메우거나 뺏지도 않습니다.(2x)


너무나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런 마음으로 이삭이 혹시나 블레셋 복병들이 어디에 숨어 있지 않나하고 주위 환경을 돌아보니 블레셋 복병은 한놈도 안보이고 온 주위가 대 평원+목초지였습니다.


하도 물이 다급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와서 우물을 팠는데 엉겹결에 우물을 파 놓고 보니까 이렇게 이곳이 광활한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땅에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오질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런줄 아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곳 르호봇으로 인도하기 위해 블레셋족속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랄 우물, 에섹 우물, 싯나우물.... 이런 우물을 물줄기가 너무 적은 우물입니다. 그리고 그 땅도 너무 좁은 땅... 그래서 이삭이 받은 100배의 축복을 감당할 수가 없음. 그 많은 짐승을 먹여 살릴수도 없고 새끼를 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 르호봇이라는 땅은 광활한 땅입니다. 동서남북 끝이 안보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물 줄기가 너무 커서 물이 폭폭 솟아 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약대와 짐승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고 이곳에서만이 100배의 축복을 계속 유지하고 더 축복을 늘일 수가 있었습니다. 이삭은 나중에야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블레셋족속을 보내주셔서 자기를 괴롭게 했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말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더 넓혀 주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하고 번성하리로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만일 이삭이 그런 좁은 땅에서 살았다면 100배의 축복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 물 가지고 짐승을 먹이고 사람이 삽니까? 100배의 축복을 받은들 무엇합니까? 그것을 감당하고 또 더 큰 축복을 누려야지요.


그래서 이삭이 블레셋 군인들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 지내 놓고 보니까 잘된 일입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 합력 하여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순이나 재앙이 나이라 하나님의 인도였고 축복이었습니다.


그때는 괴롭고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르호봇에 와서 보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그제서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아! 그랬었구나. 하나님께서 이 넓은 땅을 주실려고 이런 큰 우물을 주시려고 블레셋 사람을 통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셨구나. 하나님이 주신 100배의 축복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인도해 주셨구나"


참으로 지내놓고 보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확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모순처럼만 보였고, 그때는 재앙이나 손해인줄 알았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그것이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는 동기가 되었고 선한 자극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삭은 성격이 온화+착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현실 아주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블레셋 족속을 안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족속을 사용 ⇒ 오늘의 르호봇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일은 성경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ex)요셉, 아브라함, 욥, 모세, 바울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아멘의 하나님, OK의 하나님, Yes의 하나님, 할렐루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모든 사건을 우리에게 의미있게 역사하심 ⇒ 모순을 축복으로, 해를 선으로, No를 Yes로, 또 OK로, 그래서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심.


ex)척동교회 사건 : 모든 교인이 어안이 벙벙+모순처럼 생각 ⇒ 교인들가

지도 좌절 + 시험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용디기는 살아나고 하나님의 종은 죽게 된단 말인가?"


그러나 나중엔 정신차림.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우리 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의 희생제물+건축, 부흥의 희생제물 ⇒ 순교자다. 그러므로 그 분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교회를 건축. 다시 효기리 방죽이 터져도 다시 내려가지 않을 곳에 땅을 사서 교회를 건축 ⇒ 정부보상금+소팔고 논 팔아서 교회건축 ⇒ 열심히 전도 ⇒ 큰 부흥을 이루었음.


그때 우리 동네에서도 교회를 많이 나갔음 + 많은 일꾼이 베출되었음. 그리고 그 교회 지어놓고 부흥회 ⇒ 저도 6살 때 바께스를 들고 나갔음. ⇒ 부흥강사 자리에 앉아 있다가 안수기도받음. ⇒ 저도 그때의 열매임.


확실히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 : 용디기를 죽이고 교회 전도사를 살리셔야 하는데 용디기는 살리고 전도사는 죽였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어차피 전도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이라면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는 죽을 수 있습니다. 교회, 복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희생시켜 교회를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전도사나 목사가 아니라 괜찮습니다. 죽는 것은 주의 종이 죽었지 평신도가 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종이 죽고 교회와 평신도는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도사님 개인으로 볼때는 큰 영광입니다.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용디기의 삶을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도 오동교회는 시골교회치고 큰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수많은 일꾼이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순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순을 보는 영안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안을 가지고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영안이 없으면 언제나 불평, 원망만 합니다. 평생 불평의 노예, 원망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언제나 그의 삶은 어둠과 시험과 재앙뿐입니다.


그러나 모순을 보는 영안이 있으면 언제나 감사합니다. 바꾸시는 하나님, 언제나 모순을 축복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는 언제나 축복을 창조합니다. 기적을 창조하고 형통을 창조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늘날 경제가 힘들어져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사업에 적자, 부도, 실직 ⇒ 모순을 보는 영안으로 더 좋은 길로 인도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함 ⇒ 더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


모순처럼 보이는 불행, 고통, 역경이 오면 올수록 우리는 더욱 거룩한 오기를 발동시켜야 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을 사랑+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깊음과 높음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하늘보좌에서 기적의 물고, 축복의 물고가 터집니다.


EX) 어려울 때 실망X 모순이 닥쳐올 때 더 찬송, 감사

백암리에서! 선악과 논쟁⇒교통사고 ⇒ 동양의원에 입원

소목사 ; 오른 어깨(쇄골),

정권사 ; 오른팔 이때 병원에서 찬양

♪내 주를 가까이.. 오직 생명을 선택

외상값을 달아놓고 퇴원 ⇒ 소문이 들림.

외상값 때문에 정권사님과 함께 ⇒ ♪주안에 있는 나에게 ⇒ 생명의 찬양을 했음.


※ 소목사가 깨달은 일체의 비결

①절망할 때 부르는 찬송 :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②돈 없을 때 부르는 찬송 :♪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죽여주는 찬송임.~ 할렐루야 ⇒ 목사님! 미국에서 편지 왔어요. 도장 가지고 오셔요.

500불 체크 ⇒ 외상값+꿀 ⇒ 갚고 나올 때 얼마나 기쁘고 감격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얼마나 기쁜지 걸어서 금남로까지 찬송 부르며 옴.


♪ 내 주는 자비하셔서... ⇒ 또 200불, ⇒ 300불 ⇒ 매월 영생교회에서.. 불평할 상황에서도 감사하니까 이렇게 축복해 주셨음.


제 과거를 돌이켜 보면 너무나 모순처럼 보이고 앞뒤가 안맞는 일이 닥칠때마다 하나님은 저에게 모순을 보는 영안을 허락 ⇒ 불평, 원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먼저 멍청하게 감사부터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게서 저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


"주님! 돈좀 없어 보세요. 주님도 굶어 보세요. 주님도 이런 일 당해 보세요." ⇒ 이런 상황에서도 불평 x ⇒ 먼저 감사 ⇒ 큰 축복의 주인공으로 세워 주셨음.


ex)굿당 ⇒ 2-3억짜리 굿을 많이 한다고. 우리는 도전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감사로 이 시대를 승리합시다. 감사의 비밀과 무기로 이 어려움을 이겨냅시다.


감사는 먼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노래와 찬양이 나오지요. 그러다가 눈물어린 감사의 고백으로 옥합을 깨뜨려 물질을 드지게 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준비+예물준비 ⇒ 옥합을 깨뜨려 감사를 드리고 모두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소강석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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