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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마7 :13- 14)

by 【고동엽】 2022. 9. 18.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마7 :13- 14)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환란중에서도 소망(所望)이 있고 고난(苦難)중에서도기쁨이 있는 것은 우리 앞에 천국(天國)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문은 우리가 동화(童話)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러한 문이 아닙니다.
예수님 께서는 분명이 이문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문은 매우 좁고 협착(狹窄) 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이문은 어떤 고행(苦行)이나 수도를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문은 비록 좁고 협착한 문이지만 그러나 이문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 하는 문이요. 살리는 문입니다. 육체(肉體)의 소욕 대로 따라 사는 넓은 길과는 달리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하나님의 복음(福音)과 진리(眞理)대로 따라 살며 규범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즉 좁은 문이라고 해서 거기에는 낙이 없고 고통(苦痛)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좁은 문에는 도리어 감추 인 맛나 를 먹는 참된 희락(喜樂)이 있으며 생명을 얻는 기쁨이 있는것입니다.
오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의 특성(特性)은 어떤 것인가를 살펴. 오늘 그문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고통과 고독을 말씀 으로 위로 받고 용기를 얻어 긑까지 달려가고자 하는것입니다.

첫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길 "입니다.
예수님 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문. 영생(永生)으로 인도하는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예수님 만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된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길은 시작부터 긑까지 고난(苦難)의 길이요 좁은 길과 좁은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단(決斷)을 내린 사람은 매순간 고난을 이겨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삶은 넓고 편안해 보일뿐만 아니라 자유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을 택한 사람에게는 현재(現在) 감당하는 수고와 고난과는 족히 비교가 안될만큼 엄청난 축복(祝福)과 영광(榮光)이 기다리고 있는 반면 "넒은문. 넒은길 "을 택한 사람에게는 현재는 편하다 할지라도 그들 앞에는 오직 멸망(滅亡)만이 기다리고 있는것입니다 .따라서 성도(聖徒)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외로우며 또한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할지라도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풍조와 유행(流行)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며 특히 악인의 꾀를 쫒거나 죄인의 길에 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 하시고 온전하신뜻이 무엇인지 분변하도록 하라"고 (롬12:2) 에 기록하고잇으며 (시1:1) 에서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생명의 길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舊習)을 쫒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삶을 입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열어 놓으신 문이 바늘귀 같이 아주 작은 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19:24)에 보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바늘귀 라고 하는 이문은 중동(中東)에 있는 성의 성벽에 나있는 작은 문을 가리킵니다. 이문은 약대나 나귀가 겨우들어 갈만한 문인데 밤에는 성문을 닫기 때문에 야간(夜間)에는 이문만 개방(開放)을 해 놓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야간에 약대나 나귀에 짐을 싣고 성안으로 들어오다가 이문을 통과 하기 위해 나귀에게서 짐을 내려 나귀만 겨우 통과 시키고 짐은따로 들어가야 하는 좁은 문을 가리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천국(天國) 가는길이 사람들이 들어 가기에 불완전하게 만들어져서 들어갈수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이문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할수 있는자만이 통과 할수있다는 것입니다.

(눅14:26-27)" 무릇 내게 오는자가 자기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 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지 아니하는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미워하고 버리라고 한 말씀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하나님과 동등(同等)한 위치에 놓지말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財物)과 하나님. 혹은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려는 마음으로는 그누구라도 절대로 이문을 통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永生)으로 들어가고자 하는자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 하신것입니다.

어느날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뭍습니다.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의 문에 들어 갈수가 있습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 가서 네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寶貨)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쫒으라"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말씀은 있는제산 누구에게 다 줘버리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 물질(物質)이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도구가 되지를 못합니다. 이 청년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선행(善行)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선행은 겉치레에 불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자기의 제물에 집착(執着)하여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려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위에 올려놓는 것은 안되지만 하나님과 같이 동등한 위치(位置)에 올려놓으면 하나님 앞에는 가증스런 우상(偶像)이 됩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수 없습니다.
마19:22" 에 보면 그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말씀을 듣고 근심 하면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청년 에게 재물(財物)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것입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침륜(沈淪)과 멸망(滅亡)에 빠지게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딤전 6 : 9-10) " 부하러 하는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에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성프란시스" 는이말씀에 도전을 받아 말씀대로 순종하여 자기의 소유로 가난한 자를 구제한후 예수의 제자(弟子)로서 이탈리아를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생명의 문은 열두 진주문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진주문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계시록 21:21)에는 "그열두문은 열두 진주문이니 문마다 한진주요" 라고 했습니다.
천국문이 진주로 만들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진주는 원래 바다에서 조개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즉 모래가 조개안에 들어가 연한 조갯살에 상처를 내니까 조개가 괴로워서 자꾸 진액을 내어 모래를 감아 쌉니다. 그것이 오랜 세월 흘러서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11월달에 하와이 집회가서 보니까 길거리에서 양식진주조개에서 진주를 채취하여 즉석에서 반지도 만들어주고 여러 가지 액서사리를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양식 조개는 영롱한 빚을 내는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다의 짠물에서 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 만들어진 진주(眞珠)가 보석으로서의 가치를 높여 주는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사람은 세상 많은 환란(患亂) 가운데서도 낙심치 않고 기도와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낸 진주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천국문도 진주로 단장이 된것입니다.
또한 천국문이 "한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크고 깊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아들 예수를 아는것입니다.
영생즉 생명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對話)도 하고 교제(交際)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과의 교통(交通)이 끓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타락한후 죄에 눈이 가려져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엇고 결국은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가운데 빠져있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혀 이땅에 보내셔서 아들을 통하여 구원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분 한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맞바꾼 .너무나도 소중한 분들입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은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이고 마치 징계를 받은 것 처럼 보이나
( 고후6:9)말씀 처럼 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자요. 죽은자 같으나 살고 징계를 받은자 같으나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협착 합니다.

구약시대의 성소는 성소(聖所)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사이에는 휘장이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일년에 단한번 오직 대제사장(大祭司長)만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외에는 누구든지 그안에 들어가면 바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구약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 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을 찢어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 고 외치시는 순간에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텨 아래로 "쫙" 찢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 외에 누구도 들어갈수 없엇던 지성소에 휘장이 찢겨져 버림으로 이제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 올수가 있게되었습니다.

그러므로(히10:20)절에" 그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의 공로(功勞)로 우리는 휘장을 지나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수가 있는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휘장가운데로 이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길은 생명(生命)의 길(吉)이요 영생(永生)의 길입니다. 이길을 통해야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가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이길을 갈 때 평탄(平坦) 하지만은 않습니다 . 우겨쌈을 당할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할 때 앞에는 홍해수가 뒤에는 애급군대가 쫒아오는 것 처럼 그러한 상황을 맞이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홍해수가 갈라졌듯이 우겨쌈을 당하였을지라도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을 믿고 낙심 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생명의 길로 갈수있게 되는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길을 지나면 열두 진주문이 나오고 그길로 지나면 정금(正金)으로된 천국길을 걷게 될것입니다.
(계시록 21: 21)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그성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얻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그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길 밖에 없습니다.
(요14: 6)" 내가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께 결코 들어갈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피 흘리시고 몸 찢기시므로 처참하게 심판(審判)을 받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 예수그리스도 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길은 우선은 평안(平安)하고 고독(孤獨)하지 않으나 그길을 따라가다 보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길은 험하고 고리타분하고 고독한 길이나 그길을 따라가다 보면 생명의 면류관과 상급이 있을것이고 이길을 오기 위해 흘렸던 눈물을 주께서 닦아 주시게 될줄 믿습니다.

셋째: 이렇게 좁고 험하기 때문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이가 적습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위해 좁은문 협착한문을 찾지 못한 이유가 세상적인 정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구원의 문은 열어놓으셨으나 그길은 좁고 협착 하기 때문에 찾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자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 라고 하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나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난한자 . 병든자. 소외된자. 죄인도 초청(招請)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는사람이 적은 것을 한탄하시고 "너희가 두세사람이라도 내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드릴 때 나도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면서 까지 구원의 문을 마련해 놓으시고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자기가 의인 인척 하고 예수가 없어도 살수 있을 것 처럼 교만 하여 청함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宗敎)는 예수없이 인간(人間)의 편에서 하나님을 찾으려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못찾고 맙니다.
하나님께로 갈수있는길은 하나님께서 단 하나만 만들어 놓으셨는데 그길은 오직 예수 라는 이름뿐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근심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근심은 세상사람들의 근심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근심은 어떻게 하면 이땅에서 호의(好意) 호식(好食) 하며 잘살아볼까 " 하는것이고 영생의 문으로 가는 사람들의 근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는것입니다.
생명의 길로 가는 성도는 "가난한자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잠시후에 영원이 누릴 영광이 있으므로 잠시 잠깐 누릴 세상(世上)에 부귀(富貴)와 공명(公明)에 의미를 두지 않기때문 입니다.
오히려 그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로 가는통로가 가리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인들은 세상적으로 가난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부요한자 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중심에 모시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는 큰 부자인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가는넓은 길은 보기에는 향락적이고 편하기 때문에 풍성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길을 따라가다 보면 구더기도 죽지않고 미꾸라지에 소금 치듯하는 영원한 유황불의 고통이 있습니다.
천국가는길은 비록 좁고 협착하고.외롭고 고독한 길이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해 보이는 길입니다. 중간 중간 마귀가 방해하여 더욱 고통이 따르는길입니다.
이민(移民) 생활(生活)에서 이길을 가기란 더욱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그리스도 인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가 이민 생활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우리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冕旒冠) 생명의 면류관 이 기다리는 천성을 향해 주께서 걸으셨던 구원의 그좁은문을 향해 걸어가는 성도(聖徒)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 합니다.


출처/주요셉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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