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8:1-13절
고린도전서는 크게 세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 교회의 분열문제(1-4장) ② 교회의 윤리문제(5-7장) ③ 신앙의 현안문제(8-16장) 8장부터는 신앙 문제가 나옵니다. 그중 첫 번째 문제로 등장되는 것이 우상제물 문제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고린도 지방은 우상숭배가 만연했고 우상의 신전은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중심에 위치해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제물은 신전 사제들의 몫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자신의 필요한양 만큼 제외를 하고는 시장에 내어다 팔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되었습니다. 이방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성도에게는 우상제물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을 먹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써 교인이 된 사람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상제물 문제는 고린도 교회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할 신앙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바울사도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우상이란 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1-8절). 이미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란 우상의 제물이란 먹어도 상관이 없고 먹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 문제는 성숙한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이러한 믿음이나 영적인 지식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세에서 문제의 해결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장 후반부의 내용입니다(9-13절)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신앙은 항상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행사되어야 하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까지도 연약한 형제를 위해서 배려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태도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문제의 결론을 13절에 아주 멋있게 맺고 있습니다. 고기를 당연히 먹을 수 있는 자신의 권리라고 하드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미숙한 어떤 형제가 실족케 된다. 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바울의 고백은 교회 안에서 발생되는 많은 문제의 해법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 우상 제물에 대한 실상과 신앙적인 원리 (1-8절)
⑴ 문제의 발단(1-3절)
우상숭배 문제의 발단은 첫째 그 지역과 도시가 가지고 있는 우상문화에서 시작이 되었고 둘째는 어린 초신 자들이나 이것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먼저 믿는 사람들의 문제이었습니다. 셋째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우상의 제물에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사람과 우상과 하나님과의 합할 수 없다. 는 사상을 가지고 결코 가까이 하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두 부류의 사람들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교회에서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초신 자나 평신도로 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보다 믿음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본문에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1절)는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있다’든지 ‘가졌다’안다, 고 생각하는 순간 나오는 것이 자기요 인간적인 교만입니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자기 포기와 겸손을 전제로 하고 시작되지만 이 믿음이 있다고 본인이 느끼는 순간 이상한 것이 나오고 자아가 나오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요 믿음에 자료가 되지만 그 지식 자체가 믿음은 아닙니다. 오래 믿어서 신앙의 경험과 여러 가지 교회생활에 능숙할 수는 있으나 이것 자체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나 또 자신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입장에 내려가거나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품으려고 하기 보담은 자신의 신앙지식에 끌어다 맞추려하고 또 안 따르면 믿음이 없다고 비판하고 정죄를 하는 자세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것은 마찬 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강한 자들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확신은 버릴 필요가 없지만 그것이 밖으로 나타날 때 상대를 위하고 덕을 세우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책임지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지식은 소중한 것이나 사랑이 없는 지식은 상대를 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지식을 가지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 그것이 사용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⑵ 우상의 실상(4-6절)
한마디로 바울은 우상에 대해서 4절에 단호하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은 사람들의 생각이 만든 것이요,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에 대해서 구속을 받거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대할 수 있다는 사상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신이라고 섬기는 것들은 쇠 부치, 금은을 도금한 형체, 나무나 돌덩어리 같은 것입니다. 5절에는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실상을 ‘많은 신’‘많은 주’라는 말로써 표현합니다. 사람이 만든 신이기에 시대마다 신의 모습과 숫자는 늘어나서 그 숫자가 엄청났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당신을 진리로 계시로 나타나셨기에 시대나 나라 혹은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한분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입니다.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당시는 로마황제 가이사를 주라고 호칭하고 또 특정한 지역에서 지배권을 사용하는 군주나 신들을 주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는 사람들에게는 한분의 주 만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믿음 즉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분뿐이라 는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상에 대한 습관을 가지고 최근에 개종을 한 사람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정말로 하나님이 허락한 것으로 생각지 않고 실제로 우상 신의 제물로 여기고 먹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태도는 양심에 거리낌과 스스로 떳떳치 못함으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위축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것이 그때만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고 달나라를 가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리석게도 미신적인 생각과 우상에 붙잡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점쟁이들과 무당들이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첨단 미스 미디어인 수많은 신문에 오늘의 운세가 납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이것은 조선일보에 난 것입니다.(토)
범띠: 범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듯이 난관을 극복하라. 26년생 언제나 정도를 벗어나지 말 것. 38년생 집안의 변화를 잘 살펴라. 50년생 어려운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62년생 문서의 변동을 잘 살펴야 한다. 74년생 좋은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말 것.
토끼: 꿈의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보아라. 27년생 문제를 너무 확대시키지 말 것. 39년생 멀리 보지 말고 코앞을 보라. 51년생 태산같이 믿었던 사람과 갈라진다. 63년생 같은 말이라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75년생 다른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 것.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날을 받고, 방향을 따지고, 명당을 찾고, 운명이다 팔자가 세다 내리기가 그렇다, 무슨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절)
명이 짧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어떻게 되었다고 요 이단 같은 소리를 듣지 마세요,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는 믿는 자를 모든 저주에서 해방 시킵니다. 다 쓸어버릴 버려야 할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절)
2. 해결책(9-13절)
⑴ 조심할 것(9-11절)
“그런즉 너희 자 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8:9-11)
나의 신앙의 자유가 약한 자들을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연약한 사람이 그것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거나 넘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을 때 그것은 그 사람 책임이니 나는 상관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거치는 것이란 ‘프로스콤마’(πρ?σκομμα)라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데 그 원인이나 이유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고, 나로 인해서 약한 사람이 죄를 짓는다면 나는 나의 행위를 조심하고 절제해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중심의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약한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10절에 밝히고 있는데 내용인즉 믿음 있는 자가 거리낌 없이 신전에서 우상제물을 먹고 있는 경우를 들어서 말합니다. 믿음 있는 자의 거리낌 없는 행위를 보고 우상과 미신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없는 자가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도 그를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에 거리낌을 가지고 제물을 먹는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되고 그런 행위를 가능케 한 먼저 믿는 자도 도의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의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우상의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이 죄냐 아니냐를 논하기보다 믿음 있는 자의 신전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연약한자에게 미치는 악한영향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믿음이 강한 자가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하고 어른이 싸우면 어른이 잘못한 것입니다. 싸움은 같아야하는 것인데 철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문자 그대로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약한 자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감수 하고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지식이나 생각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가장 주요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믿음이 약한 사람이 높은 신앙을 이해하고 그 수준에 올라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을 내세워서 자기의 주장이나 고집대로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자신이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신앙이 왜 강요되어야합니까? 그것은 그 사람과 하나님과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② 지식보다 사랑을 취해야 합니다.
지식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지식의 폭과 생각이나 이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유익을 줍니다. 또 사랑은 어디나 통하는 것입니다. 이론과 지식은 사랑을 동반할 때 빛을 발합니다. 사랑이 없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지식은 교만심을 준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사실 무슨 지식이든 아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판단하고 분별합니다.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보다는 무시하고 어리석게 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차가운 것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따뜻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자신을 세우는데 필요하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지식이 빛을 발하고 날개를 다는 것은 사랑이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아는 것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
엘리나 라는 78세 된 화란 출신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평생소원은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50년간 담배를 끊기 위해 클리닉에도 가보고 약도 먹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느새 78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나 할머니가 79세 된 제이슨이라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뒤늦게 사랑 하게 되었습니다. 제이슨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은데 단 한 가지 때문에 당신과 결혼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오. 당신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거 같소.”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이 할머니는 “그래요? 그러면 제가 담배를 끊지요”라면서 그 순간부터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녀의 50년간 이루지 못한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줄에는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랑의 힘은 의지의 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할머니의 멋진 고백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이 마지막 한 구절은 모든 문제의 분명한 답을 해줄 뿐 아니라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는 신앙관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바울의 자유포기 선언이요 사랑의 대원칙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당시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울이 그런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아예 육식을 결별하는 선언을 하고 있다고 무리한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분명하고 정확한 진리를 제공해줍니다 나의 자유를 포기함으로 형제가 유익하다고 하면 덕이 된다고 하면 일상적인 식품인 고기를 평생 아니 영원토록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모든 문제는 이런 태도를 가지지 않고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강요하고 상대를 생각지 않는데서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 자유를 양보하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해결되겠습니다. 문제는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조영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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