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인도하신 이유 (신8:1-6)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예부터 우리 인생을 가리켜서 "길가는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인생 길을 걸어가다 보면 평탄한 길이 나타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광야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야만 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우리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게 되면 생각이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질이 얼마든지 밝아지고 그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대 여기에 하얀 백지 한 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거기에 붓끝으로 검은 점을 살짝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물어봅니다.
"여기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십중팔구 검은 점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대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 검은 점은 하나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주변에는 훨씬 더 넓은 하얀 백지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면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훨씬 더 넓은 밝은 면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살 때 그만큼 우리의 삶의 질이 아름다워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던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우쳐주시는 교훈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하시고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 길을 걸어갈 때 형통할 때도 있지만 광야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했습니다.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이제 가데스 바네아라는 지방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축복의 땅 가나안까지는 불과 사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로 하여금 사십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살기 어려운 광야 길로 인도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이제는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을 느끼셨기 때문입니까?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보내었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들이 사십일 동안 그 땅을 두루 탐지하고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열 사람은 모두 매우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같이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들이 그 땅을 두루 탐지한 사십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사십년 동안 광야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택하신 백성들을 미워하셔서 일부러 그들을 골탕먹이시고 괴롭히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애3:33에 보면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가 고생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다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이 되도록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셔서 마침내는 그들에게 큰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든 광야와 같은 어렵고 고달픈 삶을 지금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주시기까지 아낌없이 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하나님이 의미 없이 우리를 광야 길로 인도하셨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 이유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가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를 세 가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16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교만한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교만을 반드시 꺾어버리고 마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우리는 언제나 온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십니다. 우리는 자연히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명기 8장에서 말씀하는 교만은 무엇이고, 겸손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아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우선 교만에 대해서 살펴보십시다. 1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형통하고 잘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기가 쉽습니까? 12∼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우리가 무엇인가 잘되고 형통하고 풍부할 때,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절 말씀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로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알고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내가 형통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형통하게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금년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형통하셨습니까?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형통은 감사의 조건이 되어야지, 그것이 교만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가난했더라면 겸손했을텐데, 부유하게 되어서 교만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교만을 그토록 싫어하십니까? 다른 죄는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다 달아납니다. 그런데 교만죄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바로 교만죄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러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죄입니다.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임금이 그러했습니다. 바벨론의 왕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교만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죄는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다루시지만, 교만죄만큼은 팔소매를 걷어붙이시고 철저하게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만을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억지로 겸손케 하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록한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그가 애굽의 궁중에서 40년 동안 불편한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잊고 지냈습니다. 혈기와 자만심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모세를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 살면서 그는 철저하게 낮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낮추신 것입니다. 그가 겸손하게 되니까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종으로 사용해 주신 것입니다.
금년 한 해를 보내면서 내가 잘나서 이 날 이 시간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 그것을 알아보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2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때때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시험하십니다. 그 옛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시험이 없었더라면,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욥도 시험하셨습니다. 두 번씩이나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자기의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만일 욥에게 그러한 시험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의 믿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욥이 시험을 잘 견디고 이겨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욥에게 허락하셨던 모든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힘든 광야 길을 걷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 그것을 알아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라의 살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힘들다, 못살겠다, 죽겠다!"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번성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 우리 눈앞에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예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컨대 벳새다 빈 들판에 장정만 오천 명이 모였습니다. 때가 되어서 모두가 배가 고픕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누어주어라!"
여러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에 순종했습니다. 그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남은 조각을 거두니까 열두 광주리가 차게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주의 명령에 순종하면 사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기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물고기 노는 물살만 보아도 그는 모든 것을 훤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밤새도록 그물을 내리고 또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배를 바닷가에 대놓고 빈 그물을 깨끗하게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명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예수님의 이 명에 베드로는 순종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베드로의 전공과 예수님의 전공은 피차에 서로 다릅니다. 베드로는 한평생 동안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수산과 출신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요즘 말로 토목과 출신입니다. 그런데 수산과 출신인 베드로에게 토목과 출신인 예수님이 고기 잡는 일에 대해서 배 놓아라 감 놓아라하는 셈입니다.
둘째로, 고기 잡는 시기와 방법에 문제가 있습니다. 본시 갈릴리 바다는 밤중에 고기를 잡도록 되어 있습니다. 낮에는 고기가 잡히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이 되었지 않습니까? 거기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지쳤습니다. 이제 더럽혀진 그물을 깨끗하게 씻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다시금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할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 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더욱더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우리에게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에 순종함으로서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다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입니까? 살 수 없는 곳입니까?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삭막하고 메마른 곳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또 목축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십 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살아가면서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목축도 할 수 없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구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굶주렸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만나는 땅의 소산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힘으로 농사지어서 수확한 양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음식입니다. 그들이 배고플 때 하나님이 먹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마를 때는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주셨습니다. 또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을 띄워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띄워주셔서 그들의 걸음을 친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4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들이 광야 길을 사십 년이나 헤매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들의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그들의 발이 부릍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건강까지도 다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그럴수록 나를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이가 베란다 밖으로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에 난간의 철창을 꼭 쥐었습니다. 아이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손목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고함소리를 듣고 놀라 뛰어 나왔습니다. 아이가 힘이 빠져 떨어지려고 할 때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아 주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자기의 힘으로 난간의 철창을 쥐고 있을 때가 안전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더 안전합니까? 아버지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안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손으로 무엇을 쥐고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안전한 것입니다. 내가 떡을 많이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하나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그러했습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놓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업을 잘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12:20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떡을 먹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떡이 많아도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내게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하나님은 만나로 나를 먹여 주시는 것입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 나오게 하셔서 나의 갈한 목을 축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천년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제 마지막 달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은 나의 손을 붙들어주시고, 나를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붙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손을 붙들어 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기억해 주시면서 우리를 생각해 주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시면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늘 보살펴 주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에게 광야의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나를 낮추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나를 겸손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나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로, 나의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나에게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로, 나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몸을 의지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나를 광야 길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십시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지금까지 우리의 손을 붙드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축복의 땅, 약속의 땅, 영적인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인 것을 오늘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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