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사는 사람들 (전 9:7-10)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도서 9:7-10)
그 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인사말속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정황이 들어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예로 들겠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아침입니다(good morning) 만나서 반갑습니다(nice meet you) 어떠신지요(how are you)라고 인사말을 합니다. 좋은 아침이라는 말 뒷켠에는 좋지 않은 아침, 즉 기분 나쁜 아침도 있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어젯밤 부부가 싸울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팔을 다칠 수도 있고 도박장에서 돈을 날릴 수 도 있고 무법자들이 쳐들어와 목장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 좋은 아침 맞는 것은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아침입니다. 어떠신가요? 별일은 없으신지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경우는 흔하게 쓰는 인사말이 "진지 잡수셨습니까?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것입니다.
인사말 가운데 "밥 먹었니"라고 묻는 것은 우리뿐입니다. 그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는 필리핀만도 못했습니다. 흉년이 겹쳤고 정기적으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굶기를 밥먹듯 해야 했습니다.
50년대 미국 유학가는 사람은 100불 가지고 가는 것이 거금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평생소원은 실컷 밥을 먹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대부분은 굶은 채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밥을 주지는 못해도 먹었느냐, 먹고 나왔느냐, 먹을 것은 있느냐라고 묻는 것이 인지상정이었고 예의였습니다. 그래서 밥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 대표적 인사말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독특한 인사말 가운데 밤새 안녕하십니까 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네 정치사를 보면 정적으로 몰려 밤새 목이 달아나고 사약을 받고 귀양살이를 떠나는 일이 흔했습니다.
정변, 전쟁, 구테타는 대부분 밤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룻밤을 편히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안, 긴장, 초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그런 인사말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 계속 되는 전쟁과 외침으로 시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평생 소원은 편히 발뻗고 , 잠자고, 쉬는 것이었습니다. 샬롬은 그래서 나온 인사말입니다.
인간은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인종이 무엇이든 안녕이 필요하고 평안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기쁨으로 먹고 즐거움으로 마실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즐겁고 기쁘게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고 성공하고 평안해야 가능합니다. 셋 중에 하나만 빠져도 즐겁게 먹고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쁘고 즐겁게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좋은 일은 해야 합니다.
7절 끝을 보면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면 그 일을 기쁘게 받으시고 기분 좋은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복 받은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 받을 좋은 일을 하고 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하나는 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을 괴롭히고 악한 일을 꾀하면 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저주받은 사람은 웃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싱글벙글 웃으며 삽니다. "一笑一少一怒一老"라는 말이나 "笑門萬福來"라는 말은 뜻깊은 말입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늘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며 최고의 가치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누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누가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머리가 하루동안 기억할 수 있는 기억 능력은 5만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5만가지를 머릿속에 다 입력하면 머리가 터지거나 미치고 만다고 합니다.
그런면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억이 머릿속에 입력되게 하는 데는 거쳐야하는 망사 같은 조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망사 같은 조직에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 크기보다 작은 것은 통과가 되어 기억으로 남지만 큰 것은 걸려서 입력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망사를 끼워둔 사람은 천하의 진리를 입력시켜도 공산주의만 들어가지 딴 것은 입력이 안됩니다.
회교도는 회교진리만 입력되고 무신론자는 무신론 교리만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기억력 필터를 바꿔야 합니다. 긍정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2)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를 지성으로 받들고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회사를 섬기고 직장을 섬기고 직업을 섬기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들입니다만 그러나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내 모 교회는 1시간 대기 조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느 시간, 어떤 일을 해야 된다 모여라"하면 1시간 내로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강한 신앙훈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오너라 그러시는데 누가 무슨 이유를 대고 핑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직분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과 사명을 과소평가하고 소홀히 취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과소평가 하실 것입니다.
3)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기쁩니다. 대접받는 것보다는 대접하는 것이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웃에게 많이 베풀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나누며 베푸는 삶이 즐겁고 기쁘고 가치 있는 삶인 것입니다.
2. 자기 관리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의복을 희게 하라는 것은 생활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고, 머리에 향 기름을 바르라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늘 향기 나는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이기고 죄나 유혹을 이기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면 그 날부터 죄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워집니다. 그래서는 옷을 희게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8을 보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주시는데, 그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있건 없건,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듣는 사람이 있건 없건 행동과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머리에 향 기름 바르라는 말씀도 살펴보겠습니다. 머리는 뇌가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뇌는 생각하고, 기억하고, 명령하는 신체의 최고 사령부입니다.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마음은 머리 속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가슴속에 마음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되고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타고난 성격을 기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질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나쁜 기질을 가진 사람은 그 기질대로 믿습니다. 성령을 받아도 나쁜 기질은 나쁜 기질 그대로 성령을 받습니다.
약간 변하긴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 만나기 전이나 만난 후 그 기질 그대로였습니다. 베드로 기질이 요한 기질로 변하고, 요한이 베드로로 변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어도 그 기질이라는 그릇 속에 믿음을 담고 직분을 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나쁜 쪽으로 변하면 안됩니다.
캐나다에 가면 당뇨병 걸린 곰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무심코 던져준 빵, 비스킷, 사탕 따위들을 받아먹거나 주워 먹은 곰들은 당뇨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먹이를 던져 줘도 먹지 않는 곰은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쁜 생각 버리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나를 통제하시고 조정하시고 인도하시면 나쁜 베드로가 제자가 되고 순교자가 된 것처럼 나쁜 내가 좋은 내가 되고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3. 가정이 화목해야 합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가정의 출발지는 에덴 동산으로 구성의 기본은 부부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를 만드셨습니다. 모녀간이나 부자간에 함께 살라는 말씀은 없지만 부부는 함께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부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결혼할 때가 되면 부모를 떠나 합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이나 회사 때문에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 때문에 부부가 헤어져 있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화목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성공하려면 나보다 상대를 높이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주고 베풀고 다가서야 합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처럼 가정이 깨지만 만사가 깨지는 것입니다.
잠언 17:1을 보면 "마른 떡 한 조각 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4.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0절을 보면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고 했고, 죽으면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숨쉬는 동안, 여기 살아있는 동안 내가 맡은 일과 할 수 잇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가르쳐준 가훈이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오는 불행이나 실패나 결과는 내 책임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때는 내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누구라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최하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핑계하지 맙시다. 병들어 쓰러지고 숨 끊어져 땅에 묻히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지금, 건강할 때 숨쉬고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일합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합시다.
꾀부리지 말고 핑계 대지말고 열심히 기쁨으로 즐겁게 일합시다.
그래야 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즐겁게 믿고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삽시다.
출처/박종순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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