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에게서 본받을 점 (다니엘 1장 8 ~ 16절)
몇 해 전에 국제 학술대회 참여 차 이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정을 따라 이란 내의 기독교 성지를 순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이란의 수스(Shush)라는 시골의 작은 도시를 찾았습니다. 그곳에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 수산 궁터가 있었습니다.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바로 그 왕궁 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런 유적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왕궁 터였다는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왕궁 터 가까이에 잘 보존된 묘역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묘였습니다. 천천히 살펴보았습니다. 아직도 다니엘의 관이 지하에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관리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란 사람들이 찾아와 참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자기네 조상의 왕궁 터는 저렇게 참담하게 훼손되도록 방치하면서 왜 이방인의 무덤은 이렇게 정성껏 관리하는 것일까? 왜 자기네 조상들 페르시아 왕의 묘역은 방치한 채 유대인의 묘역은 이렇게 보존하고 있을까? 왜 유대인을 이토록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참배를 하고 있을까? 더더욱 현재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더욱 이해할 수 없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아직도 그 의문을 다 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란 땅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토록 다니엘이 이 이방 땅에서 지금도 존경을 받고 추앙을 받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렇게까지 섭리하셨을까요? 우리가 이점을 살펴보면서 우리 신앙생활의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그야말로 난세(亂世)요 풍운(風雲)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린시절 나라가 망해서 강대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느부갓네살 2세(B.C.605 -562)에 이어 에월 므로닥(B.C.562-560). 네리글리살(B.C.560-556). 라바시 말둑(B.C.556), 나보니두스(B.C.556-539), 그리고 벨사살(B.C. 550-539)이 차례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바벨론 말기에 혼란한 정국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사 왕 고레스가 B.C. 539년에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정권이 아니라 나라 자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다니엘은 바사의 속국이라 할 수 있는 메대 지역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메대의 다리오 완의 통치 하에 포로로 끌려온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고비 고비마다 정말 큰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이런 난세의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새로 들어선 정권과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높은 위치를 지켜갈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교도의 철권통치가 그토록 위용을 떨칠 때 신앙의 절개를 잘 지켜냈습니다.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요? 물론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니엘의 남다른 신앙적 태도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신앙적 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세속주의 물결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이 세상 속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뜻을 정했습니다.
다니엘서는 어린 시절 다니엘이 겪었던 한 사건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온 뒤 후속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그 후속 작업의 일환으로 왕족과 귀족 중 유망한 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저들을 충성스런 바벨론의 신복으로 양성하고 바벨론 민족으로 동화시키려는 것입니다. 기간은 3년 과정입니다. 그리고 커리큘럼은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 바벨론의 선진 문화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됐습니다. 우선 저들의 이름을 개명했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바벨론의 신인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입니다.
그리고 저들을 특별대우를 했습니다. 왕이 자기 음식과 포도주를 하사했습니다. 최상의 음식이기도 했지만 왕의 하사품이라는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임하는 다니엘에 자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8절을 보면 “뜻을 정하여”라고 했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켜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다니엘은 구체적으로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다니엘에게 중대한 신앙의 위기를 초래했던 사실입니다.
우선 유혹입니다.
사실 다니엘에게 이 프로그램은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여기서 교육 잘 받고 좋은 성적을 내면 입신양명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타협과 양보 속에 결국은 상실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실제로 다니엘과 세 친구 외에 다른 왕족과 귀족들은 다 이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을 뒤로 하고 이방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강제로 끌려온 것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속에서 신앙의 절개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별대우로 하사된 음식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세속 문화와 세속주의 물결 한 복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그 문화에 동화되고 그 물결에 휩쓸림으로써 성공하고 출세하는 데 편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타협과 양보로 결국 신앙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뜻을 정해야 합니다. 세속 문화와 세속주의 물결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핍박입니다.
사실 다니엘에게 왕이 하사한 음식을 거절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는 일입니다. 왕명을 거역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킨 것입니다.
일전에 자랑스런 3.1운동 유적지 [제암리 교회]를 가본 일이 있습니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헌병대가 제암리 교회에 동네 남자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남편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부인들이 보면서 애타게 통곡을 합니다. 이번에는 헌병들이 그 여인들을 총으로 쏴서 죽여 버렸습니다.
7월에 이들의 장례식이 거행됐습니다. 죽은 이들의 유골과 유품을 모아 묘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묘비에 이렇게 썼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숨져간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는 뜻을 정해야 합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켜가야 합니다.
바르게 살았습니다.
다니엘 6장을 보면 다리오 왕이 정부 제도를 재정비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 명의 총리가 있었고, 그 밑에 고관 120명이 있었습니다. 이 때 다니엘이 그 세 총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세 총리 중에 다니엘이 탁월하기 때문에 왕이 정부 제도를 바꾸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밑에 총리를 하나로 하고 그 자리를 다니엘에게 맡기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당연이 반발이 있었습니다. 다른 두 총리들과 그를 따르는 고관들이 시기를 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끌려온 이방인이 국정 최고책임자의 자리에 앉는 것을 달가워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잡기 위한 음모를 꾸밉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저 사자굴 사건이 터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들이 음모를 꾸미기 전에 다니엘의 뒷조사를 다했습니다. 어떤 오류나 허물이나 죄가 있으면 그것을 왕에게 알려서 다니엘을 쓰러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정말 다니엘은 깨끗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흠도 허물도 죄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르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정말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고발하고자 어떤 뒷조사를 다해도 다니엘처럼 흠도 허물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사가 이만열 교수가 한 세미나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에 대해 독설과 같은 비판을 쏟아 놓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교직자들의 타락을 보면 고려시대 불교와 승려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고 질타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지금 온갖 부정부패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지 않은 곳이 없다. 교회 장로 집사 권사들이 성경에 손을 얹고도 거짓 증언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되찾아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혈통 중심으로 계급화된 봉건사회에서 근대화가 일어난 것은 기독교의 인간관이 들어왔기 때문이며, 기독교는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도 공헌했다. 황성신문에 의하면 부패한 지방 관리들이 기독교가 들어간 고을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당시 인구가 1200만 명이었고 기독교인구가 불과 1만 명에 불과한 시절이었음을 감안할 때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실로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럽게도 이 만열 교수의 지적이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았고 그 결과 우리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수는 전 인구의 1/4에 이르렀지만 사회의 존경을 잃었습니다. 영향력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부정부패에 연루된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부정부패에 연루돼서는 안 됩니다. 앞장서서 부정부패를 추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이 사회로부터의 존경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단 6장을 보면 다니엘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허물을 찾다 찾지 못하자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왕에게 나아가 앞으로 30일 동안 오직 왕께만 경배토록 하는 칙령을 반포케 했습니다. 겉으로는 왕을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다니엘을 잡기 위함입니다.
다니엘에게 또 다른 신앙적 위기가 찾아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을 신격화해서 그를 섬기는 일에 참여토록 강요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해 오던 신앙생활을 포기하도록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6:10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에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선 “알고도”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지금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칙령을 모르고 기도하다고 어떨 결에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자 굴에 던져져 죽을 것을 알면서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 상황이 다가왔으니까 기도를 하더라도 몰래 숨어서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시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늘 기도해 온 사람이기 때문에, 기도가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도할 수 없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였더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도 인간적으로 두렵고 피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지금 기도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기도하던 대로 변함없이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기도가 습관처럼 되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기도가 생활이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늘 규칙적으로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마 6장에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5), “너는 기도할 때에”(6), 그리고 “또 기도할 때(7) 늘 규칙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전제로 기도를 가르쳐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태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기본자세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기도의 가르치심에 앞서서 기도가 규칙적으로 드려지는 것은 이미 전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간만에 기도해서는 기도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특별한 기도 제목이 생길 때만 기도하게 되면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늘 기도하던 사람들, 규칙적으로 기도하던 사람들, 변함없이 기도하던 사람들이 제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난세요 풍운의 시대를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있었고, 이방인들에게까지 진심으로 존경과 추앙을 받았습니다. 이방 땅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며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의 특별한 신앙 태도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뜻을 정하고 살았습니다. 늘 본이 되도록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출처/박봉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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