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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처로 아프십니까? (시23:1-6)

by 【고동엽】 2022. 9. 11.

요즘 상처로 아프십니까?   (시23:1-6)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가리켜 갈대처럼 약하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단 한 방울의 물로도 능히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몸도 마음도 약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여 활동하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꼼짝 못하고 끙끙 독감을 앓는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유혹에도 마음 약하여 이리 쏠리고 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잘 속고 잘 넘어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 연약하기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약하냐 하면 그 실례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하여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삼 년 육 개월 동안 멈추게도 하고 다시 내리게도 하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였던 엘리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엘리야도 영적으로 침체되자 이세벨의 칼이 두려워 광야로 도망을 치고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죽기를 간구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연약한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저와 여러분의 본 모습입니다. 우리 주위의 상처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연약한 우리들이 수시로 상처를 받고 산다는 점입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모두 어느 정도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이미 아문 상처도 있겠지만 지금도 가슴에서는 피를 흘리며 아픈 마음으로 이곳에 나와 있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끼리 당하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리도 듣고 싶은 말, '당신 정말 고마워, 사랑해. 그 동안 수고 많았구만' 이라는 말 한마디를 들어보지 못한 채 그저 곪고 터진 가슴으로 살아오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이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70대 할머니가 이혼에 승소하였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젊은 날부터 허구한 날을 외도와 폭력에 시달리다 이제라도 이혼하겠다고 소송을 걸었는데 자녀들도 다 어머니의 이혼을 찬성했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당하는 상처도 많습니다. 요즘은 아버지들의 고통이 심합니다. 직장에서도 어렵기만 한데 집에 돌아오면 아내들이 예전 같이 고분 고분하지 않고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아내들이 얼마나 당당한지 비위에 거슬리면 늘그막에 찬밥신세를 면치 못할까봐 고개 숙인 남편이 되었고 덩달아 자식들에게까지 천대를 받는 고개 숙인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상처를 싸매어 주고 치료해야 할 교회에서까지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해야 할 교회공동체가 서로 시기하고 서로 모함하고 말만 많이 만들어 내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상처를 입는 것이 언어 폭력입니다. 코뼈가 부러지면 병원에 가서 콧대 세우면 됩니다. 손가락이 잘렸으면 꿰매고 약바르면 됩니다. 그러나 말로 하는 폭력은 십 년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잊어버릴 만 하다가도 그 사람을 보면 생각이 나게 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상처를 입고 사십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여러분은 어떤 상처들을 입으셨습니까?
교회 안의 상처들 그런데 더욱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일군들 중에는 이런 상처들을 입은 채로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교사들의 경우 심한 상처로 아파하면서도 그 상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고 가르치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상처 난 가슴으로 어찌 건강한 교육, 질 좋은 교육, 밝고 소망이 있는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교회 여전도회에서 음식을 하면 매우 수준 있게 해내곤 하였습니다. 맛 좋고 보기 좋고 세련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엌에서 일하는 이들이 두 파로 갈라져서 서로 긴장감 속에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목사님이 일러주었습니다. '제발, 반찬 한 가지 것만 가지고 밥을 먹어도 좋으니 사랑으로 지은 밥을 먹게 해 주십시오. 서로 싸우며 진수성찬을 차린들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없습니다.
내가슴에 상처가 심각한데 남의 가슴의 상처를 싸매 주기란 어렵습니다.
침체된 영으로는 주님의 일을 한다 해도 잘 하지 못하고 오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군들은 먼저 내 자신의 상처들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내 침체된 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서 주님의 일을 힘차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비결 그러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해야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 받으며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해야 우리는 상처를 고침 받고 제 구실을 잘 감당하는 충성되고 복된 일군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 한 실례를 본문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입니다. 다윗은 본래 상처가 심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번화한 도시의 명문가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골 베들레헴 출신으로서 촌뜨기의 열등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이세의 아들들 중에서 여덟 번째 막내였습니다. 층층이 형들 등살에 기죽어 자랐고 형들에게 당한 상처 또한 많았을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골리앗을 죽이고서 사울왕의 눈에 띄게 되고 여러 공을 세운 뒤에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장인인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는 생명의 불꽃이 바람 앞에 깜박거리는 것 같은 위험하고 슬픈 세월을 살았습니다. 배신과 증오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절망 등으로 다윗의 영은 침체되고 파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중에 어려움을 많이 당해보았다고 해도 다윗과 같은 고난을 당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윗의 다음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의 결국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그 모진 풍파와 엄동설한을 지나고 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견디기 힘든 시련과 영적 침체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고 자기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내 이겨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삶을 어느 순간에 다 정리 해주셨습니다. 그를 죽이려하던 사울은 오히려 길보아 전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버려 두셨고 다윗은 백성들에게 추대되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침체 중에도 믿음으로 살았던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다윗이 승리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서 다윗은 그 모진 상처들을 치유 받고 그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며 성공하였습니까? 어떻게 다윗은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바로 그 놀라운 비결이 본문 시편 23편에 담겨 있고 특히 그 중에서도 23편 1절이 백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내 삶의 목자이십니다"라고 하는 이 말씀은 다윗에게 생명줄과 같은 말씀이요 다윗의 삶을 지탱하는 기초석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이 고백은 고통받던 다윗, 상처 입은 다윗, 위기 속에 있던 다윗이 생명같이 붙들고 살았던 신앙의 대전제였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라'고 고백하는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요 큰 힘이 되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는 그 은혜를 여러분은 아십니까? 어릴 적부터 아버지 집의 목자였던 다윗은 양들에게 목자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이끄시고 도우실 목자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바라며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이십니다. 저의 삶을 인도하시고 도와주옵소서"

목자 되심의 첫 번째 의미그러면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고백할 때 그는 어떤 의미로 하나님을 목자 삼아 살았을까요?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먼저 다윗은 하나님을 상처를 싸매시고 치료하시는 목자로 삼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들이 상처를 입으면 누가 치료해 줍니까? 양들이 가시밭에 갇혀 울부짖으면 누가 구해 줍니까? 그분은 목자입니다. 양들을 치료하고 가시덤불에서 건져줄 이는 목자입니다. 양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양들을 지켜주고 돌보아줄 사람도 목자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삶을 구해줄 목자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아픔을 치료해줄 목자로 믿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에 의해 상처를 입을 때마다 복수할 미운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몰려올 때에도 다윗은 목자 되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다시금 힘차게 전진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오늘 여러분의 상처를 싸매 줄 분이 누구이십니까? 여러분을 위로하고 도와줄 목자는 누구이십니까?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너무 지나치게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 하다보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더 깊은 상처를 안겨주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그 누구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진정 우리를 치유해주실 주님 이십니다.
그 삶에 상처를 입은 자, 그 마음이 슬픈 자들을 고쳐주실 분은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포항에 김달근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치매에 걸린 장모를 직접 모시고 사는 김목사님은 국민일보, 텔레비전 등에 소개된 목사님입니다. 그 사모님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상처를 받고 자랐습니다. 어서 시집을 가서 친정을 떠나는 것이 탈출구였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왔는데 이제는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니 그 고통이 오죽 심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일찍 출타를 하고 사모님이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러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치매 걸린 장모께서 아래층 주인 댁 천ml짜리 우유를 찾아내어 다 마셨습니다.
치매 환자는 먹는 것에 절제를 못한답니다. 약한 몸, 빈속에 우유가 천 ml나 들어갔으니 속이 편할 리 없었습니다. 온통 천둥이 치더니만 그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사모님이 문을 방문을 여는 순간, 그 어머니는 오물들을 온 집에 발라놓고 양손으로 그것들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사모님의 입에선 생각지도 않은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사모님은 그 찬송 부르며 종일 오물청소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니 원망이 기쁨이 되고 분노가 찬송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목자이십니다.
목자 되신 주님은 여러분의 상한 심령을 치료해 주실 위로자이십니다.
그 마음이 상한 자들을 주님이 고쳐주십니다. 그 마음이 슬픈 이들을 주님이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다윗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주님이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목자 되심의 두 번째 의미두 번째로 다윗이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믿고 의지하겠다고 결심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의 양, 하나님의 것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누구 집의 양입니까? 여러분의 목자,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성도 됨의 대전제요 기본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주님의 양임을 인정하려 않고 주님의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목자노릇만 하려하니 문제입니다. 주님의 양으로 살기는 싫어하면서 성도만 되려하고 중직만 되려하고, 목자만 되려 하니 힘들고 어려우며 시끄러움이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시간 우리들도 다윗처럼 우리들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양임을 겸손히 인정합시다.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십니다. 나는 여호와의 양입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 것입니다" 본래 양을 사면 주인은 그 양의 귀에 상처를 입혀서 표식을 남긴답니다. 예리한 칼로 양들의 귀에 깊은 금을 그어 표시함으로 일생 지울 수 없는 확실한 소유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지녔다는 바울 사도님 같습니다. 몸이 아파서 신음하는 사람, 학업에 실패하고, 사업이 실패한 사람, 여러 가지 인생의 쓴맛을 맛본 후에야 두 손들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아픔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권'을 표시하십니다. 성도들도 중직들도 때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고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때로 실패와 좌절을 맛
보면서 하나님의 소유권표식을 지니게 되고 그 길에서 단련되고 다듬어진 신앙이라야 비로소 남을 지도할 수 있게 됩니다.
김목사의 경우, 젊은 시절을 산에 올라 절망하며 보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지나면서 다듬어졌고 주님을 향한 헌신이 더욱 뜨겁고 순수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가슴으로 체험되고 삶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간접경험이 아닙니다. '남들이 그랬다고 하던데요' 가 아닙니다.
여호와를 내가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직접 맛보며 주님의 손길을 내가 직접 느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련과 아픔들을 믿음과 인내와 소망으로 견뎌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삽니까? 여러분에게도 그리스도의 것 된 십자가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양된 표식을 지니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소유권을 확실히 인정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지키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좋은 목자, 좋은 일꾼으로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이 앓고 있는 상처들은 무엇입니까? 우리 중 남몰래 울고 있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소유권을 부인한 채 내가 걱정하고 내가 염려하며 상한 심령으로 신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고 괴로워하면서 마지못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의 상한 심령을 고쳐주시도록 목자 되신 주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우리들의 주인 되시고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상처와 우리들의 아픔을 고쳐 주시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드립시다.
양 같은 우리를 사랑하사 생명을 주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피 묻은 손을 내밀어 주시며 우리를 어루만져 온전케 하시고 우리의 삶에 주님의 은혜들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출처/성서교회 설교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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