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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망하게 되는 이유/마태복음 23장 37-39절

by 【고동엽】 2022. 8. 30.

사람이 망하게 되는 이유

2002-03-25 16:21:23 read : 1537

 

마태복음 2337-39// 20020324

 

< 참된 책망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

 

인간의 불행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와서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행복을 찾는 길이 무엇입니까? 행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문제를 푸는 길이 무엇입니까? 사람과 풀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풀어야 합니다.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민족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죄에서 돌아서면 언제나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면 바로 징계하지 않고 먼저 경고하십니다.

기독교의 말씀의 종교입니다. 사실 교회는 경고의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왜 경고의 말씀을 듣습니까? 경고를 잘 받으면 징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고와 책망을 잘 듣는 것도 복입니다. 그런 복을 달라고 구해보십시오.

 

가정은 경고와 책망이 있는 곳입니다. 부모의 책망이 대개 자녀를 지켜줍니다.

그러나 가정을 벗어나면 자기를 책망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행입니다.

물론 아무나 책망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사랑도 없이 책망만 하면 몰상식이지만

'평소에 사랑을 듬뿍 준 사람이 주는 한번의 책망'은 사람을 살리는 보약입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한번도 어머니에게 아플 정도로 맞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잘못해 아플 정도로 맞았습니다. 이 아이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엄마가 이럴 수 있는가?"하고 섭섭해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봅니까?

사람들은 버릇이 없다고 합니다. 매를 들지 않고 너무 버릇없이 키웠다고 합니다.

참된 부모는 필요하다면 매를 들고 책망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합니다.

 

사실 사랑의 책망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너 깨어야 한다! 너 그렇게 살면 안된다! 너 사랑해야 한다! 바로 살아야 한다!"

그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을 듣고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책망하십니다. 3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그 당시 성전은 돈벌이 장소로 변했고, 제사장들은 뇌물 받고 그것을 방조했으며,

그 타락을 지적하는 선지자들을 돌로 치고 내어쫓는 타락한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책망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책망을 듣고 회개하기보다는 오히려 믿음을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의 책망은 내게 꼭 필요한 줄 알고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무엇을 책망합니까? 열매 없는 삶을 책망하십니다.

땀을 흘렸는데 열매가 없는 것은 목적을 배반한 것이고, 은혜를 배반한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적이 무엇입니까? 책임은 지지 않고 비판만 하는 것입니다.

열매도 없이 말만 많으면 그 많은 말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실망하게 만듭니다.

사랑 받았으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은혜 받았으면 겸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는 없고 "나는 사랑 받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은혜에 대한 배신입니다.

 

< 책망을 받고 수용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여러 경로로 책망을 주시면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 책망을 받고 회개하면 사는 길이 열리고, 계속 고집부리면 아주 어려워집니다.

주님은 징계를 내리기 전에 꼭 책망을 하십니다. 그 책망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1945년 미국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때 한달 간 여러 번 일본에게 경고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도 50킬로미터 밖으로 피신하라고 계속 삐라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미국이 공갈 치는 줄 알고 한 사람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86일 오전에 원자탄이 떨어졌는데 정확히 3초에 30만 명이 죽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계속 마음이 높아진 우리에게 그런 경고의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경고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망합니다. 그런 경고를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다 망합니다.

지금 미국 대통령이 다혈질 같지만 결코 즉흥적으로 그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다 분석하고 어떤 준비를 했다는 말인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위협적인 말, 위협적인 사건 하나에서도 그 의미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부부간의 문제도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쟁도 대부분 적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죄가 넘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왜 적이 우리보다 강하게 됩니까? 우리 안에 문제가 많고 죄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고, 위협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무엇보다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는 어떻습니까? 사람들마다 정치인들을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어느 날 한강에 국회의원과 수녀가 빠졌는데 119대원이 국회의원부터 건졌습니다.

왜 국회의원부터 건졌을까요? 국회의원 때문에 한강이 오염될까봐 그랬답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경고를 받고도 깨어 근신하지 않으면 아주 참담한 결과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경고를 무시했을 때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사람이 망하게 되는 이유 >

 

본문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예수님의 예견대로 주후 70,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당시 유월절을 지키러 모인 100의 유대인들이 성안에 갇힌 채 굶주려 죽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의 참상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집과 거리에는 시체들로 가득 찼고, 아무도 그 시체를 치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죽기 전에 관에 들어가 누웠고, 사람들은 울 힘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는 로마군인들에게 죽은 유대인들이 흘린 피가 작은 시내가 되었고,

그때 100만 명이 죽고, 도시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유대인들은 2천 년 가까이 전 세계를 떠돌면서 숱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책망을 듣고도 계속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사람이 망하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7절에서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을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소리를 전했지만 그들은 그 소리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모습을 보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장래의 폐허를 보시고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저도 1993년 분당에 처음 방문하고 "참 매력적인 신도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매력적인 곳일까요? 우리가 스스로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계속 품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 품을 떠난 것이 결국 죄입니다.

그 죄가 사람을 죽이고, 망하게 하고, 축복을 방해하고, 기도 응답을 방해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것을 알고 주님은 탄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면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의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그 성공 때문에 하나님을 놓으면 그것은 큰 불행입니다.

가난할 때 잘 믿던 사람이 돈이 많아지면서 교회와 담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매일 QT하던 사람이 높아지면서 하나님을 떠납니다.

 

성공이 갖는 함정에 빠져 하나님을 버리면 그 성공은 결국 실패이고, 저주입니다.

반대로 실패했기 때문에 고통 중에 하나님을 붙잡으면 그 실패는 곧 성공입니다.

 

둘째, 우리가 망하는 이유는 형식적인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이 7번이나 나옵니다(13,15,16,23,25,27,29).

누가 화가 있다고 합니까?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화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겉으로 예배는 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가장 실망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식은 있는데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없으면서 있는 척 하는 것, 잘 모르면서 다 아는 척 하는 것은 참 보기가 민망합니다.

큰 소리만 치고, 약속만 하고, 안 하면서 하는 척만 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없어도 최소한 진실은 있어야 하고, 잘 못해도 최소한 겸손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 러시아의 교회는 그런 형식 문제로 무섭게 싸웠습니다.

결국 공산혁명이 일어나 귀족들과 종교 지도자들 수백만 명은 울며 피난을 떠났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에 십자가를 걸고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내용이 없는 형식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사랑과 기도를 회복해야 됩니다.

 

셋째, 우리가 망하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을까요? 그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사람이 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사람은 교만하지만 않으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다 떠나갑니다. 축복도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혜도 다 떠나갑니다.

성령도 떠나가고, 말씀도 떠나가고, 행복도 다 떠나가고, 미래도 다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믿고 은혜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 많이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겸손입니다. 사실 기도도 겸손하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보다 겸손의 보화가 있어야 모든 보화가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교만이 들어오면 다 무너집니다. 심지어는 에덴동산의 삶도 교만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와서 넘어지지 않을 인생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반면에 겸손은 모든 것을 세워줍니다. 그리고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겸손하게 보면 다 아름답게 보이고, 모든 사람에게 다 훌륭한 점이 보이게 됩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자신을 고치지 않는 것이 교만이다"라고 합니다.

왜 고치지 않습니까? 자기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자연히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는다고 합니다. 정말 무섭게 자기를 높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용기가 대단합니다. 그 말은 결국 남 말은 안 듣겠다는 얘기입니다.

진실한 성도는 참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그러나 형식적 종교인은 독선이 강합니다.

자기 생각이 제일이고, 자기 교파의 원리가 제일인 줄 압니다. 그것은 독선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문제를 남긴 사람은 한결같이 자기만 옳은 줄 아는 독선자였습니다.

 

교만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사람들도 교만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에서 누가 가장 많이 왕따 당합니까? 거의 예외 없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설익은 의인이 되지 말고 겸손하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요새 매스컴을 통해 지도층의 비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면 사람들마다 분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 남의 비리와 죄는 비난하면서 자기의 죄는 감추는 것입니다.

자기는 전혀 그런 죄와 상관없는 체 하고 살고 있는 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기를 너무 모릅니다. 너무 성찰하지 않습니다. 그 미래는 결국 암담하게 됩니다.

 

어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손님들은 대단한 분들이라고 합니다.

자기 병원의 대표적인 환자로 대한민국 대통령, 미국 대통령도 자기 병원 환자이고,

그 외에 중국의 황제도 자기 병원 환자이고, 우주의 지배자도 환자로 있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병원 원장이기에 그런 환자들만 있을까요? 청량리 정신병원 원장입니다.

그 병원에서 한 미국 대통령은 자기를 알아모시지 않는다고 항상 원장을 야단칩니다.

그처럼 교만해서 자기를 잃어버리면 미래는 암담해집니다. 아주 무서운 일입니다.

 

< 사랑을 아는 한 사람의 의인이 필요합니다 >

 

혹시 요즘 현대인들이 물질을 풍요롭게 되었지만 정신은 이런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레미야 51절을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나부터 변화되라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성을 살리는 놀라운 힘이 됩니다.

 

가끔 소돔과 고모라는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점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에 의인 오십 명을 말했다가 나중에 열 명만 찾으면 용서해 달라고 했는데

그때 열 명에서 끝내지 말고, 부족하지만 자신의 변화를 새롭게 다짐하면서

"저를 봐서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교만하다고 하셨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진실한 사람 한 사람이 있으면 산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 한 사람 달라고, 그리고 그 한 사람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의인인 척 하는 사람 말고, 진정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의인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습니다. 아주 뻣뻣하고 냉혹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사랑은 있습니다. 그러나 의가 없습니다. 너무 감상적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하는 의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삽니다.

우리 모두 각자 새로워져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새로워지면 희망은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소중한 것입니다. 회개로 얻는 의는 우리에게 엄청난 재산입니다.

의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의가 재앙을 이기고, 환난을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 나라를 지키는 것은 전방의 군인도 아니고, 핵무기도 아니고, 미국도 아닙니다.

우리 나라를 지키는 것은 우리 나라의 어딘가에 숨어있는 의로운 분들입니다.

 

<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지십시오 >

 

우리는 회개하는 삶을 통해 인생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살려야 합니다.

이 민족을 진정으로 개혁하려면 회개하여 마음을 개혁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희망입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회개하고 새로워지려고 나옵니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양심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새로워지고, 자세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나라도 많이 개혁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을 고치는 개혁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사람 개혁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길뿐입니다.

하나님의 돕지 않으면 자기도 개혁하지 못하고, 자기 아이도 개혁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개혁한 사람, 자기 아내를 개혁한 사람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못 고칩니다. 누가 고칩니까? 회개할 때 하나님이 고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잘못된 세상을 개혁하고 사는 길은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회개하는 민족은 절대 망하지 않고, 심판 받지 않고, 오히려 힘있게 일어설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 그 나라가 힘있게 일어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할 때 네가 회개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나의 회개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을 쉽게 비판하지만 그 정치를 비판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희망은 내가 정말 의롭고, 사랑이 많은 존재인지에 대한 자신의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남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은 소생하고, 잘못된 길에서 제 길을 찾고, 심판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회개하고 새롭게 되면 살 수 있고,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지나간 버스와 지나간 님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린 걸로 깨끗하게 끝내고 돌아서면 반드시 새 역사를 만듭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거 만회하려다가 더 다치고, 다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잃어버렸으면 그만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새 세계로 나가면 반드시 길은 열립니다.

우리가 꿈을 버리지 않으면 언제나 희망은 있습니다. 반드시 길은 있습니다.

 

유행가 중에 가사가 아주 맘에 드는 유행가 하나 있습니다.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쨍하고 해뜰 날이 반드시 옵니다. 내가 변하기만 하면 그 날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흐린 날만 생각하지 말고 어둔 밤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쨍하고 해뜰 날이 옵니다.

그런 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장 어떤 축복이 없다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고 믿음을 떠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거역하고 자기 길대로 사는 것에는 꼭 심판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칭찬이 뒤따를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을 온전히 모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탄식보다 칭찬하도록 힘쓰고,

결국 하늘나라 큰 상급을 받는 자리에서 기쁨으로 같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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