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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이해 〓/교회용어바른이해

교회용어 바른 이해

by 【고동엽】 2022. 8. 23.
교회에서 사용하는 바른용어
 

교회 바른 용어

대다수의 교인들과 직분자들이 기도 중에 다른 직분자를 위한 기도 대목에서 해당 직분자 지칭에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등의 “님”자를 붙여 하나님께 아뢰는 형식은 옳지 않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신 많큼 그 앞에서 비록 제3자가 높은 신분에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님”자를 붙여 고하는 것은 불경이다.
인간의 권위적 신분이나 지위를 하나님의 권위에 대응시켜 존대하여 표현하는 것은 종교(신앙)적 행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 말 중에는 사람을 높여 “○○님”, “○○님”하는 것은 시정 되어야 하며 그 대안(代案)으로는 “주님의 말씀의 수종자에게”, “제직들에게” 또는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으로 충성하는 봉사자들에게”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신학적으로 저촉이 없는 말일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어떤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자기의 남편을 제3자로 지칭할 때 “그 분께서”라든지 “아이 아버지께서”라는 등의 표현은 옳지 않다. 이런 경우라면 시아버지 편에서 지칭하는 말로 “애비”, “아범”, “걔”라는 등으로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존엄하신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의 말이라면 더더욱 제3자를 지칭할 때 “님”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직분자나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지극히 낮은 자이다. 그러니 “담임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등의 존칭은 기도말에는 삼가야 한다.

또한 목사가 회중 앞에서 자기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해서도 안된다.

예로부터 스승을 높여 사부님이라 하며 이에 걸맞게 스승의 부인을 높이어서 사모님이라 부른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목사 부인도 사모님이라 부르고 있다. 선생이 자신을 사부라 부를 수 없듯이 선생이나 목사도 자기 부인을 사모라 부를 수 없다.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들도 자신을 사모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목사 부인들이 자신을 사모라 지칭했기 때문이다. 이 "사모"는 주로 제자나 평신도들이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을 높여 불러 줄때 사용 된다. 목사는 자기 부인을 지칭할때 제 아내 라고 해야 바르다.


 
 


1.평신도 용어 : 원래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키 위해 만든 카톨릭적 산물이다. 그래서 루터가 교회 개혁할때에 제일먼저 이 용어부터 없애기 시작했다. 또한 기독교 백과사전(교문사) 제6권 p275의 제일 윗줄에도 "사탄이 만들어낸 가장큰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내에서 평신도라고 지칭하는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가장 좋은 표현은 성도 혹은 형제 자매이다.

 
 


2. 하나님의 축복 을 : "하나님이 주신 복" 으로 해야 바르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를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때 대표 기도하시는 분이나 혹은 설교 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저희에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는 것을종 종 들으면서 매우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원래 축복의 의미는 한자로서 어원은 (빌축) 祝 (복복) 福자의 합성어로 누구에겐가 복을 빌거나 바란다는 기원의 뜻이다.

"축복의 사람" 하면 복을 받고 누리는 사람처럼 착각되지만 사실은 복을 빌고 있는 미완성 복의 소유자이다.

"집사님 하나님 축복 많이 받으세요 " 정상적인 말 같지만 이것도 틀린 말이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도대체 제3자 누구에게 집사님 복을 대신 빌어준다는 말인가?

시편 1편 1절의 "복 있는 사람( Blessed is the man)"에서 복의 뜻 인 원어에 있어서
אשרי<아쉬레이>는 '번영, 행복'을 뜻하며 '올바르다, 번영하다'라는 אשר<아솨르>에서 유례되었으며 . 즉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행복을 나타낸다 고 볼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주시는 당사자가 하나님 본체이시라는 것을 깜박 간과하고 잘못사용하고 있는것이다. 다음의 성구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비는[祝福]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降福] 분임을 잘 밝히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개역 한글판 창 12:3). "그가(멜기세덱)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개역 한글판 창 14:19)


 
 


잘못된 예문들 ...

1, 성도의 머리 위에 축복이 가득 임하기를 ( X )
2, 축복의 주인공이 되세요 ( X )
3. 집사님 물질축복 많이 받으세요 ( X )

그러므로 위 문장은
1,'하나님 복이 가득 임하기를' 로 바뀌어야 되고
2, '하나님께 복 많이 받는 주인공이 되세요' 로 바뀌야 된다.
3. 집사님 물질축복 많이 받으세요 →인적으로 물질축복이라는 표현보다는 돈많이 벌게 해달라는 것이 솔직하고 훨씬 빨리 와 닿지만 이 경우엔 집사님 부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 무난한 표현일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를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또는 "복 내려(베풀어) 주시옵소서"로 바로잡음이 타당하다

 
 


기도와 관련된 용어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총으로…"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와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만일 어느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당신이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은 의당 다음과 같이 고쳐서 말해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2. 기도 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를 → 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로 해야한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5분이나 10분전에 기도를 시작했으므로 간구한 모든 말들은 문법적으로는 이미 과거 또는 현재완료가 되므로 동사 '기도하다'의 과거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러나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를 →주님. 하나님 아버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친구 사이나 아랫사람에게는 "복동아," "철수야"와 같이 부를 수 있지만 손윗사람에게는 호격 조사를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아버님이시여," "할아버님이시여“라 부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 →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은 바른 표현이 못된다. "할아버지. 형님이 가셨어요." "아버지. 누님이 오셨어요."


첫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할아버지'와 주어인 '형님' 및 화자(話者)인 손자 '나'다. 여기서 청자인 '할아버지'가 최상위자이므로 '형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 없다.

둘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아버지'와 주어인 '누님'과 화자인 '나'다. 여기서도 청자인 '아버지'가 최상위자이기 때문에 '누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할아버지. 형이 갔어요." "아버지. 누나가 왔어요."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나라의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때에도 000 대통령님을 복을 주옵소서 가 아니고 000대통령에게 복을 내리소서 해야된다. 그리고 교회 예배시 000 목사님이 아니고 000 목사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라고 해야 한다.


 
 


5. 대표 기도 → 기도 인도로 해야한다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ooo님이 대표 기도를 하시겠습니다" 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이 기도 인도자는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다른 사람들과 분리될 수 없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는 생각까지도 그들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아울러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으로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 기도의 본임을 알아야 한다.


예배. 예식 분야


 
 


8. 사회자 → 인도자(예배시)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司會)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진행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단순한 사회자(presider)의 개념을 넘어 예배 인도자(Worship Leader)로 부름이 타당하다.

 

 
 


9. 성가대를 → 찬양대로 불러야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르는데서 보편화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가대'라는 용어는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10.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용불가(설교시) 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한 인간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하여 어떤 사실이나 바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빌고 원하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 설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 검토시킨 바 있는 통합교단 총회는 1981년 65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먼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에 설교에 인간의 기도식 기원이나 기도 등의 형식을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설교는 설교대로, 기도는 기도대로, 축도는 축도대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사용은 회중에게 자극을 주고 흥분시켜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안 되게 만들어 설교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신적 기복 사상을 키워 줄 우려가 있다.

넷째, 설교의 근본 목적이 흐려지고 회중들에게는 설교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멘"을 하게 하는 식으로 유혹되기 쉽다. 연구위원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설교시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를 하지 않도록 건의하였고 총회는 이를 아무 이의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설교 사역을 바로잡는 일이라 보아 설교시에 이 말의 사용을 억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11. 대예배 →주일 예배로 해야한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가 예배일진대, 거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지칭하여 대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교회들이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 때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대예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대예배가 있다면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어떠한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 소예배일 수가 없다.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한에 있어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가 없다. 다만 예배일뿐이다.


물론 시간별로 예배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에 따라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예배"라는 용어는 합당한 말이 아니다.

 
 


12. 열린 예배 →열린 집회로 해야 바르다.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에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예배는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로 알려진 집회의 형태로, 서울의 한 대형교회를 통하여 소개되면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본래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구도자"라는 부자연스러운 번역 대신에 1990년대 초에 유행하던 "열린"이라는 단어로 의역한 것으로 "구도자의 집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구도자의 집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 혹은 구도자들은 아직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예배드릴 자격도 없고, 예배드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또 한 가지 예배의 기본 정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로 응답하는 드림에 있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받거나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볼 때 열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응답의 행위여야 하지,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예배가 회중지향적이 되고, 예배의 근본적인 목적이 드림에 있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그 예배를 통해서 얻어내는데 목적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영혼구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집회이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차라리 "열린 집회"로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 자체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능하면 "열린 예배"라는 용어의 사용은 삼가는것이 좋겠다. 의미상으로도 "열린 예배"가 있다면 "닫힌 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무엇이 열린 예배이고, 무엇이 닫힌 예배인가?


또 무엇에 대해서 열려있고, 무엇에 대해서 닫혀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굳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기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열린" 이라는 용어보다는 "젊은이 예배" 혹은 "찬양 예배" 등으로 사용하고,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13. 예배봐준다 →사용불가이다.

흔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개업예배를 봐준다" "구역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 행위이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 참된 감사와 찬양과 헌신과 고백의 응답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구원의 은총을 깨달은 내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으로 드리는 행위요, 응답하는 행위이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드리거나 봐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치 "점을 봐준다"는 미신적인 용어를 상기케 하는 "예배봐준다"는 표현은 예배 신학적으로 볼 때에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용어이다.


 
 


14. 준비찬송 →사용불가

찬송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곡조가 있는 시이다. 찬송은 하나님 앞에 곡을 붙인 성도들의 경배의 표현이며, 기도이며, 때로는 성도들의 신앙고백과 결단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의 응답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이면 열심히 찬송 부르는 것을 성도의 바른 자세로 알고 찬송을 열심히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찬송의 생활이 습관화 되다보니 때때로 찬송의 목적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준비찬송"이라는 말에서 찾아보게 된다.


교회에서 "다같이 준비 찬송을 부르면서 앞자리부터 채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할 찬송을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런 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송을 시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나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준비찬송"이라는 용어는 마땅히 사용해서는 안 된다.

 

 
 


15. 예배/예식/기도회 →구별사용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다. 그래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한 주일에 여러 차례 모인다. 주일 낮을 비롯하여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그리고 매일 새벽 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세계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모임에 예배라는 명칭을 붙여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돌, 회갑, 추모 등의 모임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와 예식과 기도회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신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결코 인간을 위한 모임이거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배와 예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돌, 회갑, 추도, 입학, 졸업, 결혼, 입당, 임직, 교회 창립 등의 행사를 할 경우에는 예식으로 표현하고, 예배와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목적으로 모이는 수요 저녁 모임과 금요 철야 혹은 심야 모임 그리고 매일 새벽 모임 등은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새벽기도회 등으로 명시해야 한다. 주일예배, 주일 저녁 찬양예배, 주일학교 예배, 수요기도회, 철야기도회, 경건회(각종 회의 시작 전)

 

 
 


16.제단, 성전을 → 예배당 으로 불리워야 한다.

'제단' 이나 '성전'이라는 말 대신에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라고 해야 한다. 신약시대에는'제단'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구약시대에도 제단은 성전 뜰에 있었다. 구약은 성전제도로 말미암아 제단에서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속건제 등의 제사를 드렸다. 소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단번에 (히 10: 10) 영원한 제사(히 10 : 12)를 드리심으로 더 이상'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 성전제도가 필요없게 되었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요 4 : 24).


 
 


17.할렐루야! → 조심하여 사용할 것

'할렐루야'(הַלְלוּ יָהּ )는 히브리어 음역으로 할렐 הַלְלוּ , 찬양하다)와 예호와 (יְהוָה)의 단축형인 야(יָהּ)의 합성어로서 그 뜻은'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이다. 이 말은 주로 시편의 처음이나 마지막에 나오며 예배의식에 사용되었다(시 106: 48).


할렐루야는'예배'에서'하나님'을'찬양'하는'절정의 환호성'이다. 때문에 할렐루야를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말로 써서는 안 된다. 할렐루야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지 사람들끼리 하는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교자가 설교도중에 아멘을 유도하기 위해'할렐루야!'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역시 합당하지 않다. 설교는 오직 말씀선포이다.


그리고 찬양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환호적 송축이다. 따라서 그 전개에 있어서 구분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선포될 때 감화감동을 받은 성도가 자발적으로'아멘'해야 그것이 정상이다.
설교도중에 할렐루야를 돌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말씀의 선언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맞지 않는다.


축도문구에 대해서도 ....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후 13장 13절의 성경 본문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있을지어다' 하는 문구가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말투라는 이유 때문에 여러 형태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18.기도 받는다를 → 함께 기도한다로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 누구(어떤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보다 신앙적으로 앞서 있는 사람과 같이 기도하더라도 그것은 함께 기도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기도를 받는 것은 아니다. 기도를 받는다는 말은 써서는 안 된다.


종님을 →종으로


더러 기도인도자 가운데 - 기도하면서"오늘도 주의 종님께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문법상'종'다음에'님'자를 붙이는 것은 모순이다. 그냥 종이라고 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우리를 종으로 표현한 곳이 여러 군데 있음을 보게 된다. 특별히 마 25: 14-31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 우리가'종'인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성경에 우리를 종이라고 한 것은

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할 자라는 뜻이고
② 모든 것(생명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③ 우리는 다만 맡은 자요 관리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데 있다.

 
 


기타
♨ 예수공로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사용 불가

♨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 →지금 예배하고 있사오니
♨ 송영 →찬송

♨ 특송 →찬송


♨ 갈음합니다 →그렇게 하시기를 권면합니다,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기도로 폐회합니다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 받들어 봉독하겠습니다 →받들어 읽겠습니다,봉독하겠습니다
♨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설교용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배보다 →예배한다(대신)
♨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 →주장하시고,인도하시고
♨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설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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