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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유익 (렘 30:17-20)

by 【고동엽】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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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의 유익  (렘 30:17-20)

영국의 종교가요 유명한 기도의 사람 윌리암 로우(Law, William 1686-1761)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얼른 보기에는 불행한 재화같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도리어 축복의 결과가 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제품을 많이 내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절제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할 줄 알고 무엇이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하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선의의 사실로 알고 받아들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일, 그것은 언제나 행복과 만족을 가져오고야 마는 비결이다

죤 밀러는 말하기를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씨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습니다.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포로의 자리에서 풀어 주시고 그들의 병든 삶을 고쳐주시겠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들의 입술에서 감사의 소리가 나올 때 그들에게 더 큰 유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의

첫째는 번성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라 하였습니다.

토마스 아켐퍼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헨리 포드가 한창 자동차 왕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시골벽지 여교사로부터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도록 1천 달러를 기증해 달라는 간곡한 호소편지를 받았습니다.
포드는 의례적인 요청인 줄 알고 10센트(약 80원)만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교사는 모욕감이나 절망감을 갖지 않고 감사하며 그 돈으로 땅콩 종자를 사 학생들과 땅콩농사를 시작하여, 수확한 후 포드에게 땅콩을 보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에 감동을 받은 포드는 1만 달러를 벽지학교에 보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더 큰 번영을 가져오는 도구입니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어 대다수 국민들이 몹시 어려움을 겪을 때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빵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바구니에는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자 이제 가져가거라."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가지겠다고 달려들어 움켜쥐고는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다음날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빵을 다 가져간 뒤에 남은 빵을 가지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크레첸이라는 소녀는 언제나 작은 빵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레첸은 노부부가 준 빵을 쪼개다가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라 헐떡이며 은화를 가지고 달려온 크레첸에게 할아버지는 웃으며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려고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호의에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을 잊어버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감사 있는 자에게 더 넉넉히 주시는 분이 십니다.
감사하십시오. 더 큰 하늘의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둘째. 인생의 아름다움을 주십니다.(19절)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 하겠으며”라 하였습니다.
16년 동안 병상에 누워 살아온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늘 통증 가운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 입에서는 늘 감사하는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쓸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손가락으로 성경책장도 넘길 수 있었고, 빨대를 이용해 차도 마실 수 있었으며, 음식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할머니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으며, 낙심될 일도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말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실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감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 안에 계실 때 그는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키게로는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취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삶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작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추구하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야말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많다고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물질과 관계가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운 고상함은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소원을 아뢸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장례식날 문상객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문상객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하며 "남들 몰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 가셨군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 소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정말 세 번째 소원을 이렇게 기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현재의 내 처지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 이후?이 부부는 깊은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많은 이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비추어주는 빛의 모습으로 간직되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질이 있어도 비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이 있어도 추한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이 있어도 초라한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더하여 주는 유익을 반드시 얻게 될 것을 믿습니다.
셋째. 믿음을 굳게 세우는 유익이 있습니다.(20절)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굳게 세우는 도구가 감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해하지 못한다. 만족하지 못할 때 따르는 결과는 불평이며, 불만이며, 짜증이며, 자포자기이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만족한 사람은 늘 감사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두 마을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감사 촌에 살고 한 사람은 불평 촌에 삽니다.
불평촌의 사람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분노하고 무엇이든지 근심스럽습니다.
잠재적으로 항상 불만과 불평의 연기가 담배 연기처럼 코에서 입에서 기어 나옵니다.
기쁘고 좋을 때도 기분 나쁜 일을 예상하면서 그것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문호 버너드 쇼가 자기에게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은데 이것이 비극이며,
둘째 비극은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때에 절망하는 것이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잘 되어도 비극, 절망이고 안 되어도 비극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불평촌의 사람은 주소가 그 동네이므로 이 비극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사촌의 사람은 어떠한 가운데 서도 감사합니다.
고생할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고 시련을 받을수록 하나님께 감사의 농도가 깊어집니다.
봄에는 꽃 피는 것이 감사하고, 여름에는 무성한 것이 감사하고, 가을의 낙엽이 감사하고, 겨울에는 뿌리가 감사합니다.
무에서 출발한다면 모두가 감사합니다.
마음의 비교 점을 제로에다 두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무에 비하면 옷 한 벌, 얻어먹는 밥 한끼가 감사합니다.
병원에가 보면 내가 건강한 것이 기적 같습니다.
죽은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한 가지만으로도 밤새도록 찬송하고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사실입니다.
내가 건강한 이유는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방군의 한 병사가 죽어가면서 목사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이 병사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 어머니께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목사가 무엇을 감사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좋은 어머니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인 것,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 대해 감사합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는 자에게는 마귀도 물리치는 굳센 믿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터 위에 견고히 서서 믿음으로 큰 능력을 지니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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