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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맥추 감사설교

순종으로 심고 거두자 (갈 6:6-10)

by 【고동엽】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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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으로 심고 거두자  (갈 6:6-10)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최초로 하신 비유는 씨를 뿌리는 비유입니다. 영적인 진리를 농사 짓는 법과 자연의 법칙으로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고 깨닫기 어려운 말씀도 있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가장 쉽게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가 “심는 데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씨를 부리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고,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리의 말씀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생활과 도덕적인 생활, 가정 생활과 사회생활에 다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에도 적용이 되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도 맞아떨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살이가 마치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정말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활이 날마다 씨를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거짓을 뿌리면 거짓을 거두게 되고, 진실을 뿌리면 진실을 거두게 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뿌리며 거두는 일을 동시에 하고 살아갑니다. 좋은 열매를 거둘 때는 좋은 씨를 뿌렸기 때문인 줄 알면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나쁜 결과가 생기면 나쁜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고 나쁜 씨 뿌린 것을 회개하고 삼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씨를 뿌리고 좋은 열매를 거두도록 인내하고 수고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나쁜 씨를 뿌리고서도 좋은 열매를 거두겠다는 사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우정을 심으면 우정을 거둡니다. 친절을 심으면 친절을 거두고, 존경을 심으면 존경을 거둡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다 싶이 이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쁜 씨를 뿌리면서도 좋은 열매를 거두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우리 사회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면 자기를 속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이 정도의 거짓이야 별개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불의를 심고, 10년 30년 공을 허물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만 피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 예술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부패되어 있어 자기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하면서 잘살아 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니 참으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팟이 난다”는 속담 하나도 제대로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저질 인간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를 모으려고 이 땅에 두 천사를 내려보냈습니다. 한 천사는 그의 바구니에 사람들의 소원 기도를, 다른 천사는 감사 기도를 모으려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인간들의 수많은 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사 기도를 담아 오겠다는 천사의 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고, 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1. 좋은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생하여 변화가 되여야 합니다.
선행과 진실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심은 데로 의의 열매를 거두고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좋은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령 자체가 중요합니다. 사람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 좋은 씨를 뿌릴 수 없는 것이며, 사람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서 행하는 의로운 행위는 사실 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 대부라는 영화가 우리 나라에 상영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이태리 시실리 섬 출신들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마피아라는 깡패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마피아 두목이 적들에게 총살을 당하자 그의 아들은 자기 어린 조카가 영세를 받는 그 시간에 자기 두목을 죽인 원수들을 총살시키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영세를 받는 아이의 아비인 자기 매부도 함께 살해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가장 선하고 신의를 지킨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죄인의 의라는 것은 결국 불의를 자기 식으로 포장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의 씨를 심는 것이 못됩니다.

어떤 마을에 두 아들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큰아들에게 밭에 가 일을 하라고 했더니 예라고 대답하고 다른 곳에 가 버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다른 일이 있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밭에 가 일을 했습니다. 물른 착한 아들은 둘째입니다. 이 말씀은 밭에가 얼마나 밭을 갈았느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의 심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칼뱅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우선 심령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그 행위로는 성결을 얻을 수 없다고 하신다. 또 이 말씀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죄인에게서 나오는 모든 행위는 그 불결한 심령에 오염된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오염된 행위라고 하신 행위에서는 의라는 이름을 부쳐서는 안된다. 주님은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아주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셨다. 부정한 손이 만지면 거룩한 것도 부정하게 되여 버린다는 말씀이다.”

심령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행하는 좋은 일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심령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2.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좋은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본문에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잘 하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에는 죄인이 구원 얻는 일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에 대해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면 반듯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여 있습니다.

마 25장에는 단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단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해서 다섯 단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해서 두 단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개을러서 일을 안하고 놀다가 “개으르고 악한 종”이 되였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말이요, 개를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않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낳다“(삼상 15:22)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좋은 것도 있지만, 어려운 것도 있고 하기 싫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잠언 24:29에서 ”행악자가 잘되는 것을 보고 부러워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만 보고, 어떻게 저런 악한 인간이 잘 살고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나사로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할 줄 모르고 돈을 모아 잘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저렇게 살아도 잘 사는 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자는 대단히 잘못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는 데로 거두는 일은 세상에서도 나타나지만 세상에서 나타나지 않는 공평한 것은 이 세상 밖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성경에만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勸善懲惡을 말하는 모든 생각이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심되 좋은 것을 많이 심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신령한 것을 심으면 영생을 거둔다고 하시고 육의 것을 심으면 죄를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교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것을 잔 듯 심어 놓고도 좋은 결실을 거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누가 나쁜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려고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혹간에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것을 심어야 좋은 것을 거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좋은 것을 뿌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쁜 결과를 보면 이상하다고 합니다. 이상할 것 한가지도 없습니다. 그가 좋은 것인 줄 알고 뿌린 것은 사실 나쁜 것을 뿌린 것입니다. 즉 나쁜 것을 뿌리면서도 좋은 것을 뿌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 무엇이며, 나쁜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생을 많이 하고 의사가 되여 살만큼 되어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것,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을 준답시고 귀족 교육을 하고 귀족 생활을 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잠자는 침실과 침대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입히는 옷도 최고급품으로, 먹는 것도 최고품으로, 그는 최고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입히지도 먹이지도 재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최고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돈을 써서 좋은 학교에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해외 유학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그 생활에 적응을 못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결국 최고가 되긴 되였습니다. 그러나 그 최고는 망나니 최고였습니다. 그 때에야 그 아비는 자기가 생각하던 최고로 좋은 것이 잘못 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아이들과 그 가정은 구제 불능의 저주받은 아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은 성령 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성령 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고 인간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신분은 하나님 자신이시고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우리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던, 어렵게 하는 것이던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 이상의 좋은 것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버나드 쇼에게 누가 묻기를 “세상에 어떤 책이 가장 귀한 책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서슴없이 “구약의 욥기”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구약의 욥기가 어떤 책입니까? 극한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위대한 욥의 믿음과 승리와 축복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까? 그 책의 핵심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한 욥의 말입니다. 욥이 당한 고난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식 10남매와 재산과 아내와 민족을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사단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그가 한 말은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입니다. 이 일이 욥에게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참고 견딥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의 큰 츅복을 받습니다.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욥42:16)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욥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196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에는 프리섹스가 번져 가정이 파괴되고 성도덕이 문란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찾아 온 것이 무서운 성병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에 호모 섹스가 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찾아 온 것이 무서운 에이즈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며, 그것을 심을 때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허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 선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한 청년이 급히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의 체인이 풀려 끼우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간단한 일이지만 처음 해보는 노인에게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청년은 자기가 도와 줄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는 날이고 자기가 오늘 맡은 순서가 생각이 나서 그냥 못 본 척하며 지나갔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부흥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초청된 목사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 청년은 깜짝 놀랬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전거를 고치고 있던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또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주는 선한 일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재주가 하나 씩은 있습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만, 친구는 운동을  잘 할 수도 있고, 내가 힘이 세면, 다른 친구는 지혜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 돕고 살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혜 있는 자가 미련한 자를 서로 서로 도와 가면서 그렇게 말입니다. 그 청년이 목사님을 도와 체인을 갈아주었다면 부흥회가 좀 더 일찍 시작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게 선을 행할 힘이 있을 때 주저하지 말고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 말뜻은 선을 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할 때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낙심하기 쉽고, 피곤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고 명예와 지위를 얻는 일에는 피곤을 모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할 때는 낙심된 일이 많이 생깁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의문이 생기 기도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서 낙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인내하기가 힘이 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금방 무슨 좋은 일이 일어 날 줄 기대를 하는데 선한 일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있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되 꼭 선한 결과가 있음을 믿고 기다리지만 자기 공로를 내 세우지 말아야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죽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일을 해 좋고도 무익한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이 잘 기다리는 방법이 됩니다. 자기의 공로를 강조하면서 기다리면 기다림에서 실패를 합니다.

1865년 마시리라는 사람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하나님에게 바쳐 YMCA (기독교 청년 연합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감리교의 평범한 평신도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기독교인인 청년들을 모아 하나님의 복음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선하고 착한 일을 위해 1년만에 88,000달라 가 모금이 되였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다시 투자를 해서 18개국에 동시에 YMCA를 설립했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기부금이 답지가 되였고 전 세계에 YMCA가 창설되었고 24만 개신교 지도자들이 배출 되였습니다. 마시리라는 사람의 헌신과 그가 심어 놓은 선한 씨앗이 오늘도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는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마침내 194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6. 하나님이게 바치는 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어느 역사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하고 사람의 생활을 관찰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쓰시는 분은 하나님께 바치기를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성경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바치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바치되 좋은 것을 바치고, 첫 열매를 바치고,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고, 먼저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치는 자에게 후히 되여 눌러 부족함이 없게 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드리므로 받는 축복의 원리를 이 맥추절에 께닭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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