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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사람의 4가지 삶의 특징/여호수아 1장 1-9절

by 【고동엽】 2022. 8. 23.

승리하는 사람의 4가지 삶의 특징// 20010114 주일낮예배

2001-12-08 17:32:10 read : 3226

 

여호수아 11-9(구약성경 320)

 

어떤 회사에서 판매실적이 오르지 않아 긴급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세미나에서 영업 사원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 원인을 분석해 내 놓았습니다.

사장이 다 듣고 있다가 손수건을 꺼내 그 위에 매직으로 점 하나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 손수건을 자세히 보십시오. 여기에 무엇이 보입니까?"

 

사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습니다. "까만 점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다시 자세히 보십시오. 여기에 무엇이 보입니까?"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말합니다. "여러분! 왜 점만 보고 흰 바탕은 보지 않습니까?

항상 까만 점보다는 보다 큰 흰 바탕을 보는 안목과 자신감을 가져보십시오."

그 뒤, 그 회사의 판매실적이 단기간 내에 급속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안목과 자신감입니다.

가나안의 축복은 까만 점을 보는 사람보다 흰 바탕을 보는 사람의 것입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부정적인 사람이 성공할까요? 긍정적인 사람이 성공할까요?

똑같은 조건에서 비관하는 사람이 성공할까요? 낙관하는 사람이 성공할까요?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성공을 원하면서 부정적인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진압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경제 위기 후유증으로 다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정치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본문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핀란드 같은 선진국들도 IMF 경제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때 그 나라들에서 가장 판매량이 급속도로 올라간 것이 바로 책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IMF때 가장 판매량이 올라간 것이 소주와 삽겹살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우리가 기본 문제에 보다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제 "어려울 때 어떤 사람이 멋있는 사람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려울 때 살기 힘들어하는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에는 무작정 있는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는 본능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있는 자, 강자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도 멋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어려운 때에 정직함과 명랑함을 잃지 않는 사람도 멋있는 사람인데,

저는 그 중에서도 어려움을 딛고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이 가장 멋있게 보입니다.

 

그런데 일을 새로 시작하면서 중요한 것은 삶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는 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승리하는 사람의 삶의 특징에 관해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첫째,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쾌하지 못한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우리는 이 한 구절을 읽으면서 그냥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죽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 사건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그가 죽었다면 이제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제 누굴 믿고 살란 말입니까?

 

우리도 믿었던 사람이 죽거나 우리 곁을 떠나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누가 없어서 못살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

가끔 충성하는 교인이 교회를 떠나면 "이제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도 사는 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인도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바라보다가 상처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가끔 "내가 없으면 우리 교회는 안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섭섭해도 섭섭함을 기분대로 그냥 표시하고 자리를 이탈합니다.

 

그러니까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그런 태도가 얼마나 후회가 되고 한이 되는지 겪지 않으면 모릅니다.

기분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는 잠깐 기분을 과시해서 좋지만

나중에 마음의 고통을 겪으며 그때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새 직장인들은 구조조정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봉사했던 일자리를 빼앗기면 마음에 큰 상처가 남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자리 뺏기는 것보다 더 마음에 고통스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교회에서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없으면 안될 거야"라는 자기가 높아지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내가 없어도 되지만 나에게 이 자리가 주어져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공백을 넉넉하게 메꿔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절대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지장 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없으면 안될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운 순간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운 순간을 만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어떤 약속의 말씀이 필요합니까?

본문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보십시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잠시 전열을 정비하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잠시 쉬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모세가 죽었으니까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려움을 당할 때가 새 일을 도모할 때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순간을 만나면 그때에는 누구나 당황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것은 새롭게 일어나라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어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참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한 알콜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견디다 못해 가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두 자녀는 엄마 없이 어렵게 자라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20년 후에 첫째 아들은 대학교수가 되어 "금주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한 기자가 금주운동을 하는 첫째 아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그 교수는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알코올 중독자에게 가서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역시 똑같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환경이 나빠도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고통을 도약의 기회로 삼느냐, 절망의 변명거리로 삼느냐는 본인의 문제입니다.

환경이나 여건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행복은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요리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꿈을 이루고자 하면 원망과 눈물을 감출 줄 알아야 합니다.

혹시 부모 잘못 만난 것에 대해 원망하는 분은 없습니까?

내 행복을 누가 어떤 사람이 망쳤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정말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그런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든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2. 둘째,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협력 정신이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을 만났을 때 우리가 인간적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있게 한 사람들이 협력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유능해도 혼자 일어나면 결코 가나안을 쟁취할 수 없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라고 합니다.

 

승리하려면 똑똑한 지도자보다 협력하려는 겸손한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똑똑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너무 똑똑하고, 잘난 분들만 많으면 그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제 서로 겸손한 협력정신을 가지고 뭉쳐야 합니다. 뭉쳐야 서로 삽니다.

어떤 학원에 가 보니까 이런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뭉치면 죽는다!"

재수생들의 경우에는 뭉치면 죽지만, 다른 공동체는 뭉쳐야 사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한 협력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특히 남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함경도 사람이 부산으로 피난 가서 이상한 물건을 보고

"이것이 무시기?"하고 부산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부산 사람이 "무시기가 뭐꼬?"하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함경도 사람이 "뭐꼬가 무시기?"하고 묻습니다.

그런 식으로 같은 말을 하면서 한 동안 설전을 하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그리고 잘되게 하고자 하는 의도도 같습니다.

그런데 스타일이 다르고 표현이 다를 뿐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소리를 조금만 낮추면 우리는 잘 협력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가나안을 차지하려면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협력해야 합니다.

자동차가 가는데 좌측 바퀴와 우측 바퀴가 다르면 제대로 가겠습니까?

한쪽 바퀴가 지나치게 크면 그 자동차는 빙글빙글 돌기만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백성들, 목사와 성도의 바퀴가 같아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중요한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저는 성도의 입장을 살펴야 하고, 성도님들은 저의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짐을 나눠지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더불어 사는 삶에 하나님은 축복의 가나안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3. 셋째,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헌신하는 삶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절 말씀에 나오는 "이 요단을 건너"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요단강은 죽음의 강인데, 그 강을 건너야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죽이고 철저히 섬기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주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의 축복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내 주위가 행복해야 합니다.

흔히 쓰는 안 좋은 말 중에 "남 좋은 일만 했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 좋은 일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에게 좋은 일 하면 반드시 나에게도 좋은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소유의식보다 존재의식을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존재의식보다도 관계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내가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살면서 사랑을 추구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백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각박하고 상처가 많은 시대에 여백의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얼마 전에 은혜가 풍선을 크게 불다가 갑자기 풍선이 "!"하고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겁이 많은 은혜가 그 다음에는 안 불고 저보고 불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풍선을 부는데, 풍선이 커지니까 은혜의 얼굴이 겁먹은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저에게 "아빠! 그만해요. 죽으면 안돼요."라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나도 긴장하고 주변의 같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긴장을 했습니다.

 

그처럼 은혜가 너무 호들갑을 떠니까 할 수 없이 제가 풍선의 바람을 뺐습니다.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긴장이 풀리고 평화가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이제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바람을 좀 빼야 합니다.

 

너무 바람이 없어도 문제이지만 바람이 적절하게만 들어가

눌러도 터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간의 여백, 물질의 여백을 가지고, 남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처럼 남을 위해서는 조금 더 쓰고, 나를 위해서는 조금 더 절제하면서

헌신의 원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결국 인생을 승리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헌신하는 삶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온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세계를 매료시켰고 발매되는 음반마다

수백만 장이 팔리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갑작스럽게 왜 은퇴했습니까?

 

그녀는 12살 때 자기가 부른 노래 테이프를 들고 후원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실력은 인정했지만 아무도 선뜻 그의 후원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안젤린이라는 한 청년이 실망한 그녀에게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 그녀의 음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셀린의 일이라면 무조건 희생적이고 헌신적으로 그녀를 돕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세계적 여가수가 됩니다.

 

그런 그녀가 은퇴하는데, 은퇴 회견을 하면서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남편이 지금 후두암으로 투병중입니다. 남편은 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많은 빚을 진 남편 곁에서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고 싶습니다.

저의 성공보다 남편과의 사랑이 저에게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헌신을 모르면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빚을 갚을 줄 아는 사람만이 결국 승리의 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4.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으로 흘리는 땀이 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1:3)."

이 말씀에서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란 말씀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포장된 채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발은 화려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곧 가나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화려한 출발의 발자국을 내 디뎠을지라도 땀과 눈물과 피의 삼대 액체를 흘리며

지속적으로 삶의 현장을 발바닥으로 밟지 않으면 우리는 가나안을 소유할 수 없고,

혹시 소유해도 그 가운데 진정한 보람과 감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보십시오. 생각은 반듯하고, 논리적이고, 대단히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실천이 약합니다. 헌신은 더욱 약합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없습니다.

그런 문제점 때문에 21세기를 지향한다는 한 회사가 어떤 슬로건을 세웠습니까?

"가자! 현장으로!"라고 세웠습니다. 그래서 중역들의 책상을 없애 버렸습니다.

 

우리는 현장으로 나가 땀을 흘리는 책임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할 일, 감당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전혀 책임은 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하나님께 다 떠넘기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일은 무시하고 항상 특별한 일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순종하려는 신앙은 없고 표적만 구하려는 신앙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 그런 신앙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제 표적만 구하는 자 되지 말고 실제적으로 뛰어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그 위치에서 자신의 기회를 극대화시키는 자가 되어보십시오!

그처럼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위해

하나님은 그가 맡을 수 없는 분야는 최대한 책임을 져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최대한 책임을 져 주는 삶!

그러한 삶을 사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해서 예비된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너무 하늘의 것만 바라보아서도 안됩니다.

 

어떤 천문학자가 매일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하늘을 바라보고 가다가 그만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에게 아는 한 사람이 다가와 그를 구해주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하늘을 알기 전에 땅부터 먼저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네."

 

이제는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 공중도덕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버려야 하고,

성도라고 하면서 가정을 소홀히 하는 모습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중요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 때 그냥 뛰어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말씀이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분은 이 구절을 "내가 너를 해고하지 않으리니."라고 해석했습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경과 전망이 어려워도 절대로 우리를 해고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평생직장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장애가 되겠습니까?

 

때로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나 한번의 꺾임, 한번의 실패로 미래를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닥터 지바고에서 장군이 티냐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지?"

티냐가 대답합니다. "혁명 중에 거리가 불타고 혼란해서, 아버지가 제 손을 놓쳤어요."

그러자 장군이 말합니다. "아니야.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진짜 이유는 코마로프가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야. 닥터 지바고가 네 아버지야.

친아버지라면 어떤 상황을 만나도 절대 자기 자식의 손을 놓지 못해!"

 

그렇습니다. 친아버지라면 절대 자식의 손을 놓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절대 우리의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승리의 삶의 엮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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