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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드는 사람들/로마서 12장 1-2절

by 【고동엽】 2022. 8. 13.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20001126 주일 낮예배

2001-12-08 17:54:27 read : 378

 

로마서 121-2

 

어느 누구나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느새 또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믿는 사람들인 죄인 줄 몰라는 죄를 짓습니까?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개 죄를 이길 능력이 없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극복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사업문제, 물질문제, 진로문제들을 해결 받기 원합니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와의 씨름은 신앙의 초보단계입니다.

이제는 문제의 차원을 넘어선 보다 높은 신앙의 경지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도대체 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하면 도대체 무엇이 생기게 됩니까?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거룩한 꿈과 환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보게 되고,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꿈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족하고 없는 것이 많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고,

그 꿈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분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진 분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지력, 재력, 학력 등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분들이 로마를 이겼습니까? 성경을 보면 한 마디로 압축됩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좇아서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시지만, 최고의 선물은 꿈과 환상입니다.

그 선물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한계를 극복하며 사는 것이 최대의 은혜입니다.

 

모든 역사와 기적은 자기를 가치 있고, 소중히 여기면서 시작됩니다.

내가 나를 포기하고 생각 없이, 노력 없이 있는데 누가 나를 돕겠습니까?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기를 잘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자기의 가능성을 보고, 자기 존엄성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머슨은 말했습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계시가 임하지 않는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계시도 없고, 기적적인 역사도 달아나 버립니다.

자신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면 남도 나를 믿어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우습게 여기면 남도 나를 결코 좋게 봐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체가 되려면 자신의 인간다움, 성도다움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독일군인에게 있는 인간의 양심이었습니다.

그 양심을 없애려고 독일군부는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부는 3만 명이 넘는 수용소에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은 아무 데나 했고,

배설물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독일군의 양심은 사라져 갔습니다.

인간다움이 없는 인간이 짐승으로 보이면서 살인은 점차 쉬워졌습니다.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없으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그 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대개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매일 4시 반이 되면 수용소에서 한 사람마다 따뜻한 물 한 컵씩을 제공합니다.

그것을 받으면 조금 먹고 나머지 물을 아껴 세수를 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남은 물을 조금 사용해서 옷 조각을 가지고 이빨을 닦습니다.

그리고 수용소 안에서 발견한 유리병 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를 합니다.

내일 죽어도 인간다움은 잃지 않겠다는 인간 존재의 몸부림입니다.

 

독일군에게 가장 무서운 항거는 그러한 인간다움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짐승을 죽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독인군인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적인 사람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없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은

죽더라도 짐승으로 죽기 원치 않았고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러한 삶의 의지! 그러한 인간다움의 선언! 그곳에 사는 길이 있었습니다.

 

매일 일정 시간이 되면 독일군인들이 처형자들을 골라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잘 면도된 얼굴이 보입니다. 여전히 더럽지만 분명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처형자로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죽입니까?

독일군인들이 짐승은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인간은 쉽게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포기하면 환경은 자신을 인간으로 높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단점이 있고, 문제가 있어도 자기의 가능성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선교 많이 교회로 유명한 교회로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이 시무하는 아메리카 피플스 교회가 있습니다.

교인이 2000명 정도인데 교인 중에 선교사가 600여명 나간 교회입니다.

처음에 스미스 목사님은 직접 본인이 선교하러 아프리카에 갔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질병으로 결국 선교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는 선교사로 나가지 말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를 만들어라."

"하나님! 제가 설교를 못하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설교 잘하는 목사를 모시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을 모시고 광고지를 뿌렸습니다.

"여러분! 저는 선교사였기 때문에 설교를 못합니다.

대신에 매주 훌륭한 목사님을 모십니다. 와서 신선한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런데 그 교회가 지금 캐나다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항상 말합니다. "저는 설교를 못해서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약점을 극복하려고 해 보세요. 그런 분에게는 더 큰 장점이 나오게 됩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키가 작아서 고민하다가 그는 뽕나무에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키가 제일 큰 사람보다 더 높은 곳에서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인간의 위대한 역사는 다 그런 식으로 쓰여진 역사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세요. 자기를 가치 있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손가락 다섯 개가 싸웁니다. 그런데 다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엄지손가락이 최고라고 할 때 자기 손가락을 사용한다고 자기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둘째 검지손가락이 중요한 것을 가리킬 때는 자기 손가락을 사용한다고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셋째 중지손가락이 자기 키가 제일 크다고 자기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넷째 약지손가락도 결혼반지 낄 때 자기 손가락에 낀다고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니까 새끼손가락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마디 합니다.

"너희들! 나 없으면 병신 된다!"

 

정말 내세울만한 것이 없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나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소중히 여겨서 나를 이 땅에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내가 없으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참여하십시오.

위세 부리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헌신이 필요한 줄 알고 헌신하라는 말입니다.

 

이제 자기를 극복하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역사의 주체가 되는 몇 가지 덕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몸을 하나님의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라는 말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유리를 뚫고 창문 넘어 바깥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거울로 자기의 처지만 쳐다보는 사람입니다.

같은 돈과 시간을 써도 거울로 자기만 보면서 쓰는 사람은 낭비이고,

창문을 넘어 바깥을 보면서 쓰는 사람은 그 낭비가 헌신이 됩니다.

 

주님을 위해 마리아가 향유 담은 옥합을 깨뜨렸을 때

거울로 자기를 보는 사람은 그 마리아의 행위가 낭비로 보입니다.

그러나 창문으로 바깥을 보는 사람은 그 행위가 헌신으로 보입니다.

거울과 창문의 차이가 이처럼 사람을 다르게 만듭니다.

 

영어로 거울을 미러(mirror)라고 하고, 창문을 윈도우(window)라고 하는데,

우리는 미러형 인간이 되지 말고, 윈도우형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윈도우 원리가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창문을 넘는 헌신이 없으면, 절대로 그 사람은 역사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사랑의 헌신이 공동체를 세우고 역사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초대교회가 그 엄청난 핍박을 이기고 어떻게 로마를 정복했습니까?

초대교회의 교부인 터툴리안은 초대교인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죽을 준비를 완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는데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기적 자기 사랑이 너무 지나칩니다.

거기에서는 결코 역사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헌신을 각오해 보십시오. 그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헌신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20대 초반에 폐결핵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왕 죽을 바에야 좋은 일을 하고 죽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빈민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빈민들을 돌봐주었습니다.

그 뒤 이 사람은 50년을 더 살면서, 빈민촌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성자 하천풍언입니다.

 

그에게 있는 것, 그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은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을 때

그의 기름병에 생명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사렙다 과부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사렙다 과부처럼 한 병의 기름밖에 없는 것에 실망을 합니다.

건강, 물질, 재능 등을 보면서 스스로 "겨우 그것뿐이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문제는 그것을 가지고 헌신하느냐 헌신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어떤 분은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희생을 감수하려고 하면 이 세상에 어떤 일도 못할 일이 없다."

왜 우리 가정에 변화가 없고, 우리 교회, 우리 사회에 변화가 없습니까?

그것이 혹시 나의 헌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지 항상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2.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세상과는 확실히 다른 자세를 가져야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고인 물은 썩기가 쉽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습니다.

정지한 돌에는 이끼가 끼지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없는 곳에서는 새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나, 어느 환경이나 개혁이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 개혁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결코 새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역사는 사람을 부르고 있고, 우리는 할 일이 많은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아 활기찬 인생을 설계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조직체의 리더가 되어 조직을 장악하고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8종류의 사람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1) 어딜 가든지 항상 시간을 맞춰서 오는 사람

2) 군중 속에서 뒷자리보다 제일 앞자리에 앉기를 즐겨하는 사람

3) 자기 기분과 처지보다는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볼 줄 아는 사람

4) 남의 뒤만 슬슬 따라다니기보다는 앞서서 행하기를 즐겨하는 사람

5) 언제나 말을 하면 말에 힘이 들어가 있는 사람

6) 악수할 때 손을 꽉 쥐고, 발걸음에도 활기가 있는 사람

7) 언제 봐도 밝은 얼굴과 따뜻한 미소가 있는 사람

8) 남의 허점이나 잘못을 보면 덮어주려고 애를 쓰는 사람

 

이런 분들은 역사를 만들어내고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역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면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믿음은 벌어진 상황에 대처하고 회개하는 믿음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꿈과 환상을 가지고 그 일이 일어나게 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분을 보니 하나님은 성실한 신앙인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임을 알겠다."

그런 증거를 들을 수 있다면 인생을 가장 보람되게 사는 것일 것입니다.

 

절대 나는 무엇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마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디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 학력이지만, 그 학력으로 백만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지금 시카고에는 무디 성경대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조건이 아닌 최상의 가치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거듭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성격의 근본적 변화, 능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작자 미상의 이런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감방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은 바깥의 흙탕물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곳에서 하늘의 별을 보았습니다."

 

이 시인처럼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은 유리한 것입니다.

항상 불리함의 유리함을 생각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절망의 눈으로 보면 끝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것 같지만

희망의 눈으로 보면 반드시 극복의 길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2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꿈과 환상을 가지면서 꼭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바로 분별력입니다.

왜냐하면 꿈과 환상이 지나쳐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미 선교회가 난리를 친 발단은 바로 한 중학생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몇십 년 믿어도 그냥 넘어집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기도입니까?

물질을 달라고 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제 1차원적인 기도를 벗어나 그 폭이 넓혀져야 합니다.

 

어떤 글을 보니까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고요히 앉아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헨델의 할렐루야 코러스도 노래로 이루어진 기도이고,

밀레의 만종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기도입니다.

어린이가 나비를 살려주는 것도 기도이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위해 돌멩이를 치워주는 손길도 기도이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기도이며,

그처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해 실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254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제 우리의 기도는 기도하는 행위, 기도하는 마음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을 좌우하는 지상 유일의 힘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년 염려보다 10분 기도가 더 낫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무엇보다도 기도에 강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른 길에 대한 분별력과 내일의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한 농장에서 한 청년을 고용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인은 허드렛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이 청년이 자기 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것을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인은 그 청년을 당장에 쫓아냈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농장 주인이 농장을 정리하다가 옛날 청년이 남겨 놓은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그 노트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임스 에이 가필드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바로 그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농장주인은 장래 대통령이 될 청년을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사람을 바로 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바로 알고 내 삶의 주인으로 삼는 것입니다.

 

흔히 그리스도인답다라는 말을 하는데, 누가 그런 사람일까요?

아마 나무를 닮은 사람이 아닐까요?

나무는 생명의 뿌리를 보이지 않고 땅에 깊은 박은 채 하늘을 향해 뻗어 오릅니다.

그처럼 땅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잘 사는 삶, 성공적인 삶은 과연 어떤 삶을 말할까요?

자기를 보내신 분의 뜻을 받들어 사는 삶이 가장 잘 사는 삶이 아닐까요?

물질과 지위가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 동참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길일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이 없다고요? 아닙니다. 능력은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고,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능력의 5%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능력이 없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의지가 없고, 믿음이 없어서 뒤로 물러서기 때문에 무력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

역사의 주체가 되어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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