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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46:1~7, 57:8

by 【고동엽】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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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6:1~7, 57:8

요즘에 우리 기독교 교회 신문이나 방송에서 흔하게 듣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Again 1907"입니다. 이 말의 뜻은 1907년에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한국 교회의 첫 번째 부흥 역사가 있은 지 금년이 1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그러한 부흥 운동이 100년 만에 또 다시 이 땅에서 일어나도록 하자는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은 100년 동안에 꾸준한 성장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루었고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교회 성장 보다 많은 신자의 수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선교 국가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가장 위험했던 때는 핍박의 때가 아니고 교회가 부흥되었던 때였습니다. 부흥된 교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교회는 회복하기 어려운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서구의 그 많은 교회들이 핍박의 시기에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교회를 다니려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었지만 권력의 보호 밑에 있을 때는 오히려 신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던 역사를 기억합니다. 또 교인들이 가난했을 때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GNP 1만 불에서부터 교회 부흥이 멈추기 시작하더니 GNP가 2만 불이 되면서부터 서구의 교회들은 급격하게 교인들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서구의 그 많은 교회들은 관광용으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예배당들은 교인들이 가난했을 때 헌금해서 건축한 교회들로서 교회 건축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 유럽 여행하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유럽 여행의 대부분이 예배당 건축물 역사를 보러 가는 관광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성전을 건축할 때보다도 비교가 안 되는 부유한 생활들을 하면서도 선조들이 가난했을 때 건축한 교회에 다니지도 아니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텅텅 비어있는 그 장엄한 예배당은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허다합니다. 대한민국 또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절대 없기 때문에 "Again 1907"을 외치면서 이 나라에 영적 부흥이 다시 한 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주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구약 성경 가운데 있는 40명 왕들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셨던 왕, 다윗 왕과 히스기야 왕 때에 쓰였습니다. 시편 46편은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간 중에 생긴 국가적 위기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던 것을 노래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하나님의 도움은 새벽에 나타날 것을 조명했습니다. 또 57편 말씀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아굴람 동굴 속에 숨어있을 때 고백한 시입니다. 사울이 3천명의 정예 부대를 풀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 그를 찾아다닐 때 아굴람 동굴 속에서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하나님의 구원이 새벽에 나타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Again 1907"을 외치는 우리는 어떻게 1907년에 그러한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복음의 시작은 지역적으로 평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복음을 들고 최초로 찾아온 것도 대동강이며 교회들이 처음 세워진 곳도 평양이고 최초의 신학교도 평양에 세워졌습니다. 1907년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전 1906년 평양에서는 한국 교회의 새로운 영적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새벽 기도 운동인데 세계 어떤 교회도 하지 않는 영적 사역입니다.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박치록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성경에 보니 예수님도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셨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새벽에 나가서 기도합시다래." "그러지요. 나오시오." 그래서 둘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본 다른 집사님들, 교인들이 "아니, 두 분이 열심히 새벽기도를 하시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우리도 나가자." 그래서 장대현 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거룩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웃 교회가 무엇을 잘하면 샘이 나서 못 견딥니다. "우리도 하자."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경쟁적 새벽기도가 1906년에 이루어지더니 일 년 후인 1907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고 대한민국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Again 1907"을 원하는 영적 운동은 바로 새벽 기도의 회복이라고 판단이 되었기에 금년 갈보리교회의 표어를 "새벽을 깨우리로다." 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게 된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객관성 있는 이유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인의 종교성! 우리 한국인들은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라고 가르쳐주니까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쉬웠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 당시 조선은 주변국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당하던 때였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서구 사회에게 어떤 구원의 기대감을 갖는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에 이 땅을 찾아온 서구의 선교사들을 반갑게 맞아들였다고 하는 사회적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과거 종교로부터의 실망감입니다. 당시 불교와 유교의 나쁜 형향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는 어려움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러한 암흑기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자기의 모든 소원이나 억울한 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오게 되었다는 객관적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외부적인 조건으로 분명히 도움은 되었지만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한국 교회 부흥의 첫째 이유를 저 같은 목회자에게 묻는다면 세계 어떤 나라 어떤 교회도 하지 않은 영적 운동인 새벽 기도 운동이 한국 교회 성장에 가장 기초적인 밑거름이 되었다고 답변합니다. 대한민국 교회와 같이 이렇게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교회는 세계 어느 교회를 다녀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세계 어떤 교회도 하지 않는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세계 교회의 역사의 성장 기록에 유래 없는 기록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를 오늘 성경에서 밝힘으로 2007년 이 해가 "Again 1907"이 되도록 방향을 잡아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인간 구원 사역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마태복음 4장 17절에 보면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비로소" 라고 하는 이 말은 그 전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전파하였다."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말로서 '비로소' 하시기 전에 하시던 일을 살펴보면 됩니다. 바로 40일 금식기도였습니다. 예수님도 금식하고 기도하신 후에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라는  순서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무장을 하신 후에야 비로소 복음 전파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보면 제일 먼저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설교하는 법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찬양하는 기술을 가르쳐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지혜는 기도문까지 작성해서 가르쳐 주셔서 지금까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정의할 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정의하셨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기도의 방법론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왜 안 됩니까?" 물었을 때 "기도 외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없느니라. 기도 많이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라." 이렇게 기도는 끝이 없이 예수님의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또 기도하는 방법에 "이방인들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말 많이 안 해도 괜찮다." 누가복음 6장에 "예수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사" 산기도 가셨습니다. 또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철야기도 하신 겁니다. 고민하면서 기도하신 것이 겟세마네 동산이십니다. 얼마나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는지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어 떨어지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이 누가복음 22장에 나타났고, 안수기도하신 것이 마태복음 19장에 나타나있고,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밤새도록 산 기도를 마치시고 그 다음에 제자 선택을 하셨고, 마지막에 십자가에서도 기도로 끝을 내십니다. 누가복음 23장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금년에 이 기도에 가장 간절한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 여기 현수막에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예수님이 바위에 엎드리셔서 애절하게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표현해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이 그토록 많은 기도생활을 하셨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새벽 기도의 어려움을 체험합니다. 하나는 현대 문화권입니다. 현대 문화권에서는 특징적으로 밤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농경 문화권에서는 해만 떨어지면 잠을 잤는데 지금은 일찍 자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당합니다. 12시가 넘어서 잔다고 할 때 문화인같이 취급을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좀 늦게 일어나야 합니다. 밤에 하는 TV프로그램들이 심야 토론회 등 볼 것이 많게 만들어지고 있고, 지금은 24시간 영업도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릅니다. 낮이나 밤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찍 잘 수가 없는 문화에서 자니까 새벽에 일어나기 힘듭니다. 그러나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귀한 겁니다. 시간 관리는 누가 해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우선순위에 놓고 생각해서 잠을 조금 일찍 자는 습관을 가진다든지, '열아홉 순정' 끝나면 바로 잔다든지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할 것 다하고 볼 것 다하고 언제 잠을 잡니까? 또 한 가지의 어려움은 바로 신체적 조건입니다. 사람이 잠이 든다는 것은 마음의 평화가 이루어져야 잠을 자게 되어 있는데 내일에 대한 걱정과 미래 불안,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도 있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으니까 단순 생활이 안 됩니다. 인간관계도 복잡해지고 머릿속에 해결해야 되는 문제도 많고, 그래서 몸은 누웠는데도 잠이 일찍 오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들로 끙끙거리다가 깜박 잠이 드는 시간이 새벽인 것입니다. 그 짧은 몇 시간 잠을 잘 자야만 이튿날 에너지가 생겨서 다시 활동할 수가 있는데 그 깜박 잠이 든 그 시간을 깨워서 나오려니 신체적 조건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 저도 밤늦게까지 심방하고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저도 여러분들보다 결코 일찍 잘 수 있는 문화에 있지 않습니다. 제가 텍사스 휴스턴에서 미국 교회를 빌려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목회를 시작할 때 새벽기도를 하려고 그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를 하는데 새벽 5시에 이 교회 건물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 큰 교회를 당신들은 아무도 안 쓰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교실 하나만 주면 우리가 잘 쓰고 잘 정리하고 갈 테니 새벽 5시에 쓰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저를 쳐다보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이 지금 새벽 5시라고 말했습니까, 오후 5시라고 말했습니까?" "새벽 5시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새벽 5시에 나오셔서 설교하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매일 나올 겁니까?" "매일 하겠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시려고 그럽니까?" "안 죽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미국 사람들은 꼭 서류를 해서 오거든요? 미국 사람들 서류 보관하는 것은 본받을 만합니다. 안 버립니다. 무슨 서류가 들어왔든지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때가 되면 탁 내밀면 꼼짝 못합니다. 미국 사람들과 동업, 거래 관계 하는 거 한국 사람들이 지는 게 뭔지 아십니까? 서류, 메모 한 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네가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 내밀면 꼼짝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집니다. 나중에 가서 의논해서 당회에서 내가 요청한 것을 저는 말로 했던 것을 "서류로 하라."고 해서 서류로 만들어 사인해서 보냈습니다. "네가 요청했다. 그래서 주겠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여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는 네가 책임져라." 그런 것입니다. "책임지겠다." 그래서 당회에 서기가 가져왔습니다. 장로입니다. 나한테 허락한다는 서류를 주면서 한 말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Paster Lee! 새벽 5시에는 하나님도 주무십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시간이 제일 잠 잘 시간 아닙니까?
그러면 성경에 하나님이 새벽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 보면 됩니다. 우선 오늘 성경 말씀에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여기에 왜 이 "새벽" 단어를 썼습니까? 대낮도 있고, 정오도 있고, 저녁도 있고 얼마든지 24시간 시간이 있는데 왜 새벽이라고 했습니까?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왜 그랬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 홍해 사건이 나옵니다. 애굽의 군대가 무섭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바다이기 때문에 갈 수가 없게 되자 사람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아니,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나와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물에 빠져 죽게 할 것이냐?" 며 원망을 할 때 말씀에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라고 되어있습니다. 홍해 바다가 새벽에 갈라졌습니다. 다시 회복된 것도 새벽입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은 다 새벽 시간에 멸망을 당하고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모두 새벽에 이루어지게 됐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히브리 민족은 여리고성을 함락시켜야 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지방은 식량 생산이 가능한 땅으로서 그곳에서 식량을 생산해서 먹고 살아야 만나가 끊어지고 가나안 땅 정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쟁을 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그 좋은  땅을 뺏기겠습니까? 그래서 성을 쌓고 견고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성을 함락시키는 시간이 나와 있습니다. 바로 새벽입니다. "제 7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나라의 나라 이름은 야곱 개인의 이름입니다. 개인 이름이 영원한 국호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기도하는데 천사와 씨름합니다. 야곱이 이겼습니다. 먼동 트기 전 천사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고 떠납니다. 그것이 나라 이름으로 영원히 되어버린 겁니다. 새벽에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새벽별"이라고 했습니다. 왜 저녁별이 아닌 새벽별이라고 하셨겠습니까? "두아디라 교회는 내가 새벽별을 주리라." 모두다 새벽 단어를 썼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하다가 새벽 닭 소리를 듣는 순간 소스라쳐 놀라 영혼이 깨어나 통곡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무덤을 보려고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는 영광을 차지하고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부활의 메시지를 처음으로 설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재림 주 예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새벽에 재림 주가 오실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모두가 새벽을 초점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권위가 역사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세상에서도 무엇에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새벽을 잘 처리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삼국 시대 역사를 보면 "신라 전성기 때 새벽마다 불국사 종소리를 일찍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박정희 대통령도 혁명 일으킬 때 대낮에 일으켰다면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벽 2시에 한강 다리 넘어오는 바람에 성공했습니다. 다 잠자고 있는 시간 아닙니까? 새벽을 이용해야 성공한다는 것은 마귀들도 알고 있습니다. 6 25 동란이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미국 전쟁 역사상 최고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하와이 진주만 공격!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이 새벽 6시 그것도 일요일에 그 시간에 공격해야만 승리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정확히 그 시각에 공격하여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진주만에 가보면 전쟁의 폐허상태 그대로를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재판하고 죽이고자 모의한 것도 새벽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절에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니" 마귀의 역사도 새벽을 이용할 줄 압니다. 오늘 성경 말씀 시편 46편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 말씀을 기초로 해서 찬송가를 지어 독일 국민들에게 애국가보다도 더 많이 부르게 한 말씀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를 새롭게 한 사람이요 영국의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는 영국 교회를 새롭게 한 사람들인데 무슨 힘으로 했는가? 그들이 고백하는 말이 "나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에 새벽마다 2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회 역사에 최초의 새벽기도 교인은 백홍준이라는 사람입니다. 최초의 전도사가 되었고 최초의 장로가 되었고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처음에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올 때의 역사가 중국 심양의 로스 목사 사택에 지금 보관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러 번 거기 가서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백홍준 전도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조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한국 교회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공동 새벽기도 시작은 1906년 장대현 교회의 교인들이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새벽기도를 시작했고 마침내 그것은 1907년 한국 교회 부흥의 역사를 일으켰는가 하면 그 기도의 영적인 힘이 그대로 전승되어서 오늘날까지 세계 어떤 교회도 하지 아니한 새벽기도를 대한민국 교회가 열심히 함으로서 세계교회 역사의 보기 드문 부흥 역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뇌의 기능이 최고의 역할을 할 때가 새벽 시간입니다. 또, 새벽에 죄 짓고 돌아다니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맑은 영혼을 가지고 가장 좋은 뇌의 역할을 가지고 고요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와서 자기와 형제들을 위해서 자기와 형제들을 위해서 국가, 민족을 위해서 기도드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한 것은 절대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셨다가 가장 필요한 시간에 나에게 응답하십니다. 성경에 보세요. "네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이 기억하신바 되었느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있단 말입니다. 젊어서 기도 많이 드린 사람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받게 되어있고 자손들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기도 많이 하는 사람과 맞붙어서 괜히 시비 붙지 않기를 권합니다. 합당하지 않으면 그 화가 내게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모르니까 그러는 겁니다. 청년들이 왜 새벽기도에 많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거룩한 투자다. 네 생애를 가장 빛이 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신 있다." 저는 강조합니다. 어쩌다가 청년들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며 울고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실연당한 청년들이 많이 나오고 그럽니다. 어쩌다 교인들이 새벽기도 나오면 무서운 꿈을 꾸고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새벽기도 강조하는 이유는 제 자신의 체험 때문입니다. 제가 계산해 보니까 50년 새벽 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가를 해보면 제 욕심으로 기도한 것은 안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 그것은 내 욕심의 기도였구나.' 그런데 하나님은 좋은 길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은 내가 기도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모두 다 성취되었습니다. 제가 소명을 받았을 때 새벽기도하면서 제일 많이 쓴 단어가 "세계 선교"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제가  사춘기 때 그 단어를 가장 많이 쓰면서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그렇게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난번에도 제가 11번 외국에 나가서 세미나와 부흥회를 했고, 금년에도 제가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고 내일 또 인도와 스리랑카에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어떤 때는 좀 힘들고 또 외국 나가면 음식 맞지 않아서 고생도 많이 합니다. 그럴 때는 속으로 '에이, 이번에는 좀 쉬면 어떨까?' 이런 생각하다가도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면 "야! 네 입으로 말해놓고 왜 야단이야?" 하나님이 막 책망하십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최대한 제가 선교에 열심을 다합니다. 사실 만나보고 이야기해 보면 세계 선교의 열정에 대해서 저만큼 열심히 이렇게 하는 목사도 흔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나는 하나님과 약속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야에서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합니다. 저는 아주 답답한 게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보화, 보물 덩어리, 보따리를 하나님이 이렇게 딱 갖다놓고 우리들보고 "네 손으로 풀어서 가져가라." 그러십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새벽 기도가 더합니다. 그런데 왜 그걸 풀지 않는가? 어휴! 답답해 죽겠습니다. 왜 안하시는 겁니까? 새벽 기도 열심히 드리십시오. 기도는 너무나 소중해서 내 기도를 천사들이 금 대접에 담아 하나님께로 가져다 상달시킨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 "Again 1907" 뭐가 "Again"이냐? 평양에서 일어난 새벽기도 운동이 대한민국을 영적으로 새롭게 하지 않았느냐? "Again 1907"은 바로 새벽기도 운동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금년을 "새벽을 깨우리로다." 이렇게 정했으니 여러분 일 년 동안은 시간을 잘 관리하셔서 2007년 에는 "Again 1907"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모두가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우리가 게을리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역사에서 보아왔습니다. 새벽기도 운동이 세계 교회보다 앞서가는 교회를 만든 것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저희들이 기억하면서 "Again 1907"은 다른 것이 아닌 새벽기도로 이루어가는 한국 교회, 그리고 나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출처/이필재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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