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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이기는 성숙한 신앙 (요일2:12-17)

by 【고동엽】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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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이기는 성숙한 신앙   (요일2:12-17)


얼마전에 우리나라 영화배우 전도연씨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제는 세계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데 이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한국 영화사상 아주 큰 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는 밀양이라는 영화입니다. 저는 아직 그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고 지금 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청준씨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결론과 영화의 결말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요 이 소설을 영화로 꾸민 것입니다.
사람이 살해당한 후에 겪는 고통은 실로 처참할 것입니다. 살해당한 당사자의 부모는 이루 말 할 수 없고, 친인척들과 세상 사람들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더욱이 살해당한 당사자가 순진무구한 어린이라면 그 감정은 더욱 극에 달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지나지 않는 순진무구한 아이를 살해한 학원 원장을 누가 용서할 수 있겠는가? 자식의 존엄성을 한갓 벌레처럼 짓밟은 그 살인마를 어떤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해당한 아이 그 어머니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하려는 어머니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그 학원장을 만난 후에는 이전과는 달리 돌이킬 수 없는 배신과 증오심으로 돌아서버렸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급기야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지닌 채 약을 마시고 생을 끝맺어버렸습니다. 영화에서는 정신이 이상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짓습니다
이유는 그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식을 죽인 살인자가 자신이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도 성인 같은 모습으로 자신보다 먼저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했던 까닭이었습니다.
문제는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았다할지라도 그 가족들에게만큼은 참회하는 진정성이 묻어나야 옳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살인자에게까지 가능하다하더라도 그 가족들의 동의가 없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학원장은 그것을 간과한 채 하나님의 용서에만 도취됐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신앙이 아닌 자기도취의 한국 교회의 미숙한 신앙을 질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영화는 성숙하지 못한 한국 교회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종말에 이런 영화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바로 성숙 이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성숙할 때 교회는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성숙하지 못한 성도는 세상에 오히려 상처를 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우리는 곳곳에서 성숙하여야 할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의 도전 말고도 많은 이단들의 도전들을 지금 교회는 받고 있습니다. 왜 이런문제가 더 많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 저는 결론은 하나라고 봅니다. 교회가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과 인격에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숙한 교회 미숙한 성도는 기독교의 매력을 떨떠뜨립니다.
요즘 21세기 모든 교회의 공통적인 주제는 성숙입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이 성숙할까?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숙할까?입니다. 21세기 종말의 시대에 왜 성숙이 필요한 것일까요? 세상에 영향을 주기때문입니다.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을 세상 속의 그리스도들이 성숙의 4단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12절에 영적 첫단계를 “자녀”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단계는 14절에 “아이”에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셋째단계는 13절에 “청년”에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넷째단계는 13절에 “아비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종말의 시대에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하여야 할까요?

1. 주안에서 자녀의 단계의 성숙이 있습니다.
12절에 소개됩니다.
이 단계는 영적으로 초보의 단계로서 바로 아기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아 이제 구원받은 단계에 머무른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자녀들의 새로운 삶은 죄문가 해결받음으로 시작됩니다. 어떻게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을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구원주로 믿을때 시작이 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었습니까?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바로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은 에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는 세상에 예수님이 유일하십니다.사도행전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고 합니다.
이점을 예수님은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장 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로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여기 길이라는 말의 영어 단어를 보면 ‘정관사’ 가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에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먼저 예수님을 죄의 구원자로 확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땅에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구원자로 오신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속물” 로 드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때 “대속물”로 죽으셨습니다. 대속물이란 “대신하여 죄를 속하는 제물‘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에서 온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들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제사드릴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를 위해서 죽어주신 것입니다.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외쳤습니다. 여기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바로 자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인 구원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새로운 존재로 되는 길은 간단합니다. 고후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나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합니다. 혹시 우리 중에 아직도 명목상 교인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시는 믿음의 결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목장 속에서 서로 나누실때에 이런 분들을 서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그분을 사랑하신다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길을 가는데 첫걸음은 바로 주안에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단계에 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저는 이시간 새롭게 태어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숙의 첫단계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2. 영적으로 아이들의 성숙의 단계가 있습니다.
14절에 보십시오.
영적으로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은 아버지를 아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믿음은 구원받은 후에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릅니다.
롬8장 14절-15절에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합니다.
영적아이의 믿음의 성숙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단계는 자신의 필요를 아버지께 자꾸 구하는 기도의 단계입니다. 마치 육신의 어린아이들이 아빠와 같은 부모에게 필요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는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체험하면서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기쁨과 감사가 있는 신앙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녀로서 아버지인 하나님께 구하는 신앙을 갖아야 함을 적극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이하에 보면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말씀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육신의 자녀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예를 들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십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절대 유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떡이 필요하면 떡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생선이 필요하면 생선을 구하라고하십니다. 떡을 구하는 것이 유치한 것이 아닙니다. 생선을 구하는 것이 유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지금 형편에서 필요하면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은 크고 비밀한 것들을 주십니다.에레미야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기도응답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시고 바로 자녀들과 지금 여기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응답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증거하여 주십니다.
세상 살아갈때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되심을 믿는 사람은 “자신감‘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이심을 믿고 확신하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때에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때로 환난을 당해도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확신하십니까?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버지이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터넷을 통해서 배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인터넷을 통해서 배울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를 배웁니다. 여러분 공부잘하는 법이 무엇입니까?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하는 신앙은 기도할 때 이루어집니다. 깊은 기도는 깊은 관계를 갖을 수 있습니다. 깊이 기도한 만큼 나의 하나님을 맛보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새벽에 일대일로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원합니다. 할수만 있다면 깊은 밤에 일대일로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할수만 있다면 골방에서 하나님과 은밀한 만남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들의 신앙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으로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과 일대일의 분명한 관계가 맺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3. 세 번째 영적성숙은 청년의 단계입니다.
13절하반절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절 하반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영적으로 청년의 성숙단계는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청년의 신앙은 “강하다”는 것이고 다음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신앙은 강한 신앙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면서 흉악한 마귀를 이기고 죄악을 이기는 자입니다.
어떻게 강하게 이길 수 있습니까?
14절에 보면 그 비밀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라고 합니다. 강하고 승리하는 신앙의 비밀은 내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종말에 성도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수비용 무기로 진리의 허리띠,의의 호심경,평안의 복음의 신,믿음의 방패,구원의 투구를 갖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격용 무기로 유일하게 강조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갖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 갖아야 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갖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시인 다윗은 시편119편 11절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으면 어떤 유혹이 와도 어떤 마귀의 공격이 와도 승리합니다.
오늘 마귀가 세상의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먼저 마음을 공격하고 생각을 공격합니다.
그때 마귀가 이용하는 유혹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과거와 현대를 막론하고 마귀는 3가지를 갖고 유혹합니다. 16절에 보십시오.“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구체적으로 3가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3가지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도 3가지를 갖고 유혹하고 공격했습니다. 먼저 마귀는 예수님에게 육신의 정욕을 공격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마귀는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합니다. 구약 신명기 8장 3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체를 따라 살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그 육체의 모든 본능과 유혹을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능력입니다.
다음 마귀는 안목의 자랑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에 데려다가 천하만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절을 하면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이기셨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우리에게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안목의 정욕으로 공격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려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홀하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하나님 나라의 영적 가치가 내 마음 안에 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어 뿌리가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 어떤 안목의 자랑이 있는 곳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번에 미스 유니버시아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이하늬양이 4위에 입상하였습니다. 저는 잘은 모르지만 굉장히 좋은 성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대회는 단지 얼굴만 보고 몸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됨됨이 모든 인간관계 구체적인 숨은 장기등 종합적인 것을 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을 하면 ”만능탈렌트“인 셈입니다. 그래서 그가 공항에 귀국하였을때에 기자들이 그에게 물엇습니다. ”당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혹시 연예인이 되고 싶지 않은가?“ 질문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탁월하기에 방송으로 빠지면 그야말로 세상에서 잘 나가는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저는 선교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마음에 영적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있을때 세상의 안목의 자랑을 이깁니다.
세째 마귀는 이생의 자랑을 공격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 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자랑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생의 자랑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우리 속에 나를 세상에서 자꾸 이렇게 저렇게 이생의 자랑을 목표로 살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를 높아지게 하려고 합니다. 스스로를 자꾸 하나님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자기의 바벨탑을 쌓아 세상에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이 자기의 자기 자랑을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능력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는 자들로 자신을 세워가시는 성숙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4. 영적으로 가장 성숙한 단계는 아비의 단계입니다.
13절에 보면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라고 합니다.
여기 “안다”는 말은 ‘경험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그냥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하여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는 것도 깊이가 다릅니다. 그냥 이름만 알고도 우리는 안다고 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냥 이름만 아는 피상적인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서 깊은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있게 경험하는 자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세사의 “아비”와 같은 경험을 한 자들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아비들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깊은 인격을 경험하고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같습니다. 영적아비들의 특징은 자녀를 양육하고 거느려 본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영적아비라고 합니다.
고전4장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이 아니하니 그리스도 에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해서 전도하여 낳은 자녀가 있었고 그 자녀를 양육하고 돌본 경험이 풍성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그는 영적 아비의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고상한 신앙은 아비의 신앙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비와 같이 어미와 같이 희생하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힘들어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비의 마음 어미의 심정이 그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 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고 합니다.골로새서 1장 24절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우리 모두가 아비의 신앙의 성숙으로 드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이번에 2박 3일동안 셀컨퍼넌스에 다녀왔습니다.
분당의 지구촌교회입니다. 솔직히 저는 부러웠습니다. 건물이 부러운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도 우리 교회처럼 목장셀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목장교회를 하는데 가장 핵심이 무엇일까요? 좋은 건물,많은 사람 사실은 그것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비의 마음’을 갖은 성숙한 목자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하는 평신도 목자들이 정말 초대예루살렘교회처럼 목장 속에서 목원들을 위해서 아비의 자세로 정성과 힘과 모든 것을 다하여 목원을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헌신할 때 누가 먼저 변할까요? 자신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목사의 심정을이해하게 되고 어버이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성숙하여지는 자신들을 경험하면서 삶 속에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교육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가 아비의 마음 어미의 마음을 갖고 아이들을 돌보면 누가 제일 먼저 축복을 받습니까? 바로 자신입니다. 남을 살리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히말라야 산을 넘어가다 추위에 쓰러진 사람을 길에서 보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내 한몸도 추스르기 힘든데’라고 하면서 그대로 지나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 바로 뒤에서 따르던 선다싱이 지체없이 그를 들쳐업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를 걸었을까요? 산을 넘어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앞서 쓰러진 사람을 외면하고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추위에 결국 길에서 얼어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가던 이웃을 들쳐업고 있는 자기는 오히려 땀을 뻘뻘 흘리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면서 너무나 소중한 진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남을 살리는 것이 바로 자기를 살리는 길이다‘는 진리였습니다.
여러분 여자는 약하난 어머니는 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남자는 약하나 아버지는 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을 돌볼때 우리는 내가 강해지고 내가 살아나는 법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아비로 어미로 더욱 성숙하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요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혼하지 않고 또 심지어는 결혼해서도 아이를 두지 않는 커플들이 늘어가고있다고 합니다. 왜그렇습니까? 희생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고생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돌볼때 고생보다 더 귀한 기쁨이 있고 거기에 내가 바로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적어른이 누구입니까? 바로 전도하고 남을 잘 돌보고 양육하는 자입니다.
먼저 저는 우리 교회가 영적 아비와 같은 목자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영적아비와 같은 교사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영적아비의 성도들로 가득찬 교회가 될 때 세상에 영향을 주고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널리 펴게 될줄 믿습니다.

나가는 말
이 종말의 시대에 세상에 영향을 주고 민족을 변화시키는 성숙한 신앙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단지 나를 세워가는 신앙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남을 인도하고 영향을 주는 영적아비로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춘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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