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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사랑합시다 (요일5:1)

by 【고동엽】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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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사랑합시다  (요일5:1)  


프랑스 어느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교인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다녀간 후에 남편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 새로 오신 목사님이 다녀가셨어요." "목사님이 뭐라하셨는데?" "목사님은 제게 묻기를. '이 가정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까?'하시는 거예요.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당신은 우리가 점잖고 훌륭한 가문의 자손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저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지만, 목사님이 물으신 것은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아,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매일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책을 읽고 있다고 그래야지." "그렇지만 여보, 그것도 목사님이 질문하신 것은 아니잖아요?" 남편은 점점 더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당신은 우리 식구들이 매주일 항상 교회에 출석한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것도 목사님은 묻지 않으신 걸 어떻게 해요. 단지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여기 이 집에 거하시느냐 고만 하셨단 말이에요." 이 부부는 여러 날 동안이나 목사님이 하신 이 심상치 않은 물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부부는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되었고, 죽으신 분이 아니라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사랑이라든가 그분의 영광의 신비의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그분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에 진정으로 거하시게 되었습니다.(둘로스자료-이 가정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까)

우리의 가정 만이 아니라 심령에 주님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의 아들을 사랑해야 하므로 먼저 "독생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기본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사도라 부르는 요한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제자라고 생각했으며 그 역시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일평생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말이나 글로써 나타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행하며 그로 인해 당하는 온갖 고통을 감수하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사도로 부름받은 베드로는(요 21:15-22),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한 번 물으시고 연이어 다시 두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신 데 대하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동일하게 고백했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모 봉사하는 교회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기를 원하며 사랑 안에서 연합하고 계명대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이달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달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메시야이심을 믿고

예수라는 이름은 개인 인격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구원자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직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유대인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야이십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문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가장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마 16:13-20)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나아가 초대 교회에서 선포된 말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모든 메시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메시야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무죄한 상태로 회복시켜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모든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속죄 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증된 자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속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분명히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섭리를 이해하는 자는 이 세상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줄 압니다. 그리고 그 뜻에 따라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현현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요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완전한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눅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스위스에 있는 유럽의 제일 높다고 하는 알프스 산 어떤 높은 봉우리에 흰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십자가를 해 세웠다고 합니다. 그 대리석 십자가 위에는 ‘ 오직 예수’란 글자를 새겼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스위스에 피서를 갔다고 합니다. 어떤 날 그 분이 자기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알프스 어떤 높은 봉우리에 등산을 하였습니다. 높은 산꼭대기를 조심조심해서 올라갔지마는 그만 실수해서 그 사랑하는 딸이 발이 미끄러져서 높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결국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분의 슬픔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 여름 서늘한 스위스에서 평안히 지내려고 피서 갔다가 이와 같은 참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분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분은 지위도 상당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지위도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그이에게 참된 위로를 주신 분은 예수밖에 없는 것을 그 분이 절실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그 산봉우리 위에 큰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세우고 거기다가 새기기를 ‘오직 예수’우리에게 최후의 소망과 위로를 주실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계명으로 주셨으니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기에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요일 5:3). 또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신 30:11). 하나님의 계명이 자녀들의 삶을 일일이 살피고 지도하시는 사랑의 표현임을 알기에 기쁜 마음으로 이를 실천합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신 30: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선민다운 거룩한 삶을 살고, 죄를 범함으로 이미 약속된 축복을 받지 못하는 자가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랑을 강령으로 삼고 있기에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부담이 되지 않으며 다만 축복의 근거가 될 뿐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강제적인 법률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길을 일러주는 소상한 안내판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율법은 지속적인 축복과 구원을 보장해 주는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신 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신 6:20-25)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모든 계명의 내용이 사랑하라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비록 유창한 말로 신앙을 고백하지 않더라도 계명을 다 지킨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 분명히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형제를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사랑의 증거로 보여 줄 수 있는 자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먼저 이웃 사랑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좇아 갖가지 좋은 예물을 성전에 바치면서도 한편으로는 힘없고 가난한 이웃들을 압제하고 학대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바친 제물을 모두 물리치고 엄히 징책 하셨습니다

(사 1:11-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저버린 자들이 자신께 사랑을 고백하고 예물을 드려 경배하는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뻔한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를 사랑하고 혹시 잘못한 일이 있거든 예물을 거기 두고 가서 형제와 화해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예배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향한 사랑이 신실하다는 것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거하시며 당신의 사랑을 한층 구체적으로 나타내십니다.

성도는 모두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는 가족 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굳게 하며 연대를 두텁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으로 결속된 성도의 공동체와 함께 하시며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당연히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 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고 교훈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의 의로움이 되고 그의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게 됩니다(요일 2:29).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 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10)

아프리카의 선교사인 슈바이처는 “기독교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내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합니다. 한번은 열살된 딸이 큰 소리로 울면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한 소년에게 막대기로 심하게 얻어맞은 딸은 화를 내며 톨스토이에게 호소했습니다. "저 심술꾼 녀석이 막대기로 나를 때렸어요. 제발 저 녀석 좀 혼내주세요." 톨스토이는 빙그레 웃으며 딸을 꼭 껴안고 속삭였습니다. "아빠가 그 아이를 때려주면 소년은 너와 원수가 될텐데...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단다. 너의 사랑이 전해지면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을거야." 톨스토이는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 딸에게 들려주며 말했습니다. "얘야. 이것을 그 소년에게 갖다 주렴." 그후 딸은 소년과 사이좋은 친구가 됐다합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입니다. 사랑은 바윗돌 같은 마음도 녹입니다. 사랑이 풍성한 사람은 삶 속에서 매일 행복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 합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 꼳 메시야이심을 믿고 사랑합시다. 사랑을 계명으로 주셨으니 사랑하십다. 형제를 사랑하며 사랑 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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