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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녹취 14

by 【고동엽】 2022. 7. 9.
오늘은 바울 서신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8주간 우리가 바울 서신을 함께 공부했는데 오늘은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이 세 개의 본문을 목회 서신이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지도자를 뽑을 때 어떤 사람들을 지도자로 뽑아야 할 것인가, 그다음에 목회와 관련된 여러 조언들이 기록된 것이 바로 목회 서신입니다. 순회 전도자였던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다음에 믿을 만한 동역자들에게 그 교회 목회를 맡겼는데 그 가운데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었던 디모데에게는 에베소 교회, 디도에게는 크레타 교회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와 디도, 믿음의 아들들이 목회를 함에 있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집사, 장로, 감독의 자리에 어떤 사람들을 뽑아야 될 것인가 라고 했을 때 믿음의 아버지로서 바울이 믿음의 아들들에게 조언하는 이야기가 목회 서신입니다.


2장 12절을 보시면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이 볼 때는 굉장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여러분 우리나라 장로교만 하더라도 예를 들어 통합 측에는 여성 목사가 있습니다. 기장도 여성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합동이나 고신 같은 경우에는 아직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제시하는 성경 구절이 바로 디모데전서 2장 12절 같은 말씀입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자는 뭐 해야 됩니까? 오직 조용해야 된다, 이런 말씀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명령인가 아니면 1세기 디모데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명령인가, 이것을 우리가 잘 구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바울 서신을 공부할 때 첫 시간에 강조했던 것이 바로 바울 서신의 중요한 특징이 뭐라고 했죠? 상황 서신입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과 무관하게 보편적인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편지를 받고 있는 교회, 이 편지를 받고 있는 개인에게 가장 유효하고 가장 적절한 말씀을 주고 있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여자가 가르치는 것,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는 오직 조용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까 아니면 디모데가 목회했던 에베소교회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어떤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바울이 주었던 구체적인 명령일까요? 여기에서 이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명령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받아들이면 오늘날에도 여성 목사는 안 되는 거죠. 여성 장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아니하고 이것은 보편적인 명령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상황, 디모데가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명령이다 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다시 재해석하는 것이 또 필요한 겁니다.


공교롭게도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기록된 고린도 교회나 디모데가 목회했던 에베소 지역은 둘 다 여신 숭배 문화가 아주 강했던 곳입니다. 에베소만 하더라도 아데미라고 하는 여신을 숭배했던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여신 숭배 문화가 강했던 고린도와 에베소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어떤 은사를 가진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로 말미암아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바울이 제시했던 말씀이 고린도전서 14장 34절, 디모데전서 2장 12절로 보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면 바울이 원칙적으로 여성이 가르치는 것,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는 것을 철저히 금했다 라고 한다면 맞지 않는 것이 뭐냐면 사도행전 18장 24절과 26절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를 가르쳤던 곳이 어디냐면 에베소 교회입니다. 브리스길라라는 여성이 아볼로라는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여성이 남성을 가르친 겁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바울이 원칙적으로 여성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 이것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신학의 대원칙이 뭐라고 했습니까? 남성과 여성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이다, 하나님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그로 하여금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은사를 주셨다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런 대원칙 가운데 우리가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3장을 보시면 감독과 집사의 자격이 나옵니다. 2절 보겠습니다. 감독의 자격을 쭉 열거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날에도 예를 들어 교회 안에 장로를 뽑는다, 집사를 뽑는다고 할 때 이것을 기준으로 제시하면 가장 걸리는 것이 뭐냐면 3장 2절입니다. 감독은 어떤 사람입니까?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결국 감독, 장로 이런 사람들의 조건이 그 누군가의 남편이라고 할 때, 결국 이것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냐, 그래서 여자는 안 된다, 남성들만이 교회 공동체에서 중직을 맡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주장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보시면 3장 4절이 참 중요합니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을 뭐라고 보냐면 자기 집을 잘 다스려 본 사람, 한마디로 하자면 한 가정을 잘 다스린 자가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바울이 이해하는 교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냐면 교회는 확대된 가족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확대된 가족 공동체이니까 어떤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것이 좋습니까? 가정을 잘 다스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확대된 가족 공동체인 교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아내의 남편이 한 마디로 가장인 남성들이 감독과 집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목회 서신입니다. 이 목회 서신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오늘날에도 남성들만이 장로가 될 수 있고 남성들만이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가 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문자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한번 잘 보셔야 됩니다. 바울이 목회서신을 썼을 때는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교회 공동체에서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다 남성들이었습니다. 옛날 노예제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교회 공동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까? 백인들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여전히 노예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나요? 여전히 가부장제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그리스도 안에 동등하다 이것을 믿고 이것을 고백하고 이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신앙인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AD 1세기의 맥락 또는 AD 17세기 18세기 맥락을 문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 속에서 가장 유효했던 것이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남성들만이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백인들만이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부장제나 노예제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인가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백인 또는 남성들만이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지 아니하고 성경을 자세히 보니까 그런 가부장제나 노예제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는 질서는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다면 은사에 따라서 남성이건 여성이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셨던 은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잘 발휘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라고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겁니다. 한국에 있는 장로 교단만 하더라도 기장이나 통합 같은 경우에는 여기 디모데전서 2장 12절의 말씀을 디모데가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말씀으로 이해를 많이 하고 합동이나 고신 같은 좀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이것은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라기 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해석을 많이 합니다. 이런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고 바울 서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상황 서신, 왜 많고 많은 서신 가운데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에서 여성에 대한 그런 부정적인 언급들이 많이 나올까, 공교롭게도 고린도와 에베소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여신 숭배 문화가 강했던 곳이었다, 그 여신 숭배 문화가 강했던 그 도시에 세워진 교회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여성 지도자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 안에 혼란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 상황 속에서 바울이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런 강한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다 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늦게 쓰여진 유언적인 메시지입니다. 옥중에서 쓰여진 겁니다. 주제는 뭐냐면 복음을 수호하라는 겁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교회 공동체 안에 거짓 가르침들이 난무했습니다. 거짓 가르침의 미혹에 넘어지지 말고 참된 복음, 참된 믿음을 사수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현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때 위로를 받고 싶어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중요한 목적이 16절에 나오는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겁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겁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뭡니까?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다음에 죄된 길을 걸어가는 우리를 책망하시고자 그다음에 뒤틀리고 왜곡된 우리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그다음에 의로 교육한다는 말은 뭐냐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함 이 4가지가 바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는 목적입니다. 17절을 보면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는 겁니다. 모든 선한 일, 여기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죠? 말씀을 제대로 공부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공부해야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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