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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 -벧전2:9-12

by 【고동엽】 2022. 7. 6.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
벧전2:9-12
(2014/12/31, 송구영신예배)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 신실하신 주님의 권능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둔 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된 이들과 더불어 주님을 예배하면서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힘겨웠던 한 해를 마감할 때마다 우리는 양가감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우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죄송스러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책임적으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나이테는 하나둘 늘어나는 데, 신앙의 열매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해에 있었던 어려운 일들은 굳이 반복해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참 힘겨웠고, 아팠고, 무기력했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그 아픔은 지금도 역시 가시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는 감사의 마음이 있습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를 든든히 붙잡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고맙습니다. '못났다' 버리시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주시고, 가끔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신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들이 있다는 것이 또한 큰 은혜였습니다. 덫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우리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닻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곤 했습니다.

12월 들어 제 귓전에 뱅뱅 도는 시가 있습니다. 독일의 순교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시인데, 히틀러 암살 모의에 연루되어 테겔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그가 1944년 12월 28일에 자기 약혼자인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연입니다.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이렇게 나는 나날이 그대들과 같이 살렵니다.
그리고 그대들과 함께 새해를 맞으렵니다. 

그는 히틀러가 '거짓 주'(pseudo-lord)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을 폭력과 광기로 몰아대는 현실을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시대를 참 주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식별하고 고백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싸우다가 감옥에 갇힌 그는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라고 노래합니다. 그를 낙심치 않도록 지켜준 것은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였습니다. 새해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산 자의 땅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기꺼워했습니다.

• 우리는 누구인가?
비애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을 수 없고, 그와 더불어 음식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범한 행복을 구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권태롭지만, 일상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은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닫곤 합니다.

지나간 날들 우리 마음 괴롭히며
악한 날들 무거운 짐 되어 누를지라도 
오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그는 괴로움과 쓰라림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주님의 돌보심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구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던 예수님처럼 본회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쓰디쓴 무거운 고난의 잔 
넘치도록 채워 주실지라도 
주님의 선하고 사랑 넘치는 손에서
두려움 없이 감사하며 그 잔 받으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이 구절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일 겁니다. 참 믿음의 사람들은 내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쓰디쓴 고난의 잔이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피하려 하는 이들에게 시련은 큰 아픔이지만, 그 고난 속으로 쑥 들어가는 이들에게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께 그들을 비끌어매는 끈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성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9-10)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 왕과 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주님의 빛 안에서 걸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멋지고, 당당하고, 아름다운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이 힘겹다고 탄식하면서 전전긍긍하는 까닭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기준과 규칙에 따라 우리 삶을 조절하며 삽니다. 욕망의 평등주의, 즉 남들이 누리는 것을 나도 다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늘 불만족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 사용가치보다는 상징가치에 더 주목합니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그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보다 '무엇을 소유하느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평화와 안식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나그네로 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본향 찾는 나그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십시오."(11)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거류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죽어서 가는 천국에만 소망을 두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욕망의 터 위에 집을 짓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바람이 불면 흩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욕망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 없는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문제는 욕망의 지배입니다. 삿된 욕망이 우리 삶을 주도하도록 허용하는 순간 영혼의 힘이 약화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이웃으로부터도 멀어집니다. 가급적 육체적 정욕을 멀리할 때 영혼이 맑아지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와 다른 이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데도 더 어려운 이들과 좋은 것을 나누며 늘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삶의 여건이 어려운 데도 늘 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다른 이들에 대해 아낌없이 긍정해주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불의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저항하면서도 스스로 거칠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또 삶으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어리석다 합니다. 본회퍼의 시 다섯 번째 연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어둠 속으로 보내신 촛불 
따뜻하고 고요하게 타오르게 하시며 
생명의 빛 칠흑 같은 밤에도 빛을 발하니 
우리로 다시 하나 되게 하소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위태로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내주신 빛은 지금도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칠흑 같은 밤을 밝히는 생명의 빛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으로 우리가 하나 될 때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서로 지체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흠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기 위해 몸을 낮추는 순간 우리를 통해 하늘의 빛이 이 땅에 스며들 것입니다.

• 땀 한 방울의 기적
생명이 속절없이 유린되는 세상에 항의하기 위해 오체투지로 기도 순례에 나섰던 한 신부님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무르팍도 다 해져서 한 걸음도 더 옮기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허리를 꺾는 순간 그는 녹슨 못처럼 바닥에 들러붙어 말라비틀어지고 있던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나도 저 지렁이처럼 길 위에서 눈을 감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듯 털썩 무릎을 꿇고 이마를 수그렸습니다. 그때 흐르던 땀방울 하나가 지렁이 위로 떨어졌습니다. 지렁이는 몸을 꿈틀하더니 깜짝 살아나 온 몸으로 기어갔다고 합니다(손택수 시인의 <지렁이 성자> 참고). 이 마음 하나면 됩니다. 새해에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 대접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연민의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 혹은 땀방울이 생명을 살립니다. 본회퍼 목사의 시 마지막 두 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요함이 우리 주위에 깊고 넓게 자리할 때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게 울려 퍼지는 
세상을 울리는 그 소리를 듣게 하소서.
주님의 자녀들 모두가 찬양하는 그 우렁찬 소리를. 
 
신실하신 주님께 안기니 참 좋아라! 
우리에게 다가와 위로할 그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저녁에도 아침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니 
이 확신 가지고 새날을 맞이하렵니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지만 우리는 하늘의 고요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보이지 않게 울려 퍼지는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신실하신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믿음의 식구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새날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십시오. 신실하신 주님의 권능이 우리를 감싸주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맞이하는 우리의 새해가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5년 01월 01일 00시 20분 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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