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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마음을 잃지 말라 -대하26:1-5, 16-21

by 【고동엽】 2022. 7. 3.
본디 마음을 잃지 말라

대하26:1-5, 16-21

(2000/2/13)



[진품명품]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프로는 사람들이 집에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먼저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쇼 감정단의 쇼 감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추정가격을 적어 시청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뒤이어 물건 주인이 기대하는 가격을 제시하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과연 그 물건 가격이 얼마나 될까 궁금증을 유발시킵니다. 잠시 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 물건을 사이에 두고, 제법 진지한 의논의 과정을 거친 후에, 마침내 전문가의 감정가가 전광판에 새겨집니다. 물론 흥미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천 단위부터 시작해서 최종 가격을 향해 숫자가 점점 불어납니다.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그것을 지켜봅니다. 마침내 그 물건의 가격이 결정되고 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제 각각입니다. 기대 이상의 고가가 매겨지면 사람들은 '와' 하는 탄성으로 그 물건의 우수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물건 주인은 애써 담담한 체 하지만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요.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액수가 나오면 다 김이 빠졌다는 분위기입니다. 도대체 이런 프로가 왜 공중파를 타고 나와야 하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예술품이나 골동품을 보는 시청자들의 안목을 길러준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 물건이 과연 얼마짜리인가?' 감정가가 높으면 좋은 것이고, 낮으면 형편없는 것으로 취급받습니다. 방송국의 상업주의야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조상 적부터 물려 받아온 소중한 물건들을 돈으로 환산해보고 싶어 몸달아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싶어요.


소중한 기억의 통로

제가 만일 우리 아버지의 마고자에 달려 있던 구슬을 가지고 방송국에 가서 감정을 의뢰한다면 사람들은 웃고 말겠지요. 그게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하지만 제게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게 하고, 그분의 교훈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물건입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생각나게 하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을 하나쯤은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닻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든든히 붙잡아 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물건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읽으시던 손 때 묻은 '성경'

-아버지 손에 들려졌던 '회초리'

-가난했던 시기를 상기시키는 '누더기 옷'

금은보화만이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성경, 회초리, 누더기 옷이 어떤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허영심으로부터 지켜내고, 우리가 삶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하는 自警文(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하는 글)의 역할을 합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를 만나려 하면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그가 과연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 친구일까 싶은 의구심 때문입니다.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들지 않아요? 겉모습은 변했어도 그의 영혼이 지향하는 바가 한결같음을 느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모습으로 변했다면 그 만남은 버성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차라리 그를 기억으로만 그리워하는 게 좋았을 거라고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어쩔 수 없지요. 지위가 달라져도 겸손하고, 친절하고, 온유했던 첫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영혼이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웃시야의 치적

오늘 본문은 유다 임금 웃시야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아버지 아마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열 여섯이었습니다. 그는 오십 이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는데, 그 기간은 솔로몬 이후 유다 왕국의 최대의 번영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안으로는 내치에 힘써서 산업을 육성

-무역로를 확보하여 잘 관리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올림

-농사일을 좋아해서 거친 땅을 개간해 경지를 만들고, 샘을 많이 파서 목축업을 장려

-군대 조직을 잘 정비할 뿐 아니라, 무기도 새롭게 개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서 영토 확장

-이웃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음


웃시야의 이름이 애굽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역대기 사가는 웃시야의 그와 같은 성공을 그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도우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그런 일을 누구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역대기 역사가의 견해입니다. 과연 웃시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역대기 사가는 웃시야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4)

-영이 맑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자꾸 물음(5)

그는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하지 않았고, 학정을 베풀지도 않았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는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어여삐 보시고 그를 형통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비극적 전락

웃시야의 치세 전반부는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그의 인생은 화창한 봄날인양 다사롭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정경'이 그의 주제 음악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웃시야의 갑작스런 몰락을 보여줍니다. 그렇게도 유능하고 겸손한 인물로 웃시야를 묘사했던 역대기 기자의 펜은 갑자기 아주 다른 인물을 그리는 것처럼 돌변해버리고 맙니다. 웃시야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부정적입니다. 그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웃시야의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을 겁니다. 새집에 이사가면 날마다 청소를 해서 집을 깨끗하게 유지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타성이 붙으면 먼지에 대해 아주 관대해지지요. 급기야는 더께(몹시 찌든 물건에 더덕더덕 달라붙은 거친 때)가 앉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닦아내지 않으면 때가 끼게 되어 있어요. 그 과정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설사 때가 끼었음을 안다 해도 별로 아프지도 않게 됩니다. 웃시야도 그렇게 조금씩 때가 묻어 갔을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주 극단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다." 중간을 생략하고 이처럼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충격을 주기 위한 겁니다. 타락의 길을 걸은 그의 생을 괄호 속에 넣음으로써 우리는 한 인간의 전락을 실감하게 되는 겁니다.


성공신화를 경계하라

웃시야의 문제는 강성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루어놓은 일을 보면서 그는 자부심을 느꼈겠지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으려고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던 겸허함은 사라지고, 선지자의 비판적인 말보다는 아첨의 무리가 들려주는 달콤한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을 겁니다.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보다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매사를 판단했을 겁니다. "강성해지매 마음이 교만하여…", 이 말은 우리가 언제나 가슴에 새겨두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정치가도, 경제인도, 종교인도, 힘이 생기고, 하는 일이 잘 될 때일수록 이 말씀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단속해야 합니다. 웃시야는 처음 왕이 될 때의 본디 마음을 잃어버리고 병든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성공신화를 경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잃도록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마비시켜 올바른 판단력을 잃도록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물질생활의 넉넉함이 아닙니까? 물질의 씀씀이가 달라지고, 서있는 삶의 자리가 달라지면 생각까지도 바뀝니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마음의 청결은 물질 생활의 청빈과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고, 음식찌꺼기를 함부로 버리고, 쓰레기와 공해를 많이 만들어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語不成說입니다. 하비 콕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그의 삶을 위한 기구와 기술,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는 방법과 소유를 위한 분배방법을 바꿀 때 그의 '신'까지도 바꾸어 버린다.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면 신까지도 바꾼다는 말은 얼마나 두려운 선언입니까. 성공이 성공이기 위해서는 본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누더기 옷을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회초리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우리는 항상 처음 가졌던 청정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지신호 앞에서

본디 마음을 잃었던 웃시야는 교만의 중병에 걸렸습니다. 제사장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일을 하려 했습니다. 제단 앞에 나아가 향을 피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사장 아사랴는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가서 왕을 제지했습니다. 그리고 왕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18)


"성소에서 나가소서." 아, 오늘의 종교인들이 이렇게 용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숨을 걸고 할 말을 하는 사람 말입니다. 웃시야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자기가 하려는 일에 대해 감히 'No'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 웃시야의 이마에 문둥병의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였던 것입니다. 성소에서 나가라는 제사장의 이야기를 그는 사람의 말로 들었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그를 쫓아내신 것입니다.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로 살았습니다. 당연하지만 그는 성전에 다시는 갈 수 없었고, 별궁에 물러가 칩거생활을 했습니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헛된 자만심이 결국 그를 그 지경까지 몰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정지 신호 앞에 멈추어 설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는 일이 뜻대로 잘 될 때일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본디 마음에서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날마다 자기를 점검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물질생활은 어떠합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물질에 더 의지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청정하고 소박했던 마음을 잃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고, 눈에 욕심의 비늘이 끼어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래의 마음으로 힘써 돌아가십시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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