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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하는 병을 고쳐주소서 -호14:1-9

by 【고동엽】 2022. 7. 3.
반역하는 병을 고쳐주소서

호14:1-9

(2000/1/30)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호세아는 주전 8세기경에 활동했던 북이스라엘의 예언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던 예언자들의 삶은 인간적으로 보아 불우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호세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불우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셋이나 얻었지만, 화냥기 많았던 아내는 몇 번씩이나 정부의 뒤를 따라 집을 나가곤 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여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겠지요? 호세아 역시 고뇌가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정욕에 이끌려 다른 남자를 따라간 고멜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불쌍하니까 그저 두 눈 질끈 감고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하라는 거예요. 불합리한 명령이고, 사람의 감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명령 아닙니까? 하지만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릅니다.


터툴리아누스라는 교부가 있는데 그는 "불합리하기에 믿노라" 했어요. 인간의 이성과 지각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앎의 대상이지, 신앙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신앙이란 지금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전적에 신뢰에 바탕을 두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fides quaerens intellectum).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부조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은 두려움과 전율(이게 종교 체험의 본질이다)이었을 겁니다. 넘실대는 홍해 바다에 뛰어들라는 명령은 얼마나 부조리합니까? 하지만 모세와 백성들은 그대로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지혜보다 낫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한 것보다 낫다는 사실에 대한 신뢰 말입니다.


同病相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림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정부를 따라 달아났던 아내 고멜을 찾아가 좋은 말로 타이르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좋은 선물까지 줍니다. 다시 시작하자는 거지요. 그 마음이 오죽 했겠어요? 호세아는 가슴 에이는 아픔으로 고멜의 배신을 끌어안습니다. 至極精誠 萬事如意라, 고멜은 마침내 호세아에게 돌아왔어요. 하지만 한번 난 바람기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가봅니다. 고멜은 또 다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정부의 뒤를 따라갑니다. 환락의 끝이 무엇인지는 뻔하지 않습니까? 몸과 마음이 다 거덜나고, 빚에 몰려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호세아는 이번에도 아내를 찾아가 대신 빚을 갚아주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이 정도면 열부(烈夫)라 할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호세아는 자기가 겪은 오쟁이진 남자의 그 쓰라린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바람기 많은 아내 때문에 겪었던 마음의 괴로움이 문득 하나님의 마음 아픔으로 경험된 것이죠. 하나님의 품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때문에 속상해 하시고, 또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그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는 자기의 고통을 통해 이해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언자: 화해의 매개

그래서 호세아는 감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화해의 매개가 되고자 합니다. 화해라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지요? 가족끼리도 한번 삐지면 한 일주일간이나 말 한마디 없이 버티는 대단한 분들이 있다면서요? 상대방을 어떻게든 불편하게 함으로 보복하겠다는 유치한 생각 때문일 텐데,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려면 먼저 자기 마음을 뾰족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 마음이 날카로와지면 먼저 상처를 입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겠어요?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라면 빨리 항복하는 게 나아요. 항복하세요. 그래야 행복해져요. 불퉁거리는 이스라엘을 향해 호세아는 하나님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라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삶의 안전을 보장해주리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신뢰가 잘못된 것임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①외세: 앗시리아의 도움으로 복잡한 국제 정세의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는 격).

②군사력: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

③우상숭배: 방편적 신앙, 돈, 인맥…

하나님은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을 내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품이 넓은 분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자수하라!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는 시인이 하루는 해변 길로 산책을 나갔더랍니다. 햇살이 아름다워 오래된 무덤 잔디밭에 누워 한가로이 여치의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하도 애잔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답니다. 그리고는 三陟金氏之墓라 쓴 비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무덤 속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내가 들려주는 저승의 이야기도 듣다가(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대화를 할 줄 아는 이들입니다), 모색이 잦아들 무렵 둑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더래요. 그런데 문득 둑길 위에 빚 바랜 표어 하나가 확! 눈에 뜨이더랍니다.

어제까지 속은 인생

오늘부터 밝은 인생

간첩들 보라고 페인트로 써놓은 그 표어가 장군죽비(將軍竹卑)처럼 머리를 내리쳤는데,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때 맞은 자리가 얼얼한데, 여태 속아 살아온 자기를 깨워준 그 퍼런 멍이 다 풀리면 하나님께 자수할 셈이라고 하더군요. 여러분, 하나님께 자수하여 광명 찾으세요.


반역하는 병을 치유하심

하나님께 돌아온 이들은 고질병을 치유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인간의 고질병 말입니다. 고질병이란 오랫동안 낫지 않아 고치기 어렵게 된 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낳을 듯 하다가는 또다시 재발하곤 하지요. 고질병은 일종의 중독(中毒)이에요. 우리가 어딘가에 중독되어 있으면 웬만한 의지를 가지고는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알콜 중독, 일 중독, 마약 중독, 폭력 중독, 섹스 중독…그런데 중독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만연되어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죄 중독입니다. 그것은 또 고치기 아주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고질병 때문에 시달렸던 사람이에요. 그는 자기의 실존적인 고뇌를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롬7:15-17)

바울은 속에서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정열을 가리켜 '죄'라 했습니다. 그는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하고 탄식합니다. 그리고 그는 확신을 가지고 선언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롬7:25)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속에 있는 죄라는 고질병을 고치시고는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 속에 사랑 받을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 속에 사랑을 심어놓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창조력입니다. 더럽고 미운 것일망정 사랑하면 아름다운 것으로 변혁시키게 됩니다. 바로 이게 구원 아니겠어요.


사랑받은 이의 행복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들의 행복을 식물적 상상력을 통해 아름답고 풍요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리꽃처럼 피어나는 삶,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든든한 삶,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삶, 이것이 기도를 들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삶입니다. 요즘 시민운동단체들이 쓰레기분리수거에 나섰다지요? 그런데 쓰레기 봉투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코를 틀어쥐더군요. 물론 국회의원 낙천운동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시민운동의 성장이 우리의 척박한 정치문화를 조금은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다가 불현듯 가슴이 죄어옴을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눈길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눈길이 우리를 향하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 또한 쓰레기 봉투에 담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말이 좋아 신앙인이지 나리꽃처럼 피어나는 삶도 아니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곶게 뻗어오르는 삶도 아니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삶도 못되니 다만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이 고질병을 고쳐주실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주님께로 힘써 돌아갑시다. 천관녀의 집으로 향하는 말의 목을 자름으로 옛 생활을 청산했던 김유신의 검법으로, 교만함을 자르고, 허영심을 베어내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난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쳐내고, 반역하는 우리의 고질병을 고쳐주시는 주님께 날마다 귀의합시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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