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에 보시면 밀레도라는 곳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고별 만남을 갖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바울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27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울은 3년의 기간 동안 그리고 특별히 2년의 시간 동안 두란노라는 서원을 만들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에게 다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교회됨의 가장 중요한 표지입니다. 루터, 칼뱅, 츠빙글리, 부처, 멜랑히톤 등의 모든 종교 개혁가들이 십자가가 달려 있고 정기적인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참 교회가 아니다, 진짜 교회와 거짓 교회는 이 3가지 표지를 통해 구별되어야 한다 라고 하면서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뭐냐면 진짜 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없이 선포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인가를 덧붙여서도 안 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감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어디가 진짜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하는 곳이 진짜 교회입니다. 어디가 가짜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가하거나 감하는 곳이 가짜 교회라는 겁니다. 두 번째 진짜 하나님의 교회는 신실하게 성례가 시행되는 곳이다, 세례와 성찬인 성례가 신실하게 시행되는 곳이 진짜 교회다, 여기에 성찬이 시행된다는 말은 뭐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됨의 코이노니아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진짜 교회라는 겁니다. 세 번째가 뭡니까? 지상의 교회 안에는 사탄이 심어 놓은 가라지가 있습니다. 이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들이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도록 세상의 문화와 가치가 교회 안에 침투하도록 길을 열어 놓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진짜 교회는 그런 가라지들에 대해서 끊임없는 징계를 한다, 이 3가지가 바로 참된 교회의 표지라 했습니다. 여기 20장 27절에서 바울은 그 종교개혁가들이 말했던 첫 번째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꺼리지 않고 너희들에게 전했다는 겁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정말 한국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저는 한국 교회 개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모세오경부터 계속 공부하고 있는데요. 정말 한국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의 말씀을 균형있게 섭취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구약보다 신약을 더 많이 섭취하고 신약 안에서도 로마서라든가, 에베소서라든가, 갈라디아서라든가, 요한복음이라든가 이런 특정한 본문을 지나치게 짝사랑하지, 구약의 말씀을 도외시하고 마태복음이나 야고보서를 도외시하고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굉장히 많습니다. 심지어 신앙 생활을 수십년 하신 분들도 유다서가 무슨 내용인지 잘 모릅니다. 오바댜가 무슨 내용인지 잘 모릅니다. 구약의 예언서 잘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섭취하지 못하고 우리가 듣고 싶은 말씀들, 우리에게 유리한 말씀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짝사랑하고 우리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를 조금 부담스럽게 만드는 말씀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 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의 마지막 개혁 과제가 모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 없이 선포되고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감없이 섭취하고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이 온전히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그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어떤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증거하는 이것이 제가 볼 때 한국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개혁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의 고별 만남에서 바로 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꺼리지 아니하고 당신들에게 다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순회 전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였던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우리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바울은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마음이고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마음이고 구역장의 마음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우리가 온전히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꺼리지 아니하고 선포할 뿐만 아니라 말씀에 근거했을 때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눈물로 함께 신앙의 길을 힘있게 걸어가자고 그들에게 권면하는 그 삶을 바울이 신실하게 감당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기가 에베소 교회를 떠난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합니다. 32절입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자기가 떠나게 되면 사탄이 보낸 이리 떼가 에베소 교회를 공격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리 떼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교회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굳게 서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 사탄의 모든 시험과 공격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도리어 반대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사탄의 공격의 1차 타겟이 되는 겁니다. 사탄은 뭘 합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세워지는 것을 끊임없이 훼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존재가 누굽니까? 사탄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는데 그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지켜내야 되겠습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면 말씀 안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이리 떼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뭡니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하신 계시의 말씀, 그것을 온전히 붙잡음을 통해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말씀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고, 말씀에 대한 공부를 통하여 세상의 가치와 세속의 자기 중심주의로부터 점점 자유해지는 겁니다. 말씀을 알고 말씀에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우리를 정말 더욱더 살아있게 만드는구나, 순종하는 삶이 불순종의 삶보다 훨씬 더 생명력 있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힘 있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음을 통하여서 순종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자발적으로 기뻐하는 자로 변화될 수 있는 겁니다.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말씀 안에 굳게 서는 것이다, 이것을 부탁하면서 밀레도에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과 고별 만남을 가집니다.
21장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 갑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바울을 아꼈던 많은 동역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왜요? 성령을 통해서 환상 가운데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사로 잡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수하게 많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을 그들은 환상을 통해서 보게 된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올라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올라갑니다. 그리고 성령의 환상에서 본 것처럼 바울은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체포당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고난의 여정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21장의 이야기입니다. 21장의 앞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이런 질문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환상을 통해서 바울의 동역자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유대 교인들에게 사로 잡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수의 신분으로 엄청나게 많은 고난과 심지어 순교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는데 그런데 바울은 고집을 피웁니다. 21장 13~14절을 보시면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결과적으로 보시면 바울은 동역자들의 권면을 거부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성령께서 환상을 통해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다음에 동역자들은 자신이 본 환상에 근거해서 바울에게 “바울 올라가지 마라 네가 올라가면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체포당하고 무수하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심지어 목숨도 빼앗기게 될 거야 올라가지마”라고 동역자들은 바울에게 권면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동역자들의 권면을 거부하고 올라 갑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정말 올라간 다음에 성전에서 유대교인들에 의해서 바울이 체포 당합니다. 그리고 결국 오랜 세월 동안 죄수의 신분으로 고난을 받고 마지막에 로마에 압송을 당하고 그리고 네로라고 하는 사람에 의해서 결국 순교를 당합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그대로 성취된 겁니다. 이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기 쉽냐면 성령이 환상을 통해서 바울이 어떤 일을 경험할지 알려주셨고 동역자들을 통해 가지 말라고 권면했는데 바울이 괜히 고집을 피우다가 순교를 당한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21장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면 성령의 환상을 통해서 바울이 어떤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인지 예고하셨지만 성령이 이런 일을 네가 겪게 될 것이니까 바울아 예루살렘에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령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지 알려주신 것이지 바울로 하여금 올라가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 고난을 친히 짊어지게 될 바울은 마음에 결심히 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라가겠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해 낸 겁니다. 마치 뭐와 같은 겁니까? 구약에 나와 있는 무수한 예언자들의 운명과 같은 겁니다. 우리가 예언서를 공부했지만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맡겨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게 되면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박수를 받습니까, 지지를 받습니까, 후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미움을 받습니다. 그 미움의 결과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예언자들의 운명입니다. 진짜 예언자들은 이런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자기 존재를 다했습니다. 그 예언자들이 걸어갔던 걸음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면 사도 바울인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걸음을 신실하게 걸어가게 되면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을 경험할 것인가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용기있게 자기에게 허락된 길을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수용한 겁니다. 동역자들은 그 고난을 피하라고 권면했지만 바울은 담대하게 이 고난을 짊어지겠다고 결심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 갑니다. 올라가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였던 야고보를 만나게 되고 야고보는 바울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우리 예루살렘 교회에는 율법 준수를 철저하게 준행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하고 있다, 뭘로 오해하는 거죠? 바울은 율법 폐기론자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실인 서원을 끝낸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가서 당신이 이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재정도 지불하고 이 사람들의 나실인 서원이 끝났다라는 것을 제물을 드림을 통해서 당신이 얼마나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인지를 증거해달라, 이렇게 야고보가 권면하고 바울이 이 권면을 수용합니다. 그래서 나실인 서원을 끝낸 사람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이 사람들의 제의를 돕는 일을 하다가 유대교인들에게 사로 잡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인들이 볼 때 사도 바울은 배신자입니다. 원래 유대교에 열심을 다하다가 초대 교회로 개종했으니까 유대교 입장에서는 배신자입니다. 그래서 배신자 사도 바울을 체포하게 된 겁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또 다른 선교 여행을 하게 된 겁니다. 바울이 잡힌 다음에 바울의 선교 여행이 끝장난 것이 아니라 죄수의 신분으로 바울이 잡힌 이후에 사도행전 22장부터 어떻게 보면 바울의 4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4차 전도 여행에 대해서 다음주에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과 더불어서 아름답고 멋진 신실한 걸음 내딛어 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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