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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사도행전 녹취 12

by 【고동엽】 2022. 5. 6.
갈라디아서 1장과 2장에 보시면 바울이 다메섹 회심 사건을 경험한 다음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3년 후에 예루살렘을 1차 방문합니다. 그리고 14년 후에 예루살렘을 2차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두 번째 방문했던 그때 예루살렘의 기둥 같던 야고보, 베드로, 요한과 친교의 악수를 나눴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통 학자들은 뭘로 해석하냐면 사도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였던 야고보, 베드로, 요한으로부터 사도로서 인정받은 것을 교제 악수라는 상징적 행위로 설명되었다고 봅니다. 바울의 사도성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받기까지 바울의 회심으로부터 17년의 세월이 지난 겁니다. 다메섹 회심, 3년 후 그리고 다시 14년 후니까 회심으로부터 17년이 지난 다음에 바울의 사도성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부터 인정받은 이때, 2차 방문했던 이때를 뭘로 보냐면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로 봅니다. 이때가 49년이라고 했을 때 49년에서 17년을 빼면 그때가 바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때입니다. 언제입니까. 32년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정확한 연대는 말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보통 주전 4년경에 출생했을 것으로 보고 그다음에 AD 27, 28년경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셔서 AD 30년경에 십자가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다고 보고 32년경에 사도 바울의 다메섹 회심 사건이 있었다고 보고 그리고 17년이 지난 AD 49년에 예루살렘 회의 때 바울의 사도성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도 인정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연대기적인 사건들입니다.


이 예루살렘 회의를 통하여 굉장히 중요한 것이 결정된 겁니다. 그것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이것이 하나님 백성됨의 가장 중요한 것이고 유대인의 신앙 문화를 이방인들에게는 강요하지 말자,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회의의 중요한 결정사항입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유대인은 유대인의 문화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꽃 피울 수 있는 것이고 이방인은 이방인의 문화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신앙의 문화를 꽃 피울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지켜왔던 그 신앙의 문화를 이방인들에게는 강요하지 말자는 겁니다. 다양한 문화 안에서 다양한 신앙의 문화가 꽃 피울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 공회의의 너무나 중요한 결정 사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이 우리는 미국 교회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 19세기 말부터 한국 교회는 어떤 생각을 많이 했냐면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선포된 복음, 그리고 미국 교회로부터 전수된 서구 기독교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기독교 문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서구 문명을 기독교 문화와 동일시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의 조상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문화들은 미신적인 것이고 우상숭배적인 것이고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행했던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다운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목사님들의 복장도 한복을 입으면 어색한 겁니다. 양복을 입어야 되는 겁니다.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도 꽹과리라든가 징이라든가 장구를 치면 푸닥거리하냐 이런 식의 얘기를 많이 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피아노라든가 기타라든가 오르간이라든가 이런 서양 악기를 사용해야지 민족의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하면 뭔가 미신적인 것처럼 우상 숭배적인 것처럼 그런 식의 이해를 많이 했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서구 기독교 문명권 안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진 그것을 기독교 문화라고 받아들였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인다운 삶의 자세와 태도인 것처럼 우리는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어느 하나의 문화가 모든 민족에게 획일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지 140년을 달려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 한국 교회가 한국적인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기독교 문화를 어떻게 창조해내고 있는지, 어떻게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 그리고 우리에게 맞는 기독교 문화를 창조해내고 향유하는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보다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양한 민족의 문화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정말 아름다운 기독교 문화들이 다양하게 꽃 피울 수 있는 그리고 그 다양한 기독교 문화를 서로 경험함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우리가 갈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 회의에서의 너무나 중요한 결정사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이고 각자의 문화 안에서 다양한 신앙의 문화가 꽃 피울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의 신앙 문화를 이방인에게는 강요하지 말자 이것을 결정한 것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의 너무나 중요한 결정사항입니다.


16장에서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는 바울이 실라라는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원래 바울과 실라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도를 하려고 했는데 드로아라는 곳에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유럽에 와서도 주의 복음을 증거해 달라는 환상을 보면서 이제 유럽 전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유럽 전도의 첫 성이 어디냐, 16장에 나오는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음에도 불과하고 로마와 거의 준하는 특급 대우를 받았던 또 하나의 로마가 빌립보였습니다. 16장에서 유럽 전도가 시작되었고 빌립보 전도를 하다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37~38절을 보시면 바울과 실라가 모두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장 37절에 보면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기 우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데 실라도 로마 시민권자임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는 3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로마 황제나 장군에게 어떤 혁혁한 공을 세움을 통해서 로마 시민권을 하사받는 것이 첫 번째 경우이고 두 번째는 많은 돈을 들여서 로마 시민권을 매입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세 번째는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자녀들은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이미 아버지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장에 보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보통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이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베드로는 원래 팔레스타인 땅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고 바울은 이방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지역 순회 전도자였던 겁니다. 바울은 이방 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방 지역을 순회할 때마다 바울이 주로 간 곳이 유대인의 회당입니다. 거기서 주로 누구를 만납니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을 만나는 겁니다. 뭘 기억하셔야 되냐면 바울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주로 증거한 것이 아니라 이방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증거한 것이고 이방 지역을 순회할 때 바울이 주로 찾아간 곳이 어디냐, 유대인들의 회당입니다. 그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아가게 되면 주로 누구를 만나게 되는 겁니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주의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을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부분 다 미워합니다. 대적합니다. 박해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뭐죠? 바울 메시지의 핵심이 사도행전 17장의 데살로니가 전도에서 잘 드러나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기다렸던 메시아를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를 유대인들이 환영하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겁니다. 그 죽임 당한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유대인들아 그것을 회개하고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아멘으로 받아들여라, 이것이 바로 바울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이런 바울의 메시지가 유대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겁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정치 군사적인 메시아인데, 무력하게 죽임당하고 매를 맞는 그런 메시아가 아닌데 그 메시아를 유대인이 죽였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적대했습니다. 그런데 경건한 이방인들은 바울의 메시지에 환호합니다. 그리고 바울의 메시지를 따라서 바울을 추종합니다. 왜 경건한 이방인들이 바울 메시지에 환호한 거냐면, 가장 중요한 것이 당시 이 경건한 이방인들은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던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높았는데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은 머뭇거렸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려고 할 때 반드시 거쳐야 될 3가지 의례가 있습니다. 첫째가 뭐죠?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왔던 옛 삶을 죽이고 이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것이 뭐냐면 네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유대교로 개종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이방인들에게 너무나 어려운 난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메시지에 경건한 이방인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면 한 마디로 하자면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사도 바울이 열어준 겁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경건한 이방인들이 바울 메시지에 환호한 겁니다. 그래서 보시면 바울은 이방 지역 순회 전도를 하였고 이방 지역 순회 전도를 할 때 바울이 주로 찾아갔던 공간은 유대인의 회당이었고 그 회당에 가보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이 그곳에 있었고 바울이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울 메시지를 적대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시면 데살로니가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서 바울이 베뢰아로 도망갑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찾아와서 바울을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테네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런데 누구는 바울의 메시지에 환호했습니까? 경건한 이방인들입니다.


그래서 17장에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지역에서의 복음 전도가 나오는데 순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만 복음을 전도한 곳이 아테네입니다. 그런데 이 아테네는 원래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지는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박해를 피해서 베뢰아로 왔고 또 베뢰아에서의 박해를 피해서 갑작스럽게 간 곳이 아테네였지 원래 아테네는 바울이 계획했던 전도 여행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보시면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순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던 곳은 유일하게 아테네입니다. 그런데 이 아테네는 굉장히 돌발적으로 복음을 전한 곳이었고, 바울이 주로 전도했던 장소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있는 회당이었다 하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만 복음을 증거했다고 보시면 안 되고 이방 지역 순회 전도자였고 그 이방 지역을 순회하면서 바울은 주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갔고 그 회당을 찾아가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고 바울이 주의 복음을 선포하게 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고 경건한 이방인들은 바울의 메시지에 환호했다, 경건한 이방인들이 바울 메시지에 환호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뭐냐, 할례를 받지 않고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바울이 제시한 겁니다. 이것에 경건한 이방인들이 열광적인 화답을 한 겁니다. 오늘은 17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몸도 마음도 강건한 삶 누리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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