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21절도 보시면 똑같은 맥락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내가 왜 이런 고난을 경험하고 있느냐,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24장 21절을 보면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다.” 결국 내가 왜 이런 고초를 겪고 있느냐,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부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은 믿었는데 사두개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약을 공부했는데 구약을 공부하시다 보면 부활 신앙이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활 신앙이라는 것은 후기 유대교 때부터 등장한 교리입니다. 구약을 보시면 구약 초기에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신학 사상이 뭐냐면 상선벌악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을 무슨 신학이라 했습니까? 신명기 신학이라 합니다. 이 신명기 신학이 잘 드러난 본문이 신명기 28장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은 항상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고 저주를 당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살아갈 때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박수를 받고 존경을 받고 복을 받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징계를 당하고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는 일들이 실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주전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고 주전 539년에 페르시아, 주전 331년에 헬라, 주전 63년에 로마 등 5대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식민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전환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그게 뭐냐면 5대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는 순간 하나님의 백성답게 진실하게 정직하게 거룩하게 살아가려는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5대 제국에 의해서 핍박을 받게 되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느부갓네살이 세웠던 금신상 아닙니까. 이방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 느부갓네살이라는 이방 왕이 금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 그 금신상에게 무릎 꿇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때 나는 무릎 꿇을 수 없다, 나는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자다 이런 사람들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은 이방 제국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 겁니다. 고난을 받는 겁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투옥되고 신체적인 엄청나게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5대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갖고 있었던 신명기 신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아야 되는데 도리어 이방과 손 맞잡고 이방의 왕들이 명령하는대로 신앙을 저버리고 순종하는 자들이 승승장구 하고 도리어 이방 왕들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학적인 혼란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이때 어떤 질문이 나왔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셔야 되는데 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이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가, 왜 하나님은 이들을 돕지 아니하시는가, 이런 상황적인 질문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깨닫게 된 것이 바로 내세와 심판과 부활이라는 사상입니다. 즉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 진짜 우리에게 허락된 참된 삶이라고 하는 것은 현세의 삶이 마무리 된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그 이후가 정말 우리가 붙잡아야 될 참된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왔던 인생의 여정에 대한 심판을 하시고 그 심판의 결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자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이 땅에서7~80년의 삶을 살면서 부귀영화 누리고 이기심과 욕망의 삶을 살아가고 이방과 손 맞잡는 삶을 살아갔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영원한 멸망을 받게되는 것이고 비록 이 땅에서는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지만 하나님께만 순종했던 자들이 비록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불행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그들의 삶을 보상해주실 것이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심판, 내세, 부활 신앙입니다. 구약을 보시면 천년의 세월 동안 유대교를 지배했던 사람들은 사두개인입니다. 바리새파가 등장했던 것이 주전 2세기 말입니다. 구약에 보시면 부활 신앙이라는 것이 다니엘 12장에 거의 처음 나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두개파는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고 바리새파는 부활을 인정했고 바울은 재판을 받을 때마다 특히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재판을 받을 때마다 자신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 때문에 이런 고초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부활을 믿었던 바리새인들은 바울을 옹호해주려고 하고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내용이 23장, 24장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4장 27절을 보시면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2년의 세월 동안 바울은 가이사랴라는 곳에서 수감이 된 겁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지냅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 재판을 받기도 하고 벨릭스 또는 베스도라고 하는 총독에게 재판을 받기도 하고 또는 아그립바 왕이라는 사람에게 재판을 받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면 이 2년의 수감되었던 시절 동안 바울이 무력하게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도 바울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바울에게 본 받아야 될 정말 중요한 삶의 자세가 뭐냐면 바울은 어디에서든지 시공간을 불문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에게는 전도의 대상이었습니다. 바울이 거하는 모든 현장이 전도의 현장이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 25, 26장 계속해서 바울이 재판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26장 24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베스도라는 총독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이렇게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는가 회심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안에 바울의 회심 이야기가 3번 나온다고 했죠. 9장, 22장, 26장입니다. 9장은 제 3자적인 기술이고 22장과 26장은 자전적인 기술입니다. 22장은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기가 왜 회심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회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고 26장은 정치 권력자들 앞에서 자기의 회심 이야기를 설명한 겁니다. 이야기를 쭉 듣고 나서 베스도라는 총독이 바울에게 했던 말이 바로 26장 24절입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베스도 총독이 말합니다. 바울의 회심 이야기는 누가 듣느냐에 따라서 아주 상반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초대 교인들을 대상으로 바울이 자기 회심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초대 교인들은 바울의 회심 이야기를 듣고서 베스트 간증이라고 박수를 쳤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의 회심 이야기를 벨릭스라든가 베스도라든가 아그립바 왕 같은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여기 베스도 총독이 뭐라 반응을 보입니까? 바울아 네가 미쳤다고 말합니다. 그렇죠. 베스도 같은 사람들이 볼 때는 바울의 인생의 변화라는 것은 미친 짓인 겁니다. 로마 시민권자가 그 좋은 집안의 사람이 그 좋은 학벌의 사람이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예수를 믿고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죄수의 신분으로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면서 베스도 같은 사람들이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낮은 자리에서 점점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누리려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까? 자기 이기심과 욕망을 성취하려고 애를 쓰잖아요. 그런데 바울이 다메섹 도상 이전까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많은 것들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 얼마나 좋은 가문입니까. 얼마나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까. 10대 초반에 예루살렘에 와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정통 바리새 교육을 받았으니 얼마나 학벌이 좋습니까. 그 가말리엘 문하를 졸업한 이후에 유대교 관리로서 얼마나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런데 다메섹 회심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 좋은 태생, 학벌, 가문, 환경 모든 것들을 바울은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면서 죄수의 신분으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베스도 같은 사람이 볼 때는 바울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미쳤구나.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세속의 가치를 추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실한 걸음을 내딛어 간다는 것, 세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에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실하게 내딛어 간다는 것, 피해를 입으면서도 진실하게 살아가려고 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신앙인의 삶은 이해하기 너무나 어려운 겁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앙인들은 세상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신실한 걸음을 내딛어 가는 겁니다. 그 모습을 누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까? 사도 바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항해 일지 형태로 기록한 본문입니다.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속에서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죄수였던 바울이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276명이라는 귀한 생명을 다 지켜 냅니다. 27장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여기 우리라고 하는 1인칭 복수형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에는 누가 포함되는 겁니까?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포함되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가 바울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바울과 계속 함께 있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8장에 드디어 멜리데섬을 지나서 바울은 로마에 입성합니다. 사도행전 28장 16절, 23절, 30절을 보시면 바울은 로마에서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셋방을 구해서 2년의 시간 동안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합니다. 2년 간 바울이 로마에 있으면서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집을 구해서 군인들이 바울을 지킨 겁니다. 바울이 자유롭게 출입을 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것은 허용이 된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찾아와서 바울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8장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누가는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겁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에서 여기 땅끝이 어디에요? 제국의 수도인 로마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예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온전히 이뤄졌다 라는 것을 누가는 사도행전 28장에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전체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어 졌는가를 알려주는 본문이다 그래서 주의 성령을 통해서 교회가 이 땅 가운데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고 주의 복음이 이방 땅에 어떻게 선포되게 되었고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 교회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도행전 말씀을 8주 동안 함께 공부했습니다. 8주 시간 동안 함께 공부하시느라 수고 많으셨고 다음에는 저희가 바울의 서신을 중심으로 8주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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