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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3장 인생의 분복(3:1∼22)

by 【고동엽】 2022. 4. 17.

제3장 인생의 분복(3:1∼22)

 

< 개 요 >
1. 3:1∼10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음
2. 3:11∼15 하나님은 때를 아름답게 정하셨음
(1) 3:11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신 은혜
(2) 3:12∼15 솔로몬의 깨달음
3. 3:16∼22 하나님은 인생의 삶을 심판하실 것임

남아프리카에 가면 골곤다라고 하는 세계 제일의 유명한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습니다. 영국의 왕실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왕이나 왕비가 쓰는 왕관에는 어김없이 여기에서 나온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고 합니다. 이 유명한 골곤다 광산이 어떻게 개발이 되었는지 그 배경에는 기막힌 사연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시 그곳이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목장 지대였습니다. 목장의 주인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넉넉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영국 사람이 들어와서 갑자기 다이아몬드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벼락부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목장 주인의 마음속에 급한 생각이 들기 시작을 했습니다. 꾸물거리다가는 자기만 손해를 볼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자기가 자꾸 가난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장 주인도 다이아몬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그는 다이아몬드가 어떠한 곳에서 나오는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해답이 간단하게 나왔습니다. 지형적으로 주변이 산으로 빙 둘러 있고, 그 가운데는 시내가 흐르고, 그리고 시내에 의해서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 확률적으로 다이아몬드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 목장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전국을 누비면서 그런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지형이 나오면 무조건 닥치는 대로 다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찾기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수중에 있던 돈도 다 떨어지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깊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자기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기막힌 일은 바로 그 사람에게서 목장을 산 사람이 어느날 자기 목장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검은 색이 나는 이상한 돌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집어들고 호기심을 가지고 깨뜨려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틀림없는 다이아몬드 원석이었습니다. 얼른 그 주변을 파 보았습니다. 손으로 파기만 해도 그 속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곳이 바로 세계 제일의 다이아몬드 광산인 골곤다입니다.
원래의 목장 주인은 행복의 파랑새가 바로 자기 곁에 있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괜히 멀리서 찾다가 결국은 찾지도 못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급한 마음 가지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분복, 타고난 복,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다 보면 언젠가 때가 되면 자기가 원하던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그때를 만들려고 하니까 때를 만들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놓쳐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것을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때 안에서 순응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솔로몬이 오늘 전도서 3장에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천하 모든 일에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거역하지 말고 때에 순응하면서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을 누리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편의상 전도서 3장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대지는 1∼1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천하에 모든 일이 정해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14가지의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완전수가 무엇입니까? 7입니다. 14가지니까 완전수 7의 두 배가 되는 숫자입니다.
그러니 이것만 보아도 천하의 모든 일이 예외 없이 다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이 충분하게 입증이 되지 않습니까?
두번째 대지는 11∼1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정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때를 정하셨겠습니까? 인생들을 괴롭히려고, 골탕먹이려고 때를 정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를 정하시되 아름답게 정하셨습니다. 적절하게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모든 발걸음을 맡기고 하루하루 매일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지가 16∼2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은 인생들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삶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전도서 3장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한 절씩 읽어 가면서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하 범사에 기한이 있음

3:1 말씀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기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정해진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입니다. 그리고 일이 지향하는 목적도 이룰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해 아래서 아무리 수고하고 애쓴다 해도 그 목적이 아무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야만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런지 솔로몬은 2절 이하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솔로몬은 우리의 삶 자체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사실 사람이 태어나는 때와 죽는 때는 우리 인생 스스로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이 되었는데도, 여기가 편안하고 좋으니까 여기에 그냥 있겠다고 하면서 안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때 열 달이 되면 나오기 싫어도 나와야 합니다.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좋으니까 나는 한 300년 정도 살겠다고 한다고 사람이 300년을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더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예컨대 농부가 봄이나 여름철이 되면 밭에 나가서 배추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가을철이 되어서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그것을 뽑아 냅니다. 농부는 이미 정해진 계절에 따라서 행동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계절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간의 모든 행동이 다 그렇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합니다. 적군이 살고 있는 성읍을 허물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부상자들을 찾아서 다 치료해야 합니다. 그리고 허물어진 성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은 정해진 때에 따라서 이루어질 뿐입니다.
인간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감정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초상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슬퍼지지 않습니까? 눈물이 절로 흐릅니다. 반대로 흥겨운 잔칫집에 가면 마음이 즐거워서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까?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집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감정도 정해진 때에 따라서 순응하면서 나올 뿐입니다.
부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남편이 아내를 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잠자리에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돌을 던진다는 말로 은유적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보면 여인은 한 달에 한 번씩 부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안는 일을 멀리해야 합니다. 잠자리에 들 수가 없습니다. 돌을 던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부부 생활도 모든 것이 다 정해진 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소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아까 골곤다 광산을 예를 들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니까 전혀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찾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억지로 찾고자 하니까 오히려 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우리 나라에 땅을 가진 사람이 제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큰 빌딩을 마구잡이로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IMF 사태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요즘은 빌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가 아픕니까?
이와 같이 물질도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정해진 때에 따라서 순응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인간의 언어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옛날 사람들은 슬픈 일을 당하면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욥이 곤경을 당했을 때 멀리서 욥의 세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욥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각각 자기들의 겉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욥과 더불어서 7일 동안 땅바닥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슬픈 일이 다 끝났습니다. 그때는 옷을 찢은 것을 다시금 꿰매야 하겠지요? 다시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물었던 입을 열어서 다시금 말을 하게 되겠지요.
개인의 일뿐만이 아니라 나라 사이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서로 미워하고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습니다. 그러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면서, 도와가면서 살게 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천하에 모든 일이 다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때를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때에 따라 순응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의문입니까?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모든 것이 정해진 때에 따라서 이루어진다면 해 아래서 인생이 아무리 수고해 보았자 그 결과가 뻔할 텐데, 구태여 그러면 수고해 보았자 무슨 유익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1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우리 인생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날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애쓰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언제 노고를 주셨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때부터 인생들은 어쩔 수 없이 평생토록 노고 가운데 애쓰면서 살아가도록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때를 아름답게 정하셨음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서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솔로몬이 두번째 대지인 11∼15절에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신 은혜
우선 솔로몬은 11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베푸신 세 가지 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셨는지 11절 말씀을 보세요.
첫번째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범사에 때를 정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정하셨다는 것입니까? 인생들을 골탕먹이시려고, 괴롭게 하시려고 정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때를 아름답게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적절하게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 맡기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번째 베푸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애쓰면서 노고 가운데 살아가지만, 우리는 해 아래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해 위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세번째 베푸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11절 끝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때를 정하셨지만 인생들로 하여금 그 정하신 때를 측량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모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컨대 사람이 자기가 죽을 때를 정확하게 미리 안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복된 삶이겠습니까? 죽을 때가 되면 자기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불안에 떨면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죽을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해진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잠시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닙니까?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2) 솔로몬의 깨달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베푸신 세 가지 은혜에 기초해서 자기가 깨달은 것을 12절 이하에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첫번째 베푸신 은혜가 모든 때를 아름답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12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하나님께서 모든 때를 적절하게 아름답게 정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의 발걸음을 다 맡기고 불안에 떨지 않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아울러 하나님이 아름답게 때를 정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베푸신 은혜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심령의 낙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13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없는 것을 따지면서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윌리암 생스터(William Sangster)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갑자기 이분에게 근육이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보았습니다. 결과는 불치병이라고 했습니다.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생스터 목사님은 기도하는 가운데 네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동안 자기가 결심한 그 네 가지를 반드시 지켰다고 합니다.
첫번째, "I will never complain." 결코 불평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I will keep the home bright." 가정을 밝게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우울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정의 분위기를 밝고 명랑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세번째, "I will count my blessings." 내게 없는 것 따지면서 불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들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세어보겠다는 것입니다.
네번째, "I will try to turn it to gain." 내가 당하고 있는 시련이 내게 유익이 될 수 있게 바꾸는 노력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솔로몬이 오늘 본문 13절에서 우리에게 일깨워 준 삶의 스타일일 것입니다.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심령의 낙을 누리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베푸신 은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측량할 수 없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솔로몬이 깨닫게 된 것이 1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간들이 측량할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측량해서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인간들이 교만해져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설칠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생들이 모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금까지 한 말을 15절에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해 아래 새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태아는 열 달이 되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그 정한 때는 변동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매일매일 기쁘게,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인생의 삶을 심판하심

이제 마지막 세번째 대지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때를 정하셨다고 했는데, 그런 후에 하나님은 그저 인생들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그대로 방관하고 내버려두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모든 삶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재판하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공의가 세워져야 할 곳입니다. 공의를 가지고 의인과 악인을 바르게 구분하는 곳이 바로 재판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공의로워야 할 재판하는 장소에서조차도 악이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공의가 땅에 떨어지고, 의인이 억울하게 죄인 취급을 당하기고 하고, 악인이 또 반대로 부당하게 의인 대접을 받는 경우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솔로몬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진리를 두 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인간의 법정에서는 공의가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공의를 다시금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의인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또 악인이 일시적으로는 창성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언제 심판하십니까? 17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정하셨기 때문에 적절한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것입니다.
솔로몬이 두번째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하나님이 인생에 악이 있는 그 일을 통해서 인생을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면 학생이 시험을 치릅니다. 그 시험을 통해서 자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악을 통해서 인생의 수준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우리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러나 악을 가까이 하고 죄악의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그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까지 떨어집니까? 18절 하반부입니다.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이 세상에서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물론 우리 인생이 짐승과 같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짐승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먼저 솔로몬은 인생과 짐승의 같은 점을 19∼20절에서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인생이나 짐승이나 그 코에서 호흡이 떠나면 똑같이 죽습니다. 그리고 죽고 나면 다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것도 똑같습니다. 20절입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사람도 짐승도 죽으면 원점인 흙으로 다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짐승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21절의 말씀입니다.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만큼은 그것을 잊지 말고 꼭 알아야 합니다. 짐승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죽으면 그 혼도, 그 몸도 땅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사람이 생명, 곧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위로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우리의 육신을 떠날 때 우리의 혼이 위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어서 아래로, 음부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생길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솔로몬은 오늘 말씀의 결론을 22절에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매일매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교회에서 맡은 일도 있고, 가정에서 하는 일도 있고, 또 사회에서 맡은 일도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일을 억지로 하지 말고, 부득이한 마음으로 하지 맙시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그 일을 하도록 합시다.
바로 그것이 최고이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타고난 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와 경륜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두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몸 신(身)자, 뒤 후(後)자, 일 사(事)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번 가면 끝입니다. 다시 되돌아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순간 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탈무드에 보면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 최초의 날이라 생각하며 살고, 아울러서 오늘이 내 인생 최후의 날이라 생각하면서 살아라." 하루하루 매순간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좀더 애착을 가지고 잘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일에 때를 정하시되 아름답게 정하셨습니다. 적절하게 때를 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우리의 발걸음을 다 맡기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과 섭리 속에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모든 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을 다 끝내고 하나님 앞에 서실 때 잘했다 칭찬 받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다 받아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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