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창 47:7-10)
독일의 유명한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가 어느 날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사색을 하는 동안 날이 저물었습니다. 텅 빈 공원에 홀로 남았을 때에 관리인이 다가와서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왔기에 해가 지는데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이곳에 앉아 있는 거요?'라는 말에 쇼펜하우어는 대답하기를 '바로 그거요,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것 때문에 지금 번민하고 있는 중이요'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첫째, 내가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둘째로, 내가 무엇 하러 왔는가? 아버지의 뜻대로 살며 그 뜻을 준행하려고 왔습니다. 셋째로,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날이 오면 본향인 하나님 앞으로 갈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고백해야 합니다. 가야 할 행선지를 알고 사는 사람이 우리들입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아멘!/
▶대강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야곱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살아서 저 넓은 대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70인의 권속을 거느리고 애굽 땅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들 요셉은 백발이 된 자기 아버지 야곱을 보면서 목을 껴안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아버지 야곱도 아들 요셉을 만나는 감격 속에서 함께 울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바로 왕 앞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어른이 저의 부친이옵니다'하고 인사를 시켰습니다. 바로 왕은 '당신의 연세가 얼마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바로 왕 앞에 선 야곱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연세가 얼마냐?' 이 질문은 당신이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물음입니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이런 질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연세가 얼마입니까?' 이 질문은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렵니까?'라는 질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야곱은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①야곱이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그네길의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나그네는 반드시 돌아갈 고향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생애를 '나그네'길이라 부르고, 자신을 가리켜 다른 세계를 향한 여행자로 보았다는 것은 그의 신앙을 표현하는 말로서, 천국을 믿는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돌아갈 육신의 고향이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더 나은 본향을 소망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11장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신앙 인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 세상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정류장으로 알고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아니하고 이 세상 적인 것에 애착을 두지 않고 저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그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그 나라의 시민다운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나그네 인생 길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벧전2: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베드로가 당부하고 있습니다. /할/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 목사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리가 있음을 감사하며 지나가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다리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39:6절에서 고백하기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분명히 그의 생애를 나그네길로 보았으며, 자신은 본향을 찾아가는 순례자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인생을 바로 본 것입니다. 사실 야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나그네 인생들이 아닙니까? /아멘!/
②유한한 인생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고 분명히 나이를 130년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언젠가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 세상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천년만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다. 시90: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나가는 시간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감을 피부 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말 깨달을 때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분명한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90: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내 나이가 얼마인가를 계수 하라는 말은 나이가 얼마인가를 숫자적으로 계산하여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나이를 계수 하라는 말은 하루, 하루를 의미 없이 살지 말고 하루, 하루를 보람 있게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어떤 것이 보람 있는 삶이라는 말입니까? 하루하루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계수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유한한 인간이 자랑할 것은 무엇입니까?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들을 자랑하는 것은 헛된 자랑입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랑스런 삶을 살았는가가 중요합니다. 헛된 수고가 아니라 헛되지 않은 수고를 하십시다.
고전15:58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할/.
③인생은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사는 존재입니다.
야곱은 '130년 나그네의 삶을 살았지만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고하고 있는 야곱의 생애를 볼 때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한 평생의 삶은 미움과 시기와 갈등 속에서 몸부림 쳐 온 험악한 생애였습니다. 야곱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올 정도로 장자 권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형을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탈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야곱은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에서 20년을 지내오면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거기서도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야곱이 말한 대로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가 원하는 아내와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고향 땅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에 야곱은 많은 고난을 당하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말 그가 말한 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⑴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하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⑵사랑하는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 동안이나 긴긴 머슴살이를 하야야 했고,
⑶간교한 장인으로 인해 품삯을 열 번이나 속임 당하게 되었고,
⑷외동딸이 이방인 청년에게 욕을 당하는 슬픔도 겪었으며,
⑸그 일을 복수하기 위해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앙갚음을 한 아들들 때문에, 또 다시 생명의 위험을 당하게 되었고,
⑹7년 간의 고달픈 머슴살이를 수일같이 여길 만큼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해산을 하다가 죽는 것도 보았으며,
⑺그 라헬이 낳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22년 간이나 슬픈 세월을 보내기도 했으며,
⑻장자 르우벤이 자기의 첩 빌하와 간통하는 패륜도 보았으며,
⑼그 동안 기근 속에서 온갖 두려움과 불안을 맛보기도 했었습니다. /할/
그러나 야곱이 그러한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고백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답변한 말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야곱의 대답에서 밝혀주고 있듯이 우리들의 삶도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전12:1절을 보세요!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바르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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