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제21강 이스라엘에 내린 첫번째 재앙(4:6)

by 【고동엽】 2022. 4. 16.

제21강 이스라엘에 내린 첫번째 재앙(4:6)

 

4: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벧엘과 길갈에 가서 더 많은 희생 제물을 드리고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범죄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남을 착취하고 가난한 자를 억압해서 끌어모은 재물을 하나님께 받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겉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열심히 섬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드리거나 순종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드리는 제사 행위를 기뻐 받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행실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섯 번이나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첫번째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우선 우리가 살펴보면 다섯 가지 재앙이 기록되어 나가는데 일정한 양식, 곧 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섯 가지 재앙은 일정하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계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여기까지가 징계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서 기근으로 징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각 재앙마다 계속되는 후렴적인 문구가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불회개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계속되는 문구가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입니다. 아모스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에 불구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 양식을 가르켜서 전달자 양식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이하 다섯번째까지 모든 재앙들이 똑같이 아래와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징계의 내용
2) 이스라엘의 불회개
3) 신적 확인
오늘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첫번째 재앙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여기서 "내가"라고 한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 보면 1인칭 대명사인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풍기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 가운데서 "나는"에 강조점을 두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너를 미워하더라도 나만큼은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너를"이라는 말에 강조점을 두어서 읽으면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너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되고 맙니다. 이와 같이 강조점이 주어질 때는 무엇인가 주고자 하는 의도된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가 강조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한 두 가지 정도로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라는 1인칭 대명사를 앞에 있는 4∼5절에 있는 "너희"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런 의미가 될 것입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또 길갈에 가서 의식적이고,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제사 행위로 만족을 삼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너희의 그 잘못된 행위를 돌이키려고 이러한 재앙을 일으키지 아니했느냐?" 다시 말해서 "너희는 제사드리는 것으로 나의 진노를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너희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치기 위해서 너희에게 이와 같은 재앙을 내렸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내가"라는 대명사를 6절 하반절에 나오는 "너희"와 대조해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처럼 너희에게 재앙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느니라."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아주 완악하다는 사실을 질책하는 것이 됩니다. 아무튼 "내가"라는 말을 우리가 첫번째처럼 앞에 있는 너희와 연결시키든지, 두번째처럼 뒤에 있는 너희와 연결시키든지 여기서 "내가"라는 말이 상당히 강조되고 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대조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대구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성읍에서"라는 말이 "각처에서"라는 말과 대구를 이룹니다. 또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라는 말씀은 무엇과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까?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라는 말씀과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한가하게 한다"는 말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양식이 떨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성읍," 또는 "각처에서"라는 말은 기아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한두 성읍, 또는 일부 지역에서만 기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읍, 그리고 각처 모두 한 곳도 빠짐없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재로서 모든 것을 다 섭리하시며, 다스려나가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진 재앙은 어떤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서 이스라엘 일부 지방에만 기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읍, 곧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서 기근 아래에 놓이게 되었음을 명백하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역사적으로 어떠한 때에 이스라엘이 이러한 극심한 기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극심한 기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대표적인 몇 곳만 찾아보겠습니다.
(왕상17: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후에는 죽으리라
(왕하4: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왕하8: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 내리신 징계의 채찍으로 수 차례에 걸쳐서 기근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징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을 꿇게 하는 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게나 그들이 돌아서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은 저들을 기근이라는 채찍으로 때리셨지만 저들은 돌아서지 아니했습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참으로 안타까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징계를 내리신 하나님의 의도가 달성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무시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한편 아모스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했는지,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하여 무엇을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토대로 생각해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짓밟는 사회적 불의에서 떠날 것을 원하고 계신 줄 압니다.
(암2:6∼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암3:9∼10)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르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4:1)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또 아울러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연해하고 있는 형식적이고도 이기주의적인 표면적 제사 행위에서도 떠나기를 원하고 계신 줄 압니다.
(암4:4∼5)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근으로 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해 귀담아 들으면서 과연 우리의 인생길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초였습니다. 영국에서 그 당시로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있는 여객선 한 척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는 타이타닉 호였습니다. 46,000톤이니까 엄청나게 큰 배였습니다. "우리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자부심 때문에 영국 국민들은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드디어 1912년 4월 14일, 2,223명이라고 하는 많은 승객을 태우고 영국 황실과 또 많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 가운데 타이타닉 호는 영국을 출발해서 미국 뉴욕항으로 처녀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한 3일 정도 대서양으로 항해했을 때였습니다. 인근 해역을 지나가고 있던 다른 배에서 무선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항로 전방에 빙산이 있으니 조심해라. 위험하다." 무선사는 그것을 받아 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 배는 빙산 따위에는 끄덕하지 않을 튼튼한 배야. 선장이 잘 알아서 하겠지." 경고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똑같은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그제서야 무선사가 전보를 가지고 선장에게 올라갔습니다. 선장이 보더니 픽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구겨서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 뒤로 네번째, 다섯번째 경고의 전보가 계속해서 날아왔습니다. "항로를 바꾸어라. 위험하다.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곧 충돌할 것이다." 이런 급한 전보였습니다. 무선사는 전보를 가지고 다시 선장에게 올라 갔습니다. 선장이 그것을 보더니 역정을 내기 시작합니다. "뭐 그까짓 빙산 때문에 항로를 바꾸라고? 어림없는 소리. 우리 배가 자기들 배하고 똑같은 줄 아나 보지. 이 배는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 배야. 영원토록 안전하도록 지은 배야!" 선장은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꽝"하고 빙산에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영원토록 침몰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었다는 타이타닉 호는 어이없이 두 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구조선 두 척이 쏜살같이 다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선에는 700명밖에 탈 수가 없었습니다. 2,223명 모두가 구조선 위에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과 여자들만 구조선에 올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아버지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생사가 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인은 죽어도 자기 남편을 떠나 보낼 수가 없다고 해서 침몰하는 배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배 안에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도 있었는데 "이 신랑만큼은 살려주자!"고 전원이 다 동의를 해서 그 신랑만큼은 살려주는 온정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조선에 올라탄 사람이 706명, 나머지 1,517명은 타이타닉 호와 함께 바다 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침몰하지 않고 영원토록 안전하리라고 장담했던 타이타닉 호는 겨우 3일 정도 항해하다가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위험하다. 항로를 바꾸어라!" 거듭 경고를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하게 계속해서 항로를 고집하다가 결국은 비극적인 사건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의 인생항로를 이 시간 다시 한번 점검해보십시다. 잘못 되었다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또 타이타닉 호처럼 교만해서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도 결국은 비극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를 위해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