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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강 이스라엘에 내린 세번째 재앙(4:9)

by 【고동엽】 2022. 4. 16.

제23강 이스라엘에 내린 세번째 재앙(4:9)

 

4:9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에 내려진 세번째 재앙은 농작물에 대한 재앙입니다.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여기서 풍재와 깜부기 재앙의 직접적인 대상은 무엇입니까? "너희를 쳤으며."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극적으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풍재라든지 깜부기라는 말은 무엇에 해당하는 말입니까? 농작물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땅 가운데 돌이 많은 땅이라든지 또 지대가 높아서 환히 볼 수 있는 땅은 비가 조금만 오지 않아도 곧 말라 버립니다. 그러나 계곡에 있는 땅은 지층이 두껍습니다. 또 지하수층이 지표와 비교적 가까워서 비가 오지 않아도 견디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 시냇가나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있는 땅은 인공적으로 물을 퍼서 농작물에게 줄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가뭄을 견디기가 나은 편입니다.
그러나 비록 곡물이나 과목들이 두번째 재앙에 견디어내었다 할지라도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세번째 재앙으로 남김없이 다 치셨습니다. 무엇으로 치셨다고 했습니까? 풍재와 깜부기 재앙입니다. 풍재라는 것은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쳐 농작물을 말려버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41장에 보면 바로의 꿈이 나옵니다.
(창41:6) 그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창41:23) 그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창41:27) 그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동풍에 마른 이삭, 이것이 바로 풍재를 당한 모습입니다. 이외에도 풍재에 대한 언급이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상8: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왕하19:26) 그러므로 그 거한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저희는 마치 들의 풀 같고 나물 같고 지붕의 풀 같고 자라기 전에 마른 곡초 같으니라
(대하6:28)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사27: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겔17:10)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호13:15)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욘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우리가 위의 구절들을 살펴볼 때 이스라엘 지방에서 뜨거운 바람은 어느 쪽에서 불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동쪽입니다. 그곳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광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불어닥치는 뜨거운 바람은 굉장히 피해를 줍니다.
풍재 자체가 무서운 재앙인데 거기에 무슨 재앙이 겹쳤습니까? 깜부기 재앙이 겹쳤습니다. "깜부기"라는 말의 원 뜻은 히브리어로 "노랗다"는 뜻입니다. 병이 들어서 노랗게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식량으로나, 짐승의 사료로조차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내셨습니까?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가뭄으로 남은 것을 풍재와 깜부기로 치셨습니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팟종이를 보내서 하나도 남김없이 싹 쓸어 버리셨습니다.
팟종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말인데도 얼른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표준어로는 "팥중이"라고 부릅니다. 팥 가운데 있다고 해서 팥중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팥중이는 메뚜기의 일종입니다. 욜1:4을 한번 찾아봅니다. 거기에 보면 메뚜기 종류들을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욜1: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이스라엘에 있는 메뚜기는 우리 나리에 있는 자그마한 메뚜기와 다릅니다. 적어도 밀 이삭 크기만합니다. 밀 이삭이 우리 손가락 굵기와 길이 만하지요. 보기에도 무서운 놈들입니다. 떼를 지어 날아올 때는 하늘이 온통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겁나게 몰려옵니다. 그 앞에서는 남아나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팟종이가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했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싹 쓸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동산은 꽃동산이 아니라 나무로 이어진 과수원을 이야기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 할 때의 동산입니다. 에덴 동산도 각종 실과를 맺는 나무들로 구성된 곳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포도원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란 반드시 있어야 할 음료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사람이 먹는 식량 뿐 아니라, 과일이나 포도주 등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무화과나무"입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겨먹는 과일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감을 말려서 곶감으로 만들어 겨울철에 먹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화과를 말려서 곶감처럼 만들어서 즐겨먹습니다. 오랫동안 저장해놓고 먹을 수 있는 무화과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감람, 곧 올리브는 식용으로 쓰입니다. 또는 등잔을 피울 때 연료용으로 쓰기도 하고, 상처에 바르는 약용으로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방면으로 많이 쓰이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풍재와 깜부기와 팟종이로 이스라엘을 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저들에게는 사람이 먹을 식량은 말할 것도 없고 짐승에게 먹일 사료도, 과일도, 마실 포도주도, 요리나 약용으로, 또는 연료용으로 쓸 기름도 전무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거니와 이러한 재앙은 절대로 우연하게,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내리신 재앙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자신의 마음에 이러한 재앙을 깨닫고 범죄한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와야 했습니다. 왕상8:37∼40 말씀을 찾아봅니다.
(왕상8:37∼40)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제일 먼저 기근을 보내셨고, 그 다음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저들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풍재와 깜부기와 팟종이로 저들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보여준 반응이 무엇이엇습니까?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번이나 기회가 주어졌지만 저들은 끝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점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회개인 듯 하지만 실상은 회개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스가 하나님이 심판을 경고할 때 저들의 마음속에 일면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벧엘에 가서, 또는 길갈에 가서 더욱더 열심히 희생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죄를 짓고 나서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그저 마음으로 뉘우치는 것만으로는 회개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 애굽 왕 바로도 여러 가지 재앙을 당하자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회개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참된 회개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죄에서 온전히 떠나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탕자가 허랑방탕하던 자리에서 완전히 떠나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란 과거의 죄에서 온전히 떠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들 회개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지적인 요소입니다. 머리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구나!" 이것을 머리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의 첫걸음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로, 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감정적인 요소입니다. 지은 죄로 인해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단계입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죄를 깨닫고 밖에 나가서 회개했습니다.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자기의 가슴을 쳤습니다. 어떤 죄많은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 인해 애통하는 정적인 요소입니다.
세번째로, 의지적 요소가 있습니다. 온전한 회개에는 반드시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끊어 버리고, 죄에서 갈라서야 합니다. 탕자가 자기의 죄를 깨달은 다음에 그냥 먼 나라에서 돼지를 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을 떠나서 아버지를 향해서 돌아왔습니다. 삭개오가 자기의 죄를 회개할 때 그냥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절반이나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습니다. 그 나머지로 자기가 토색한 것에 대해서 네 배나 갚아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회개는 죄를 끊어 버리는, 단절해 버리는 의지적 결단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시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온갖 더러운 죄를 온전히 뉘우치고 회개하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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