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강 이스라엘에 내린 두번째 재앙(4:7-8)
4:7-8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내리셨던 두번째 재앙은 첫번재 재앙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첫번째 재앙은 기근, 곧 흉년이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가뭄입니다. 두번째 징계로 내린 것이 바로 가뭄, 곧 한발이었습니다. 7절 상반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4: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우선 여기에 보니까 비를 내리게 하기도 하고, 비를 멈추게도 하는 주어가 무엇으로 표시되어 있습니까? "내가"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가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비가 오고 안 오고 하는 것이 우연한 기상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음을 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 보니까 "추수하기 석 달 전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된 곡물은 밀과 보리입니다.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때는 대략 5월에서 6월 경입니다. 그러면 추수하기 석 달 전은 언제입니까? 2월에서 3월 경입니다. 이때는 시기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잠시 이스라엘의 기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와는 달라서 여름철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겨울철에 들어서면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겨울철 우기는 대체로 3기로 나누어집니다.
1) 이른 비
이른 비는 10월 초부터 11월 하순에 걸쳐서 내립니다. 이 비가 해주는 역할은 땅을 부드럽게 해주어서 경작하기 쉽게 해줍니다. 따라서 이른 비가 충분히 내리면 "아하! 금년에는 풍년이 들겠구나!"는 서광을 비추어줍니다.
(신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2) 큰 비(또는 겨울 비)
이 비는 12월 중순에서 2월 말에 걸쳐 내리는 비입니다. 상당히 많이 내리는 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물을 받아서 1년 동안 식수로 삼습니다.
(스10:9)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스10:13)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욥37: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그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슥10:1)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3) 늦은 비
이 비는 3월 경에 내리는 비입니다. 곡물을 결실케 하기 때문에 축복의 비로 여겨졌습니다.
(렘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렘3:3에서는 이 비를 가리켜 단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렘3: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는 무슨 비겠습니까? 이른 비겠습니까? 큰 비겠습니까? 늦은 비겠습니까? 늦은 비를 가리킵니다. 곡물이 제대로 영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비가 늦은 비입니다. 그래서 추수하기 석 달 전이라는 결정적인 시기에 하나님께서 비를 멈추게 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큰 징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읽어봅니다.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에서는 참으로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나라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 비가 와도 부산에는 안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릅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좁기 때문에 기상학적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상 건기인 여름철에는 구름 한 점 안 보이다가 우기인 겨울철에는 비가 여기저기 가릴 것 없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 지방에서는 비가 오는데 다른 지방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경우를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의 단순한 기상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배후에 누구의 손길이 작용했다는 것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를 내리시는 분도 하나님, 비를 멈추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8절로 넘어갑니다. 8절은 7절에 대한 결과를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4:8) 두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두세 성읍"은 복수입니다. 그러나 "어떤 성읍"은 한 성읍으로 단수입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비가 온 성읍이 많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은 성읍이 많다는 뜻이겠습니까? 비가 오지 않은 성읍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가 조금이라도 온 한 성읍이 비가 전혀 오지 않은 두세 성읍과 물을 함께 나누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타는 목으로 비틀 거리며 마실 물을 찾으러 갔지만 비가 내린 성읍에서도 마실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두번째 재앙이 첫번째 재앙보다 강도가 더욱 심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가물어서 농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농사짓기에 필요한 물은 고사하고서라도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목이 타든지 "비틀거린다"고 했습니다. 극심한 가뭄을 생생하게 잘 묘사해주고 있는 말인 줄 압니다.
성경에 보면 대표적인 가뭄이 언제 있었습니까? 엘리야 때 몇 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습니까? 삼 년 동안 우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왕상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왕상18: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우로가 무엇입니까? 비와 이슬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비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슬입니다. 농작물들이 이슬을 받아서 습기를 보충하고, 또 짐승들도 이슬에 젖은 풀을 뜯어먹음으로써 갈한 목을 축입니다.
아무튼 이런 극심한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한탄하는 가운데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지는 않습니까? 그곳에서 돌이키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우신 마음을 우리가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오른 눈이 실족케 하면 빼내버리라 두 눈 다 가지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한 눈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너의 오른 팔이 너를 실족케 하느냐? 차라리 찍어 버리라. 두 손 다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잘못된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그대로 가고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의 안타까운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길로, 바른 길로 돌아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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