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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강 욕심을 버립시다(11:18-19)

by 【고동엽】 2022. 4. 14.

제111강 욕심을 버립시다(11:18-19)

 

11:18-19
그 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많이 취할 것이나 한 대장이 있어서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남방 왕의 나이가 어린 틈을 타서 북방 왕은 전국의 힘을 다해서 남방을 치기 위해 내려왔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간섭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북방 왕은 남방 왕과 화친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방 왕은 자기의 딸을 남방 왕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북방 왕은 자기 딸이 자신의 편이 되어서 남방 왕을 잘 조절해서 결국은 남방도 자기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북방 왕의 딸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오히려 자기의 남편 편에 섰습니다. 결국 북방 왕이 세웠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북방 왕은 남방 왕의 아내가 된 자기 딸에 대해서 심기가 대단히 불편했고, 또 중간에 개입한 로마 제국에 대해서도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 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 제국에 대해서 언짢게 생각했던 북방 왕은 삼백 척의 배를 동원해서 지중해에 있는 섬들과 또 지중해에 있는 해안 도시들을 침략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이 취할 것이나." 섬들도 많이 정복하고 또 해안 도시들도 많이 취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서 한 대장을 보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키피오(Scipio)였습니다. 그는 터키의 마그네시아라고 하는 곳에서 북방 왕과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방 왕은 그 싸움에서 대패했습니다.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처음에는 로마가 수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로마는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로마는 지금까지 당한 수욕을 북방 왕에게 다 돌렸습니다. 그 결과 북방 왕은 굴욕적인 조약을 로마와 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북방 왕은 대부분의 영토를 로마 제국에게 바치게 되었습니다. 또 북방 왕은 자기 아들을 비롯해서 20명을 인질로 로마 제국에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배상금으로 엄청난 금액을 로마에 바쳐야만 되었습니다.
1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북방 왕은 로마에 약속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자기 땅 산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어느 신전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보물들을 약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쳐 넘어지고." 신전을 지키고 있던 주민들에 의해서 그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북방 왕은 로마 제국에 바칠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신전을 습격하다 결국은 성난 군중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북방 왕의 욕심이 너무 과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영토를 잘 통치하면서 살면 될텐데, 그는 그것에 만족을 삼지 못하고 남방도 공격하고,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는 섬들도 공격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뜻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약1:15의 말씀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북방 왕은 얼마든지 자기의 영토 속에서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다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였던 톨스토이가 남긴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임금 한 분이 갑자기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내 병을 고치는 사람에게는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지혜로운 사람이 왕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왕의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으셔서 그의 속옷을 왕께서 입으시면 왕의 병이 다 나을 것입니다."
왕은 신하들을 보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이 곳곳을 다녀도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돈이 없었습니다. 건강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부인에게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자녀들이 속상하게 하든지 그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왕자가 신하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다 쓰러져 가는 집안에서 찬송소리가 울려 나오고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주 감사에 찬 기도 소리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거리가 충분했습니다. 이제 배도 부르니까 제가 잠을 자야되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왕자는 그 기도 소리를 듣고 자신이 지금까지 찾았던 행복한 사람을 이제야 비로소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하들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왕자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서 사례를 충분히 할테니 그의 속옷을 좀 벗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한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속옷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행복은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만족에 있다(Happiness consists in contentment)." 행복은 내가 얼마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에 달려있지도 않습니다. 자기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의 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합3:17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합3:18의 말씀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에벤에셀로 인도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나와 늘 함께 하시면서 나의 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 혼자 걸어가는 삶이 아닙니다. 주님과 더불어 걸어가는 삶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이 하루를 보낸다는 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오늘도 감사가 넘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욕심을 버리십시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삽시다. 하나님이 주신 이 하루의 삶을 감사하면서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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