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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강 틈도, 허물도 없는 사람(6:4-8)

by 【고동엽】 2022. 4. 13.

제60강 틈도, 허물도 없는 사람(6:4-8)

 

6:4-5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기명들을 가져다가 술을 마시고 하나님을 모독하던 벨사살 임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술잔치를 벌이던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 나라도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때 나라를 얻은 다리오 임금은 바벨론 박사들의 어른이었고, 총리 대신을 지냈으며 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읽고 해석하였던 다니엘을 메대 바사 나라의 총리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함께 총리가 되었던 다른 두 사람과, 120명의 방백들 가운데 주로 바벨론 근처에서 일을 했던 일부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였습니다. 왕이 특별히 다니엘을 총애했기 때문에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니엘의 지금 나이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기들은 젊지 않습니까? 젊고 능력 있는 자기들보다 늙어서 활동도 제대로 못할 다니엘을 왕이 높이 세웠기 때문에 다니엘에 대해서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다니엘은 유다의 포로 출신이었습니다. 자기들 같은 메대와 바사 출신을 제쳐놓고 유다 포로 출신을 총리로 세웠기 때문에 더욱 시기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자제를 했어야 했는데 다니엘을 시기해서 음모를 세웠습니다. 단순히 다니엘을 지위에서 내쫓고자 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죽이고자 하는 무서운 음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들이 파놓은 함정에 자기들이 빠진 꼴이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쳐놓은 올무에 자기들이 걸려들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집어넣었지만 결국에는 자기들과 심지어는 처자들까지 사자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반대의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서 장대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르드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만이 그 장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라 남이 나보다 잘 되면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겨내야 합니다.
다른 두 총리와 방백 중 일부가 다니엘을 시기해서 음모를 세웠는데 어떤 음모였는지 보십시다. 4절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대단한 찬사가 아닙니까? 다니엘은 총리 대신이므로 나라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 하는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또 그 밑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수많은 사람을 대하는 일 가운데 국사에 대해서는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시든지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 대해서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세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가 충성되어." 다니엘은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왕에게 충성하는 척하고 뒤돌아 서서는 왕에 대해서 불평하고 비판하고 왕의 흠을 잡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변함없이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아무 그릇함도 없고"라고 했습니다. 정직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안될 일을 눈감아 준다거나, 바로 될 일도 질질 끌어 안되게 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명정대하고, 사심 없이 정직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세번째로,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원문의 뜻은 성실하다, 게으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꾀부리지 않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철저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부지런했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다, 귀찮다, 다음으로 미뤄라"라고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 나라 공직자들이 모두 이런 마음으로 일한다면 우리 나라가 달라질 것입니다. 충성과 정직과 성실,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이렇게 되기를 기대하기에 앞서서 우리 자신이 먼저 충성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다음 5절을 보세요. 국사에서 다니엘의 흠을 잡아내려다 실패하고 나서 이 사람들이 두번째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번에는 종교적인 문제를 가지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다니엘로 하여금 갈등을 일으켜서 올무에 걸리게 하자는 책략을 세웠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다니엘의 신앙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은밀하게, 남들이 모르게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신앙이 철저한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다니엘의 신앙은 모든 사람 앞에 공개적으로 내놓은 신앙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돈독한 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예수 믿는 사람이더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을 숨기려고 합니다. 세상 짓 할 것 다 하고 부끄러우니까 드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인정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울러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왕명이라도 거부하는, 능히 하나님의 법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종교적인 음모를 세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된 충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참된 충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참된 충성을 바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째로, 시간적인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임금 때나 벨사살 임금 때나 다리오 임금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길 때 시간의 관문에 걸려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룟 유다입니다. 약 2년 동안 예수님을 잘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3년째 넘어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데마는 어떠했습니까? 데마도 처음에는 사도 바울을 잘 따랐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시간의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이틀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주님 앞에 가는 그 시간까지 변함없이 하나님께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겠다고 서원했으면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새벽기도 잘 나오시다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지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 세 끼 밥 먹는 일은 안 지치느냐, 하루 24시간 숨쉬는 것은 피곤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말 안했습니다. 속으로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니엘처럼 끝까지 시간의 관문을 통과해야 할 줄 압니다.
둘째로, 환경의 관문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진짜 충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교회에 나와서 부르짖고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다가 좀 편안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신앙이 뚝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일이 잘 풀려나가면 잘 믿다가도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의심하면서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잘할 때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잘 못할 때는 "이놈!"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 대씩 올린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럼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인도하심에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으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까지 끌려갔습니다. 그렇다고 원망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이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크게 들어 썼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전적으로 다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따르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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