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애굽으로 내려갈 예언! (창 15:8-21)
우리 인생의 삶에는 승리가 있고, 또 패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가 하면 실패하고 낙오자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과 승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기쁨과 영광을 가져다주지만 우리가 패배하거나 낙오자가 될 때는 수치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승리와 성공은 우연히 또는 요행의 결과로 생겨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배후에는 반듯이 그 원인과 비결이 있습니다. 피나는 노력, 끊임없는 연구, 또 자기와의 싸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 이런 것들이 성공자의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 한때 세계 올림픽 대회에서 맨발의 마라톤 선수를 이름을 날린 에티오피아의 인간 기관차 아베베 선수를 기억하시지요? 근위대 장교 출신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그는 4년 후 세계 올림픽 동경 대회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또 영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 뒤 아베베는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허리를 다쳐 꼼짝하지 못하는 불구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제 그의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4년 후 런던 척추장애자 올림픽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런 그가 후에 고백하기를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의 승리의 비결은 자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 신앙생활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제목 소개!▶
창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신앙이 약간 약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도 주셨고, 승리도 체험하게 했는데 그의 신앙이 내려갔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도 믿고, 생활 속에서도 체험도 하면서도 가끔 가다가 딴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약해진 것을 아시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하신 장이 바로 본문의 15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의 군대를 가지고 그돌라오멜 왕과 그의 연합군 그러니까 바벨론의 네 왕을 쳤는데 죽인 것이 아니고 쫓아버리고 승리했기 때문에 '저들이 다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이 생겼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이상 중에 오셔서 '걱정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가 되어 막아 주겠다. 막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고 다시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큰 상급'이란 하나님 그 분이 우리에게 큰 상급을 주시는 분인데 이 말씀 속에는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저를 사랑한다고 생각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내가 예수 믿지 않으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하나님을 알아 가는 지식과 믿음이 커지면 그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심을 굳게 믿어집니다. /아멘!/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은 소유격입니다. 나의 하나님 그 분의 상급이 되심은 무한합니다. 사람의 상급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부족할수록 아무도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상급 되심은 내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영혼까지 채웁니다. 우리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유한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영혼까지 온전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상급은 순간이 아닌 영원까지입니다. /믿/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그 말씀을 듣고 하는 말이 '하나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말씀도 좋고 상급이 되신다는 것도 좋으신 데 그것을 받으려 해도 받을 그릇이 있어야 받지요, 아들도, 딸도 없으니 그러니 엘리에셀이나 복 받게 해 주세요, 그가 내 상속자가 되겠나이다.'하고 우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듯이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자가 후사가 되겠다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별을 만드셨는데 아브라함의 후손이 별처럼 많게도 능히 하실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퍼덕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더니 하나님이 그를 의롭게 보셨습니다. '그래 이제야 네 믿음이 올바르게 되는구나, 맞다, 옳다' 그리고 나서 7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땅은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을 말하는데 아브라함이 싸움을 잘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셔서 얻은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한 마디로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영혼은 물론이고, 우리의 생활의 구원도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영혼 구원을 믿는데 생활구원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영혼 구원은 눈에 안보이므로 '믿사오니' 해도 누가 알 까닭이 없지만 생활문제에 있어서는 금방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믿습니다.' 했다가 그대로 되지 않으면 어쩔까 싶어서 겁을 많이 냅니다.
그러나 생활문제도 금방 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뒤에서 나오겠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400년 후에 주셨습니다. 지금은 아브라함이 쓸 만큼만 주셨습니다. 현재 아들, 딸은 없는데 땅만 수천만 평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중에 400년 후에 더욱 정확하게는 430년 후에 이스라엘 인구가 약 200만 명이 되었을 때 주셨습니다. 그래야 그 땅을 제대로 이용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만약 말씀하실 때, 그때 다 주셨다면 다 묵혀서 못 쓰는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실 때도 감당할 만큼만 계속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갈대아 우르에게 불러냈습니다. 사실 갈대아 우르, 그 땅은 기름진 땅입니다. 곡식도 잘 되고, 물도 풍부합니다. 그 땅에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흐릅니다.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버리고 메마른 땅 가나안 땅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메마른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할/ 여러분! 아무리 메마른 곳이라도 그러니까 불경기나 엉겅퀴의 삶이라도 하나님이 개입해주시면 젖과 꿀이 나오게 됩니다. /믿/
7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너의 기업을 삼게 하리라'고 하니까 8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식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8절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라함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분명한 증거입니다. 확실히 내가 안심할 수 있는 증거를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만으로 충분합니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분명히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신뢰하게 할 만한 또 다른 증거를 요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함이고 한계입니다.
'무엇으로 알리이까?' 남의 나라에 와서 한쪽 들판을 얻어 살고 있는데 이 땅을 다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좀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강병도 주석학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나, 불 신앙의 반문이 아니다.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한 질문'이라고 주석을 하셨습니다.
삿6:17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니가 나가서 미디안을 치라 그리하면 이기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하나님! 저는 농부인데 무슨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표적을 보여주십시오!' 그 때 그 유명한 양털의 표적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확신을 얻고 달려나가 크게 승리했습니다. /할/ 히스기야 왕도 이런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해 그림자가 십 도나 뒤로 물러가게'하셨습니다. 왕하 20장의 사건입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못 믿어서 증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표적 구하는 자를 책망'하셨습니다.
말씀을 못 믿고 표적을 자꾸 구하는 것은 자기 아버지에게 아버지인 증거로 보여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양을 보기 위해 촛불을 들여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복을 받습니다. /할/ 아브라함도 우리와 똑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답게 '이 땅 전부를 나에게 주신다니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할/아멘!/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증표를 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9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9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라, 내가 약속의 증표로 그 제물을 열납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은 한 마디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란 증거요,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증거입니다. /믿/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아브라함은 자신이 받은 땅을 위하여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땅은 왜 주신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할/
여기서 삼 년 된 것을 강조했습니다. '삼 년 된'이라는 표현에서 숫자 '3'은 작은 규모의 완전 숫자를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3일, 3주, 3개월, 3년, 성부·성자·성신 등, 이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합니다. 완전한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삼 년 된'이라는 것은 '완전히 성장한 것, 온전한 것, 아름다운 예물을 나에게 가져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가 3년이 되면 논밭을 갈 수 있고, 새끼를 나올 수 있습니다. 장성한 소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물도 완전한 것을 드리라'는 말은 '아브라함 자신도 성숙한 장성한 믿음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제물은 곧 자기를 의미합니다. 암소가 바로 자신입니다. 곧 내가 죽습니다. 이것이 제사입니다. 그리고 집비둘기, 산비둘기까지 드리라는 것은 재산의 종류를 총망라해서 다 드리라는 것입니다. 소, 염소, 양, 비둘기, 소위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재물을 다 드리라는 것입니다.
소와 염소와 양은 그 당시에 가장 귀한 재산입니다. 소를 이용해서 농사도 짓고 또 그 고기를 먹기도 하고 우유도 마시고, 털로 의복도 만들고 그 가죽으로는 장막집도 만들었습니다. 재산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 가장 중요한 재산을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번제란 지금말로 하면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을 보고 '네가 죽으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네가 말할 때 왜? 예, 아멘하지 못하느냐? 너의 이성과 머리를 죽이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텐데 무슨 증표를 보여 달라고 그러느냐? 네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고 믿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 자기 생각, 자기 고집을 꺾으면 참 자유롭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살면 사람이 피곤합니다.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자기를 죽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마음대로 부리십니다. 이때 우리가 참 자유자가 됩니다. /아멘!/ 이제 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10절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몇 종류의 짐승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절반으로 쪼개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절반으로 쪼개어 놓으라고 하신 것을 볼 때 이것이 제사의 제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물은 각을 떠서 놓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로 태워야 하고 비둘기도 찢어야 합니다.
이것은 제사가 아니라 고대 사회의 계약행위입니다. 중요한 약속을 할 때에 이렇게 했습니다. 짐승을 죽여 둘로 갈라놓고 그 사이를 지나면 계약이 성립됩니다. 짐승을 둘로 갈라놓는 것은 만약에 계약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이 짐승처럼 한 편이 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건 계약입니다. 그런데 여기 짐승이 여러 마리인 것은 이 계약의 심각성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약속이라는 강함이 묻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짐승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개진 것을 마주 대해 놓았습니다. 여기 제물들은 중간을 쪼개었는데 쪼겠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는 쪼개지 않았는데 어떤 주석 가들과 목사님들은 새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벌을 받아서 캄캄함이 임하였고, 또 400년 동안 후손이 애굽에 내려가 고생하게 되었다고 주석을 하였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레1:17절과 5:8절에 새를 재물로 드릴 때 아주 쪼개지 말라고 했으므로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은 큰 재물이나 적은 재물이나 완전히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완전히 죽겠나이다.' 하는 자세로 잘 순종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쪼개지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시51:17절에 다윗 왕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 앞에 마음을 깨뜨리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쪼개고,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욜2:12-13절에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교만한 마음을 찢고, 완악한 마음을 찢어버리고, 절망과 불 신앙과 탐욕과 모든 잘못된 것을 깨뜨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할/
막14:3절에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그 신앙을 칭찬 받았습니다. 영원히 기념할 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깨어지는 자세, 겸손한 자세로 나가야 됩니다. /믿/
중세 영국의 신학자인 '로저 베이컨'은 '다른 것들은 찢어지는 것으로 더 악화된다. 그러나 마음은 찢어질 때 비로소 최선의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찢어지면 쓸모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찢어지고 깨진 마음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시간을 쪼개서 하나님께 바쳐야 됩니다. 물질도 쪼개서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되고, 내 재능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써야 되는 것입니다. 체면을 깨뜨리고 자아를 깨뜨리고, 탐욕과 교만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실 때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우리의 심령을 지나가서 성령 충만 받게 됩니다. /아멘!/
히브리 격언에 '신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흙이 깨지고 부서져야 곡식을 내고, 곡식이 부서졌을 때 빵이 되고, 빵이 부서져서 우리 몸의 에너지가 됩니다. 포도도 깨질 때 포도주가 됩니다. 하나님은 깨지는 과정을 통해서 역사 하시고 은총과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할/
▶11절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가 온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을 마귀가 삼키려는 것을 뜻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 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합니다. 여러분 축복이 온다고 하면 꼭 시험이 옵니다. 은혜 받고 난 뒤에 꼭 시험이 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에 마귀가 와서는 늘 방해합니다. 그때에는 마귀를 쫓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좇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때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아멘!/
우리가 예배드리는데 솔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온전히 죽고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려고 할 때에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방해를 놓습니다. '졸음이 온다든가 괜히 수도꼭지는 잠갔는가? 또 가스를 잠갔는지?' 별 생각이 다 예배를 방해합니다. 기도할 때는 마귀가 방해하는 생각을 넣어줍니다. 이럴 때 마귀를 쫓아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독수리보다 작은 솔개가 와서 방해하며 재물을 가로채려 합니다. 작은 것이 올 때는 쫓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작은 마귀의 역사를 용납하면 나중에는 점점 큰 것들이 날아와서 더 큰 방해를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역사는 처음부터 쫓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솔개를 쫓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재물로서 제사를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12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예언하십니다.
▶12절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해질 때' 해질 무렵 아직 제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을 때에 아브라함이 잠이 들었습니다. 신앙의 잠이 든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때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신앙의 잠이 깊이 들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을 너무 솔직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이 졸은 것까지 다 기록되었습니다. 한때 요나도 엘리야도 신앙이 졸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내려가면 안 됩니다. 신앙이 잠이 들면 두려움이 임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5: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할/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너는 정녕히 알라'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부터 후손들에 대한 중요한 예언입니다. 공동번역에는 '똑똑히 알아두어라'로 나옵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었고, 400년 동안 괴로움을 당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말합니다.
'사백 년 동안'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 사대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인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으로 400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애굽을 섬기게 했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제사 드리다가 잠깐 졸은 죗값으로 받은 징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제사 중 한 번 잠들었다고 그 자손을 400년 동안 종살이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강한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이 구절은 많은 정통학자들은 '이스라엘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예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객이 되게 하는 것은 은혜를 바르게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땅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 고난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주실 때는 대부분이 고난을 통과함으로 시작합니다. 욥이 그런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약1:2-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할/
▶14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이 훈련을 마치고 나올 때는 큰 재물을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원래 애굽은 금은보화가 많은 나라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나올 때, 금과 은과 동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후에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려면 그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시고 주신 것입니다. /할/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 찌며' 한마디로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심을 말씀하십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때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도 하시고, 그의 마음까지도 다스리십니다. /믿/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애굽으로 갑니까? 그러니까 요셉을 먼저 하나님이 보냈습니다. 그 뒤 가나안 땅과 온 세상이 흉년이 들게 됐는데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의 계시를 깨닫게 해 줌으로 요셉의 꿈대로 정치를 잘 한 애굽나라는 7년 흉년 기간 동안도 쌀이 풍부했습니다. 그때 요셉의 형제가 그곳에 가서 여러 가지 시험을 받고 드디어 형제임을 밝히고 그의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분명히 성취됩니다. 요셉이 살아있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영화롭게 해 주었습니다. 부자도 만들어 주시고 많은 백성들이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좀 잘 살게 되면 흥청망청하고 하나님을 외면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꼭 이스라엘 백성들과 꼭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모르는 왕 때에 이스라엘을 핍박하도록 허용하시고 또 모세를 통하여 사대만에 금은보화를 많이 가지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금은보화를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하며 춤추고 광란을 피웠습니다. 이것은 돈이 좀 많아지면 세상에 쾌락을 쫓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아브라함은 이 땅을 다 얻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400년 후 그의 후손이 얻게 됩니다. 그러나 너는 이 땅에서 나그네이지만 평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어느 때 평안합니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 평안합니다. /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평안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믿/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인 메소포타미아 땅으로 운구 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본향이 어디입니까?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갑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가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품으로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
▶16절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네 자손을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400년 후에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안착할 것을 예언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4대 만에 4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의 4의 수는 고난의 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훈련기간입니다. 세상에서는 4라는 수는 죽을 사자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의 때 하나님께 죽게 되어 있습니다. /믿/ 우리가 하나님께 죽어야 삽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여기 '관영'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뜩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죄악에도 도수가 있습니다.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 마는 도수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아모리 족속이 아직까지는 죄악의 도수가 차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400년 동안 기한을 두고 보자,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다른 방편으로 아브라함을 복 주실 것이요, 그들이 죄를 회개치 않고 도수에 차면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반대로 아모리 족속에게는 공의로 대해 주셨습니다. 그 땅을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는데 만약 하나님이 이것들을 다 죽이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면 아브라함 개인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치에 맞지 않으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곧 불의한 분, 편파적인 분이 되고 맙니다.
그들이 불평하기를 '왜 우리는 죽이고 이스라엘에게는 기업을 주시는가?'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의 죄가 환영할 때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 내려가 400년 동안 훈련 받고 나올 때 재물을 두어서 부자로 만드시고 그동안 아모리 족속은 죄가 넘쳐서 심판 받기에 마땅할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놔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하면 반듯이 심판하십니다. 나라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데 어지럽습니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을 보고 한탄할 것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알고, 죄가 클수록 그만큼 더 주님과 가깝게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이제 17절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모든 것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을 증거로 보여주십니다.
▶17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해가 져서 어두워 올 때에' 여기서 어두움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고, 흑암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두움이 더할수록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햇살을 높이 드시고 나타나십니다.
'풀무와 횃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 것으로 호렙산 가지나무 떨기에 붙은 불과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을 상징합니다. 그 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의 불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인도와 보호하는 불입니다. /믿/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더라' 하나님이 그 재물을 연랍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 아브라함아 너의 죽은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예배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소리 지르며 엎드리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부족하여 죽은 죄인이로소이다. 아버지 앞에 올 수가 없는 죄인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왔나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들겠나이다.' 완전 굴복을 표하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나이다.' 하고 엎드릴 때 응답의 불이 떨어졌고, 이제 18절에서는 언약을 세밀하게 경계를 주십니다.
▶18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가나안 땅의 경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입니다. 서쪽으로는 유브라데가 경계이고, 남쪽으로는 애굽의 강이 경계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을 당시는 이 모든 지역을 차지하지 못했었고, 훗날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릴 때 이 국경지역을 완전히 차지했답니다.
여기 '주노니'의 원어적인 말은 '내가 이미 주었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의 언약의 재확인이요, 인준까지 마친 계약 완료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마12:28절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심으로 천국이 이미 임하였다고 하셨고, 요3:36절에서는 '주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이미 저 영적인 가나안 새 하늘, 새 땅을 물려받은 주인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할/
이제 19-21까지는 세밀하게 가나안 땅에 일곱 부족이 살고 있는데 그 족속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붙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9-21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여기서 가나안 사람이란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으로 저주받은 백성을 의미합니다. 비록 하나님이 허락한 곳에 다른 민족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그들은 하나님이 다 심판하고 쫓아내어 이루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고 개척해 나가십시오! 그리하면 홍해수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지금도 무너지는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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