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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강) 노아가 받은 축복! (창 9:1-17)

by 【고동엽】 2022. 4. 12.

(제18강)         노아가 받은 축복! (창 9:1-17)

 

  어느 교회 목사님의 부친께서 예배시간만 되면 맨 앞줄에 앉아서 꾸벅 꾸벅 졸기만 하십니다. 목사님이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졸고 있으므로 교인을 보기에 민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루는 묘안을 냈습니다. 어린 자기 아들을 불러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가 할아버지가 조시면 꾹꾹 찔러서 깨워드려라. 그러면 500원씩 주마' 어린 아들에게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돈 500원을 받는 재미에 할아버지 옆에 바짝 앉아 할아버지가 졸 때마다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 열심히 깨웠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할아버지가 졸고 있는 데도 깨우지 않고 있어 이유를 물어 봤더니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천 원을 선불로 받았다'고 하더랍니다. 돈의 위력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할/ ◀제목 소개!▶

 

  지난 시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와 맨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고 8:20절 이하에 기록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즉 다시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물로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9장으로 넘어 왔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감사와 경배를 드릴 때에 더욱 귀한 은혜의 약속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입은 후에도 계속 은혜 안에 거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할/
  하나님은 은혜 입은 자들에게 계속 명령과 약속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먼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할 때만이 더 큰 은혜를 입게 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살았고, 그 명령을 지켰더니 복을 주십니다.
  1-7절까지는 구원 받은 노아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야기합니다.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는 여기서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상이 복을 주는 줄 압니다. 그래서 돌에다가 나무에다가 무당에다가 정성을 들여 복을 빕니다.
  ▶저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에 저와 동기인 백민기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백 목사님이 예수 믿기 전 젊었을 때 군납을 했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암자를 찾아가 무당에게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굿을 부탁했습니다. 당시 쌀 50가마를 주고 굿을 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기꾼에게 걸려들어 몽땅 망해버렸습니다.
  다시 그 암자에 찾아가 사기 맞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놓겠느냐고 물었더니 정성이 부족했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굿을 하라고 그래서 또 빚을 내서 굿을 시작하고 그 해 서울 변두리 지역에다가 스케이트장을 크게 개설했습니다.
  땅 빌리는데 돈 들어가고, 사람을 사서 시설하는데 돈 들어가고 이것, 저것 준비가 다 되어갔는데 그 해 따라 겨울 날씨가 봄 날씨라 겨울방학 다 가도록 두 번 얼음이 얼고 한번도 얼지 않았다고 합니다.
  폭삭 망해버린 이 양반은 잔뜩 술을 먹고 그 무당 집에 찾아가 불상을 들어 박살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불상 속에서 구질구질한 묵은 신문지가 쏟아져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퍼뜩 깨달은 것이 '저런 석고상으로 만든 불상이 무슨 복을 줄 수 있겠는가?' 크게 깨닫고 왔다고 합니다. 그 양반 그 뒤 깨닫고 예수 믿고 지금 목사가 되어 교회를 크게 짓고 목회를 얼마나 잘하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복의 근원임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축복하실 때마다 공식적으로 쓰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을 때 저주받도록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하고 불행하도록 만드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처음 만드셨을 때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본래 복 받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저주가 인간들의 삶 안에 들어왔습니다. 가난이 들어오고 병이 들어왔습니다. IMF가 들어오고 부도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모든 부분에서 치료하십니다.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하십니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뒤에 나옵니다 만은 무지개를 통해서 이 언약을 확증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말은 '뻗어나가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에서 몇 군데 나옵니다.
  ①창1:28절에 보면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②35:11절 이하에 보면 야곱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주신 즉, 야곱의 삶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킨 다음에 새 이스라엘이 된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역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입니다.
  ③48:1-4절에 보면 야곱이 그의 아들 요셉의 두 아들 즉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 품에 안고 축복하신 기도 가운데도 역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빌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3대 축복이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한 삶'입니다. /믿/ 당시 아담에게 노아에게 야곱에게 또 요셉의 두 아들들에게 허락하신 이 축복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내려올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⑴생육하라: 생육하라는 이 말씀의 원어를 보면 '열매를 맺으라' 또는 '자식을 낳으라'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맨 먼저 가정을 세우시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생육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자녀의 열매입니다. /할/
  ⑵번성하라: 이 말씀은 양육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낳은 자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본래의 모습 그대로 우리가 양육시킬 책임이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⑶충만하라: 번식의 축복을 받아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룸으로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충만케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한 삶, 은혜 충만, 생활 충만, 건강, 물자, 기쁨 충만한 삶'을 우리 모두 누리십시다.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해서도 이 말씀이 적용됩니다.
  엡2:13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지체가 되어 참 행복한 교회라는 이 교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
  ⑴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육시켜야 합니다. 열매를 계속 맺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제자로 선택받은 귀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해 주신 것은 '생육' 즉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은 생활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열매 맺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⑵번성하라, 즉 양육하라는 말입니다. 전도되어진 새로운 성도들을 우리가 잘 양육시켜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우리가 초 신자들에게 사랑을 쏟고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어 잘 양육해 놓으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충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 성도들은 한 영혼이 한 영혼씩 전도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하나님은 먹는 음식에 대한 축복을 주십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먹어야 삽니다. 구체적으로 의식주의 문제가 시급합니다. 하나님은 의식주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먹는 문제에 대한 축복을 하셨습니다.

 

  ▶3절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방주 안에 있다가 나온 동물들을 보여주면서 이 동물들을 잡아서 너희의 식물로, 너희의 먹이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마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들을 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노아가 볼 때는 놀라운 일이요, 식생활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홍수 이전의 인간들은 고기를 못 먹고 채식만 먹었기 때문입니다.
  창1: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육식을 허락지 아니하고 채식을 하도록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되어진 것은 모든 식물과 그 열매입니다. 그런데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채소처럼 육식을 먹어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산 동물이라고 하신 것을 보니 죽은 동물은 먹지 말라는 말씀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식량 문화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채식을 했으나 홍수 후부터는 육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악해짐에 따라 식물도 달라졌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과일만 먹고살았고, 범죄 하여 쫓겨난 다음에는 농사를 지어서 채소와 씨 맺는 열매를 먹도록 하였으며, 홍수 후에는 동물들까지 먹게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실과만 먹었어도 건강을 유지하였으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곡식과 채소를 먹어야 건강이 유지되었고 홍수 이후부터는 동물까지 식물로 먹어야 건강할 수 있었습니다.
  홍수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악해졌고, 또 육체도 허약해 졌으며, 그때부터 사람의 수명이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의사들이 말을 합니다. 인간의 갖가지 질병들은 그저 음식과 관계가 많다고 합니다. 채식을 주로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요즘 말하는 성인병이 적다고 합니다. 오히려 육식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병들이 많다고 합니다.
  4절에서는 음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한 가지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혹시 육식을 하게 되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까 싶어서 하나님께서 염려하신 뜻에서 이와 같은 경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4-5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고기는 먹되 피를 먹지 말라' 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십니까?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레17:14절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여러분!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는 생명을 구원한다고 하는 원리가 생겨났습니다. 병원에서 피가 부족하면 같은 혈액을 주사로 넣어주듯이 한마디로 육체의 생명, 피가 부족하면 죽게 됩니다. 그래서 수혈을 받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수혈 시켜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레17: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9: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구약의 제사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즉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기록합니다. 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진실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또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사람을 존경하면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 경우 고의로 계획하여 사람을 죽였을 경우를 말합니다. 지금도 치밀하게 계획을 하고 범죄하는 자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형벌과 다릅니다.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였으면 그 사람은 그의 마땅한 보응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실수했을 경우 '출. 민'에서는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도끼로 나무를 찍는데 그만 그 도끼가 빠져서 옆 사람의 뒤통수를 치게 되어 죽었다면, 이때 이 사람은 도피성으로 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지기에게 실수해서 사람을 죽였으니 보호해 달라고 말하면 철저하게 보호해 줍니다.
  그때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따라와서 내 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내 놓지 않습니다. 도피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6절의 교훈은 사람의 생명의 귀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살인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 되므로 엄중히 다스릴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 말씀은 곧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기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형 법은 폐지되어야 하는가? 안락사는 가능한 것인가? 자살은 허용되는가? 임신 중절은 합당한 것인가?'하는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손으로 끊으면 이것도 살인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떤 경우라도 생명을 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임신중절수술도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입니다. /믿/


  ▶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다시 한 번 1절에서의 축복을 주십니다. 1절에서 6절까지의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라, 그리하면 다시 한 번 이런 복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라, 잘 양육하라, 충만한 삶을 살아라, 이제 채소도 동물도 너희의 식물로 삼으라, 그러나 피는 먹지 말아라, 피는 생명이니라, 사람의 피는 흘리지 말라, 한마디로 살인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하면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번성하고 발전하는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할/
  베드로는 본문을 비교해서 세례로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성경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벧전3:20-21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홍수가 무엇을 표현한 것이냐?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셨는데 죽으시고 장사지낸 그것의 예표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노아의 8식구는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홍수 전에 그대로 이지만 홍수를 통과함으로서 옛사람을 홍수와 함께 장사지내고 이제는 주의 은혜로 방주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10:1-3절까지에서 이스라엘 애굽에서 나와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세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세례란 무엇이냐?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하는 것을 예표하는 예식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는 애굽(세상)에 속하였고, 건너왔을 때는 가나안(하늘나라)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소속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똑같은 사람들인데 홍해 저쪽에 있을 때는 죽은 것과 같고 건너온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노아 역시 홍수 심판이 지났으니 세례를 받는 것과 똑같은 사건이라고 베드로가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피조물입니다. 죄는 죽고 새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큰 은혜와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그냥 받는 게 아니고 새로운 사명과 함께 살라는 명령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사명 따라 살라는 그런 얘기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전도해서 열매를 많이 맺어 잘 양육시켜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만들라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8-1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십니다. 어떤 언약입니까?

 

  ▶8-10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의 어떤 계약과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 계약을 맺을 때는 상대방이 손해 보는 계약서에는 도장을 안 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잘 되라고 하는 은혜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수하시고 내가 너희들의 편지를 도모해 주리라는 마음으로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전히 일방적으로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또 모든 짐승들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도장을 안 받으시고 하나님 자신은 지키실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당신이 언약을 하시고 우리는 그 언약을 믿음으로 따르기만 하면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그 당시 노아의 경우 이 언약이 얼마나 축복이요 은혜인줄 모릅니다. 행여나 그들은 또 다시 홍수에 심판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워 떨고 있는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11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1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만일 이 은혜의 언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안정된 마음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을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믿음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시 언약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언약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때, 구원과 축복이 임하지만 거절한다면 엄청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언약은 홍수로는 다시 내가 심판하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시고야 맙니다. 사실 홍수 후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여러 번 심판을 하셨습니다.
  사사시대에 보면 이스라엘을 여러 가지로 심판하셨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기근, 지진, 천재지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더 큰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벧후3: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장차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올 터인데 그때는 하루에 모든 만물에 대 소동이 일어나 해와 달과 별들이 다 불에 녹아지고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서 불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노아 홍수 때에는 하늘은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땅만 심판하셨으나 장차 올 대 심판에는 불로 하늘과 땅을 아울러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올 대 심판은 얼마나 무서운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120년 동안이나 노아의 전도를 받지 아니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다가 홍수에 멸망당한 것같이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도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거부하다가는 마지막 심판 날에 불에 타서 녹아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심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이 없고 정죄가 없고 이 땅 위에 진정한 자유를 주리라, 평안을 주리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저 하늘나라를 유산으로 물려주신다는 언약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12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의 가족과 그리고 모든 생물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영원한 세상이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노아 이후로도 사람들은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 우리보다 더 악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어쩌면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이 그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타락했고, 훨씬 더 포학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판을 당하기로 할 것 같으면 이 세대 사람들이 더 크고 더 무서운 심판을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처럼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영원까지 계속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그 때는 불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믿/ 하지만 그 때까지는 인간이 어떤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은 온 인류를 단번에 멸하시는 그런 심판은 하지 않으시겠다는 이 약속이야말로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이요, 자비요, 축복입니다. /아멘!/  ▶13절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증표를 주십니다. 읽어보겠습니다.

 

  ▶13절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희망이 없는 사람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그깜'이라는 유명한 문학가는 '현대인은 불안에 떨고 있다'고 했습니다. 확고한 소명을 갖지 못하면 그만큼 불안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의 주님이 계십니다. 무지개는 활 모양으로 되었고, 공간에 걸어둔 것같이 보여 지는데 평화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무지개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면 태양의 광선이 지상의 수증기를 통과할 때, 태양의 광선이 일곱 가지 색깔이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학자는 영적으로 구약의 그림자로 보며 무지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십자가상의 예언을 예표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지개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 시켜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 도량입니다. 요14: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절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우리의 삶은 하늘에 있는 구름과 아주 친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구름은 자연의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도 있습니다. 때로는 역경의 구름이 때로는 슬픔의 구름이 때로는 질병의 구름이 실패의 구름이 몰려 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구름은 누가 주십니까?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구름을 여시고 무지개를 주십니다. 무지개는 소망이요, 기쁨이요,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 속에 구름도 걷어 가셔야 만이 무지개가 뜹니다. /믿/
  인생은 누구나 다 구름이 있습니다. 구름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구름을 바라보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구름 속에서 비와 폭풍을 바라봅니다. 이런 자들은 인생을 절망적으로 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구름 후에 있을 무지개를 바라봅니다. 이런 자들은 인생을 소망으로 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인생의 고통을 어떻게 지내야합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고통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두움을 사랑해야 합니다. 고난을 좋아하며 지내야합니다. 설교가 '마이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광스런 황금의 면류관 앞서 반드시 고난의 강철 면류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폴 투루니에'도 '사람의 성숙은 성공보다는 실패나 시련을 거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든 사람 중에서 참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게 됩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는 육신의 힘도, 자신의 명예도, 세상의 물질도, 세상의 권력도 의지하지 않은 철저한 복종이 바로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시련과 역경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훌륭한 항해사는 거친 바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꽃 중의 왕인 장미꽃은 가시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은 좋은 조건 속에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고통을 사랑하고 고통을 통해서 몇 가지 지혜를 배워야합니다. 그 지혜란 무엇입니까?
  첫째 고통을 직면하라! 고통을 해결하는 길은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고통은 도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치 고통이 없는 것처럼 감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직면하면 지극히 작아지지만 고통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무섭게 커지기 시작합니다. 고통에 직면해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과 마주쳐서 싸워야합니다. /할/
  둘째 고통을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고통이 주는 유익을 압니다. 문제는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고통은 아프지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고통은 교훈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고통 속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뜻은 고통 속에 죄인을 사랑하시는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15-16절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다시는 물이...홍수가 되지 아니할 지라' 직역하면 '홍수를 위한 물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세상  종말에는 물이 아닌 불로써 온 우주를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벧후3:10절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불의 심판하면 소돔성의 유황불 심판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정말 심판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이 말씀은 ]5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언제나 신실하게 준행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한편 언약의 징표인 무지개가 홍수를 막고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 따라서 누구든지 그 피의 공로를 덧입기만 하면 하나님의 진노에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요일1:7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할/

 

  ▶17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또 이르시되' 노아에게 재차 공식적으로 확언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증과 맹세는 비단 노아 뿐 아니라 홍수 후 전 인류가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낙심치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후손들과 모든 생물들까지도 사랑하셔서 그 주권적 섭리도 다시 홍수로는 땅에 있는 모든 사람과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하늘과 땅 사이에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더 귀하고 복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주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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