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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강)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 7:1-24)

by 【고동엽】 2022. 4. 12.

(제16강)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 7:1-24) 

 

  현대인에게 있어서 심각한 병중에 하나는 마음의 병입니다. 현대의학에서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병을 고치는 약은 겸손이라는 약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의 문이 잠겨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마음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교만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는데 교만을 부리기 때문에 병으로 봅니다. 흔히 돈 많은 사람이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물질이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임시 맡은 것입니다. 지식도, 재능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얼굴 잘생긴 것 가지고도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어거스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덕목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이 대답했습니다.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겸손이다. 둘째는 겸손이다.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있고, 거만한 사람이 있고, 오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⑴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자를 말합니다. 힘을 자랑하고, 지식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⑵거만은 한 마디로 웃기는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 힘도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며 뽐내는 자입니다. 이것이 거만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가잔다.'고 했습니다.
  ⑶오만은 종교적인 말로 하나님을 보고 주먹질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오만입니다. 오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실존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자기 또는 인간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 오만한 자의 종교는 휴머니즘이라고 합니다. 인본주의 인간 만능주의가 그분의 신앙입니다.
  오만한 자들은 사람의 일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려고 하며 사람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무시합니다. 이들의 모든 생각과 사상은 인간의 인본주의에 맞춥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자비합니다. 히틀러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무실론 자에다 신에 대해 증오심까지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통치하는 동안 가장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유태인들과 교회입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유태인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덩이에 몰아 놓고 생매장을 했고, 창고에 가두어 놓고 불을 질렀고, 가스실에 집어 놓고 죽여서는 그 죽은 사람으로 기름을 짜서 그 기름으로 전쟁터에서 불을 피우게 했고, 빨래 비누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부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때 구 소련이 미국보다 앞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모스크바 역사에는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주 비행 전시관에 가보면 가가린은 우상화하고 있답니다. 가가린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우주 비행사이면서 과학자였습니다. 그가 달나라를 갔다 와서는 큰 소리로 '내가 아무리 논을 비비고 봐도 우주 안에 하나님을 보이지 않더라'고 하나님은 비방하고 기독교를 비방한 사람입니다.
  그는 달나라를 갔다 와서 정치가의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달나라에 갖다 와서 6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교만은 마음의 병입니다. 교만을 고치는 약은 겸손 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합시다.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제목 소개!▶

 

  본문은 6장에서 예언된 홍수 심판이 120년 만에 성취되는 장면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어려운 상황과 조건을 극복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완성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노아의 일행이 방주에 다 들어가기를 마치자 밤낮 40일간 비가 쏟아졌고,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렸습니다. 이는 장마나 우기에 내리는 비가 아니었습니다. 이 비는 글자 그대로 물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 후 홍수는 150일 동안 땅에 창일(세상에 덮었고)했고, 이렇게 되니 땅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다 죽었습니다. 다만 노아의 식구 8명만 살았습니다. 방주에 있던 자만 살아난 것입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노아는 믿음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분처럼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당시 노아는 많은 사람들이 멸망할 것을 알고 불쌍히 여겨 열심히 전도하여 방주를 지을 것을 권하였으나 사람들은 노아의 소리를 미친 소리로 여겼습니다. '늙은이가 이제 망령이 들었구나!' 하고 거들떠보지도 안 했습니다.
  여러분 악한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리를 말하나 농담으로 여기는 시대가 악한 시대입니다. 여러분, 당시 노아의 가정이 홍수가 나서 물이 차들어 올 때 방주에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비가 오기 전에 날이 흐려지지 않을 때, 그저 하나님이 들어가라 명하심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얼마나 노아를 보고 비웃고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뒤 홍수가 시작되는 빗방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 이것이 정말 노아가 말한 홍수인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치기를 '아니 사람이 살다보면 맑은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지, 오늘이 처음인가?' 그러나 사흘, 나흘, 비가 계속되어 장마가 지고 물이 점점 불어 집에까지 들어오니 그제야 '이크! 정말 심판의 비가 오는 것 아니야?' 하면서 높은 산으로 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아의 경고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그 계획 속에는 경고가 들어 있고,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들어 있습니다. ▶제2차 대전 때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비행기로 경고 전단을 뿌렸습니다. '1945년 8월 6일 낮 12시에 히로시마 시에 원자탄을 투하하니 시민들은 모두 50㎞ 밖으로 대피하라'고 일주일 전부터 경고 전단을 살포했습니다.
  이것은 경고이고 예언입니다. 앞으로 될 일을 미리 알리는 선포입니다. 그 경고의 글 속에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살길에 대한 안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면 결국 자신들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전단을 받아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예언을 무시했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 메시지를 읽고 그대로 믿고 대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메시지를 믿었던 사람들만 살아남았습니다.
  1945년 8월 6일 정오, 약속대로 예언대로 원자탄이 히로시마 시에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뻔쩍 하면서 단 3초 동안에 3천도의 열을 동반한 원자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히로시마시의 30만 인구 가운데 20만 명이 순간적으로 죽음을 당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핵 방사능 때문에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비극입니다. 오늘날도 노아 때와 같이 '주님이 오실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 가서 책망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할/ 이제 진리를 외면하는 자는 머지않아 노아의 때와 같이 비참한 죽음의 순간이 기필코 올 것입니다. /믿/

 

  ▶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왜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이 말은 '네가 이 세대에 죄악이 만연할 때 네가 의롭게 산 것을 보았기'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나 이때나 상황은 똑같습니다. 얼마 전에 유영철이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잡혔는데, 또 강호순이라는 살인마가 잡혔습니다. 한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아 버리는 이런 세대야말로 죄악의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악이 만연된 세대 속에서도 '노아! 너는 오직 의롭게 살아왔음을 내가 너희 의를 보고 너를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할/
  여기서 의롭다는 말은 '옳다, 맞다'는 말로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한 자란 말입니다. 의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선지자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아무도 의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만은 이 세대에 옳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거역하였지만 너는 네 말을 믿고 순종했으니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①'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원어는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⑴마11:28절에서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받아주시고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기 위해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 초청에 응하는 자는 지금도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멘!/
  ⑵요7:37절에서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십니다. 기갈한 영이 물을 마심으로 만족을 얻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물은 바닷물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갈증이 납니다. 그러나 생명수를 마시면 진정 내 마음속에 만족과 행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믿/
  ⑶막10:21절에서 '와서 나를 쫓으라'고 하십니다. 선택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 쫓으라는 말은 '주어진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누구를 쫓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를 쫓을 때 조건이 있습니다. 마16:24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⑷요21:21절에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팽개치고 다시 갈릴리바다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같이 먹고 마심으로 친교하기 위함'입니다. 친교는 밥상공동체가 최고입니다.
  ⑸마25:34절에서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리라'고 하십니다. 왜 우리를 초청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저 천국의 기업을 물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할/
  그런데 언제 주께 나아가야 합니까? 내가 죽기 한 시간 전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바로 지금 나오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찬송 시인은 '이때라, 이때라, 주의 구원받을 때가 이때라'고 찬양했습니다. /아멘!/
  ②방주는 오늘날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⑴'에클레시아' 즉 불러내었다, 불러내어서 한 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집이란 뜻에서 바울은 딤전3:15절에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고 마16:18절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했습니다.
  ⑵'쿠리아코스'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주님의 것, 주님께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 의미는 비슷합니다. 이 무리를 가리켜서 엡1: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2:27절 역시 '교회는 그의 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의 지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할 때 머리에 들어오는 개념은 먼저 건물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무리'가 곧 교회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한다.'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내가 신령해져야 한다.'는 말로 나를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크고 웅장한 교회건물을 가리키며 '그 교회 참 크다.'고 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정은 집이 아니고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곧 부부를 중심으로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의 집단을 가정이라고 합니다.
  ③방주 즉 오늘날 교회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교회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일정한 장소에 모인 거룩한 회중을 가리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회중이 되는 것입니다. 칼빈은 '교회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장소'라 하여 교회를 어머니같이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에밀 부루너는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며, 칼빈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무엇인가?
  ⑴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한 집입니다.
  ⑵교회는 거룩한 성례(세례와 성찬)가 집행되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⑶교회는 높고 낮은 사람, 죄인과 의인들이 함께 나와서 겸허하게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입니다.
  ⑷교회는 천국종합병원과 같은 곳으로 만민이 치료받는 곳입니다. 지금도 신유의 은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 /할/
  ⑸교회는 신령한 학교와 같이 배우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배우고, 세상사는 법을 배우고, 성경 말씀을 배우는 곳입니다. 좋은 학생은 겸손히 잘 배우는 학생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이 신앙의 삼박자입니다. 
  ⑹교회는 군대 훈련소와 같이 훈련을 받는 곳입니다(딤후2:3).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구세군이란 교파도 이 정신에서 생겨났습니다.
  첫째, 군인은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땀 흘려 훈련받은 군인은 전쟁터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철저한 신앙훈련을 잘한 성도는 세상에서도 은혜와 축복의 삶을 누리지만 천국 가서도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기도의 눈물, 봉사의 땀, 희생의 피가 마르지 않는 신령한 훈련을 받으셔야 성령 충만합니다.
  둘째, 군인은 군기를 잘 지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셋째,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교회생활은 순종과 복종뿐입니다. 불순종하는 자는 이유가 많지만 순종하는 자는 이유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순종하다가 샘 줄기의 근원인 복을 받았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만선의 복을 받았습니다.  
  ⑺교회는 날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행2:1-4).
  ⑻교회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요, 천국의 모형입니다(고전1:18). 세상 끝 날에도 방주 안에 이름을 두고 방주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보장받습니다. /할/
  ④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⑴방주 곧 교회를 지으라는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참 행복한 교회를 세웠었습니다.
  ⑵방주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가고 내 아들이 들어가고 내 자부가 들어가고 내 손자와 손녀들이 들어가고 내 이웃이 들어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이 재미없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산으로 가고 들로 가고 골프 치러 가는 것 보다 재미없고 답답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어야 구원이 있기에 우리는 들어가야 합니다. /믿/ 방주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고 성도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이 영적인 기쁨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이 끼쁨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예수님의 발아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할/
  ⑶하나님께 복을 받고 그 받은 복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사명입니다. /아멘!/
 
  ▶2-3절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짐승들도 방주로 들어가게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다시 하나님은 노아의 후손들을 위해 그 금수들의 씨를 남겨두기 위해서, 그리하여 암수 한 쌍씩 방주로 들어가게 하되, 특별히 정결한 것은 7쌍씩 방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청결한 짐승을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 삼기 위함입니다. 또는 더욱 많이 번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악한 짐승보다 순한 짐승이 더 많은 번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절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지금부터 7일이면 심판을 위한 준비가 최종 완료된 상태에서 하나님은 다시 7일의 기간을 주시고 회개를 촉구하는 최후의 통첩입니다. 하나님은 120년 동안 기다리다가 또 7일의 기간을 주셨습니다.
  다른 의미로는 7일 후에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지면을 멸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지금 노아를 통하여 홍수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당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암3:7절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무슨 큰일을 행하실 때마다 반드시 그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고하여 알게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이 예언을 하나님의 종들에게 영감으로 주십니다.
  '40주야'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은 때때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 40일은 특별히 시련과 연단의 의미를 말합니다. 특별한 예가 이스라엘의 애굽의 400년, 그리고 민14:32절의 이스라엘 광야 40년, 그러니까 광야 방황의 시일입니다.
  행7:30절에서 '모세의 40년의 광야 생활' 그리고 눅4:1절 이하의 '예수님의 40일의 금식기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련과 연단의 끝은 승리와 기쁨입니다.   '40주야' 방주안은 이스라엘이 걷던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도 방주 안과 같습니다. 그들은 길쌈도 농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바라보면서 가나안을 향하여 매일 매일 행진하고 있습니다. 이 행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요16: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성도들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궁극적 승리로 거두게 될 것을 '40주야'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40주야의 비가 내리는 고난을 당하게 되지마는 노아는 5절 말씀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산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5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이 철저하게 순종하였음을 나타낸 말입니다. 순종하는 길이 구원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순종한 부분만큼 축복도 옵니다. 많이 순종하면 많이 오게 됩니다. /믿/
  오늘 본문에서 또 한번 노아의 신앙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순종은 축복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순종의 위대성을 기억하십시오! 사무엘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배의 완성이 순종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순종할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순종이 예배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요8:47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종을 기뻐하십시오. 순종을 배우십시오. 예수님도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은 축복을 얻는 지름길입니다. 부모에게도 순종하십시오! 엡6:1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할/

 

  ▶6-13절에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 노아의 처와 며느리 셋이 방주에 들어갔다'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한 사람을 통해서 온 가정, 온 식구가 다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고 있습니다.
  행16장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한 가족이 다 구원받아야 됩니다. 먼저 주님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너의 가정을 먼저 복음화 시키라고 당부하십니다. 중요한 절 몇 군대만 보겠습니다.

 

  ▶11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노아의 나이 600세요, 달은 2월이고, 날짜는 17일이라고 했습니다. 날짜를 상세하게 밝혀둔 것은 이 사건의 역사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허황한 신화가 아닙니다. 허황한 이야기라면 '옛날 옛적에는 이렇게 시작했다.'라는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라고 밝혀둔 것은 성경의 역사성을 뒷받침한 것입니다. /아멘!/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사십 주야 동안 비가 왔다 할지라도 그냥 비만 왔다면 제일 높은 산이 잠기고도 십오규빗 올라갈 만큼 된다는 계산을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것은 땅 밑에 물도 막 솟구쳐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 하늘의 창이란 말은 고대인들은 우주관을 즉, 대기권 넘어 2층 천에는 비, 우박, 눈, 등은 엄청나게 보관하고 있는 하늘 창고가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한마디로 문학적인 표현법을 썼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말을 씁니다. 비가 굉장히 오면 '퍼붓는다, 동이를 퍼붓는 것 같다, 장대비가 온다,'고 표현합니다. 성경의 비평학자들은 이 구절을 보고 성경은 무식한 책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 속에 문장은 오늘날 그 어떤 해악한 지식으로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대작가들과 유명인들이 성경을 인용해서 글을 많이 씁니다. 결단코 성경 속에 작품 문화는 그 어떤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12절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쏟아진 것입니다. 아까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노아 홍수 이후로는 성경에서 40일이란 숫자는 심판의 숫자, 환난의 숫자로 나옵니다.
  여러분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광야를 빙빙 돌았습니다. 빙빙 돌았다는 말은 어려움을 당하고 고초를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름길로 가면 2주일이면 하나님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름길로 못 가게 하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갈 때도 두 달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불기둥, 구름기둥이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그랬습니다. 어떤 때는 한 달 서기도 하고, 두 달 서기도 하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2년에 걸려서 바로 가나안 입구 가데스바네아까지 갔습니다. 그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민13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정탐꾼 12명은 공동운명체가 되어 40일간 가나안 전 지역, 동서남북으로 돌며 그 땅을 다 탐지했습니다. 그들이 에스겔 골짜기에 가서 포도송이가 어찌나 큰지 한 송이를 둘이 들 정도로 커서 증거로 모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보고는 '당신이 우리로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사는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여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자손을 보았나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의 보고의 결론은 '우리는 이제 죽었다. 그들은 사람 같고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이런 보고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생각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는 그 땅으로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들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보고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할 수 없다. 들어갈 수 없다. 빼앗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절망의 보고자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할 수 있다. 들어갈 수 있다. 빼앗을 수 있다'라는 희망적인 보고자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고 두 명은 '하면 된다. 해야 한다. 해 보자'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편에 속한 자들인가? 긍정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편에 써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은 많은 사람이 하는 것보다 적은 사람 두 세 사람이 더 잘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10명의 부정적인 신앙인을 보시고 40일의 정탐기간을 하루에 1년씩 40년을 방황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40일 동안 비가 왔습니다. 4절에서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실천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왜 약속하시고 실천하십니까? 우주의 모든 질서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연약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이 동일하십니다. /믿/

 

  ▶14-15절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창1장을 읽는 기분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생물을 만드실 때 다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진화론은 완전 거짓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짐승들이 종류대로 방주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그때와 같이 다시 새 질서로 만드신 것입니다. 둘씩 짝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생물을 보존해야 되기 때문에 숫놈만 와도 안 되고 암놈만 와도 안 되므로 하나님께서 다 갖추셔서 들어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세밀하신 분이십니다.

 

  ▶16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다 들어가니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아 넣으시니라' 신약에서 10처녀 비유에 신랑이 오고 난 다음 문을 닫아 버리면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습니다.
  구원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때만 구원이 있습니다. 여기 '문을 닫았다.'는 말은 '구원의 문이 닫힌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기회가 있을 때, 방주를 지어야 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계3: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지 않으시면 그 문을 열 자도 닫을 자도 없습니다. /믿/

  ▶17절 비가 계속 와서 산 위에서 땅에 붙어 있던 방주가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18절에는 방주가 배처럼 둥실, 둥실 떠 다녔다고 했습니다.
  ▶19절에는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즉 세계적인 홍수가 왔다는 것입니다.
  ▶20절에는 제일 높은 산에서 십오규빗이 더 덮였다고 했습니다. 15규빗은 7m 50Cm랍니다. 제일 높은 산에서 7m 50Cm가 물이 범람했으니 이제 세상 모든 동물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되 완벽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구원도 철저하게 하시지만 심판도 철저하게 하십니다. 구원얻을 노아가정도 보호하심을 철저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저와 여러분도 노아처럼 철저하게 보호해 주실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시121: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
  ▶21-22절에는 육지에 잇는 코로 생물의 기식하는 자는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
  ▶23-24절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일백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여기서 방주는 교회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 안에서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십니다. 마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멘!/
  한마디로 죄에서 구원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석가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문선명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여기 '자기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실 때 그들은 나약하고 무력한 백성이었습니다. 당시 얼마든지 강하고 위대한 민족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약하고 무력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엡2:12절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 말씀의 뜻은 너희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외인이었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3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 자기의 백성이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이래봬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바벨론이 세계를 휩쓸 때에 바벨론 사람이 제일이었습니다. 로마가 전 세계를 휩쓸 때는 로마사람이 제일이었습니다.
  플라톤 같은 헬라사람은 자기가 헬라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다고 할 만큼 헬라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미국 이민사회에 갔을 때 어떤 성도의 집을 방문했는데 2년 전에 받았다는 미국 시민권을 액자에 넣어서 벽에 붙어놓았다고 합니다.
  '저걸 뭐 하러 걸어 놓았느냐?'고 묻자 그 교포의 대답은 '10년 만에 얻은 시민권'이라면서 매우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국의 시민권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빌3: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할/아멘!/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으로도 저와 여러분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살아왔습니다. 아담 이후, 온 인류는 모두 죄 속에 빠졌습니다. 특별히 '저희 죄에서' 라는 말씀의 뜻은 '자기가 지은 죄'라는 뜻입니다. 인간자신이 짓고 인간자신이 빠진 죄입니다. 아담도 그랬고, 가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이스라엘도 그랬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된 저와 여러분도 죄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을 거역하는 죄인이요, 내 뜻대로 살아간 죄인이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죄입니다.
  사람들은 자식들의 학교 점수만 잘못 받아 와도 속상해 하고 시험에만 떨어져도 밤잠을 못 이룹니다. 사춘기를 접어둔 외아들을 둔 아버지가 도대체 아들이 말을 듣지 않고 매사에 표현적이고 저항적이라고 합니다.
  걸핏하면 뛰어내리고 이불 뒤집어쓰고 입에서 담배, 술 냄새 풍기고 아버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슬쩍하는 것을, 그 아버지의 고백은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푸념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되면서부터는 사업도 재미가 없고, 가정도 말이 아니고 인생 자체가 허무해지고 이젠 아들이 원수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습니다.
  상담을 받은 목사님은 그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 빗나간 아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있는 나의 자화상이고 여러분의 자화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식 때문에 탄식하고 마음 아파 할 줄은 아는데 정말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지금 이 사실에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 관계만 잘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축복이 옵니다. 예수 안에 죄 사함이 있습니다. 행10:43절에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또 예수 안에 있으면 어떤 축복이 있는가? 롬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또 롬8: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할/ 결론입니다. '방주 안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이 말씀은 '예수 안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믿/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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