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노아 시대의 죄악상 (창 6:1-8)
192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아나롤 프랑스'라고 하는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빅토르 위고'와 버금가는 그 시대에 귀한 소설가였습니다. 특별히 그의 단편 중에 '타이스'라는 작품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도시에 경건한 '파플로스'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는 늘 쾌락만을 일삼고 사는 미모의 '타이스'라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 여인도 많은 남자들을 유혹하며 타락케 했습니다.
수도사는 이 여인을 어떻게 해서든지 회개시켜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날마다 찾아가서 '속히 죄악에서 나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바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간절하게 권했습니다. '타이스여! 당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요, 당신을 찬양하는 많은 남성들도 언젠가는 모두 외면해 버리고 떠날 날이 올 것이요' 간곡하게 권했습니다.
그러나 향락에 빠져 쾌락만 좇고 있는 타이스에게는 이 초라한 수도사의 말이 공허한 소리로만 들렸습니다. 그래도 이 수도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날마다 꾸준히 찾아가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쾌락에 깊이 빠져 있던 타이스이었지만 이러한 수도사 파플로스의 열성에 차츰 그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드디어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지나간 날의 어리석은 일들을 하나하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인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나의 최후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좀 더 참되고 값있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타이스는 마침내 세속적인 허망한 쾌락과 꿈을 모두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심을 가장 기뻐해야 할 수도사는 타이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절대로 수도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며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도사 파플로스는 타이스를 구원해 내기 위해 날마다 찾아가 복음으로 깨우치는 중에 그만 이 아름다운 타이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겨 버렸고, 마침내는 사랑을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마침내 경건했던 수도사는 타락한 한 여성에게 끌리어서 하나님을 포기하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캄캄했던 여인 타이스는 하나님을 찾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경건했던 이 수도사가 세상을 접하다 보니 그만 그가 세속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죄 속에 빠져있던 한 여인이 생명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찾았다는 내용은 정말 아이로니한 사건입니다. /할/
오늘 본문은 ◀노아 시대의 죄악상▶을 이야기합니다. 6장부터 시작하여 9장까지가 노아에 관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에 5:32절에서 본데로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 당시에도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며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불순종으로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에 깊숙이 빠져 온갖 죄악을 저질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상황을 먼저 알아보자!
①믿음의 자손인 셋의 후손들은 여호와를 경건히 섬기고 숭배하는 거룩한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모이기만하면 기도했고, 주님의 은혜를 항상 잊지 않고 주의 사랑 안에서 생활을 했으며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물론 자손에게까지 이 습관을 물려주었습니다.
②불순종 불 신앙의 자손은 가인의 후손들은 셋의 후손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의 물질과 향락에 논이 어두운 자들이었습니다. 천국은 눈에 보이지 않음으로 애시당초 천국이 없다고 코웃음을 쳤고, 의와 진리는 외면해 버렸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이 없었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향락을 즐기며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가인의 후손들의 딸들은 셋의 여인들보다 정숙치 못했으며, 값진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교태를 부리고 남자를 유혹했습니다.
③두 종족들은 서로가 다른 생활과 신앙습관으로 오랜 세월을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이 화해하고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되었고, 그 화해의 원인이 신앙으로 뭉쳐서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이 아니라 셋의 자손들이 신앙이 떨어지고 영적인 경건 생활이 무너지고 예배는 형식적이 되기 시작하면서 세속문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셋의 자손들은 가인의 자손들의 유혹에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특히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져 불 신앙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으면서 부패와 타락으로 급속히 진전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아들들과 죄의 본성은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셋의 후손들 중에서 자기들의 신앙심과 경건 생활을 가인의 자손에게 물려주고자 노력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맑은 시냇물이 흙탕물에 흘려 들어가면 흙탕물이 깨끗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물이 흙탕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인들은 죄악된 세속과는 멀리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은 물 심판 이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죄, 개인적인 죄,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 의인 노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시 사회적인 죄가 무엇인지 1절에서 나옵니다.
▶1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여기 사람은 노아를 포함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4장에 나왔던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4장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예배를 잘못 드림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나서는 하나님과 교제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고, 악기를 만들고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고 양을 치고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를 발달하여 문화를 꽃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발전시킨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 요리 문답 제 1문을 보면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절에 보니 사람의 딸들이 났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계통에서 난 딸들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1-4절까지의 내용에서는 왜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게 되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당시 사회적인 죄악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아벨의 신앙의 계통에 속한 셋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4:26절에 '셋의 후손, 에노스 자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공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그들입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가 큽니다. /믿/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성도가 불신자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육체의 소욕을 좋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 인간을 볼 때,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믿음의 후예인 셋의 후손들이 믿음이 타락하여 육신 중심으로 기울여서 외모만 보고 결혼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성도의 신앙인격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결혼 상대의 믿음을 보지 않고 물질을 보고, 대우를 보고 결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자기 며느리를 고르는데 다른 것 보지 않고 믿음 하나 보고 며느리를 삼았습니다. 한 자매가 서울에서 이 고생 저 고생 다하여 결혼비용을 벌어서 고향인 청주로 내려갔습니다.
마침 고향에 갔는데 고향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자매임이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는데 한참 은혜가 쏟아지는데 교회 안에서 비가 세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오래되고 엉성해서 천장이 센 것입니다.
이 자매임은 그 이튿날 서울에서 벌어온 결혼 비용 전부를 하나님께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임의 신앙은 내 결혼보다는 하나님의 성전이 먼저 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헌금을 받아든 목사님이 정말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뒤 아침마다 목사님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매임에게 좋은 가정, 신앙의 가정으로 시집가게 해 주세요' 그런데 몇 달 후 서울에서 번쩍이는 자가용을 타고 한 분이 내렸습니다.
큰 사업채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장로님이신데 강산임한테 자매임의 신앙을 듣고 자기 둘째 아들이 늘 술만 먹고 못된 짓을 골라하는데 좋은데서 결혼신청이 많이 왔으나 이 장로님의 생각은 둘째 며느리는 다른 것 보지 않고 신앙 하나만 좋으면 우리 아들을 잘 보살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임을 그 차에 싣고 빈손으로 재벌 집 둘째 며느리가 되었답니다. 정말로 둘째 아들은 사고뭉치였습니다. 그 자매임은 그 남편을 위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고 사랑으로 남편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온 집안에서 그 아들을 다 내버렸는데 자기를 사랑으로 돌봐주는 아내의 참 사랑을 알고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신앙으로 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드디어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아 큰 사업체를 물려받아 사업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결혼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신앙이 참 좋았는데 불신자에게 시집가서 완전히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남편을 전도해서 함께 신앙생활을 잘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본문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를 아내로 삼은 것은 자기중심이요, 육신의 중심이요, 인본주의의 삶입니다. 바울은 롬8:5-7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여러분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섞어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모두가 더러워져 버립니다. 깨끗한 물 한 동이에 더러운 물 한 컵만 넣어버려도 그 물은 더러워서 못 먹게 됩니다.
본문 속의 셋의 후손들은 영적인 사람들인데 영적으로 간음한 잡혼을 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심판의 매를 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왕상11: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솔로몬이 왜 실패했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하고 결혼한 것만도 잘못한 것인데 거기다가 또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첩으로 얻었습니다. 한번 왕상11:1-2절을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사람들과 혼음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께 이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타락해도 극도로 타락하여 마누라가 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마누라들이 다 자기나라에서 가지고온 우상을 섬기겠다고 하니 솔로몬이 허락하였습니다. 물론 예루살렘도 우상의 전시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4-7절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모스 신은 아주 타락한 성적 신입니다. 몰록 신은 아이를 태워서 제사 드리는 악질적인 우상입니다. 여러분 솔로몬 왕이 어떤 왕이었습니까? 스무 살에 왕이 되고 보니 자기 스스로가 부족을 느껴 기브온 산상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기특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을 줄꼬?'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지혜가 부족하니 주의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모르오니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 말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바르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지혜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 존귀까지 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초창기 때에는 아주 참 정치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명성이 높아지고 나라가 강해지니까 이방여인들을 끌어다가 첩을 삼고 타락되어버리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 때부터 나라를 둘로 쪼개져 버리고 민족과 민족끼리 살상을 하는 그런 원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혼음사건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듯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신이란 성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있지 않고 떠나가시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성령님이 떠나버리면 말짱 헛것이 됩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가야 성령께서 같이 해 주시는데 육체의 길을 가니 성령님은 떠나시는 것입니다.
영적 원리는 아무리 그 누구라도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고 하늘의 불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영적 상태가 하나님과 가까우면 능력이 임하고 역사가 임하고 축복의 사건이 터지지만 영적 상태가 죽어버리면 그 사람의 능력은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능력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깨어 기도하고 육체를 쫓지 않고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
바울은 갈5:16-17절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 육체는 헬라어로 '살코스'라고 합니다. 타락하여 죄악으로 꽉 들어찬 육체를 가리킵니다. 이 육체의 근본은 욕심입니다. 죄악으로 꽉 들어찬 육체의 욕심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일을 멸하게 해 줍니다.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 한마디로 육체를 따라 행동하게 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120년 후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20 수는 하나님이 정하신 만수입니다. 분명히 이 지구의 종말도 하나님이 정하신 만수가 있습니다. /믿/ 정한 기간이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120년을 주신 것은 그 안에 회개의 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인간들에게 긍휼함을 베푸시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때가 곧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기간입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할/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는 말은 노아는 동네방네 사방으로 다니면서 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복음을 듣고 다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기 사위들도 우리 장인은 너무 예수를 광적으로 믿어 큰일이야. 묵살해 버렸습니다.
노아가 당시 멸망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했는데 한사람도 듣지 않고 육체를 따라 살다가 그들은 다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요나 선지자를 잘 압니다. 그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왕으로부터 백성과 짐승들까지 다 회개하여 니느웨 큰 성이 다 구원받은 사건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만 하면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4절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네피림이 있었고" '용사, 거인'을 의미합니다. 요사이는 거인을 좋아해 롯데 자이언트 야구팀의 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네피림의 거인은 '훼방꾼을 말하고 무법자, 난폭 자, 가해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네피림이 있었다는 말은 불신의 딸들에게서 아이를 낳는데 큰 거인들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힘쓰고 살 때인지라 육신 적으로 볼 때는 큰복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용사는 영웅을 말합니다. 또 유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는데 일단 세상 적으로는 명예를 얻고 지위를 얻은 자를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복을 받아 잘 되어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도 120년 후에는 심판 앞에서 불 못에 떨어질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세상에서 돈 많고, 권력 쥐고 명령을 얻었다고 자랑하는 사람 절대로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 하나님의 시간 때에 심판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부자 되고 권력을 쥐고 명예를 얻는 것, 다 좋지만 먼저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아멘!/
다시 '네피림'이란 '떨어지다'란 의미를 가진 말로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간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재능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악한 사단의 지배 아래 있으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모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여기 '그 후에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홍수 심판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계속적인 타락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도 무시되는 세상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퍅한 세상입니까?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개인적인 죄상'을 기록했습니다. 한마디로 죄로 물든 마음과 죄악에 빠져버린 시대를 가리킵니다.
노아 시대는 한마디로 용서받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악한 범죄를 조성하는 방법에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적인 범죄가 자행되었답니다. 농촌과 도시를 막론하고 이 죄가 범람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치명적인 범죄가 우상숭배 이단 사슬이 성행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을 보십니다. 옛날 같으면 깜짝 놀랄 일인데도 요사이에 너무 흔한 사건이라 감각이 무디어 졌습니다. 살인사건, 인신매매, 성폭력, 강도사건, 부정부패, 탐관오리들의 정치행각, 이 모든 것들이 죄의 결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죄는 극에 달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세계까지도 완전히 죄악의 지배를 받는 그런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한마디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철저하게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6절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한탄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양으로 지은 인간들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심히 통탄하시는 심령으로 의인적인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했습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기에 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나 죄를 다스릴 수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갈5:16-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죄를 다스리려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쫓아 살아가면 죄는 자연히 다 쓰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면 성령을 거슬려 더 이상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7절은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입니다.
▶7절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회개치 않고 거듭, 거듭 죄가 계속되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 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육축과 공중의 새까지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사람의 죄 때문에 만물까지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롬8:19절 이하에 보면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 우주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믿/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이 좋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할/
하나님의 사랑은 120년 동안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잘못했을 때, 당장 꾸짖고 심판하고 저주하고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어떤 한 사람도 살아남은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120년의 기한을 두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회개하면 심령이 열리고 역사가 나타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할/
이제 그 죄악된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남겨 두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8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롬11:5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또 사6:13절에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남은 자들을 거룩한 그루터기로 비교했습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입니다. 비록 가지는 꺾이고 잎은 떨어지고 줄기가 끊기어졌다고 할지라도 새순을 돋게 하는 그루터기만은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은 눅18:8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노아시대에 하나님은 노아를 믿음의 사람은 은혜를 주었습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귀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노아가 '잘났더라, 아주 훌륭했더라'가 아닙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과 신앙 인들의 차이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차이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 사람들보다 성질이 나은 것은 없고, 머리도 좋은 것이 없고,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모든 인격도 아주 보잘 것 없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렇게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할까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예수 믿게 되었고, 주안에서 축복된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믿/
여러분! 성경을 볼 때 초점을 여기에 두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쓰신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쓰신 우리 주님이 위대하십니다. /할/
8절의 '그러나'의 이 접속사는 '이 세상 전부가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노아는 어떤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까?
①노아는 당대(當代)의 사람들과 구별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매일 그는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이 설계한 도면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당대의 사람들과 구별된 믿음입니다.
여러분, 산에서 방주를 지었다는 행위를 어떻게 보십니까? 배를 짓는 사람이라면 평지에서 배를 지어야지 산으로 올라가 배를 짓는다는 것은 보통 생각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바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입니다.
우리가 노아에서 배워야할 점은 믿음이 머리나 입술에서가 아닌 행위의 현장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행위가 당시에 사람들에게는 조롱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들과 구별된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멘!/
②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120년을 인내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그의 매일 매일의 생활이 말씀으로 이어진 믿음이었습니다. /할/
아브라함도 100세에 무슨 아들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도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매일 매일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義)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변의 조롱도 끝까지 물리칠 수 있는 인내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멘!/
③노아가 그 시대에 감당한 사명이 이 시대를 사는 성도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지상교회입니다. 방주 밖에서 멸망을 받았던 것처럼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면 노아 홍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비밀한 계시가 무엇입니까?
⑴노아의 시대가 바로 우리의 시대입니다.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을 떠난 불 신앙의 시대입니다. 노아의 시대가 병들게 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⑵그 시대가 죄악이 관영한 것처럼 오늘 이 시대가 죄악으로 관영된 시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사단이 그를 지배하므로 자연히 세상풍습을 좇게 되고 금수와 버러지 형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타락하게 됩니다(롬1:21-23). 노아의 세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⑶우리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2:8절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자루 안에는 영육적인 아름다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음 같이 성도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⑷노아의 사명이 곧 성도 즉 우리의 사명입니다. 노아가 지은 방주는 오실 메시아의 표상입니다.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방주가 아니고는 홍수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예수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요14:6/행4:12).
노아는 방주를 지었지만 우리는 오늘의 방주인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전도가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한 영혼이라도 전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믿/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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