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헌신 예배
고난을 이긴 서원
삼상 1:10-18
사람이 사는 날 동안 즐거운 일 보다 어려운 일, 괴로운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려운 일을 잘 감당하는 것, 어려운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생살이에는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욥은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라고 말했고, 야곱은 바로 임금 앞에서 자기의 130년 나이를 회고하면서 ‘험악한 인생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실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직장이던 가정이던 사회 생활이던 어느 곳, 어떤 시간에도 괴로움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정말 고통을 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한나라는 사람인데 아이를 낳지 못해서 첩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사는 여인입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며 서러워하는 한나를 보고 남편이라는 사람은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하면서 위로를 한다 하니 답답하고 기가 찰 노릇입니다.
한나의 이런 고통을 7절에서는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이름이 이 성경 말씀에 기록이 되고 그의 일생이 영광스럽게 빛났던 것은 그가 고통을 당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더 아름답고 슬기로운 인생을 살아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그것을 처리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그 고통 때문에 더 아름다운 일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고통 때문에 인생을 망해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그 고통과 타협하여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성공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사람은 첫 번째에 속한 고통 때문에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요세 우리는 삼풍 사건으로 누구나 살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사람인 두 청년이 가장 위대한 삶을 산 것처럼 미화되어 선전되고 있는 신문의 보도를 접합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의 별 것 없는 인생 행로가 무슨 큰 교훈이나 되는 것처럼 말해 지는 것은 그들이 고난을 이기고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 보다 너무나 훌륭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대해서 우리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은 칭찬을 들어야 하고, 그 승리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의의는 어떤 사람도,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사람도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한 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안타까움과 슬픔과 괴로움을 남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난을 이겨야 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으면 언제나 기쁘고 즐겁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은혜를 달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을을 잘하고 많이 하면 그 만큼 큰 영광을 얻고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이 있고 괴로움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일에 잘못 참여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하는 말이 잇습니다. ‘교회 일에 너무 깊이 개입해서는 안되고 적당히 내 신앙 내가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개척 교회를 다니다가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한 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혼이 나면 즉시 교회를 옮기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건축이나 다른 일거리가 없는 교회를 찾아가 장로가 아닌 척, 집사가 아닌 척, 전도회 임원을 안한 척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죄인을 위한 고난이나 은혜를 많이 받아 하나님의 큰 종이 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고난을 당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었던 사도들이 수많은 성도들의 고난 당하므로 써 증명된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후에 오는 고난을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나는 어떻게 여자로써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잘 극복하여 하나님께 칭찬을 뜨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였을까요? 이제 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한나는 괴로울 때 기도를 했습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면 몇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① 분노가 생기고 화가 납니다. ② 원망이 생깁니다. ③ 체념해 버리기도 합니다. 내 운명이거니 하고 팔자거니 해 버립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특히 여인들에게는 이 운명론이 자기의 고난을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권장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고난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나 사고 방식이 아닙니다.
한나는 고난을 당할 때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도 정에 강한 사람인데 어찌 원망과 미움과 체념이 없었겠습니까? 그런 것이 없었다면 왜 울고불고 하였겠습니까? 남편이 옆에서 보기에도 딱하여 첩에게 보다 더 많은 사랑과 신경을 써 줄 정도였습니다만, 하나님의 마음은 괴로움과 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거기서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복수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의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삼상1:12-13)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 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 한지라”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왜 하나님에게 기도를 해야 합니까?
①. 다윗은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말씀하시므로 자기의 잘못을 기도하므로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②. 요나는 “(욘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피곤하고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평안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③. 바울은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여 악하고 힘들 때 기도를 해서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④. 예수님께서는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라고 하시므로 우리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하므로 얻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는데 욕이 오고 핍박과 비방이 생기거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해결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은밀한 일이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축복의 관입니다.
2). 한나는 기도를 하되 서원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서원의 기도를 하십시오. 더욱 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삼풍 사건으로 가장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사람은 119 구조대입니다. 그들은 정말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누가 위험한 일을 당할 때나 위기를 당할 때 긴급 출동을 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줍니다.
우리 신자들의 119는 하나님 앞에 있는 전화기와 연결이 되여 있습니다. 옛날의 신문고처럼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평소에 기도 생활을 잘하지 못하신 분들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한나는 지금 하나님에게 구원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하는 내용은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 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서원 기도입니다.
서원 기도라는 것은 주시면 다시 드리겠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면서 아들을 달라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누가 말하기를 다시 바칠 것을 무엇 때문에 달라고 하느냐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한나는 지금 이중적인 기쁨과 감사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받아서 기쁘고 감사하고, 받은 것을 드리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철이 든 사람은 아실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는 것 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더 큰 보람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아들을 드리는 표시로 아들에게 머리를 까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기 스스로 자원하여 헌신할 때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풍속이 있는데 이것을 나실 인의 서원이라고 합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성실하게 잘 키우겠다는 말입니다. 약속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정말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진지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 그는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 속 깊이에서 울어 나오는 진실을 눈물로 표시했습니다.
㉯ 오랫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삼상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 한즉”하였습니다. 야곱도 밤이 세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다윗도 밤에 맞도록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기도를 했습니다. “(삼상1: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그가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얼굴에 넘치는 확신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 들으시는 귀를 가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오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한나의 서원 기도는 아들을 드리겠다는 약속입니다. 한나는 그 기도를 한 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 구함’입니다.
3). 하나는 그 서원의 기도를 일찍 지켰습니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하나님에게 약속을 하고서는 그 약속을 신속히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의 딸 디나에게 불행한 일이 생겨서 큰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을 창 3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딸에게 불행한 일을 당하고서야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에게 약속한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시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시고 “(시61:5)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민30:1-2)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신23:21-23)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하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에게 서원한 것을 신속히 갚았습니다. 아들 사무엘이 젓을 떼자 마자 하나님의 종 대제사장 엘리에게 아들을 마꼇습니다. “(삼상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 지라(삼상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 하니라”
그렇게 태어난 사무엘은 누구입니까? 망하는 죄를 짓고 허우적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선지자요, 왕이요 제사장이 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헌신하시는 여러분! 내가 주님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우리 가정과 내 심령이 천국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낙심을 하여 교회를 방관시하는 무관심하고 책임 없는 성도로 전락을 하는 것입니다. 한나와 같이 믿음의 용기를 가지시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십시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하신 말씀을 새겨 보십시오.
출처 : 주님의 시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