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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직 헌신 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17-23

by 【고동엽】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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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직 헌신 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17-23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은 억지로 맡지 아니하였다면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칭찬도 받고 축복도 받아야지 라고 새로운 각오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요 각오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설교 중 한 부분입니다.
그는 자초지종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교 내용은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셨고 광야 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고, 후에 백성들이 왕을 원하므로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기스의 아들 사울을 세워 40년을 다스리게 하였으나, 교만하므로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보내 주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이런 내용으로 설교를 시작한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일반 역사가 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고귀한 일을 위해 지금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이 시대에 이 교회에서 부르심을 받은 일군이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것처럼, 특별한 사람들을 택해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선택적 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선택하시고 사용하십니다. 선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악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복과 은혜를 베푸시고자 좋은 일꾼을 선택하시어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을2 행하고, 우상을 섬기며, 불의의 길로 갈 때에, 그들의 죄를 멸하시고, 심판하시고, 징계하시고, 훈련시키기 위하여 악한 사람을 막대기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좋은 왕을 세우시어 그의 백성들에게 복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로왕, 느브갓네살왕과 같은 악한 왕을 세우시어 불의와 죄로 말미암아 부패된 예루살렘을 멸하시고 불태워 버리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악을 내려치시기 위해서 악한 자들을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불레셋 왕, 앗스루 왕, 네로왕을 통하여 역사 하셨습니다. 나아가 히틀러를 사용하여 타락한 독일 사회를 내려치셨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을 통하여 러시아 교회와 국민을 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도 수없이 매를 맞았습니다.
소련은 서울보다도 더 많은 교회가 있고, 엄청나게 화려한 성당들이 즐비합니다. 로마나 파리 못지 않은 성당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공산주의로 비참하게 되어 버렸습니까? 이를 두고 그곳 교회 지도자들 스스로 고백하기를 ‘70년전이 나라가 도덕적으로 부패했을 뿐 아니라 교회도 타락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스탈린을 통하여 우리를 내려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70년 동안이나 이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를 주신다는 것은 큰 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의인이 득세하는 것은 하나님이 복이요, 악인이 세력을 잡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의인이 잘되는 것은 복받는 증거요, 악인이 잘되는 것은 멸망의 징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와 복을 베프사 좋은 지도자를 세우셨다는 내용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왕을 세워 달라고 조릅니다. 그 자체가 그리 선한 일이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긍휼히 여기사 사울 왕을 세워 주십니다.
오늘 본분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만해진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2절에 “내가 이새의 아들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헬라어의 뜻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의 적합한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 뜻을 다윗을 통해서 다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뜻이란 심판이나, 저주나, 징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은혜와 긍훌을 베푸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왕이 세움을 받게 된다는 것은 민족적으로 주시는 큰복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실 다윗은 외모가 그리 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앞에 나설 만한 풍채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을 다 불러오라고 했을 때 다윗만 빼놓았습니다. ‘네 아들들이 이 이것뿐이냐?’라고 묻자 ‘아직 말 째가 남아 있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형제들 중에 다윗은 수에도 치지 않을 만큼 신통치 않게 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의 진실하고 정직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 몇 가지를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된 사람입니다.
(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2. 믿음의 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에 대하여 히11: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능력으로 역사 하시며,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불레셋의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 창으로 내게 나왔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고 하였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하였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한갓 목동에 불과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고 강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혹 우리들에게 어떤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들이 사실상 우리들의 절대적인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절대적인 힘이 되시고 능력이 도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울의 신하요 사위였습니다만, 사울의 병적인 질투심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사울을 얼마든지 제거해 버리고 왕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를 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피하였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은 사울이 장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임을 믿었기에 끝까지 존경하고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존경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삼상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라는 말에서 충분히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목사를 해 보니 성도들이 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를 사랑하는데 자기 오빠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고, 학벌 때문에, 인품 때문에, 목소리 때문에, 노래를 잘해서, 같은 고향이므로, 도움을 받은 일이 있어서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보다도 하나님의 세우신 종이라는 의식에서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 가지고 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4. 다윗은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회개는 겸손하고 진실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잘못을 나단 선지자가 꾸짖었을 때에 어떤 변명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중심으로 회개하였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 생각하지 아니하고, 모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회개의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회개하는 모습이 시51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단순한 회개가 아닙니다. 침상이 썩도록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이며, 자기의 죄를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진실입니다. 겸손과 진실이 없는 곳에는 회개란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는 지. 정. 의가 함께 동작이 되는 회개가 참 회개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며 죄 지은 일을 원통히 생각하며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아니해야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되 또 다시 같은 죄를 짖는다면 그것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사울 왕이 버림을 당하게 된 것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가 바른 말로 깨우쳐 줄 때에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멸망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 그는 죄는 용서하고 은혜는 반드시 갚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은 용서하고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그 은혜를 기억하여 갚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울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사울이 죽었을 때 “(삼하1: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삼하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삼하1: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라고 하였으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끝까지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한번은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피난 갈 때 돌을 던지며 욕을 퍼붓고 저주하던 시므이가 찾아와서 빌 때에도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게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섭섭히 대한 사람에게 가진 노여움을 오랫동안 간직하며 미워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반대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 사랑과 용서와 관용과 이해는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 사이에 이 용서와 이해와 화해와 은혜 갚음의 미덕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6. 다윗은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분입니다.
역대상22:14절에 보면 다윗이 넉넉할 때 드린 것보다는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은, 동, 철...자기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즐거움으로 드렸습니다.
삼하23:13절 이하에 보면 다윗이 불레셋과 전쟁할 때 목이 말라 물 좀 달라고 신하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때 세 용사가 자진해서 생명을 내걸고 적진 속에 들어가서 물을 떠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어찌 이 생명과 피 같은 물을 내가 마실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 물을 여호와 앞에 부어 드렸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지극한 정성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기뻐하였습니다.
마6:21절에 보면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친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헌신, 말로만 주님 사랑은 진정한 헌신과 주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7. 다윗은 감사와 찬양의 사람입니다.
그는 과거에 비참했던 자신을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찬양하였습니다.
사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인격자라면 받은바 은혜를 언제나 잊지 않고 언제나 감사와 보답의 생활에 힘쓰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님도 자식들이 부모님의 은혜를 좀 깨닫고 감사하는 자녀를 볼 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자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 민족과 교회 앞에 세움을 받은 지도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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