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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도회 헌신 예배 /헌신의 은혜성 /고린도 후서 6:1-10

by 【고동엽】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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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도회 헌신 예배
헌신의 은혜성
고린도 후서 6:1-10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일단 일을 시작하려면 적어도 네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 자본이 있어야 하고, 둘째, 지식이 있어야 하며, 셋째, 경험이 있어야 하고, 넷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소 이외에 한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즉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더 잘하려면 우리들의 심령에 평안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 자신이 불안해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성공의 비결을 3P라고 합니다. 'Practice' - 노력하고 수고하는 실천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Patience' - 인내를 해야 합니다. 무던히 참아 내는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Peace' - 평안입니다. 웃는 집에 복이 온다는 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안하고야 무슨 일리든 잘 된다는 말입니다.
기쁨은 은혜입니다. 기쁨은 절대적인 것이 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절대적인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 속에 사는 사람은 매사에 기쁨이 있지만 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매사에 불평만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은혜를 받았을 때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으나 은혜가 떨어지면 모든 일에 싫증이 나도 일을 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돌보심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아우그스티누스도 '당신 안에서 받는 위로를 떠나서는 아무런 위로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절대적인 위로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무익한 종의 의식을 늘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비유를 귀담아 들으십시오. “(눅17:7-10)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시중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사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을을 감당할 만한 자격과 능력도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죄요 말하는 것이 죄며 행하는 것이 온통 죄뿐인데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고 사랑 하사 주님의 일을 마끼셨으니 감사와 감격한 마음으로 죽기로 충성할 뿐입니다.
공명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언제나 기쁨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영원히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없습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목회를 수 십년하면서 깨달은 것은 교회 안에서 똑똑한 척하는 사람은 신앙 생활에 기쁨이 없고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감사 못할 이유가 한가지도 없으며, 불평할 이유도 한가지도 없습니다. 모두 감사와 찬송입니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무슨 불만이 있는가?
바울은 자기를 만삭되지 못해 난 자와 같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교회를 핍박하고, 만물의 때만도 못하고,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고, 죄인 중에 괴수요, 깡패 중에 깡패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기에게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핍박을 당하고 매를 맞고 몸에 병이 있고----- 하나님의 종이 된 것만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런 고생을 하는 것도 은혜라고 감사합니다. 몸에 고쳐지지 않는 병이 있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의 감사는 건강한 사람의 감사와 다른 감사입니다. 특별한 감사입니다.


우리 아파트에 한 아저씨가 살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 불구가 되였는데 단 500메타도 걸을 수 없어 자기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분입니다. 택시를 타고 내리는 시간에 20분은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세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노라면 그 분이 혼자서 지팡이를 집고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두루 두루 세상을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얼굴은 희망과 기쁨이 있습니다.


셋째, 우리들이 받은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깨달아 감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어느 시점에서 은혜를 깨닫느냐가 문제입니다. 이상하게도 배가 부르면 코가 둔해집니다. 그러나 시장하면 코가 예민해 집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 적게 가진 사람이 행복에 대한 감지력이 뛰어 납니다. 부자들은 웬만한 돈에 감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몇 푼에도 감사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의 귀함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병이 든 사람은 건강이 가장 귀한 보배라는 것을 압니다. 가난해야 풍요함의 은혜를 알고, 병이 들어야 건강함의 은혜를 알고 집을 떠나야 집의 고마움을 압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다음에야 그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할 조건인지를 일하고 있을 때 알아야 합니다. 병이 든다 던지 어떤 사건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했을 때 감사하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해도 사용이 없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2절에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지금'이리는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에 주신 은혜를 알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일입니다. 앞에 축복을 약속 받았지만 아직 우리 손에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돈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돈을 잃게 되면 기쁨도 잃게 됩니다. 건강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건강을 잃게 되면 기쁨도 잃게 됩니다. 내게 건강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건강을 잃으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이런 물질이나 건강이 우리들의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감사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성과 기쁨성이 그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현재성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건강하던 병이 들었던 항상 감사하는 은혜의 현실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공하건 실패했건 언제나 감사하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언제나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있음은 하나님이 은혜를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셔서 불러 주신 것입니다. 무엇이 있건 없건 이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이 은혜의 현장에 내가 있다는 이 사실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내 마음에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은혜를 못 받았다고 합니다. 즉 받은 것의 조건에 따라 감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곧 감사의 충분한 조건입니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세월을 속량하라는 말로서 ‘오늘 이 시간 바로 이 순간을 이 결정적인 시간을 최선의 기회로 만들라’라는 말입니다.
어제도 아니오 내일도 아닌 바로 이 순간, 오늘을 최선을 위한 최선의 기회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시간으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라는 말은 잘 살게 되였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수지 맞고,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풍요해 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가난에 찌든 있는 초대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처한 이대로의 이 현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현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게 자천하여 충성하는 일군이 되여야 합니다.
자원하여 하나님의 일군으로 일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신문 기사를 보니 우리 나라의 노동 운동은 피의 운동이라는 말이 있습디다. 즉 결사적인 노동운동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붉은 띠를 머리에 두릅니다, 거기에는 쟁취, 결사 투쟁, 승리라는 마음에 선뜻한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금년에도 어떤 회사의 노동자들이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노동 운동을 했습니다. 결사적으로 김일성이 때려잡듯 노동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얻은 것은 임금 인상 몇 만원이 였습니다. 한 달에 몇 만원을 더 얻자고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우리들의 현실이 참으로 비참합니다. 투쟁해서 얻은 것은 행복이 없습니다. 쟁취해서 얻은 것은 기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오래 지속되는 기쁨도 평화도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 모릅니다. 기쁨을 가지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오늘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미래를 밝게 하는 일입니까? 사회주의자들은 사람들을 긴 시간 동안 일을 하게 할 수는 있었지만 감사하며 일하게 하지 못했고 창의력을 가지고 일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만이 생산성을 가져옵니다.


마 20장에는 예수님이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포도 수확기는 일손이 몹시 부족합니다. 우리들 시간으로 9시. 12시. 3시. 5시. 일군들을 일터로 들어 보냅니다. 일군이 얼마나 부족하던지 오후 5시에도 사람을 일터로 보냅니다. 여기 시간은 사람의 나이를 말하기도 하고 시대를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오후 5시는 70이 넘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좋은 기회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같은 임금을 줍니다. 사람이 일군이 되여 일을 하려면 새벽부터 나가 일을 해야 합니다. 9시에 나간 사람도 몇 시간을 버린 사람입니다. 12시. 3시에 나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5시에 들어 간 사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현재를 귀하게 보십니다. 그들에게도 같은 대접을 해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사람이 가지는 기회는 나이에 제한이 없습니다. 시대의 조건이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건 열심히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면 하나님에게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얼마나 잘 했느냐 가 수고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일을 했느냐에 대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는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자에게 잘해 주리라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무엇이던지 감지덕지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자원성이 있습니다. 은혜를 깨달은 것은 사람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입니다. 본문 8:10에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고후 6:8-10)“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기쁨은 신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아무도 빼앗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참되고 풍부하고 가장 짙고 영원한 기쁨과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은혜는 힘이요 지혜요 용기입니다. 감사의 생활은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은혜로운 사람이 또 다른 은혜로운 사람을 낳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하십니다 은혜를 받고 증거하고 그 가운데 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겨야 또 다른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생산적인 믿음입니다. 지금은 은혜를 받을 때요 지금은 구원을 얻을 때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맙시다.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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