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인 전도 대 헌신 예배
심고 가꾸는 인생
마태복음 13:24-32
주님의 말씀에는 작은 것이 크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씨앗을 뿌린 농부의 비유가 가장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또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는 말씀도 작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창대해 진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비유들은 복음의 확장성을 말씀하신 것인데 복음의 확장성이란 생명의 확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는 현대인들이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의식을 가질 때가 있고 나쁜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얌체 적인 사고방식이 우리가 지금 하고자 하는 미래를 향한 개혁 운동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신앙 생활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이 오늘 주님 앞에 헌신하는 70인의 특별 전도 대의 헌신 예배에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씨앗을 심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하고 있는 인생의 진리입니다.
좋은 것을 심고 나쁜 것을 심는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많이 심고 적게 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심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태여 나자 말자 죽어 버린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심고 또 심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도 쉴새없이 인생살이에 무엇인가를 심고 살아갑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이런 심고 또 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봄이 되어 농부들이 씨앗을 뿌릴 때에 좋은 종자를 골라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춘궁기의 어려움이 와도 좋은 씨를 남겨 그것을 뿌려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굶어 죽는 일이 있어도 자식들 나중 일을 생각하고 뿌리려고 나 둔 씨는 먹어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콩을 심은 데서 콩이 나고 팥을 심은 데서 팥이 나게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진리고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본능이요 본분이기도 합니다. 진리입니다.
땅에 뿌리는 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심으면 진실을 거두고, 거짓을 심으면 거짓을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을 거둡니다.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의 진실한 보답을 받고 주님을 위해 헌신을 잘하면 하나님의 큰사랑을 구체적으로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거기다 신앙 생활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알고 믿음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진실한 사실을 우리 생활과 경험을 통해 체험하고, 우리 주변의 많은 증인들을 통해 더욱 잘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심는 일에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는 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동화책에 개미와 배짱이의 이야기는 때를 놓친 인생의 비참함을 잘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마 25장에 나오는 10처녀의 비유는 때를 놓지만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신 비유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처녀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준비를 잘한 처녀들은 영광된 구원의 축복에, 다른 처녀들은 지옥의 고통에 떨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달란트 비유도 충성스러운 종들에 대한 말씀과 기회를 잃어버린 개으른 종에 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잠언에도 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잠10: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전3:1-1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1640년 존 하버드라는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 때는 700파운드의 돈과 200권의 책이 고작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보잘 것 없는 돈을 가장 값진데 투자를 했습니다. 즉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하버드라는 조그마한 신학교를 보스턴에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 하버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되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자의 堡壘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 대학 출신의 노벨 수상자들과 대통령과 훌륭한 목사들과 신학자들과 인류의 복지를 위해 수고하고 정의를 위해 수고한 공로자들의 사진들이 수없이 걸려 있다 합니다. 700파운드의 돈과 200권의 책과 하버드 씨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세계와 역사를 보는 안목이 오늘 세상을 지탱하는 한 알의 씨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70인의 제자로 주님에게 발탁이 되어 명예로운 헌신을 하는 여러분들은 이 시대에 가장 값지고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한 특별한 기회를 잘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정성껏 가꾸는 진리입니다.
씨앗을 심는다고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싹이 잘 나오도록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잘 보살펴 준다는 것은 무조건 다독거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보리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밟아 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헌신이 열매가 되어 나타나도록 가장 적절한 지혜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비유에 의하면 밭에 주인이 좋은 씨를 뿌려 놓았는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려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 하고 물으니 주인은 그냥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라지를 제거하다가 알곡까지 상할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밭에는 좋은 씨인 알곡과 나쁜 씨인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는 좋은 것도 많이 있지만 나쁜 것도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심판 때가 되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히 가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는 사람은 개신교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라는 인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②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는 가라는 도덕적 행위의 요청입니다.
③ 나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는 종교적 요청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은 당연히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되지만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그만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셔야 하고, 참 자유가 있어야 하고, 영원불멸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①. 지금 우리가 가꾸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헌신된 우리들의 마음의 각오가 변치 아니하도록 확고해 지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을 했지만 어떤 일로 인해 결국 주님을 배신해 버린 사례들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 가롯인 유다가 그렇고, 사울이라 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주님을 위해 1,000번 제사를 들이면서까지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 맹세를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 큰 책망을 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②. 가꾸어야 할 것은 복음이 왜곡되고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런 의도로 하셨는데 그 말씀을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말씀으로 해석을 해서 왜곡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훼손되고 어처구니없는 사단의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헌신된 여러분들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되 바른 복음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말에 ‘모로 가도 서울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못된 속담이 있는데 이건 세상살이에서도 못된 속담이고 더욱이 전도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못된 속담입니다. 주님의 원칙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가꾸기 위해 내가 먼저 원칙적인 말씀의 훈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③.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전도하여 결신이 되면 내가 전도를 잘해서 결신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전도하기 아주 오래 전에 하나님의 작정이 있으셨고 누군가를 시켜 계속 그 심령에 복음의 씨를 뿌리셨는데 그 뿌려진 씨의 열매가 내게 와서 결실이 된 것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말로 글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섭리와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랫동안의 기도와 헌신이 있음으로 이루의 진다는 것을 알고 전도자가 급한 마음을 버리고 인내하므로 꾸준히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있어 좋은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것들은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거두는 축복이 반드시 있습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30, 60, 100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씨를 심는 것과 거두는 법칙에는 몇%의 수확이라는 공식은 없습니다. 적어도 몇 십배, 몇 백배의 수확을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적어도 몇 십배, 많으면 몇 백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5병2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이 그 좋은 예라 할 것입니다. 갈릴리 시골 나사렛에서 예수님께서 시작한 복음 운동이 3년이 지나자 120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억의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2000년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심을 수 있는 사람이 심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큰 저주를 받았는가를 잘 말씀해 주시는 주님의 비유입니다. 정성을 다해 심고 물을 뿌리며 가꾸면 하나님께서 그에 보답하여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각종 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음계는 모두 8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이 8가지의 음들이 헨델이나, 베토벤이나 모짤트나 다른 음악가들에게 요리가 되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영어의 알파벳은 26개입니다. 그러나 이 알파벳이 섹스피어나 위대한 문인들에게 조리가 되면 역사를 말하고 인간을 말하며, 진리를 말하는 참으로 훌륭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 하나 떨어져 있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해지면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살아 있는 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70명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면 큰 일을 할 수 없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름답게 조화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복된 사건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진화론자인 촬스 다윈이 쓴 <비그로의 항해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윈은 남아메리카의 치에라 델 휘고라는 섬에 가서 얼마 동안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포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완악하고 위험하고 난폭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게 해 보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여러 해를 지나서 다시 그곳에 가 보게 되었는데 그는 믿지 못할 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섬사람들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인품과 건강한 도덕 생활을 가고 있어서 그야말로 지상 낙원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하고 알아보니, 훼건이라는 선교사가 그 섬에 들어 와서 전도를 했는데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선악을 알고 회개하고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윈은 이 사실을 알고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집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수년 동안 노력했지만 술주정뱅이 한 사람도 바로 잡지 못했는데 당신은 설교로써 이 섬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라고 훼건 선교사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
①.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주님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②. 축복을 심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어느 집에 들어가던지 그 집에 평안을 빌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③.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④. 물질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9:10)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것이면 무조건 하나님께 심고 사람에게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우리들의 육신과 영혼을 사치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는 최소 한도의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최대한의 마음을 써야 합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라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고 하신 말씀들이 모두 좋은 것을 심어야 좋은 것을 거두고, 많이 심어야 많은 것을 거둔다는 말씀들입니다.
출처 : 주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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