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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마20:6-10
폴란드 태생으로 26살에 미국에 건너와 제조업으로 성공한 유태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70세 후반에 은퇴하여 뉴욕의 노인 클럽(Golden Age club)에서 무료한 삶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스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 그림교실에 등록을 했다가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겨우 10주를 배웠을 뿐이었지만 구약성서와 히브리 문학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미술가와 평론가들에게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 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던 작품들은 시애틀 미술관과 마이애미 대학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고 많은 수집가들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는 101살의 나이에 22번째 전시회를 가졌고 103살에 죽었습니다. 81살에 미술을 시작했던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의 이야기입니다. 리버만의 이야기는 늦다고 생각할 그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따라서 인생은 마지막까지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축구경기에서는 연장전인 인저리타임(injury time)에 골이 터져 승패가 바뀌기도 합니다. 농구경기에는 '버즈 비터(buzzer beater)' 가 있습니다. 종료 신호음이 울리는 순간 던진 공이 골대에 들어가 경기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골프경기도 연장홀인 서든데스(sudden death)에서 승부가 가려집니다. 인생도 마지막 순간에 성패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인생 같지만 마지막 순간에 승리가 뒤집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로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기 전까지 절대로 포기해서 안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 포기의 결정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포기를 물리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마귀의 공격을 받습니다. 포기는 하나님을 떠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마귀가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의 비유입니다. 이른 아침에 일꾼들이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3시, 6시, 9시, 그리고 11시에 길에 나가 일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 일하게 합니다. 마지막 시간인 11시는 오후 5시입니다. 주인은 포기하지 않고 11시까지 일꾼들을 찾으신 것입니다. 매튜헨리(Matthew Henry)는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그렇고,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인류의 마지막인 종말을 준비하는 것도 그래야 합니다. 날마다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송년주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어떤 자세로 믿어야 합니까?
첫째로, 기다려야 합니다.
영국의 성경번역자이며 설교가인 필립 브룩스(Phillips Brooks) 목사가 한번은 안절부절하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묻습니다. "브룩스 목사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목사님은 말합니다. "나는 급해 죽겠는데 하나님은 도무지 급하지 않은가 봅니다". 하나님은 급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니엘 12장 13절입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니라".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예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열 처녀 비유에 나타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올 것을 준비하며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림을 지체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부름 받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이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믿음과 바꾸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적 성숙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이 또 있는지라". 포도원의 문은 오전 6시에 열립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군은 문이 닫히는 시간인 오후 6시보다 한 시간 전에 주인에게 선택되어 포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기다렸기에 일꾼이 되었으며, 종일 일한 사람과 같은 품삯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면 포기할만한데 이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점심이 지나면 포기하고 돌아갈텐데 이 사람은 끈기 있게 기다린 것입니다. 기다림은 신앙이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성경은 기다림을 가르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20년을 기다리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육신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로 인해 집안에 큰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가나안땅에 대한 약속이 이뤄지기까지는 백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총알 같은 속도로 오지 않고 느리고 완만하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이 서두르지 않으시기에 우리도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로, 감사해야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필가로 문화부장관까지 지냈던 이어령(李御寧)씨가 예수 믿고 세례 받은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딸과 손자의 질병과 그 치유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어령씨의 나이 75세입니다. 그는 뒤늦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어령씨는 심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제 딸 민아는 암과 시력 장애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모두 신앙으로 극복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혈육의 아버지 힘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지식과 돈이 너를 구하지 못했다. 정말 네가 주안에서 편안함을 얻었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이 아니냐. 내가 이 무력함에 매달려 지금까지 살았구나. 같이 동행하자. 지금은 자신은 없지만 네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본 빛을 나에게도 보이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인생을 맡겨 드리지 못한다면 아직 인생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어령씨는 이성과 지성 너머에 있는 신의 존재를 깨닫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늦은 나이에 부르심을 받았기에 사랑의 깊이는 이른 시간에 부름 받은 사람들보다 더할 것입니다. 해질 무렵에 부름 받은 인생이었기에 주인인 하나님께 느꼈던 감사와 고마움은 실로 큰 것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포도원 주인이 그랬듯이 하나님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사람을 찾으러 다니십니다. 하나님 앞에 늦은 인생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끝났다 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해질 무렵까지 찾아 나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늦은 때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75세에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함께 달렸던 강도는 죽음 일보 직전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일꾼된 존재 자체를 보십니다. 일한 시간보다 일하는 태도와 동기를 더 보십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감사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인생에 대해서 절대로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불평치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의 일입니다. 폐회식을 위해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들은 경기장에 들어오는 마라톤 주자에게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꼴찌를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탄자니아 선수인 '아크와리(J. Stephen Akhwari)' 입니다. 그는 마라톤을 달리는 도중에 넘어졌습니다. 무릎은 깨져 피가 흘렀고 통증도 굉장했습니다. 눈의 초점이 풀릴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골라인을 통과하자마자 기절합니다. 그가 깨어나자 기자들이 달려들어 질문합니다. "어차피 꼴찌인데 왜 끝까지 피를 흘리며 달렸습니까?" 그는 대답합니다. "나의 조국이 나를 머나먼 이곳까지 보냈습니다. 비록 조국에 금메달을 안겨주지는 못하지만, 기권해서 조국에 불명예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올림픽 정신이요,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일찍 믿었으면 일찍 믿은 대로, 늦게 믿었으면 늦게 믿은 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숨지는 순간까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사람을 최고로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언제부터 믿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과거에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고 또 아무리 충성을 하였다 해도 지금 나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지금 주께서 재림하신다면 주님 앞에 갈 수 있을는지, 아니면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시간인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가 한 시간 일을 한 사람들은 오전 6시에 들어와서 일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볼 때 일한 양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였기에 같은 품삯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일회성으로 그쳐서 안됩니다.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솝(Aesop)우화인 '토끼와 거북이(Hare and Tortoise)'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토끼는 거북이와의 경주에게 한참 앞서 달려갑니다. 거북이가 쫓아오려면 멀었다고 생각하고 토끼는 그늘에서 잠을 잡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북이에게 지는 화근이 되고 맙니다.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게으름을 부려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마지막까지 달려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선택을 기다리며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르시며 일하게 하시고 상급까지 베풀어 주시리라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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